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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장
제 2 장 엘리 아들의 죄
(대 지)
一. 한나의 기도(1-11)
1. 여호와는 구원이심(1-2)
2.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3-5)
3. 임의로 낮추시고 높이시는 하나님(6-9)
4. 상벌을 주시는 하나님(10-11)
二. 엘리의 하들들의 죄(12-17)
三. 사무엘의 자람과 부모의 복받을(18-21)
四. 엘리의 책망을 아들들이 듣지 않을(22-26)
五. 엘리의 집에 대한 심판 예고(27-36)
(본문강해)
一. 한나의 기도(1-11)
1. 여호와는 구원이심(1-2)
. 2:1-2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가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갈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한나가 기도하였는데 그 첫마디가"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다"고 하였다. 그의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였다고 한 것은 낳지 못하던 아들을 낳아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모처럼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을 때 섭섭한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여호와로 인한 즐거움은 위로부터 오는 즐거움이요 아들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즐거워할 수 있는 영적 즐거움이다. 그래서 한나는 아들을 바친 다음에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였다. 성도는 여호와가 나의 즐거움이 되는 경지에까지 들어가야 한다. 세상에 있는 물질과 영광 때문에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한 한나의 신앙은 본받을 만하다.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여호와로 인하여 영적 권세(뿔)가 높아졌다는 말이다. 중생한 영이 자라나면 영적 권세가 그만큼 높아진다. 시편 23:1에"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다. 이것은 여호와가 목자가 되사 양과 같은 자기를 온전히 주관하여 인도하시매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늘 만족하여 즐거워하는 생활이다. 또 자기 영혼이 소생하므로 영혼의 뿔(권세)이 커지고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한나가 원수를 향하여 각을 크게 벌려 주의 구원을 찬송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원수의 목전에서 승리의 개가(凱歌)를 부르며 잔치 상을 베풀게 된 것과 같다(시 23:5). 원수를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안고 오직 말씀을 따라 믿음을 지켜 나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원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찬송하게 될 날이 온다.
다니엘도 원수들의 시기를 받아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사자굴에서 건져 주셨을 때에 다니엘이 얼마나 하나님을 찬송하였겠는가! 다니엘 6:26에 다리오왕이 말하기를"… 내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라고 하였다. 또 요셉이 형들로 인하여 팔려 애굽으로 내려가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바 되었지만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요셉을 판 형들은 요셉 앞에서 절하며 애걸하게 되었다(창44:14-34).
믿음을 잘 지키면 영의 뿔이 높아지고 원수를 향하여 입이 크게 벌려질 날이 오게 된다. 그러나 원수에게 끝까지 환난과 핍박만 받다가 죽는 성도도 있다. 스데반이나 요나단 같은 사람이 좋은 예이다. 믿음을 잘 지키고도 이 세상에서 원수 앞에 입을 벌리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실패한 것 같고 비참하게 된 것 같으나 하늘 나라에서는 상급이 더욱 큰 것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하고 신령한 입을 크게 벌렸으며 얼굴이 천사의 얼굴같이 되었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만 입이 대계 벌려지는 것인 줄로 알면 안 된다.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여서 핍박을 당하다가 사무엘을 낳았다고 하여 입이 크게 벌려진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어떤 일에 성공했다고 하여 원수를 향하여 입이 벌려진 것이라 하면 잘못이다. 오로지 하늘 나라의 큰 상급과 영광을 바라보고 입을 벌려야 크게 입을 벌린 것이다.
요나단이 끝까지 믿음을 잘 지켰는데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인간의 편에서 보면 좀 억울한 것 같다. 그러나 요나단이 죽지 아니하고 다윗의 다음 자리에 앉아 세상 권세와 영광을 누리는 것보다 끝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선을 이루고 세상에서 상급을 하나도 받지 않은 것이 더욱 좋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고 거기에 대한 보답을 받게 되면 세상에서 상급을 다 받았기 때문에 하늘 나라에 가서는 받을 것이 없다. 예수께서 세상에서 섬김을 받지 못하고 환난과 핍박을 당하다가 마지막엔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므로 원수를 영원히 발 아래 두었고 영원히 원수 앞에서 입이 벌려진 것이다.
