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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파생되지도 종속되지도 않은 독생자
I. 신성에는 관련성의 긴밀함이 내포되다
와그너가 미네아폴리스에서 발표할 당시에 그 청중 가운데 어떤 이들 편에서 당황하고 넘어지게 된 또 다른 원인은 아리안의 견해를 가진 자들과 기울어진 자들 독생자라는 성서의 표현이었다. 그런 분들이 이것을 아버지가 먼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는 파생되었다고 결과적으로 종속적 시작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것은 와그너, 스미스, 스톤 등의 아리안적인 논리의 일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을 당황케 했다. 그러므로 독생자라는 표현과 같은 종류의 술어인 “장자”, “먼저 나은 자” 등의 표현을 검토해 볼 의무가 우리에게 지워진다. 이것을 통해서만 어떤 오해들과 난점들이 해결될 수 있다.
1. 신성, 선재, 영원성등과 함께 다루어야 한다
“독생자”, “장자”, “먼저 나은 자”하는 표현을 생각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에 관해서 세가지 고려해야 할 문제를 우리 주님에 관하여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말들은 그의 완전한 신성, 그의 선재, 그의 존재의 영원성등과 조화되어야만 한다. “낳았다”, “장자”, “먼저 나은 자”라는 술어는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적인 세습제도에 따라서 인간적 탄생이나 낳은 존재에 의하여 이해하는 것을 의미할 수 없다. 그런 상상한 시작이 있다는 것 참으로 가정한다면 - 그것은 아리안 사상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그의 존재의 영원성에 관한 많은 성서적인 말씀에 직접 대립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스스로 모순을 만들지 않는다. 예언의 신의 보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선재와 완전한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의 주요 논리 영원한 신성의 제 이위로서의 그리스도, 이 성서의 술어들의 한 의도는 오해에 기초된다. 이 표현들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 답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관습적인 인간 경험과 연관성의 유추에서 논리에 보통 오류가 포함된다. 이들은 필수적으로 시간적으로 선행하는 선재하신 0가 있다는 의미라는 오류, 그러나 성서적인 용법에서 아들이란 단어는 육신적 혹은 혈통적인 파생이라고 필수적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파생 즉, 기원, 근원, 시작이라는 뜻이 논쟁에서의 진정한 의미는 성서의 문맥상의 용법에서부터만 그리고 말미암아서만 찾고, 확립되어야 한다.
2. “아들들” - 특성 분명한 특징
아들이란 말은 세습적인 사상이나 선재라는 사상과는 온전히 다르게 신구약에 널리 사용되었다. 이같이 바울도 불순종의 아들들이라고 표상적으로 사용하였다. (엡 2:2; 5:6). 사실상 아들이란 술어는 한 인격의 특성들을 상징하는 방법으로서 가장 보편적인 성서 용법의 하나이다. 성서적인 술어, “아들, 아들들”은 구별된 성격을 지시하는 데에 끊임없이 사용되었다. 시온의 아들들 Belial의 아들들,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아들들, 별의 아들들, 이방인이 아들들. 의인의 아들들, 우뢰의 아들들, 언약의 아들들, 그리스도께서 어떤 패역한 무리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버지에게서 났다(요 8:44)고 하였다. 아들이란 술어는 특징적인 특성, 구별된 특성, 그것은 한 사람의 현저한 성격이나, 고유한 본성을 의미한다.
