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5/ 이스라엘 백성의 요단강 도하는 언제 마쳤는가? 또 그 기념비는 어디에 세워졌는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수4:8~9)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일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 주는 또하나의 장엄한 시위였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가장 먼저 요단에 들어서야 했고, 백성이 다 건널 때까지 요단 가운데에 섰다가 백성이 다 건넌 다음에 가장 마지막에 요단에서 올라와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임재를 나타내는 언약궤로 인해 그들이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게 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3장 17절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 갔더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4장 1절은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쳤다"고 하였다. 그렇게 백성은 요단을 건넜다. 그런데 4장의 본문에는 백성이 요단강 건너기를 마쳤다는 표현이 또 한 번 나온다. 11절의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이다. 1절에서 이미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쳤다"고 했는데 다시 같은 언급이 나오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그렇다면 백성이 요단을 다 건넌 것은 언제인가?
그러나 이는 4장 1절에서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치매라고 한 다음에 곧바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로 시작되는 새로운 명령이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은 요단강 도하 기념을 위해 각 지파에서 대표를 뽑아 다시 요단강에 들어가 제사장들이 섰던 곳으로 가서 열두 돌을 취하여 그들이 머물게 된 곳에 두라는 것이었다. 대표들은 그 일을 명령대로 수행하였다. 제사장들은 그 대표들이 그 일을 마칠 때까지 요단에 서 있다가 그들이 그 모든 일을 마친 후에 요단에서 올라온 것이다. 11절은 그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 결국 3장에서 시작된 요단강의 도하는 4장에서 완전히 마쳐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살펴볼 것은 요단강을 건넌 기념비를 과연 어디에 세웠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4장 8절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고 하고, 9절은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거기에 있더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기념비는 두 개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즉 처음 열두 개는 요단을 건넌 다음에 그들이 진을 친 길갈에 있고, 다른 열두 개는 요단강 가운데 있는 것이다.
처음 열두 돌의 기념비가 길갈에 세워진 것은 분명하다. 20절이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라고 분명히 말하고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9절의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라는 구절이다. 왜 여호와께서는 볼 수도 없는 요단강 가운데에 기념물을 세우라 하셨는가?또 어차피 물에 쓸려 갈 기념물을 세우라는 것은 이치에 안 맞는 말 아닌가? 그래서 어떤 주석들은 9절의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라는 구절을 요단 가운데로부터 곧 언약궤를 멘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으로부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9절을 요단에 기념물을 세웠다고 읽지 않고 요단에서 돌을 취하였다고 읽는 것이다. 다시 말해 9절의 '열두 돌을 8절의 '열두 돌과 같은 것으로 보는것이다. 즉 기념물이 두 개가 아니라 길갈에만 하나가 세워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브토크를 '~부터'로 해석하는 것은 작위적이다. 또만일 9절의 돌들이 8절에서 언급한 바로 그 열두 돌이라면 9절의 '열두돌' 앞에는 정관사 하가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9절의 '열두 돌'에는관사가 없다. 요단 가운데에 기념물을 세우라는 명령을 어색하다고 생각한 이런 판단은 그들이 건넌 곳의 수심이 항상 깊었을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이 요단을 건넌 시기는 "곡식 거두는 시기"로물이 "항상 언덕에 넘치는"(3:15) 때였다. 그 말은 일 년 중 나머지 기간은 그곳이 마른 땅이어서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는뜻이다. 화잇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일년 중 이 계절은 봄이었다. 산의 눈이 녹아내려서 요단강 물이 불어 둑에 넘쳐흘렀으므로 평상시에 걸어서 건널 수 있던 곳으로도 건널 수 없었다(부조,483).
제사장들이 서 있던 곳은 얼마든지 기념석을 세울 만한 곳이었다. 본문은 요단 도하 기념석을 길갈과 요단가의 두 곳에 세우라고 지시하셨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70인역(LXX)은 아예 9절의 '열두 돌' 앞에 '다른'이란 단어를 덧붙여 그 의미를 분명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