한나는 또 여호와만이 거룩하신 참하나님이시므로 믿을 분은 하나님밖에 없고, 자기를 사랑해 주시고 자기를 구원해 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하였다. 또 하나님은 자기의 반석이 되시므로 하나님은 견고한 피난처요, 방패시요 요새라고 기도하였다.
여기서 한나는 첫째, 마음이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게 되었고, 둘째,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고, 세째, 원수를 향하여 그의 입이 크게 열리게 되었고, 넷째, 주의 구원을 기뻐하게 되었고, 다섯째, 여호와 외에 거룩한 이가 없으며, 여섯째,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일곱째, 하나님 같은 반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세상의 부귀나 영광보다 하늘 나라에 속한 이 신령한 것들이 귀한 것이다. 고린도후서 4:18에"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다.
2.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3-5)
. 2:3-5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사람이 감히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말을 입밖에 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며(약4:6) 행동을 달아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브닌나가 자녀를 낳은 것을 자랑하고, 자식이 없는 한나를 멸시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교만하고 야비한 행동이다. 브닌나는 보이는 것으로 자랑하고 육신의 것으로 자랑하였다. 세상의 보이는 것(육신의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교만한 말이요 어리석은 말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여호와는 전지 전능(全知全能)하셔서 오든 것을 아시고 행동을 달아보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마음도 저울질하신다(잠24:12).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 행동, 인격을 달아보시고 심판하신다. 그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대로 순종한 것은 근수가 많고, 불순종한 것, 인간의 생각대로 한 것은 가벼운 것이다. 자기를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판단이 문제이지 인간의 판단이나 비방은 매우 작은 일이다. 바울도 다른 사람이 자기를 판단하는 것을 매우 작은 일로 여긴다고 하였다(고전4:3).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제 힘으로 용사 노릇을 하는 자는 그 활이 꺽이우나, 말씀을 지키고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쓰러진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띠를 띠우시고 일으켜 주신다는 말씀이다.
삼손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힘으로 용사 노릇을 하였지만 하나님 말씀을 양보하고 머리를 깎인 후에는 용사 노룻을 하지 못하고 잡혀서 눈이 뽑히고 포로가 되어 맷돌을 돌렸다.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넘어지면 넘어지면서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예수님을 붙들고 넘어지고, 예수님을 놓쳤으면 손을 내밀어 예수님을 붙들려고 부르짖어야만 된다. 그래야 예수께서 일으켜 주시고 띠를 띠워 주신다. 넘어질 때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넘어진 후에도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께 부르짖지 않으면 희망이 없고 아주 망하고 만다. 넘어진 후에는 말씀대로 서려고 힘을 쓰며 부르짖고 주님이 붙잡아 줄 때 빨리 일어나서 말씀대로 한 발자국씩 옮겨 놓아야만 한다.
넘어졌을 때 바로 일어서는 방법은, 첫째, 예수님을 바라볼 것, 둘째, 예수님을 붙들려고 애를 쓸 것(붙들어 달라고 부르짖을 것), 세째, 넘어진 다음에 일어나려고 발버둥칠 것, 네째, 발버둥치다가 하나님께서 일어서라 하실 때 속히 말씀대로 순종하여 발걸음을 옮겨 놓아야만 한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띠를 띠워 주시고 위로하여 주신다. 칠전 팔기(七顚八起), 백절 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이 있어야 신앙 생활을 바로 할 수 있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세상의 것(물질, 명예, 권세 등)이 유족하여 그것으로 만족하는 자는 영적으로 기갈을 당하고,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찾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과 평강을 얻어 심령이 만족하게 된다는 뜻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다(계3:17).세상의 것으로 만족하고 향락주의에 빠져 이미 배부른 자들은 영적으로 벌써 주린 자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반드시 주릴 날이 온다.
