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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어머니와 아들 (7)
그 무렵, 영곡(潁谷) 땅을 다스리는 지방 관장은 고숙(考叔)이었다.
흔히 영고숙(潁考叔)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땅 이름을 성(姓)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영곡은 영수(潁水)의 발원지 근처로서, 지금의 하남성 등봉현(登封縣) 서남쪽 일대이다.
무강(武姜)이 안치된 영(潁)이라는 마을은 바로 영고숙의 관할이었다.
영고숙(潁考叔)은 사람됨이 고지식하고 강직했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는 일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천하에 둘도 없는 효자로 소문나 있었다.
이러한 효심은 영곡의 백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그곳 사람들은 심심치 않게 어머니 무강(武姜)을 귀양보낸 정장공의 처사를 입에 담곤 했다.
- 우리 주공은 천륜(天倫)을 끊은 사람이다.
이 소문을 들은 영고숙(潁考叔)은 혼자 결심했다.
'어미가 비록 어미답지 못할지라도, 자식은 자식의 도리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주공의 이번 처사는 백성들의 교화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내가 정(鄭)나라의 도의를 위해서라도 주공께 간언을 올려야겠다.'
그는 부하들에게 명하여 올빼미 몇 마리를 붙잡아오게 했다.
그것을 들고 신정으로 달려갔다.
영고숙(潁考叔)은 정장공을 알현하고 잡아온 올빼미를 바쳤다.
정장공(鄭莊公)은 난데없는 올빼미를 보고 의아해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이 새는 올빼미라는 새입니다. 이놈의 눈은 이상해서 밤에는 머리카락까지도 분별하지만, 낮이 되면 태산도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나도 알고 있다. 무엇 때문에 이 올빼미를 가지고 왔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올빼미는 성질이 이상하여 어릴 적에는 어미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만, 일단 성장한 후에는 어미를 쪼아먹어 끝내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 새를 '불효의 새'라고 하여 미워합니다."
"마침 얼마 전에 신이 다스리는 영곡(潁谷) 땅에 올빼미가 나타났기에 잡긴 잡았습니다만, 함부로 죽일 수도 없고 해서 어찌하면 좋을까 여쭈어보려고 이렇게 가지고 온 것입니다."
"...............................!"
정장공(鄭莊公)은 입을 다물었다.
'이자가 나를 비꼬고 있구나.'
노여움이 일면서 눈꼬리를 날카롭게 치켜떴다.
그때 공실의 재부(宰夫)가 요리상을 들고 들어왔다.
상 위에는 진미라 불리는 새끼염소 통구이가 올라와 있었다.
'내 이 자(者)의 행동을 살펴 보리라.'
정장공(鄭莊公)은 손을 뻗어 새끼염소의 다리를 떼어 영고숙(潁考叔)에게 내밀었다.
사양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영고숙(潁考叔)은 아무런 사양없이 새끼염소 다리를 받아 기름먹인 천으로 싸 품속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정장공(鄭莊公)의 눈길이 더욱 험악해졌다.
"그대는 고기를 먹지않고 어째서 천에 싸서 넣느냐?"
영고숙(潁考叔)이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소신에겐 늙은 어머님이 계십니다. 하온데 신의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매일 풀 반찬만 드렸을 뿐 이처럼 연하고 맛있는 고기를 올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오늘 주공께서 신에게 이처럼 귀한 고기를 주셨으나, 고기 맛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노모를 생각하니 도저히 고기가 신의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싸 가지고 가 어머니께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순간, 정장공(鄭莊公)의 험악한 눈초리가 처량하게 변했다.
목구멍으로 뜨겁게 치밀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대는 정말로 효자다. 그대에 비하면 나는 천하의 불효자로다."
영고숙(潁考叔)이 기다리던 말이었다.
안색을 가다듬으며 정장공을 향해 물었다.
"영(潁) 땅에 안치하신 모친 때문 이십니까?"
"그렇소. 나는 모친을 영(潁) 땅으로 보내면서 황천이 아니면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소. 이제 와서 후회를 해보지만 한 번 맹세한 것을 돌이킬 수도 없고.....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오."
정장공(鄭莊公)의 눈에는 어느덧 엷은 이슬이 맺혔다.
영고숙(潁考叔)은 그런 정장공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윽고 자신의 속마음을 밝혔다.
