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쟁. episode 01
(본스틸 대장과 채명신 장군의 한 판 대결- 탄피 목장의 결투)
그 당시, 본 스틸 대장은 주한유엔군 사령관이었고, 채명신 중장은 주월한국군 사령관이었다. 이 두 사령관 사이에 본의아니게 한 판 대결이 붙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 한창 전과를 올리고 있던 1968년 말경이었다.
“월남에 있는 채 장군이 탄피를 밀수해서 번 돈을 모 기업에 넣어놓고 축재를 하고 있다. 한미간에 이미 외교 문제가 된 일로 더 확대되기 전에 어서 직위 해제하고 주월한국군 사령관을 노00 장군으로 교체해야한다.”
이런 말이 군 요로에 공공연히 나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당시 채사령관은 어마어마한 양의 탄피를 국내에 밀반입하고 있었고, 이 문제를 처음 한국 정부에 제기(고발)한 사람이 본 스틸(Charles H.Bonesteel III) 당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그 파장은 대단했다. 박 대통령의 입장이 곤란해지고, 후임 사령관 이야기까지 오르내릴 정도로 심각했던 이 탄피밀수사건의 진실은 무엇이며, 채 사령관은 이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났을까?
채 사령관이 본 스틸 대장에게 보낸 장문의 영문 항의편지와 직접 밝힌 이야기를 종합하면 당시 탄피 밀수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 내가 탄피를 밀수입한 것은 맞다. 나는 100 군수사령부 뒤 숲속에 용광로까지 만들어놓고 신주 포탄 탄피를 녹였다. 탄피 한 트럭이 용광로를 거쳐 나오면 조그마한 책상 하나 크기로 변했다. 그런 신주 덩어리를 배에 가득 실어 국내로 들여보냈다. 그 때만 해도 산업에 꼭 필요한 신주가 매우 귀한 때라 신주는 국내에서 값이 상당히 나갔다.
- 용광로 작업은 야간에만 했다. 낮에 하면 연기 때문에 미군에게 들킬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탄피를 수집해서 보내는 데까지만 알지, 그것이 국내에 들어가 어디에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문제는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소관이었다.
- 전투병들도 소총 탄피를 주워 모아놨다가 귀국 때 가져오면 제법 목돈을 쥘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건 모두 위법이었다. 그러나 나는 헌병들에게 귀국 박스에 손대지 말고 가지고 가게 놔두라고 지시했다. 본국에 가지고 가면 국가는 국가대로 좋고, 병사는 병사대로 팔아서 공부하는 학생은 학자금에 보태 쓰고, 농사짓는 사람은 송아지라도 한 마리 장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68년 말 쯤 문제가 생겼다. 당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던 본 스틸 대장이 이런 사실을 알고 우리 정부에 항의한 것이다. 내가 사이공에서 본 스틸 사령관한테 해명 서한을 보냈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고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였다. 69년 초 내가 업무 보고 차 일시 귀국했더니 탄피문제로 온통 야단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도 나를 보자마자 탄피 이야길 꺼냈다.
"야, 야! 채 장군! 그 탄피 이제 고만 보내! 미국 놈들한테 들통나서 지금 본 스틸 대장이 지랄하고 있어!"
"그래서 각하께서도 시인하셨습니까?"
"아니야. 조사해 보겠다고 했어.”
“잘하셨습니다. 절대 시인하시면 안 됩니다.”
"아무튼, 이제 고만해, 그만하면 충분하니까!"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 계속 보내겠습니다. 대신 각하께서는 절대 시인하지 마십시오. 조사해 보겠다고만 하십시오. 미국 입장에서는 법규위반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떳떳합니다. 저도 떳떳하니까 하지 명분 없는 일이면 제가 왜 하겠습니까?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그러고는 김성은 국방부 장관실에 들렀다.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보다 터 걱정하고 있었다.
“외교 문제로 크게 비화 될 것 같은데 어쩌면 좋겠소?"
"그 문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일단 나는 장관을 안심시킨 후, 본 스틸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만날 약속을 하고 다음날 10시에 용산으로 찾아갔다.
본 스틸 사령관은 뜻밖에 의장대까지 준비해 놓고 나를 환영했다. 나 그럴 기분이 아니었지만 준비된 행사라 어쩔 수 없이 사열을 받았다. 행사가 끝나고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다른 사람들을 다 내보네게 한 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당신이 우리 국방부 장관한테 탄피 문제로 보낸 항의서한 나도 읽어 보았다. 서명을 보니 당신이 보낸 게 분명했다. 당사자인 내 말도 들어 보지 않고 그럴 수 있느냐?"
“그 문제라면 주월한국군이 우리나라 법을 위반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
“그래, 좋다. 그 건으로 나는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에게 불려가 야단을 맞았다. 당신은 항의문에서 주월한국군이 G.A.O 법률을 어겨 양국간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던데, 나도 그 법률에 대해서는 잘 안다. 미국 전쟁물자를 전쟁 지역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규정한 법 아니냐? 탄피도 전쟁물자로 취급되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어겼다고 했다. 물론 그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월남에서 탄피라는 게 도대체 어떤 성질의 것인지, 그 의미를 당신 아느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당신의 생각을 말해 달라."