마태복음 5:3에"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였다. 심령이 주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만난 바가 되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져 주시고 주리지 않게 하여 주신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갈급한 심령을 가지고 좀 더 깨달아 알고자 하는 자는 배부른 자가 아니고 주린 자이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양식을 풍성히 주신다. 성경을 읽을 때에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기 위하여 주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말씀을 깨닫게 된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한나가 전에 잉태치 못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무엘을 낳았는데 왜 일곱을 낳았다고 했는가? 사무엘이 잘 생기고 똑똑하여 일곱보다 낫다는 뜻이 아니다. 일곱을 낳았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신령한 것을 받았다는 뜻이다. 한나는 아들보다 더 좋은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받은 증표로서 사무엘을 하나 받은 것이다. 그런데 브닌나는 많은 자녀를 가졌다고 하여 자랑하고 뽐내면서 아들 없는 한나를 멸시하였다. 세상의 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쇠약해질 날이 온다.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을 의지하기 때문에 심령이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의 권고가 떠남으로 쇠약해질 것은 정해 놓은 것이다.
3. 임의로 낮추시고 높이시는 하나님(6-9)
. 2:6-9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않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심령이 상할 자(회개하는 자)는 살리시고, 완악한 삼령을 가진 자(회개하지 않는 자)는 죽이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당신의 뜻대로 주장하신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땅의 기둥들"은 국가의 왕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움직이시고 세계의 역사를 주장하시되 왕들(지도자들)을 세워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를 주관하신다. 또 신령한 의미에서는 말씀을 순종하고 의를 이루어 나아가는 하나님의 종과 신실한 성도가 기둥들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도 이 기둥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의인 열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였다. 외부적으로는 소돔 왕이 기둥이지만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국이 침략해 올 때 하루아침에 다 무너졌었다(창14:1-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의인 열 사람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의인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기둥들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예레미야 5:1에"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였으니 예루살렘 성이 망하지 않게 버티어 줄 기둥은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이다. 이런 기둥이 하나만 있어도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 에스겔 22:30-31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라고 했다. 그러므로 외부적으로는 세상 나라 왕들이 기둥이지만 실지로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기둥은 소돔의 경우 의인 열 명, 예루살렘 성의 경우에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다.
성도가 다 기둥은 아니다. 예루살렘 성에 성도는 많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찾는 기둥은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으로 그 뿔이 높아지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고, 겸손하며 가난한 심령이 되어 진리를 찾고, 진리를 세워 나아가는(실천해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찾는 기둥감이다.
공의를 행하려면"의"에 서고 진리를 찾아 그대로 걸어 나아가는 것이다. 진리를 바로 발견하기 위하여 힘을 쓰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를 쓰며,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겠는가 하여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찾고 그 뜻대로 순종해 나아가야 한다. 디모데전서 3:15에"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하였다. 기둥이란 진리의 기둥이다. 성도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기둥 노릇을 할 수 있다.
한국에도 하나님의 기둥이 많이 나오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신다. 한국이 견고하게 서 나아가려면 기둥이 많이 나와야 한다. 각처에서, 겸손하여 하나님으로 즐거움을 삼고,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으로 반석을 삼고, 뿔이 높아지고, 가난한 심령으로 말씀을 좀 더 받아먹으려고 애를 쓰고, 진리를 세워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면 하나님께서 한국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고 보호하여 지켜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국에 기둥이 없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와서 멸망당할 줄을 알아야 한다.
이 말세에 세계가 다 하나님의 심판을 앞에 놓고 흔들흔들하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둥이 얼마나 나오겠는가 하고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며 찾고 계신다. 만일 찾다가 기둥이 없으면 다 심판하여 멸망시키실 것이다. 이 세계는 분명히 하나님의 기둥들이 버티고 있는 줄 알아야 된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의 기둥은 모세와 아론 같은 사람이다.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좋은 기둥이었다. 사무엘 시대는 사무엘이 역시 좋은 기둥이었다.