Ⅱ. “독생자” - “유일한”, “가장 귀한”
1. 유일 무이한 긴밀한 영원한 관련성
이같이 독생자란 요한이 사용한 낱말은 그리스도의 아들 됨의 유일 무이성 독특한 그별이지 파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희랍어 모노게네( )란 말은 두 단어 모노스( )와 게네스( )를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사랑받는”의 뜻을 내포한다. 히 11:17에 이삭을 아브라함의 독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삭은 아브라함의 독자가 아니었다. 이스마엘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삭은 육신적인 의미에서 독생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랑의 말할 수 없는 선물로서 표현한 것과 같다(고후 9:15). 모노게네스란 말이 신약에 7번 사용되었는데, 6번 “독생한”로 번역되었다(그 술어가 70인 역에도 가끔 나온다.) 문자적으로 모노게네스는 독자를 의미한다. 누가복음에 이렇게 기록되었다. 그 어미의 독자 - 나인성의 과부(눅 7:12) - 그 회당장의 외딸(8:42), 귀신들린 자(9:38) - 그러나 요한복음에 사용한 모노게네스는 그의 특별한 범주에서 유일한 분, 한 종류의 유일한 분을 의미한다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해석한다. 일반적으로는 그리고 아브라함은 독자를 바쳤다. 이같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자를 의미한다. 이같이 야이로는 외딸을 가졌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독자를 바쳤다. 이같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5번 기록했다.
2. 이삭 - 특별한 관계의 아들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의 경우를 특별히 면밀히 조사해 보아야 한다. 성전의 묘사를 주목하라. 아브라함은 독생자도 아니요 장자도 아니다. 그러므로 결코 잊어서 안 될 것은 이삭에 대하여 사용된 모노게네스는 00적으로 아브라함의 독생자를 지시함도 아니요, 그의 장자를 의미함도 아니다. 도리어 장자 상속권을 가진 그 아버지를 계승할 약 속의 아들이었다. 여기서 다시 이 지상의 경우에서도 그것은 특별한 관계 유일무이한 오직 한 번 있는 그 종류의 있어서 유일한 일이다는 것이다.
3. 영원성, 계시, 무죄함, 유일한 신성과 인성
사전 편찬자 Mouliton과 Milligon이 말하기를 그리스도에 관한 모노게네스의 의미는 동등된 분이 없는 오직 유일한 하나님에 관해서 충분히 계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 뜻은 참으로 사용된다. 그 뜻은 참으로 비교할만한 자가 없는 대등한 자가 없는 분이시다. 모노게네스는 이렇게 예수님에 관해서 유일한 유일무이한 뜻으로 사용된다. 이것도 일치되게 현대 번역문들은 요 3:16의 “독생자” 대신에 “유일한 아드님”을 사용해서 말한다. 다음의 번역들이 그렇다. Weymouth Mottatt Smith, Goodspeed, R.S.V. New English Bible. 오늘날의 영어 번역, 빌립역, 예루살렘 성경, 기본영어, 닻 성경, 바큐레이 역이 문제의 핵심은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서 홀로 따로 분명히 다른 인도로 서 있다.
Ⅲ. 어떻게 독생자한 말이 영어 성경에 소개되어 있는가?
만일 현대 학자들과 최신 성서 번역문들에 그렇게 명백히 제시된 바와 같이 μουογενε?가 실제로 독생자란 의미가 아니하면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번역이 성서에 들어 왔으며, 그렇게 오랫동안 기독교 신학계에 받아들이도록 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 이야기는 재림교 서적에 요 3:16을 다루는 부분에서 “성서 번역의 문제들”(1953)에 맨 처음 기록되었다. R.S.V.가 출판되었을 때 많이 비평을 받은 성구의 하나가 항상 즐겨 외우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였다. 새 번역에 이 유일하신 아들이라고 했을 때 많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변경되었다고 느꼈고 따라서 반작용이 생겼다. R.S.V.의 출판은 학자들에 의하여 수년간 신실한 성서 원어 연구의 결과로 첫 번째로 널리 출판되었다. 실제로 사전들, 성경 사전들, 그리고 기타 참고 서적들이 수년간 μουογενε?는 “독생자”가 아니라고 말해 왔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로 돌아가서 기독교 사상에 “독생자”란 것이 발전된 흔적을 살펴보자.
