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하도 뒤숭숭하여 만나고 싶은 사람들 만나지 못하고 어딜 가나 사람과의 거리 지키기 모습들은 78년 만에 처음 겪어보는 희한한 모습 속에서 넓은 입마개를 덮어쓴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칠 때마다 자화상의 연민이 안개처럼 번진다. 입마개가 요즘엔 필수이다 보니 번거롭기도 하지만 두 눈만 보이니 못난 내 얼굴과, 입 냄새도 걱정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억지를 부려 보지만 소외된 생활 속에서 갑갑함의 마음은 태풍 되어 허공을 휩쓴다.
지인들과의 모임도 거의 1년이나 연기되고 연세 많으신 어른들 찾아뵙고 싶어도 혹여 누가 되지 않을까 망설여진다.
젊었던 시절 퇴근하면 동료들끼리 허름한 술집 찾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상사들의 불만과 욕을 안주삼아 부어라 마셔라 얼큰함이 몰려오면 2차로 직행하는 생맥주 집에선 노가리 안주 한 접시 앞에 놓고 서너 순배 지나고야 헤어지기 일쑤였다. 이민생활 20년 동안 마음을 털어놓고 진솔한 말 벗이 없어 언제나 외톨인 채 가끔씩 한 잔 하는 술맛은 왜 그리도 써서 꼭 소태나무 껍질 씹는 맛이었는지 역시 술은 상대가 있어야 제맛임을 실감했으나 횟수가 늘고 세월이 흐르면서 혼자 마시는 술맛에 어느 만치 익숙해지고 술안주에 제격인 반찬이 나오면 주(酒)씨 생각이 나서 한잔씩 하곤 했었다.
술의 기원은 ‘이집트’ 신화에서 최고의 여신인 이시스(Isis)의 남편 오시리스(Osiris)가 곡물신에게 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는 설과, ‘로마’ 신화에서는 바커스(Bacchus)가 처음으로 술을 빚었다고 하여 술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하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Dionysos)가 이카리오스(Ikarios) 에게 포도주 담그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또 구약 성서에서는 노아(Noah)가 처음으로 포도주를 빚었다고 전해지고 있고, 중국 술의 기원은 앙소문화 유물에서 술 그릇으로 추정되는 기물의 발견과 갑골문 금정문 등에도 술과 연관된 문자가 나타나는 점에서 5,6천 년 전에 술을 빚은 것으로 추정되며 두강이 만들었다는 설로 두강주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과 같은 제천 행사에서 술이 사용되었음을 기록했다. 또한 ‘제왕운기’에서 동명성왕의 고구려 건국신화에도 술의 기원이 실려있다.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하백’의 세 딸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인연을 맺고자 미리 술을 준비하여 취하게 한 다음 큰딸 ‘유화’와의 사이에서 ‘주몽’을 낳게 하였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민 생활지인 미국의 음주문화는 옥외에서는 술을 마실수 없고 술을 동반하는 모임엔 부부동반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음주 시에 권하거나 2차를 가는 일이 거의 없고 술집에 만취한 손님이 있으면 영업장에서 소정의 벌금을 내야 한다.
어쩌다 친한벗이 찾아오면 집에서 한 잔 하기 거북할 때 술집을 이용해야 하는데 좋아하는 소주는 찾아보기 힘들고 양주로 도배한 양주 집이나 맥주집으로 가야 하는데 전문 술집을 가는 데는 2,30분을 가야 하니까 술을 마시면 운전을 하지 못하니 왕복 택시비도 만만치 않아 포기할 때가 대부분이다.
혼자는 더구나 엄두가 나질 않고 울며 겨자 먹기로 술 한잔 하고 싶으면 개인적으로 홀로 드는 음주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나에게는 한잔 하는 시간은 늘 외톨이가 된다.
한국의 음주 문화도 술을 배울 땐 꼭 어른 앞에서 배우란 좌우명으로 술에 대한 예절은 엄격했었으나 시대의 흐름 따라 술 마시는 방법도 변해서 즐기기 위한 술이 아니고 만취하도록 마시는 습관들이 언제부터 자리 잡아 왔는지 모를 일이나 슬픔과 불만의 해소로 술을 이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볼 일이다.
