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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립 첫시집 【늦게 핀 꽃】 해설
애처럽고 따뜻한 시
강미정 시인
신은립의 시는 읽는 동안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애처러움`, `끌어안음`, `살림, 이라는 단어이다. 그러나 신은립의 시에는 애처롭다거나 끌어안는다거나 살린다는 내용이 직접 표현되어 있는 시편은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신은립의 시에는 애처롭다거나 끌어안는다거나 살린다는 내용이 직접 표현 되어 있는 시편은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신은립의 시는 어떠한 방식으로 읽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시를 쓰고 표현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은립의 시가 행간과 행간이 만나는 그 사이에, 언어와 언어가 만나는 그 사이에, 의미의 확충을 위한 어떠한 어려운 장치를 숨겨놓은 것도 아니다. 다만 신은립의 시는 편안하고 쉽게 읽히며, 물 흐르듯 내용이 자연스럽게 흘러, 시편이 내포하고 있는 인식의 세계로 조용히 안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애처럽게 느끼고, 그 애처러움을 말없이 끌어안는 것으로 느끼고, 말없이 끌어안은 것들을 살리는 것일까? 왜 애처러움, 끌어안음, 살림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가? 그것은 신은립의 시가 일상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 내재한 수 없이 많은 일상성이라는 공간에서 일상의 사물을 읽어내는 신은립의 마음, 즉 애처럽고 안타깝게 가족과 함께하는 삶터와 가족과의 결속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는 일터와 자신과 가족을 포함한 이웃과 일상인들의 삶이 영위되고 있는 생활공간과 아주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밀착되어 있는 일상의 현실 속에서 늘 되풀이되는 일상을 애처롭게 여기며 안타깝게 끌어안는다. 때문에 신은립의 시는 몹시 따뜻하다.
이 따뜻함이란 매일 되풀이 되는 삶, 그러나 어제와는 다른 날들이, 아니 일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과 마음이 힘겨움을 쓰다듬고 정답게 어루만지며 슬프고 애틋함, 몹시 아픈 애처러움, 들끓는 불편함을 포근히 끌어안고 살리는 포용의 따뜻함이다. 신은립은 이렇게 자신이 읽어낸 일상의 인식을 포근하고 따뜻한 언어로 포착해 낸다. 시가 따뜻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타까움과 나 아닌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안타깝고 애처러운 연민과 공감이 있은 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을 신은립은 알고 있다.
가스렌지 위
뜨거운 프라이팬
고등어는 머리와 창자 발라내고
누워 있다
비리다
-「삶」 전문
신은립은 지금 현실 속에 수없이 널려 있는 하나의 일상인 `가스렌지 위`에 프라이팬을 얹고 불을 붙이고 식용기름을 붓고 서서히 달구어지는 `뜨거운 프라이팬`에 머리와 창자를 발라낸 고등어를 얹었다. 고등어는 비린내를 풍기며 기름에 굽히고 있는 어떤 「삶」이다. 여태껏 그는 지금 보이는 그 삶을 단순함과 익숙함으로만 되풀이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되풀이 하여 바라보았던 삶은 지금처럼 기름에 끓는 소리로, 기름을 튀기며 익어 가는 모습으로, 몸이 타면서 내는 비린내로 시인의 눈과 귀와 코 등의 감각으로 들어와 끝없이 시인의 눈과 귀와 코 등의 감각으로 돌아와 끝없이 시인의 정신세계를 맴돌며 자극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자신의 삶과 조응되는 그 순간, 자신의 삶 역시 `뜨거운 프라이팬`에 누워 있는 `머리와 창자를 발라`낸 고등어와 다름없이 사회구조라는 커다란 프라이팬에서 살기 위해 비린내를 풍기며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자신을 인식한 순간, 그 삶은 입과 손을 통해 따라나와 살아 있는 세상의 모든 「삶」이 비린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런 비린 것으로 인식한 순간, 그 삶은 입과 손을 통해 따라 나와 살아있는 세상의 모든 「삶」이 비린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런 비린 삶이 가지고 있는 많은 요소들, 아픔·고통·안타까움·슬픔 등이 `비리다`에 천천히 녹아서 뻐근한 아픔으로, 또는 뜨거운 고통으로, 또는 허덕이는 눈으로, 다독이고 끌어안아 살림으로 전이 되어 시를 애처롭고 따뜻하게 해준다.