1. 초기 교회 제자들은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을 사용했다
사도들 이후 교회 저자들은 우리가 저들의 저서에 의하여 판단한다면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면서 μονογενε?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저들은 그분을 단지 하나님의 아들아라고 불렀다. 제2세기 후기에 예수님을 기록하면서 더욱 보편화되었다. 그 μονογενε?란 말은 처음에는 세대의 의미에서 “낳다”는 사상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성경을 라틴어로 처음 번역한 자들이 unicus “only” μονογενε?와 동의어로서 사용했고, “only begothen”을 의미하는 unigenitas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증거 된다.
2. “Begether”와 “Begathen”신학 토론
2세기 동안에 “Begether”와 “Begothen”의 토론(논쟁)이 교부들의 저서에 나타난다(Justin Martyr, “트리표와의 대화”, 61장).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들은 “낳다”는 뜻인 ( )란 동사의 형태들이다. 105장에서 Justin이 말하기를, “나는 벌써 그는 그분에 의하여 한 특별한 방법으로 낳은 말씀의 능력이신 그리고 그 후에 동정녀를 통해서 사람이 되신 만물의 아버지의 독생자라는 것을 증거 했다. 분명히 그는 μονογενε?를 세대라는 어떤 의미로 하였다. μονογενε?를 독생자로서 이해하는 이 경향은 이단들에 대한 신앙을 변호할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힘을 얻기 위해서 나타났다. 이 시기에 이단들은 특별히 복음서들에 제시된 그리스도의 본성과 인격에 대하여 질문할 경향이 있었다.
3. 양성에 관련하여 “Begothen”이냐, “Generate”이냐?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위를 정의하려는 노력이 계속됨에 따라서 영원히 선재하는 존재를 적용하는 세대의 문제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Ignastius는 예수님은 발생하셨고 발생하지 않으셨고 혹은 “낳았으나 낳지 않았다( )” 주장했다. 이 말은 그리스도는 그의 인성으로 생겨났고 그의 신성에 있어서 생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피로 된 존재라고 하는 이단들에 반대하여 교회 사람들은 그분을 그의 본래의 본성과 아버지와의 관련성을 가지고 낳았다고 얼마 않되어 주장하게 되었다. 성경에 첫 번째 신성의 두 인격이 예언되었으므로(아버지-아들) 이 강조는 아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은 영원한 존재의 출생의 문제였다. Origen이 영원한 출생의 사상을 소개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그의 출생은 광채가 태양에서 나오는 것 같이 교회의 인정된 견해가 되었고 기록의 신조가 되었고 아들은 “세상이 잇기 전에 낳았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성령과 “동등이요, 같이 영원하다”고 주장했다(Athanansian 신조, 기독교의 신조들, Philip Schaff 편집, 2권 p. 66-70). A. Jerome과 Latin 성경 Jerome은 라틴어 Valgate 역에서 μονογενε?를 번역하기를 그리스도에 관하여 unicus to unigenitus(only begothen)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는 눅 7:2에는 unicus(과부의 독자), 8:42(야이로의 외딸), 9:38(귀신들린 독자)라고 그대로 두었다. William Tyndale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할 때 그가 가장 먼저 요 3:16을 “only begothen”, rm 외에 그리스도와 관련된 성구를(독생자)라고 사용했다. 그러나 그 후의 편찬에는 이것을 “only”로 번역했다. K.J.V. 번역가들이 Latin Vugate의 영향을 받아서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말에는 “only begothen”이란 말을 사용했고 또한 누가복음에 있는 다른 3곳에는 “only”라고 번역했다. 먼저 지적한 바와 같이 은유적인 의미에서 신성에 있어서의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이해함이 가능하고 어떤 세습적인 의미에서 낳았다는 사상이나 아들보다 아버지가 먼저 존재한다는 사상을 배제한다. 그것은 한 설명이 확증된 것이다.
Ⅳ. Paul의 “Prototokos”(firstborn or firstbegothen)의 사용법
그러면 관련된 술어를 살펴보자. 요한이 “only begothen”사용한 반면에 바울은 비슷한 술어 “장자-먼저 난 자”란 말을 사용했다. 문자대로 하면 장자는 사람이나 짐승의 첫 번 출생한 자이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그것은 계급이나 힘에 있어서 “우월함”과 성품과 지위에 있어서 뛰어남을 지시하는 말이다. 이리하여 옛 히브리인 중에서 장자는 특별한 특권, 상석, 중요성과 상속권을 가졌다.