그래도 지금껏 음주 문화의 몇가지는 남아 있어서 구겨진 체면에 주름살을 펴 주기에 다행이라고 억지 치부라도 하고싶다. 술 마실 땐 상대편과 마주 따라주고 자작하지 않는 관습, 어른과 함께 마실 때는 병이나 주전자를 두 손으로 맞잡고 따르며 어른이 따라주는 술을 마실 때는 몸을 약간 돌리고 두 손으로 술잔을 비우는 예의, 술을 나눠 마시지 않고 한 잔 모두를 비우는 것이 지금껏 남아 있지만 이러한 관습에 허점이 있어 서로 술을 따라주다 보면 주거니 받거니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같이 어울려야 하기 때문에 거의 취하기 마련이고 어른이 주시는 술은 감히 거절하기 어려워 마시게 되는 곤란한 경우가 있기도 했다.
몇십 년 전엔 술좌석에선 노, 털, 카, 란 유행어도 생겼고 소, 맥은 술꾼들의 선호에 따라 지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지만 일련의 이러한 풍습 때문에 술 문화의 밝은 면이 묻혀버리지 않았나 생각도 해 본다. 아무튼 50년 이란 시간을 되돌려보면 그 시절 서민이 즐겨 찾는 막걸리를 파는 술 집엔 도시나 시골을 막론하고 알루미늄 양재기 술잔에다 가득 채운 막걸리 마시며 젓가락 장단에 맞춰 막걸리처럼 컬컬한 목청으로 노랫가락과 유행가를 부르며 가난에 찌들고 타고난 팔자의 불만을 토했던 암울했던 지난 세월도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있다.
술이란 적당히 마시면 약주라 했고 취하도록 마시면 병주라 했던가 술을 마시는 것이 나쁜 게 아니라 적당히 마시기가 힘들어 취하도록 마시는 습성에, 약주를 가지고 독주 내지는 병주로 만들어 마시는 주당들의 횡포에 주(酒) 씨의 억울한 검은 구름이 태양을 가린다.
어찌 보면 술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수도자 들의 전유물인 그것을 나 같은 범인(凡人)들이마셔대니 병주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스님들이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고 곡차요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첫 이적을 행하신 포도주는 술이 아니고 언약의 피였던 것이고 공생애를 마감할 때 최후의 만찬에서도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나누어 주셨다. 인간의 내면과 영혼을 변화시키는 포도주, 원효대사가 머슴들 방을 전전하면서 같이 마셨던 술은 중생구제의 극락으로 가는 감로수라면 우리가 마시는 술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술은 동서고금을 통해 면면히 장구한 세월을 인간과 삶의 애환을 함께하면서 각각의 민족속에 뿌리 박혀 깊숙한 문화로 우렁차게 이어오고 있다. 귀국 후에도 그 버릇 고치기는커녕 역시나 소외된 외톨이 신세이다 보니 홀로 마시는 한 잔의 술이 어설프지 않음은 습관이 몸속에서 굳어서일까 그 작은 소주잔 한잔을 입에 털면 입 속에서 풍기는 알코을의 짙은 향은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내려가 태평양의 양양한 파도 물결 되어 온 몸을 휘감아 돌며 여태껏 살아온 인생의 희로애락이 그 속에서 용해되어 범벅이 되고 또 한잔의 소주를 목으로 넘기면 내가 맺은 연의 끈 속에 오롯이 되찾아온 강과 산, 들, 이국의 자취까지, 맺어진 반가운 사람들의 환한 미소가 함박꽃으로 피어나고 다음 잔을 삼키는 가슴 깊은 곳에선 만나지 못하는 인연의 그리움과 더 잘해줄걸 후회의 용틀임이 가슴속을 헤집는 아픔으로 몰려온다.
한잔, 또 한잔, 한 병의 마지막 잔 속에는 저 세상의 염원을 듬뿍 담아 먼저 떠나신 부모 형제와 재회의 기대감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밝은 너울이 일렁이며 다시 만나서 해야 할 말 첫마디부터 고민하며 창밖 무수한 별 밭 속에 부모형제의 별은 어디 계실가 한참 동안이나 밤에 핀 별바라기 꽃이된 간극에서 지나온 생을 반추하며 부모형제들 만날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남은 생을 아름다움으로 장식할 꿈을 가슴속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