죽은 새끼돼지들
땅 파고 묻었더니
저 하늘에서
또록또록
어미 젖 빠는 눈망울
-「별」전문
이처럼 일상에서 오는 많은 시련들은 애처러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는 하늘의 별이 `또록또록` 눈을 굴리며 `어미 젓`을 빠는 어린 `쌔끼돼지들`이 될 수가 없다. 신은립의 시가 가지고 있는 일상의 애처러움이란 가벼운 존재에 대한 연민과 자신과 연결 짓고 있는 세계 속의 사물과 존재에 대한 연민, 그리고 그러한 안타까운 고통을 견디며 끌어안는 데 있다. 그 따뜻함이란 위의 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죽은 새끼돼지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려고 할 때라야만 가능하다.
이렇게 신은립의 시적 하자는 끝없이 대상을 애처롭게 여기며 끌어안고 있다. `와르르 와르르 몸을 떨며 / 젖을 먹`(「어미」)이는 어미돼지를 바라보는 화자, `똥금에 내다판 암소 다섯 마리 / 휑하니 비어 버린 건 / 외양간만은 아니다`(「소값 똥값」)의 씁쓸하고 허전한 가슴을 달래는 화자, 별똥별 소나기를 보기 위해 `마당에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던 화자가 `한 발짝도 이 땅을 떠날 수 없다 / 빚투성이 살림이` `빈 하늘 헤매다 부서지는 / 피투성이 눈물` (「농가부채 탕감」)을 흘리며 자신의 어려운 삶을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화자, `신용대출 담보대출` `돈 갚으라는 종이 한 웅큼 쥐고 / 식은땀 흘리며 달려가는 남편의 얼굴` (「밥」)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화자의 눈과 `헐값` `고추를 내는` `구포양반 불편한 속내`와 `흙에 털썩 주저앉는 구포댁` (「고추 농사」)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는 이웃사랑, 그리고 치매를 얻은 작은어머니와 가축을 기르느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생네 집을 그리며 가족을 사랑하는 화자의 마음 등이 애처러운 눈빛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남명댁 담장 밑
여름에 떨어진 씨앗이
싹이 트고 키가 자라더니
시월에야 만수국 피었다
곧 서리 내리고
얼음 얼 것인데
언제 저 조그만 꽃대에
씨앗 생길까 안쓰러워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고등힉교 삼학년 아이는
취직해 집 떠나고
술병으로 입원했던 남명양반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바인더 시동 거는 소리
아직은 따뜻하다고 담장 밑 만수국꽃
철없이 웃는다
- 「늦게 핀 꽃」 전문
신은립의 시는 사물을 통해 인식되어진 안타까움과 애처러움을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고 끌어안는다. 이 끌어안음은 자신에게 닥쳐온 시련과 좌절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견디며 이겨내는 활달한 정신을 보여준다. 이런 정신은 단순함과 익숙함에 숨겨져 있는 일상을 살아 있게 하고 생동감으로 출렁이게 한다. 다시 희망이라는 그 따뜻함에 귀착하도록 인도해 준다.
늦게 핀 만수국꽃을 보며 시적 화자는 몹시 안쓰럽다. `언제 저 조그만 꽃대에 / 씨앗 생길까` `곧 서리 내리고 / 얼음 얼 것인데` 걱정하고 있다. `안쓰러워 / 돌아보고 또 돌아` 보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수국꽃 / 철없이 웃는다` 그러나 `아직은 따뜻하다고` 견딜만하다고 일상을 흔들어 일으키는 바인더 소리, `술병으로 입원했던 남명양반`이 `집에 돌아와` 힘차게 시동을 거는 것에서 오롯이 신은립의 시는 생명성 쪽으로, 살림 쪽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따뜻함이란 온갖 어려움이나 아픔으로 이름지어진 삶을 끌어안고 그것에게 끝없이 더운 입김을 불어 넣어주며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어야만 존재하는 `사랑`과 같은 것이다.
`열두 마리 천원`을 주고 떨이한 `조기`를 싣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길 `차가 자꾸 무겁게 느껴지`고 `불 꺼진 바닷가 한숨`이 들리는 듯하고 그 한숨 `가득가득 업고 돌아가는 / 쓸쓸한 산길 (「떨이」)을 오르며 화자는 힘겹고 팍팍한 삶속에서도 다른 삶의 팍팍함을 안을 줄 안다. 떨이로 산 고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적 화자나 떨이로 고기를 다 넘긴 생선장수가 고단스런 하루를 마감하며 비린내나는 앞치마를 걷고 빈 다라이를 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이 얼마나 쓸쓸하고 애처롭고 따뜻한 광경인가.
