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철학 노자와 장자가 말하는 지와 무지
도가철학과 관련된 중국의 사상가들로는 노자와 장
자가 있으며, 오늘은 이들이 말하는 지와 무지, 즉
앎과 모름이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해 주장했던 내
용들에 대해 핵심 명료하게 정리해 보았으니 관심
있는 분들의 참조 바랍니다.
1. 노자가 말하는 지와 무지
도가에서는 보통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지식이 참
된 지식이 아니라, 단지 현상만을 아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하여 '노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아름답다고 보는 것만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고,그게 맞지 않는 것은 밉다고 한다. 자기들이 좋다고 보는 것만을 좋은 것으로 알고, 그에 맞지 않는 것은 나쁘다고 한다.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서로 의존하여 생겨나며, 쉬움과 어려움도 상대적으로 생겨난다. 길고 짧음도 상대적으로 생겨나며, 높고 낮음도 상대적으로 정해진다. 소리와 노래는 서로 화합하며, 앞과 뒤는 서로 따라다닌다.
그러므로 성인은 억지로 함이 없이 일을 하고, 말에 얽매이지 않는 가르침을 편다."
2. 장자가 말하는 지와 무지
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더욱 유려한 문장으로 작은
지식과 큰 지식의 차이를 여러 가지 우화를 동원
하여 설명하였다. 인간 지식의 한계를 지적한 유
명한 손가락의 비유는 장자로부터 비롯하였다. 다
음은 '장자' 소요유 편에서 작은 지식과 큰 지식의
차이를 논한 한 대목이다.
"작은 자의 지식은 큰 자의 지식을, 짧게 사는 존재는 오래 사는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알수 있는가? (하루만 살다 가는) 버섯은(한 달 중의)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여름만 살다 가는) 매미는 봄과 가을을 모른다. 이들은 짧게 사는 존재들이다. 초의 남쪽에 있는 명령나무는 500년을 가을로 삼는다. 상고에 있었던 대춘 나무는 8000년을 봄으로, 8000년을 가을로 삼는다. 팽조는 요즈음 장수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아지고자 하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3. 도가철학에서 말하는 지와 무지 결론
노자 및 장자와는 달리 세상 사람들은 아름답고 밉
고, 좋고 나쁘고 하는 가치에 대하여 그것이 절대적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아름답다
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고,
자신이 밉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밉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모든 가치는 절대적으로 존재하
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
에 진리를 알고 그에 따라 사는 성인은 그러한 가치
에 휩쓸리지 않는다. 이처럼 현상적인 모든 존재와
가치가 상대적이어서 어느 것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참된 지식이다. 도가에서 추구하는
바와 교훈이 바로 이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불행한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긴 것과 짧은 것
등은 모두 절대적인 판단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큰 것과 작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등은
모두 실제로는 같은 가치의 것이며, 심지어 사람
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같은 자연 변화의 한 가지
현상이라는 것이다.
법륜스님이 수백번 이야기했던 병뚜껑, 컵, 물병
이야기. 컵은 물병보다 커요 작아요? 컵은 병뚜껑
보다 커요 작아요? 등 상대적인 것들. 하지만 사람
들은 크다,작다. 행복하다 불행하다. 아름답다 추
하다라는게 마치 정답인양.
그리고 햇볕이 나면 햇볕이 나서 좋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다는. 그 말씀이 부처님 말씀과 장자
의 말씀과 같다는 것을 성인들은 대부분 깨달았고
우리들중에선 안다고 착각만 하지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산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자연의 만물은 모두가 같은 본체에서 출발하여 우
연히 어떤 경우에는 사람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만
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라고 해서
만물 가운데에서 특출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은 만물과 일체의 것이므로 만물과 일
체가 되는 존재 방법을 통하여 가장 이상적인 생활
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2500년전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맞고 틀
리고를 떠나서 4대 성인뿐 아니라 다른 성인들은
모두 삶과 죽음,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과 동식
물의 관계까지 고민한 것이다. 성인과 일반사람과
의 차이점이지 싶다. 본질적인 생각을 하며 사는
삶 그냥 이끌려지는대로 사는 삶과의 차이 말이
다.
