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5
매주 월요일을 이용하여 160여 년 전 최양업 신부님이 순방하셨다는 교우촌을 답사하고 있다. 대개 산속에 있는데 몇몇은 아예 집터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 경우 심산유곡을 휘휘 둘러보며 오동나무나 감나무 군락을 찾는다. 숲을 헤치고 가서 꼭 뒤꼍일 법한 곳에 머위라도 자생하고 있으면, 나의 오관은 갑자기 시간 이동을 한다. 막 머위 대를 꺾고 있는 옛사람의 눈과 마주할 것만 같다.
이렇게 옛 교우촌을 답사하다가 몇 가지 지리적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산 중턱의 양지바른 산태미 지형인데, 산 아래의 어귀가 한눈에 내려 보인다. 거기부터 구불대며 올라오던 길은 교우촌에서부터는 직선으로, 지체 없는 꽁무니를 뺀다. 높은 산이나 깊은 골짜기로 잇댄 가파른 경사는 언제 들이칠지 모를 비상을 암시하는 듯하다. 둘째 특징이라면 가물 때라도 마르지 않는다는 계곡물이 흐르는 점이다. 빨래터 같은 데를 찾아 빨래판처럼 생긴 돌 위에 앉으면 으레 달걀만 한 조약돌이 띄는데 뽀드득, 찬물에 씻은 게 20개나 책상머리에 놓여있다. 거기 써놓은 지명들을 보고 있으면 물, 바람,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6월 15일, 이 월요일에도 기왕 충주에 온 김에 문경의 ‘한실’이라는 데를 가보려고 했다. 접근이 어렵다는 설명 때문에 토씨 한 짝을 샀고, 혹시 자루가 괭이처럼 긴 낫은 없을까, 궁리 중이었다. 그때 차쿠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께 전화가 온 것이다. 길이 험하더라도 함께 하고 싶다는 거였다. 나는 처음에 안 된다고 했다가 더욱 안 된다고 똑 잡아떼었다. 수풀밖에 없는 허허벌판에서 160여 년 전의 인물들을 불러 내올 자신이 없었다. 지식이 짧았고 말재주가 없었다. 감동을 줄 자신이 없었다.
“참말로! 그럼 배론이나 갔다 옵시다.”
내 귀한 월요일 하나도 날라간 셈이니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었다. 에이 꼬여도 오늘 왕창 꼬였네, 하고 미꾸라지 같은 꼬리질이 이리저리 휘정거릴 때는 막 도착한 배론 주차장까지 흐릿해 보였다.
“어머, 저걸 봐요! 오늘이 최양업 신부님 서거 159주기래요.”
맙소사, 현수막을 보자마자 신들린 듯 대성당으로 이끌리고 말았다.
다행히 아직 미사 40분 전이었지만 내 얼굴은 펴지지 못했을 거다. ‘차라리 밤새 울고 나서 누가 죽었냐고 묻는 격이 낫지, 내 어찌 서거일을 잊었을까!’
미사는 배론의 초대인 배은하 신부가 했고 “장례식 같은 이 날, 묘역까지 오신 분들을” 환영한다는 강론도 했다. 그리고 많은 신부 중에 두 명을 소개했다. 한 분은 최양업 신부님의 직계 증손인 최기식신부이고, 나머지는 소설 <차쿠의 아침>의 저자라는 나였다. 낯짝이 붉어지면서도 불쑥 요나 예언자 생각이 났다. 고래의 뱃속에 넣어서라도 없어서는 안 될 자리에 탁, 뱉어 놓으시는 장면 같았다. 그 후 우리는 유가족들과 청주교구에서 펴낸 ‘십자가의 길’을 하며 묘소에 올랐다. 직계 증손과 나란히 절을 올린 후 마주 보고 말았는데, 바로 그때였나? 아니면 식탁에서 오고 간 말이었나? 혈연! 혈연도 별 게 아니라는 노사제에게 나는 일행까지 들으라고 크게 말했다.
“저는요, 주교님처럼 최양업 이름으로 큰일 못해유. 그저 그 이름 덕에 이나마 사제생활 이어가지유.”
이리 말했을 때야 얼굴이 환해질 것 같았다. 사실, 그즈음은 동창신부의 사제관에 머물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한 것이라고는 삼시 세끼 같이해준 것뿐이었다. 아니, 배론 갔다 온 거 빼고는 줄창 밥 얻어먹은 것밖엔 없다. 그런데도 식탁에 오르는 메뉴가 좋아져서는 고맙다는 말치레나 할 참이었다. 그때였다. 완전히 뜻밖이었다. 동창이 두툼한 봉투를 내민 거였다.
“함께 해 줘서 고마웠어!”
뭐, 뭐라고? 예전처럼 티격태격한 건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의외이다. 왜냐면 나는 스스로 매양 요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령, 내 차에 타인을 태워주고도 내릴 즈음엔 그 사람한테 “다시는 네 차 타나 봐라!” 하는 표정을 당하는 사람! 그런데 최근 뭔 기술을 터득한 걸까? 방금은 차를 얻어타고도 내릴 즈음에 차주한테 “내 차를 타줘서 고마워!” 란 말을 들은 폭이 아닌가? 그렇다면 분명 이런 것일 거다. 예전 같으면 인생길에서 주연만 하려 들었지만, 이젠 조연하는 행보도 배운 거라고......
청주로 오는 길에 클래식 방송에서 이런 멘트가 나왔다. 비가 오면 비대로, 눈이 오면 눈대로, 맑으면 파란 대로 모든 날이 다 좋은 날이라는...... 나도 잇대어 생각해본다. 원했든 원치 않았던 길이든, 주연이든 조연의 길이든, 모두 최종 목적지로 가는 같은 길이다. 코로나든 무엇이든 어떤 바리케이드에도 막힐 수 없는 소중한 길.
첫댓글 ‘차라리 밤새 울고 나서 누가 죽었냐고 묻는 격이 낫지, 내 어찌 서거일을 잊었을까!’
신부님 글을 읽으며 우리 삶이 주제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사는 것 아닌가, 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묵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루도비꼬 님이 신부님 글의 절창만 뽑아놓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