1. 장자 - 택한, 구별된, 은총 받은, 특유한
장자는 한 가족 중에 반드시 첫 번째 난 아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가끔 한 특별한 지위를 의미한다. 이같이 다윗은 장자였으나 그는 이새의 가족 중에 막내둥이였다(시 89:20-27). 그리고 실은 에서가 먼저 났지만 야곱이 또한 장자였다(창 27:19, 29, 33-37). 또한 육적 출생에 상관없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한 백성)은 내 아들, 나의 장자라”(출 4:22). 또한 에브라임도 렘 31:9, 20에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교인들에게도 적용된다. 장자의 교회(총회)(히 12:23),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에게 여러 번 적용된다(골 1:18, 히 1:6, 계 1:5).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에 관하여는 한 택한 백성, 상속받을 백성(7:6, 4:20)을 뜻한다. 이와 비슷하게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 관해서 뛰어나게 참되다. 그의 택하신 분(벧전 2:4), 거룩하신 분(히 7:26), 모든 것 위에 뛰어난 분(엡 4:6), 구별된 분(히 7:26), 은총 입은(눅 2:52), 구별된 분(눅 4:19-22). 그러므로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비교할 수 없는 분, 죄인을 구원하는 하늘의 장자, 하나님의 장자이시다. 감명 깊게 기록된 바와 같이
2. “먼저 난 자” - 통치권, 제사장직, 지배권
protokokos는 신약에 8번 나온다. 그것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의 탄생에 관하여 사용되었다(눅 2:7). 그것은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그에 대하여 사용된다. “그가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장자가 되려함이라”(롬 8:29). “모든 피조물의 먼저 난 자”(골 1:15, 18), 모든 창조물 중에 R.S.V. “죽은 자 중에 먼저 나은 자니”(골 1:18), “죽은 자 가운데 먼저 난 자(firstbegatten)”(계1:5). 그러므로 ( )는 역시 광범위한 뜻이 있다. 어떤 대권들과 특권들이 “먼저 난 자”, 즉 장자에게 있다. (1) 통치권의 지배권, (2)제사장의 특권, (3) 재산 상 속의 두 몫을 받음. 이 모든 것은 메시야의 오심, 통치권과 지배권에서 성취되었다.
“이전 권능(the first dominition)이 네게로 돌아오리라”(창 49:10).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겔 21:27). 제사장직에 관하여 기록되기를 “너는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이라”(시 110:4, 히 5:6, 7:21, 히 4:14). 그러므로 이 모든 특권들과 대권들은 그리스도에게로 집중된다.
3. 특별한 구별과 특권의 위치
바울이 ( )(firstborn)의 사용은 동물들(히 11:28), 인간적인 의미로 사용된 때도 있다. 그러나 바울의 저서에서 계급을 점하고 장자의 대권을 활용하는 등,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같이 이미 본 바와 같이 다윗은 이새의 막내아들이었으나 장자라는(시 89:27) 일컬음을 받았다(삼하 17:14). 그러나 그는 특별한 우수한 위치를 가져야 했다. 역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장자였는데(출 4:22). 첫째 나라도 아니요, 우수한 나라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열국 중에 이스라엘의 뛰어난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다음의 확대된 의미를 가졌다. “죽은 자중에 장자(욥 18:13)=사망의 장자”-치명적 질병 중에 최고라는 뜻. “가난한 자의 장자”(사 14:30)-가난한 자 중에 최고로 가난한 자라는 뜻.
4. 하나님의 장자 이스라엘, “장자 왕 다윗”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장자의 나라로 예정된 것과 같이 다윗은 장자 왕으로 칭한다. 출 4:22, 시 89:27, 그리고 다윗의 혈통에서 난 예수님도(특별한 의미에서 다윗의 혈통에서 난) 모든 의미에서 장자가 되셨다.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아들, 많은 형제 중에서 먼저 난 자(롬 8:29),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첫째 상속자인 한편 저들은 그런 의미에서 한께 상속받을 자들이다.
