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탕자의 비유로 오역한 이 말씀은 원어의 내용에는 탕자의 비유가 우시아다.
2) 비오스는 겉 사람(몸과 마음)의 비오스와 속사람(지성소)의 비오스가 있다.
3) ‘네오테로스’는 위에 존재하는 하늘의 양식으로 새 언약으로 이루어진 아들의 뜻이다.
나. 본론
1) 탕자의 비유로 오역한 이 말씀은 원어의 내용에는 탕자의 비유가 우시아다.
본문(눅 15:11~32) 말씀은 탕자의 비유로 알려진 유명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탕자의 비유가 아니다. 아버지가 주신 살림을 창기와 허랑방탕하게 탕진하고 고생 끝에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로 묘사하고 있는데 오역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하나님 말씀(진리)이라면 이치에 맞아야 하는데 맞지 않는 내용이 문장에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비사(파로이미아)와 비유(파라볼레)로 된 내용은 인생들의 머리로 풀 수 없다는 것이다.
12절에 아버지가 분깃으로 그들(두 아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 ‘비오스’인데 둘째가 아버지에게 요구한 것은 ‘우시아’였으며, 또한 13절에 허랑방탕하게 허비한 것도 ‘우시아’였다. 결국 둘째가 아버지로부터 받아간 것은 ‘우시아’였다.
그러면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우시아’와 ‘비오스(활, 생명)’에 대하여 문장 모두를 들여다보아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2) 비오스는 겉 사람(몸과 마음)의 비오스와 속사람(지성소)의 비오스가 있다.
‘비오스’는 활 또는 생명이란 뜻으로 겉 사람의 비오스와 속사람의 비오스가 있다.
‘우시아’는 ‘에피우시오스’로서 ‘에피’는 위의 뜻이고, ‘우시아’는 존재라는 뜻이며, ‘아르토스’는 양식이다. 이는 위에 존재하는 양식으로서 아버지의 말씀이다.
‘네오테로스’는 위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된 새 언약으로 아들이 가지고 온 말씀이다.
3) ‘에피우시오스’는 주기도문에 일용할 양식으로 오역한 바른 번역은 하늘의 양식이다.
비오스는 11회 쓰였으며 우시아는 2회 쓰였다. 우시아는 바로 탕자의 비유로 오역한 눅 15:12, 눅 15:13에만 쓰였다. 그러나 동의어인 ‘에피우시오스’는 주기도문에 2회 쓰였으나(마 6:11, 눅 11:3) ‘일용할 양식’으로 오역하였는데 ‘하늘의 양식’이라고 해야 한다.
출애굽 하여 광야 안으로 들어갔던 백성들이 먹어야 할 양식이 하늘로부터 곧 위로부터 만나가 내려왔다. 하늘 위에 존재하는 양식이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에피우시오스’는 반드시 골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있어야만 구할 수 있는 양식이다. 이는 지성소 안에 있는 하늘의 양식(아르토스) 곧 위(에피)에 존재하는(우시아) 양식(아르토스)인 아버지의 진리의 말씀이다.
3) ‘네오테로스’는 위에 존재하는 하늘의 양식으로 새 언약으로 이루어진 아들의 뜻이다.
둘째로 번역한 ‘네오테로스’는 위에 존재하는 하늘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된 새 언약으로 이루어진 아들이라는 뜻이다. 새 언약으로 이루어진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 곧 위에 존재하는(우시아) 양식(아르토스)을 가지고 온 것이다. 지성소 안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우시아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다.
성경 말씀에서는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곧 아버지로부터 위에 존재(우시아)하는 그 말씀(호 로고스)을 가지고 오신다.
생명의 그 빛과 안식!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