사람은 유능하거나 유용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
다. 오히려 '유용'보다는 '무용'이 '유능'보다는
'무능'이 사람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하였
다. '본성'을 따른다는 것은 곧 '도'를 따르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또 '무위'와도 통한다. 따라서 모
든 인위적인 행위는 '본성'을 해치는 것이라는 점
에 있어서 잘못된 것이다.
무능이 사람의 본성이라고? 그럼 난 집에서 그 점
에 있어서는 잘 살고 있는 거네~~ 아내와 아이로
부터 걱정을 끼칠 정도로 아는 것이 없는 무능한
사람의 대표격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동안
사는 자는 오래 사는 자에 미치지 못한다. 어떻게
그러함을 아는가? 아침 버섯은 아침과 저녁을 알
지 못한다.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것들은 짧은 동안 사는 것들이다.
하루살이는 하루만 산다. 하루만 겪어보았으니
그 하루만 이해하는 삶이다. 봄에 태어났으면 봄
만을, 여름에 태어났으면 여룸중 하루만 살다 죽
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 인줄 안다. 남이 아무
리 설명해도 알 수가 없다. 우리 인간이 딱 그렇
다. 100년도 채(앞으론 살겠지만) 못살면서 어찌
그리 아는 척들을 하는지... 역사를 이해하지 않았
으면서 수천년을 이해한듯 하고, 중국을 와보지
않은 사람들 혹은 여행 잠깐 와본 사람들이 중국
을 안다하고, 사업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사업을 안다 하고 투자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투자
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부모님, 자녀
혹은 배우자 하나 이해하지 못하면서 뭘 그리 알겠
는가 말이다. 남얘기 아니다. 70억 인구중 50세
가 가까이 되어서야 인간 한명, 아내를 겨우 이해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내 얘기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일반 사람들의 가치
기준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결국 한계가 있기 마
련이다. 뛰어난 사람 위에는 더 훌륭한 사람이 있
고, 다시 그 위에는 바람을 타고 다니는 열자 같은
사람이 있다. 그들은 결국 자기가 설정한 가치 기
준 때문에 언제나 그 기준에 얽매여 진정한 자유로
운 인간이 되지 못한다. 진정 자유로운 훌륭한 사
람은 일반 세상의 가치 기준을 초월한다.
직접 관련은 없으나 투자 관련 한 토막 글이 생각
이 난다. 난 작년에야 알았던 제대로 알기 시작했
던 일론 머스크, 한 분이 그렇게 글을 썼다. 5년전
부터 말이다. 난 작년에 처음 읽었다. 나(여기서
나란 그 사람)보다 지적 능력이나 분석력이 뛰어
나지 못한 인간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천재인 일
론 머스크를 감히 판단하는 글들을 보면 가관이라
며 말이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뛰어난 인
간을 폄훼하는 인간들 말이다. 안목이 없으면서
안목이 있는 척 하며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
씩 배제하기 시작했고, 그러고 나니 정보도 눈도
더 맑아지더라며 말이다. 위의 사례는 이 글과는
맞진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이라고 했는데 그 애
널리스트라는 인간들은 일반인도 알 수 있는것을
모르는 더 멍청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마음을 통일하려고 수고를 하면서도 모든
것이 같음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아침에 세개'라고
말한다. 무엇을 '아침에 세개'라고 하는가? 옛날
에 원숭이를 기르던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
를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화를 냈다. 다시 "그러면 아
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겠다고"하자 원숭이들
은 모두 기뻐하였다. 명분이나 사실에 있어 달라
진 것이 없는대도 기뻐하고 화내는 반응을 보인 것
도 역시 그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은 모든 시비를
조화시켜 균형된 자연에 몸을 쉬는데, 이것을 일컬어 '자기와 만물 양편에 다 통하는 것'이라 한
다.