5. 기독교 시대에 신생을 의미한다
언급한 바와 같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은유적으로 하나님과 고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은 나의 아들이요 나의 장자라”(출 4:22). 그리고 기독교 시대에는 성령을 통하여 얻은 신생에 대해서 사용된다(요 3:3).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이다(요 1:13, 요일2:29; 3:9; 4:7; 5:1, 4, 18; 벧전 1:23).
Ⅴ. 시 2:7이 신약에 적용됨
“Begothen”은 구약 성서에 예언적으로 그리스도에 관해서 사용된다. 시 2:7에 영감적, 의미심장한 선언에 나타난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로 나왔다.
1. 명백히 예수님의 성육신에 적용됨
히 1:5, 6에 보면 시 2:7을 인용한 후에 저자는 히브리인들에게 말하기를 “또 맏아들을 이끌어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 지어다”(6절). 베들레헴에 탄생할 때 그 적용은 수정같이 명백하다. 성육신을 분명히 의미했고, 근본적 의도를 제시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는 물론 천사들 위에 그리스도의 초월성을 확증한다.
2. 또한 예수의 침례에 적용 한다
그 다음에 예수님의 침례식에 이 주요 구절이 다시 나타났다.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성령의 감동의 글은 말하기를 “그리고 성령이 그 위에 형체로 임하시더니...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는 기뻐하고”(눅 3:22, R.S.V.). 난외에 기록하기를 “고대 다른 권위자들은 ‘오늘날 너를 낳았다’(fostnote)했다.” 그러므로 그의 침례와 그가 하나님의 아들 됨을 선포한 음성은 또한 성육신 관계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3. 또한 예수의 침례에 적용 된다
그러나 그것은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부활에 적용된다.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행 13:33), “그는 부활로 먼저 난 자”(골 1:18), 혹은 죽은 자 중에서(계 1:5), 생명의 근원, 기원, 생명의 왕이 되셨다. 그러므로 부활 역시 그 범위 내에서 온다(S. C. Carpenter, 누가에 의한 기독교, p. 173 참조).
4. 다음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에 적용 된다
그 다음에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선언은 그의 부활 후에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시고”(행 2:33), “높이 들리시고”(빌 2:9), 모든 권세와 능력위에 뛰어나게 되시어 “영광과 존귀로 관 쓰셨을 때”(엡 1:21, 히 2:9), 그의 부활 후에 그의 제사장 직에 들어간 연관되어 나타난다.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히 5:2, 6). 이같이 제사장과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취임식이 또한 포함된다. 결론적으로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는 말씀의 영감의 신약 성서의 적용은 그리스도의 점진적 사건과 연관된 인간 형체로 들어오심을 지적함이 명백하다. 그의 성육신의 탄생, 침례와 부활과 제사장직 이 모든 것이 인간 형체로서의 그의 중대한 탄생을 포함하고 그 육체 탄생에 기인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두 번째로 오실 때에도 인자로서 오시기 때문이다(마 24:37, 막 13:34-36, 눅 21:27, 36). 이것은 시 2:7의 의미의 광범위한 범위이다.
Ⅵ. 부활한 인류에 대한 부활한 그리스도의 관계
“먼저 낳은 자”는 바울이 히브리서 1:6에서 그의 영화된 인성을 입으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인간과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한 것이다(Wescott저, Hebrews를 보라). 그는 창조에 있어서 죽은 자에게 새로운 인간에게 장자이시다. 아래와 같이
1. 롬 8:29
“하나님이 머리이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그는 자녀들의 한 가족에서 장자이시다. 그는 우리와 같은 의미에서의 아들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들은 파생에 의해서 혹은 영적 00두에 양자가 됨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주의 절대적, 영원한 아들 됨에 의존되어 있다.