"태숙 단(段)은 이미 죽었습니다. 지난간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강 부인의 아들로는 주공 한 분이 남았습니다. 그런데도 봉양하지 않고 유배형에 처하신다면 어찌 이 올빼미와 다를 바 있겠습니까?"
"만일 황천(黃泉)에 가서야 만나겠다고 맹세하신 것 때문에 모친을 뵐 수가 없다면, 신에게 좋은 계책이 하나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그 계책을 사용해보시렵니까?"
"어머님을 다시 뵐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 하리오. 그대는 어서 계책을 말해보오."
"쉽습니다. 주공께서 황천에 가시면 됩니다."
"나보고 죽으라는 말인가?"
영고숙(潁考叔)이 엷은 웃음을 띠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황천(黃泉)이 무엇입니까?"
".......................?"
"주공께서는 먼저 땅을 파서 샘물이 나거든 그곳에다 지하실을 만드십시오. 그리고 강(姜)부인을 그 지하실로 모신 후 사람을 시켜 항상 모친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전하십시오."
"아마도 주공이 모친을 생각하는 것보다 강부인이 아들을 그리는 마음이 더 간절할 것입니다. 그런 뒤에 주공께서 그 지하실로 내려가서 모친을 만나시면, 그야말로 황천에서 만나겠다는 맹세를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황천(黃泉)이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무덤을 말하지만, 다른 하나는 땅 속을 흐르는 샘, 즉 지하 샘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정장공(鄭莊公)은 영고숙이 말하는 바를 알아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그대의 계책이 실로 절묘하구나."
정장공(鄭莊公)은 당장 토목 일을 잘하는 장정 5 백 명을 뽑아 영고숙에게 내 주었다.
영고숙(潁考叔)은 그 장정들을 데리고 곡유(曲洧) 땅에 있는 우비산(牛脾山)으로 향했다.
곡유는 유수(洧水)하류에 있는 마을로 물이 잘 나는 곳이었다.
지금의 하남성 허창시 동쪽 들판 끝에 위치해 있다.
"이 곳을 파라."
영고숙(潁考叔)은 풍수에 능한 사람의 안내를 받아 유수(洧水)와 접한 우비산 자락 한가운데를 점찍었다.
장정들은 땅을 수십 길 팠다.
과연 그 곳에는 지하수가 흐르고 있었고, 수맥을 건드리자 샘물이 마구 솟아났다.
영고숙(潁考叔)은 그 샘물 곁에다 나무를 걸쳐 방을 만들고 지상과 연결하는 사다리를 설치했다.
글자 그대로 황천에 통나무집 하나를 지은 것이었다.
공사가 끝나고 영고숙(潁考叔)은 무강을 모시러 영 땅으로 달려갔다.
"주공께서는 지난날의 일을 후회하고 계십니다. 이제 모친을 만나기 위해 땅을 파서 지하에 황천(黃泉)을 만들었으니, 그 곳으로 가시어 주공의 효도를 받으십시오."
그 무렵, 무강(武姜)도 골육상쟁을 불러일으킨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정장공의 소식을 받으니 여간 기쁘고 감격스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어제 일은 잊으시고 내일만 생각하십시오."
영고숙(潁考叔)은 무강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뜻하게 위로했다.
무강(武姜)은 그런 영고숙을 따라 곡유의 우비산 지하실로 들어갔다.
얼마 뒤, 지상 쪽에서 시끌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사다리를 타고 누군가가 내려왔다.
무강(武姜)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바로 큰아들 정장공(鄭莊公)이었다.
"불효자 오생(寤生)이 오랫동안 문안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불효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사다리를 다 내려온 정장공(鄭莊公)은 무강 앞에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정장공을 바라보는 무강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황급히 아들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늙은 것이 죄가 많아 차마 너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구나."
"어머니 .................!"
정장공과 무강 - 두 모자는 서로 부등켜 안고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이윽고 정장공(鄭莊公)은 친히 어머니 무강을 부축하여 사다리를 밟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휘장을 친 수레가 준비되어 있었다.
무강(武姜)이 수레에 오르자 정장공은 친히 말고삐를 잡고 앞장서서 걸었다.
백성들은 정장공과 무강에 대한 소문을 듣고 길가로 쏟아져 나왔다.
모두들 그 행렬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떠들어대었다.
"우리 주공은 참으로 효자로구나."
모든 것이 영고숙(潁考叔)의 공이었다.
정장공(鄭莊公)은 특별히 영고숙에게 대부의 벼슬을 내려주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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