조삼모사를 지금껏 본질은 모른채 아는 이야기로
착각하고 있었다. 제물론을 이해 못하는 것을 조
삼모사 원숭이만큼 어리석다고 한것인데 과연 제
물론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를 빚대
어 조삼모사라고 한것을 원숭이만으로 생각하여
나보다 어리석은 사람을 어리석다 한것을 반성해
야 할듯 싶다. 모든 만물은 본질적으로 같다라는
제물론. 글이 쉽지 뜻이 쉽진 않고 어렵게 뜻을 이
해했다 해도 실천까지 하는건 더더욱 어려울듯 하
고 말이다.
우리의 삶에는 한이 있으나 앎에는 한이 없다. 한
이 있는 삶을 가지고 한 없는 앎을 뒤쫓음은 위태
로운 일이다. 그런데도 앎을 추구하는 자가 있다
면 위태로울 따름인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가 생각난다. 성인들은
무지의 지는 기본적으로 장착한듯 싶다.
착한 일을 행하여 명성을 가까이하지 말고, 악한
짓을 행하여 형벌을 가가이 하지 말아야 한다. 가
운데의 올바름을 따름으로써 법도를 삼는다면 몸
을 보전할 수 있게 되고,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
을 것이며, 어버이를 부양할 수 있게 되고, 자기
목숨대로 살 수가 있을 것이다.
무위자연을 주장한 장자가 어버이 부양? 조금 이
해는 덜되는 부분이다. 하여간 착한 일을 행하여
명성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부분 처음 읽었을때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뒤에 백이, 도척의 사례를 보
고 다시 읽으니 조금은 이해가 간다.
밝은 임금의 다스림은 공로가 천하를 뒤덮을 만하
여도 자기 힘으로 한 것같이 보이지 않으며, 교화
가 만물에 베풀어져도 백성들은 그것을 의식도 못
한다. 훌륭한 공로가 있어도 명성이 드러나지 않
으며,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기뻐하게 만든다. 헤
아릴 수 없는 경지에 서서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노니는 것이다.
도가에서는 사람들의 지혜나 노력에 의한 어떤 일
의 성취도 무시한다.
이렇게 경영을 하고 싶다~~ 이렇게 가정 생활도
하고 싶다
~~
꿈인것 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회사, 있는듯 없는듯 사실
난 백조처럼 물밑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지만 말이
다. 가정생활에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는것
같지 않아 아내와 아이로부터 구박을 받아도 사실
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노력하는 것 그래
서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 이렇게 말이
다. 음... 한 30년 지나면 그렇게 될까? 좀더 앞당
기도록 해본다. 여기서는 노력하지 말라고 했으
니 노력하지 말고 말이다..
장자는 운명에 따라야 함을 말하면서도, 운명을
내다본다고 하는 무술이나 점술에 대해서는 완전
히 부정적이다. 후세의 도교에서는 노자와 장자
를 그들의 시조로 받들어 모셨으나 장자는 보다 분
명히 이와 같은 민간 신앙과는 사상에 있어 뚜렷
한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본질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많이 한다는건 안한
다는 것이다. 그냥 본질을 보면 되는데 본질은 보
질않고 봐야한다고만 한다.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데 할필요 없이 그냥 딱! 일
어나면 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말만 한다. 일어
나기 싫다는 거다. 석가모니를 존경하면서 석가모
니가 믿는것을 믿지 않고 석가모니를 믿는다. 예
수님을 인정하면서 예수님이 믿는걸 믿지 않고 예
수님을 믿는다. 노자나 장자가 믿는걸 믿지 않고
노자나 장자를 믿는다. 이상하다. 본질은 멀리두
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걸 생각한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르켰더니 달은 보질않고 손가락만
본다. 달은 본질 손가락은 형식 혹은 말하는 사람.
즉 여기서는 노자, 장자. 다른 종교에서는 석가모
니, 예수님 인듯 싶다. 나? 나도 물론 현재 그렇
다.
내편은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