(수필) 전통 5일 시장이 꽃피던 날에/송 명복(요셉)
우리 주변(周邊)에는 있는 듯한데 없는 게 있다. 세월(歲月)이 흐름에 급속히 변해가는 틀 속에는 옛 모습, 옛 정서(情緖)가 사라진 지 오래다. 간혹 이런 이유인지 “사람이 사는 냄새”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옛날 삶의 흔적(痕迹)과 시끌시끌 한 소리, 열정(熱情)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이 전통시장(傳統市場)의 꽃처럼 피어오른다. 우리 삶 속에는 언제부터인지 코르나 19사태로 가려진 어두운 표정(表情)이 있는 듯했다. 요즘엔 초겨울 싸늘한 바람이 온 동네를 뒤덮은 탓일까 싶기도 했었다. 도시의 공동화(空同化) 현상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도시의 표정(表情)이 이상하리만큼 헝클어진 것을 보아온 지 오래된 일이다.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위안(慰安)하는 맘속이 불안(不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도심(都心)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동네에 조그만 변화(變化)의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사적(私的)으로는 우리 동네 전통 시장 골목은 도대체 왜 그런 거야 하는 불만(不滿)이 가득했었다. 그래서일까 이런 맘속에 미풍(微風)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 골목 상권(商圈)의 활성화(活性化)를 위한 방책(方策)으로 전통 5일 시장이 찾아온다고 한다. 어느 시인(詩人)이 지적했듯이 그 옛날처럼 “생(生)의 비린내 속 황구처럼 어슬렁거리다가 오일장 한구석 푸성귀 더미 위에 부려진 내 그림자를 바라보네” 그런 날이 실현(實現)되는듯하다. 비록 디지털 혁명으로 화장(化粧)한 모습이긴 했지만 싱그럽기 그지없다.
세월 속에 지나간 옛 시절(時節)에 장날 풍경은 향기로운 추억(追憶)이었다. 그 시절(時節) 장날이면 온종일 참기름과 들기름 냄새가 가득했던 방앗간 집 아들이기에 남다른 점도 있었다. 시장 입구(入口)에선 머리 위에 옥비녀로 쪽진 할머니가 완두콩 한 사발 갖다 놓고 쪼그려 앉아 있곤 했었다. 그 시절에 야속하게 지나가는 발걸음을 본 것도 기억(記憶) 속 한 장면(場面)이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혹시나 잘못해서 엎질러질까 싶은 마음에 콩 사발만 들었다 놓았다 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장날 중에서 가장 빛을 발휘했었던 것은 석양(夕陽)이 물드는 시간에 펼쳐졌었던 해넘이 떨이가 아닌가 싶다. 하루 동안의 장사를 갈무리하던 장사꾼이 간고등어 한 손 토막 쳐 대면서 억수로 싸다고 외쳐대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뜬 눈으로 허연 배때기로 누운 채 죽어간 고등어, 갈치, 꽁치, 농어 등의 누드 행렬이 끝나가곤 했으니 흥미롭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일까 오랜 시간 침묵을 깨고 도심 속에 부활한 전통 5일장 모습은 아주 독특하게 변해 있었다. 행인(行人)이 지나가는 길목에는 여전히 손수레 위에 과자와 견과류, 호떡과 생선이 등장하고 있었다. 시장 골목 중소상공인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디지털카메라와 유튜버 방송 채널의 등장이 시대의 변화(變化)를 이야기해주는 게 아닌가 싶으니 말이다. 이뿐 아니라, 품바 출신의 대중가수 등장(登場)은 흘러간 시대가 가져온 변화(變化)를 말하고 있었다. 혹자(或者)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논하면서 낭만(浪漫)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생활 속에 전통적인 풍경(風景)이 사라진듯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지난 시절 시장(市場)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숨 쉬는 생활공간(空間)이었다. 어쩜 어린 꼬맹이는 엄마 손 붙잡고 시장 가는 길이 신나는 행사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주 모처럼 시장에 가 보면 시끌시끌한 소리와 비릿한 냄새, 살아있는 사람들의 소리가 가득했었다. 그 시절(時節) 사람들은 그 소리와 냄새가 좋아서 시장길을 기웃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요즘에 비할 바가 없는 환경(環境) 탓이었다. 지난 시절 돌이켜 보면 많은 사람은 잃은 것을 찾으려고 허둥대고 있었다. 이런 이유인지 내륙지방의 바다를 잃은 사람은 청어, 조기, 고등어, 갈치를 사 들고 가고, 고향(故鄕)이 그리운 사람은 산나물을 한 바구니 담아가는 곳이 시장(市場)이었다. 실제로 물건을 파는 이나 사는 이나 다 같이 외로워 보이는 시장 안 풍경(風景)이었다. 그 당시엔 왠지 허전한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로 위안(慰安)을 삼은 듯했다. 요즈음 우리 주변(周邊)에는 세상의 변화(變化)가 가져온 물질의 풍요(豐饒)와 바뀐 사고(思考)의 흐름이 가득하다. 여기저기 각종 첨단 편의 시설이 가득한 대형 할인 상점에서는 우리의 지갑을 털어가는 귀신(鬼神)들이 넘쳐난다. 어쩌다 한번 가기만 하면, 주머니에 든 현금이나 카드를 털어가기 시작한다. 각종 장신구와 아이스크림 귀신, 사탕 귀신, 케이크 귀신, 과자 귀신 등이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는 현대 문명(文明)이 야속해지는 순간(瞬間)이 있다. 아무튼 사람들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한다. 상상(想像)해보라. 예전의 허전한 사람들이 모여서 외로움을 달래주던 공간(空間)이 어찌 그리워지지 않겠는가 싶으니 말이다.