기둥들은 또 제 자리에 있어야만 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둥이 제 마음대로 아무데나 가서 서게 되면 아무리 좋은 기둥도 제 구실을 못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기둥들이 주님이 세워 주시는 자리에 순종하여 서 있어야 교회가 바로 되고 나라가 튼튼히 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기둥들이 주님이 세워 주시는 자리에 서서 순종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잘 섬길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자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둥이 된다면 원수가 많은 것도 문제가 아니고 자기가 힘이 없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기둥만 되면 그 사람을 이길 자가 없고 당할 자가 없다. 하나님께서 지켜주는 사람을 누가 이기며 누가 당할 수 있겠는가? 기둥이 되기만 하면 자기도 복을 받고, 한국 교회도 복을 받고, 세계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4. 상벌을 주시는 하나님(10-11)
. 2:10-11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자기를 대적하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신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땅 끝까지 심판을 베풀어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또 하나님은 자기가 세운 왕에게 힘을 주시며 앞길을 인도하여 주시며 치리하여 나아가신다. 즉 하나님에 의하여 왕으로 세움을 받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처리하는 자에게 힘을 주시며 뿔(권세)을 높여 주신다.
二. 엘리의 아들들의 죄(12-17)
. 2:12-17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그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장인데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큰 죄를 범하였다. 제사를 드리기는 하였으나 제사보다 먹는 것을 더 크게 여겼다. 제사장의 임무는 모든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바로 인도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종노릇을 바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는 둘째이고 먹는 것이 첫째가 되었다.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세살 갈고리를 솥이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였고, 때로는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사환을 보내어 구워 먹을 고기를 가져오게 하였다.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가져가라 하면"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죄이다.
오늘날도 제사보다 자기 먹을 것을 더 크게 여기는 제사장이 많이 있다. 교인들도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것보다 먹는 것을 더 크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좋은 것, 큰 것이 있으면 자기부터 먼저 먹고 난 후에 생각나면 하나님께 조금 바친다. 좋은 것은 다 먹고 찌꺼기, 흠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친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것이다. 세상 총독도 그런 예물은 받지 않는다(말1:8).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첫째이어야 하는데 믿음이 타락하여 자기를 위하는 것이 더 크고, 자기가 먹는 것이 첫째가 되었으므로 하나님 앞에 좋은 것을 바칠 수가 없다. 말로는 하나님 섬기는 것이 첫째라고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농사를 하면 곡식 가운데 첫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쳐야 한다. 시간도 첫 시간을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마음을 먼저 하나님께 바치고 나서 다른 일을 하여야 한다. 하나님 섬기는 제사가 언제나 첫째가 되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보라(4:11-20).
하나님을 섬기는 모양은 있으나 자기의 유익을 찾은 것이 첫째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둘째, 셋째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이다. 교역자들이 큰 교회나 도시 교회로 가기만을 원하는 것은 사례금 많이 받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결국 자기를 위하는 것이 첫째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야 어떻게 되든지간에 그저 자기 하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은 하나님 앞에 악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으려고 힘써야 된다. 육신의 문제만 잘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제사보다 자기의 육신 문제를 더 크게 여긴 것으로서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이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는 하나님 앞에 심히 큰 죄요 가증한 죄이다.
三. 사무엘의 자람과 부모의 복받음(18-21)
. 2:18-21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엘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가매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세마포 에봇은 일종의 조끼와 비슷한 옷으로 앞부분은 가슴을 덮고 뒷부분은 등을 덮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다.
한나는 매년제를 드리기 위하여 남편과 함께 실로에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사무엘에게 주었다. 엘가나와 한나의 독실한 믿음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엘리 제사장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주었다. 축복 받은 엘가나와 한나가 집으로 돌아와서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한나가 모처럼 얻은 귀한 아들(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바치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 아들과 두 딸을 낳도록 풍성하게 복을 주셨다. 하나님을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을 바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이 갚아 주신다.