“월남에서 탄피를 버리면 이적행위가 된다! 왜냐하면, 베트콩들이 탄피를 주워 캄보디아에 있는 비밀공장에서 탄알로 만들어서 미군이나 우리 한국군을 쏴 죽이는 데 이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포 탄피를 철저하게 회수할 것을 엄히 지시했다. 심지어 당신들이 규정하지도 않은 소총 탄피까지도 절대로 적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당신들이 탄피를 회수하는 이유는 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내가 우리 장병들에게 탄피회수를 철저히 시키는 것은 바로 이 이적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미군과 우리 한국군은 물론 모든 연합군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적행위라는 내 설명에 본 스틸 대장은 얼굴색이 변했다. 나는 준비해 갔던 자료를 내놓고 계속 몰아붙였다.
“당신은 반납해야 할 탄피를 국내로 반입했다고 말했는데, 우리가 반납하지 않은 것이 결코 아니다. 자, 봐라. 이것은 한국군과 미군이 지난 68년 1년 동안 사용한 포탄 탄피 반납 비교표다. 우선 105mm 탄피만 보더라도 미군 7개 사단 21개 105mm HOW BN에서 사용한 총포탄수 8,906,010발 중 반납 탄피는 철탄피 4,809,245 발과 신주 탄피 335,190발로 모두 5,144,435발이다. 이는 총소모량의 57.7%이다. 이에 비해 우리 한국군은 같은 기간 2개 사단 6개 105mm HOW BN에서 총 1,229,703발의 포탄을 사용했고, 이 중 철 탄피 813,968발과 신주 탄피83,361발, 모두 897,229발을 반납해서 총소모량의 73%를 반납했다. 우리가 너희 미군보다 15% 포인터 이상 더 많이 반납했다. 월남군은 반납률이 우리의 1/4밖에 안 된다. (이 통계는 채 사령관이 본 스틸 대장한테 보낸 영문 항의 서한에 나와 있다.) 이건 뭘 뜻하나? 바로 내가 조금 전에 말한 대로 미국군과 월남군이 이적행위를 우리보다 많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뿐이 아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우리는 탄피로 전신주도 세우고, 관망대 기둥이나 차고 기둥, 포진지 옹벽 버팀목 등, 여러 곳에 탄피를 사용하여 폐자재를 군수품 대체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곧 당신들의 전쟁비용을 절약시키는 일로 연합군 중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다. 포탄 탄피 하나 회수하는 일이 쉬운 게 아니다. 작열하는 햇볕에 한두 시간만 놔두면 탄피는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진다. 맨손으로는 만지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은 온갖 도구를 다 만들어 힘들게 운반하고 반납한다. 미군 반납률이 우리 보다 떨어지는 이유는 그런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신들은 안 하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탁자 위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계속 말했다.
“또 하나,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우리 정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대통령에게 이 일을 말씀드리면 법규위반인 줄 아시는데 승낙하실 턱이 없다. 국방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이건 순전히 현지 사령관인 내가 우리 장병들 복지를 위해 내 임의대로 한 일이다. 당신도 우리 전방에 가보아서 알고 있겠지만 지금 우리 전방에 근무하는 장교나 하사관들의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거처할 숙소가 마땅찮은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 교육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이 가족들을 서울이나 멀리 떨어진 후방 도시에 두고 혼자 근무를 하고있다. 나는 이런 점이 우리 군 전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나는 이런 우리 장병들의 근무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해서 전력을 높여보려고 이 일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단언컨대 당신이 나였더라도 아마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내 말에 본 스틸 대장은 얼굴이 상기된 채 아무 말을 못 했다. 나는 내친김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당신의 입장에서 보면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다. 당신 나라의 국법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떳떳하다. 왜냐면 전장에서 이적행위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도 군복을 입은 군인이기 때문에 부하를 배려하고 조국의 안녕을 염려하는 점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따라서 같은 군인으로 주재국 정부에다 함부로 서신을 보내 국가 간의 문제로 비화시킨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장관이나 대통령께 꾸중을 듣는 것은 상관없다. 그리고 모든 것을 책임질 준비도 되어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나에게 하등의 의견도 알아보지 않고 곧바로 우리 정부에다 따지고 든 행동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이 문제를 웨스티(William Childs Westmoreland 장군의 애칭)와도 의논하지 않았고, 보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웨스티가 이 문제를 모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언반구 말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는 서로를 믿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이해와 믿음의 관계가 당신과도 이루어지길 기대한다.”내 말이 끝나자 본 스틸 대장이 고개를 몇 번 끄떡이더니 손을 내밀었다.
“잘 알겠다. 그런 내막인 줄은 몰랐다.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 좋은 이야길 해줘서 고맙다.”
이렇게 해서 자칫 한미 외교 문제로 비화 될 뻔했던 탄피 밀수사건은 채명신 사령관의 KO승으로 끝났다. 본 스틸 대장은 2차대전 당시 한국 38선을 그은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 6·25 전쟁에도 참전한 뒤, 주한 미8군 사령관까지 된 한국과 인연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다.
(베트남전쟁 이야기. p.p28-34. 김현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