상인(商人)들이 하루하루의 밥거리를 해결하는 장터에는 역사 속에 숨겨진 점도 있다. 지난 시절 상인(商人)들은 바쁜 손놀림으로 장작불을 피우고 서로의 아침을 격려하는 장소(場所)가 시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구부정한 할머니도 구부정한 아저씨도 호호 입김을 불며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주고받는 장면(場面)을 상상해 본다. 사실 요즘은 상상(想像)해 보기도 힘든 장면이 가득한 이효석 작가의 “메밀꽃 필 무렵”이 아련히 떠오르는 것도 우연(偶然)이 아닌 듯하다. 장돌뱅이 허 생원과 조선달 그리고 동이 사이에 펼쳐지는 하룻밤 사이에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긴 봉평 시장과 대화 시장 사이를 오가는 이들이 펼치는 삶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메밀꽃이 하얗게 설원(雪原)처럼 펼쳐진 곳이었다고 한다. 어떤 점에선 낭만(浪漫)이 가득했으리라는 엉뚱한 상상(想像)을 불러오기도 한다. 온종일 장터에서 지친 허 생원이 씻는 곳을 찾다가 들어간 곳이 물레방앗간이었다. 이야기 속에는 처자와 하룻밤 벌린 사연(事緣)이 왼손잡이 아들 동이의 등장(登場)을 암시(暗示)하며 끝을 맺는 로맨틱한 뉘앙스를 남기지만 말이다. 이런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도심 속에 우리 마을은 개발지역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소재(所在)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런 곳이 한동안 소외(疏外)당하다가 새삼 현대판 장돌뱅이로 활기를 찾아가는 모습이 웃음 짓게 한다. 현대판 장돌뱅이는 5일 간격으로 달구지에 동력(動力)을 깨우고 삶에 활력(活力)을 불러오기 위한 장소(場所)로 이곳을 택한 것 같다.
어느 시대의 시장(市場)은 그 시절(時節) 삶의 물결을 반영(反映)하는 듯하다. 어떤 점에선 시장(市場)은 영세 상인(商人)들의 거친 숨결을 통해 삶의 현장(現場)을 배울 수 있기에 학생들에겐 살아있는 배움터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엔 세상(世上)을 살아가는 지혜(智慧)와 기술(技術)이 있다. 우선 지혜로운 상인(商人)은 언뜻 보기에 손해(損害) 보는 것 같지만 시장(市場)에 나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情)을 베푼다. 그런 다음 물건 구매(購買)를 유도(誘導)하고 다시 찾아오게 하는 마력(魔力)을 지니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훈훈한 인정(人情)이 그리워질 때면 찾아가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손님이 구매(購買)한 물품을 정성껏 포장(包藏)해주고 비닐봉지를 한 겹 더 씌워서 들고 가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 주기도 한다. 요즘에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혁신(革新)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재래시장이기도 하다. 아주 톡톡 튀는 감성(感性)으로 시장에서 문화적 행사를 주관하는 DJ가 등장하기도 하고, 예쁜 글씨체를 자랑하듯 POP 메뉴판 등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마치 TV 화면 속에 등장하는 트로트 경연대회와 같은 신선한 느낌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 옛날 옛적에 우리 선조(先祖)들이 장터에서 맞흥정하면서 몽전을 멀리하며 정당한 바꿈질을 통해서 모갯돈을 마련하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우리 후손(後孫)들이 친우(親友)에게 성앳술을 권하면서 복물(卜物)을 정리하며 본변(本邊)을 계산하고 상투를 잡히지 않고 횡재(橫財)할 그날을 기대하는 맘이 가득한 초겨울 밤의 흐름 속으로 빠져본다.
2021. 11.29: 20:50, 저녁에~
[용어정리]
‧ 맞흥정: 파는사람과 사는사람이 직접 마주 대하여 하는 흥정.
‧ 몽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번 돈.
‧ 바꿈질: 물건과 물건을 맞바꾸는 일.
‧ 모갯돈: 액수가 많은 돈. 목돈.
‧ 성앳술: 흥정을 도와준 대가로 사주는 술.
‧ 복물(卜物) : 소나 말의 등에 실어 나르는짐.
‧ 본변(本邊) : 본전과 이자.
‧ 상투잡다: 값이 가장 비쌀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