어린 사무엘은 부모의 뜻을 순종하여 부모를 떠나 여호와 앞에서 신앙으로 잘 자라갔다.
四. 엘리의 책망을 아들들이 듣지 알음(22-26)
. 2:22-26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엘리가 자기 두 아들의 죄를 알았다. 그 아들들이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하고 엘리가 아들을 책망하였다. 아들을 책망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너무나 미온적(微溫的)이다. 좀 더 강경한 자세로 경계하고 안 들으면 권징을 행하여 제사장직을 파면해서라도 그 죄를 계속 범하지 못하도록 했어야 옳을 것이다.
엘리가 책망하였으나 그 아들들이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다. 책망할 때에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고 만다. 이는 엘리의 아들들이 망하기로 예정된 까닭이다. 벌써 죽이기로 작정되었다고 하였다(25절). 책망을 받을 때 즉시 회개하지 않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나가면 망하기로 예정된 사람인 줄 알아야 한다. 아마샤왕이 선지자의 책망을 듣지 않았는데 그것은 망하기로 예정되었기 때문이었다(대하25:16).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이나 책망을 할 때에 그 말을 들어야만 된다. 듣지 않으면 반드시 망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의 책망을 끝까지 받지 않으면 그것은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로 알아야 된다.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책망을 받을 때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회개하여 바로 서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는 자기의 체면이나 위신 같은 것은 다 내어 버려야 한다. 책망할 때 회개하고 순종하여 바로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로 예정된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하기로 예정된 줄 알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에 두려워 떨며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된다.
五. 엘리의 집에 대한 심판 예고(27-36)
. 2:27-36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유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내가 나을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내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가로되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엘리의 집이 망하게 된 죄는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죄 때문이며, 엘리 제사장이 자기 아들들의 죄를 책망하기는 하였으나 너무 소극적이고 미온적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엘리는 자기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다(29절). 하나님의 제물과 예물을 밟는(멸시하는) 죄악을 범하였으면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아들들을 적극적으로 강하게 책망하고 회개하도록 지도하였어야 마땅하다.
엘리의 집안이 왜 제사를 멸시하게 되었는가? 엘리의 아들들은 먹는 것을 제사보다 중히 여겼고,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의 죄에 대하여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강하게 책망하지 않았고, 인정에 치우쳐서 아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성도가 물질과 향락주의와 인정으로 기울어져서 죄에 대하여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면 하나임의 제사를 멸시하게 되고 신령한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성도는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지 않고 바른 제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멸시하는 것이 큰 죄인 줄 알고 언제나 두려움 마음으로 바른 제사를 드려야 된다. 이사야 66:2에"…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고 하였다. 이같이 하는 사람이 복을 받게 된다.
사람이 망할 사람인지 복 받을 사람인지 하나님 섬기는 면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과 그 제사를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두려워 떨고 말씀이 아닌 것은 떠나려고 힘쓰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자는 틀림없이 복을 받을 자이다. 현재의 상태가 어려운 처지라 해도 필경 복을 받게 되고 소망이 있다. 반대로 지금 모든 것이 잘되고, 출세하고, 자녀들이다 잘되어 나간다고 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제사를 존중히 여기지 아니한다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날이 오고 희망이 없다. 잘못된 것은 끊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면 어떠한 희생이 있어도 순종하고 나아가는 것이 합당한 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를 멸시함은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멸시하는 것과 같다. 성도는 어떠한 손해를 보고 궁핍을 당하더라도 구원 운동에는 절대로 손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면에서는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 나아가야 한다. 가다가 실수하더라도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려고 벌벌 떨면서 나아가는 자는 희망이 있고 복을 받는다.
또 자손에게도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된다. 엘리는 아들들에게 하나님 섬기는 법을 잘 가르치지 못하였다. 예배를 존중히 여기지 않거나 주일을 범하는 일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예배 시간에 늦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제사를 존중히 여기는 것이다. 엘리의 집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기 때문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고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것이 곧 엘리의 집에 대한 심판의 예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