지붕 왕창 내려앉고
사람 기척 없다 하여
빈 집이라 부르지 마오
뒤뜰엔 사철 푸른 댓잎
가을바람과 살을 비비고
무릎을 덮는 풀 사이로
하얗고 빨간 여뀌꽃
한 세상 이루었으니.
- 「빈 집」 전문
위의 시는 신은립이 「빈 집」을 빈 집으로만 보지 않고 `뒤뜰엔 사철 푸른 댓잎 / 가을바람과 살을 비비고 // 무릎을 덮는 풀 사이로 / 하얗고 빨간 여뀌꽃 / 한 세상 이루었으니`, `지붕 왕창 내려앉고 / 사람 기척 없다 하여 / 빈 집이라 부르지`말라고 한다. 누군가 떠나버리고 남은 흉터 같은 빈 집을 보며 농사짓는 일이 돈도 밥도 안 되어 하는 수 없이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다시 와서 빈 집을 채우며 왁자하게 살아갈 날을 희망하는 화자의 소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빈 집이 끌어안고 있는 허물어짐, 무성한 풀이나 채우고 있는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며 빈 것도 그 나름대로 생명을 안고 숨가쁘게 살아가며 퍼득이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천둥 번개 치더니
소나기 한 줄기
저수지 물너울 위로 쏟아집니다
세상 다 엎어버릴 듯
어깨를 흔들고 정수리를 흔들며
악보도 없는 난타곡
신들린 듯 울리다
뚝 그칩니다
미친 듯한 두들김에도
상한 생명 없습니다
- 「소나기 2」 전문
신은립의 시는 늘상 만나던 한 사물에 대해서 어느 한 순간, 최초의 인간으로서 일상의 감각과 시인에게 다가온 최초의 새로운 감각의 차이를 알아내고 사물과 조응할 때와 그 순간의 충격을 읽어내려 한다. 때문에 생동하는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포착되는 인식을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며 미화시키려는 것을 생략해 버림으로써 의미 부여의 몫을 독자에게 살짝 넘겨 준다. 나타내려는 본질을 비워 둠으로써 더 명쾌하고 적극적인 본질을 설명 할 수 있음을 말하지 않고 말해준다.
기침처럼
눈물처럼 쏟아지는
젖샘들의 행진
젓은 머리카락 쓸어 올리며
들숨
날숨
뜨거워라 불기둥
- 「꽃」 전문
이렇듯 신은립은 사물의 독특한 몸짓, 그 작고 섬세하게 흔들리는 모습, 그런 흔들림이 보여주는 향기 등을 자신이 순간 포착한 빠른 언어로 읽어낸다. 그러면서 시의 의미를 일부러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순간의 상황만을 제시한다. 그 순간의 상황을 제시하는 공간은 일상적인 곳이지만 신은립이 읽어내는 일상은 오래도록 관찰하고 바라보며 일상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읽어내어 낯설게 만들어 버린다. 수없이 우리 주위에서 단순하게 익숙하게 있던 일상은 그 순간 일상을 뛰어넘는 또 다른 낯선 일상의 세계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은 시인이 감지한 최초의 인식 속으로 들어가 새롭고 낯선 일상으로 되는 것이다.
그저 일상적으로 넘기던 삶이란 것이 이처럼 일상적이지 않고 새롭게 낯선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일상을 거부하는 고통이 있어야 한다. 일상이라는 말, 이것은 어쩌면 되풀이 되는 일상의 좌절과 낫지 않는 환부를 들여다보는 아픔의 고통과 계속 끝없이 무너져 내리는 무료한 희망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벗어나지지 않는 일상이라는 무료한 삶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하나의 반작용으로 읽혀지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신은립은 늘 있는, 그래서 있는지 없는지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일상을 주시하며 새로움을 위해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 일상과 같이 살며 사랑하며 따뜻함을 건넨다. 일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처러움을 내 것으로 여기고 살려내며 같이 살려고 하는 인식의 태도에서 따뜻함은 더욱 포근한 향기를 뿜을 것이다.
일상의 현실 속에서 수없이 많이 널려 있는 사물들이 자신을 읽어달라고 소리치며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들을 살아 퍼덕이게 하는 것은 이제 신은립의 몫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시인이란 이름이 붙여진 모든 사람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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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립 첫 시집 『 늦게 핀 꽃』 2002년 발행
강미정 시인은 시집 【상처가 스민다는 것】외 4권의 책을 냈습니다.
첫댓글 https://blog.naver.com/mij1421
강미정 시인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