2. 골 1:13-15
우리를 주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 중에 먼저 나신 자이시다. 이것 역시 그의 영원한 선생을 지적한다(Vincent Word Stadies, 3권 p. 468). 그는 창조 전에 모든 창조물 정에 존재하신다.
3.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중에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들어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부활로 인하여 새로운 영적 생명의 시작이 되셨다. 그 자신이 스스로 죽은 자들 중에 하나가 되심으로 죽은 자의 장자가 되셨다.
4. 계 1: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그는 신실한 증인이시오 죽은 자들 중에서 먼저 나신 자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관련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맨 첫 번째 부활한 분은 아니나 다시는 사망이 그를 0수 없는 부활을 하신 분으로 첫째이시다. 그는 그 속에 생명이 있었다. 사망이 그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창 2:24).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 앎이라”(롬 6:9). 그는 그 안에 잠자는 자들을 최후에 일으킬 부활의 생명으로 일어나셨다(살전 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예수 안에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그의 부활은 다른 사람을 뒤따라 부활시킬 부활의 선임자이시다. K.J.V.에서 행 26:23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높은 자 중에서 일어나야 할 자들 중에 첫째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처음에 보면 아무도 그리스도보다 먼저 살아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벌써 여러 사람이 그 보다 먼저 부활했다. 수렘 사람의 아들(왕하 4:36), 과부의 아들(왕상 17:23),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눅 7:11-15), 야이로의 딸(눅 8:51-55), 그리고 나사로(요 11:44). 오점은 다른 이들이 죽은 자 중에서 부활했으나 그리스도는 부활해서 다시 죽지 않은 자중에서 첫째이다(롬 6:9). 그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다(Robertson 저, 신약의 말씀 묘사 3권, p. 451).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무덤에 빛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Waymouth가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죽음 중에서 나오심으로 빛으니 소식을 선포해야 할 첫째 사람이 되어야 한다(행 26:23).
Ⅶ. 그리스도 - 장자들의 교회 중에서 장자
히 12:23, 24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장이신 하나님이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라” 장자들의 교회란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혹은 관련되어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에게 적용된다. 이리하여 그는 모든 피조물들 중에 장자이시다(골 1:15). 죽은 자 중에서 먼저 난 자(18절), 그리고 저들은 00와 상속권을 나눠 받는다(롬 8:14-17, 29). 이리하여 출 4:22에 있는 바와 같이 장자한 술어는 한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에 적용된다. 메시야에 적용되기 위한 예비.
1. 인간 편과 하나님 편
인간 편에서 보면 그리스도는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신령한 가족에 대한 그의 모든 관계에 있어서 장자의 모든 위신과 권리를 가지셨다.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신 하나님으로서 그는 아버지와의 완전하고 영원한 연합에서 하나님의 모든 특성을 소유하신 분으로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된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가 신성이라는 뜻이고 인자는 동시에 그는 인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성의 제한과 연약성을 가진 것은 그리스도의 이중성의 인간면에서 뿐이다. 다른 신성 면에서 무제한의 권능이 있다. 그는 능하신 하나님이요(사 9:6), 전능하신 자요(계 1:8), 하나님의 능력(고전 1:24) 그는 끝없는 생명의 능력을 좇는 대제사장이시다(히 7:16). 이 때문에 아무도 구원할 수 없지만 그는 구원하실 수 있다(히 7:25). 그것이 그리스도의 아들 됨의 유일무이성이다.
2. 많은 형제들 중에 맏아들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모든 택한 자들을 집에 모을 때 완성시키는 은혜의 목적에 있어서 많은 형제들 중에 맏아들이시다. 그는 인간 가족 중에 한 분이 되셨다. 그러나 그 분은 저들의 주인이요, 모본이시다. 하나님의 이상적인 아들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형상을 본받도록 예정되었다(롬 8:29). 그러므로 그의 형상으로 자라나서 장자 혹은 먼저 난 자 아들들(나라와 제사장들을 구성한)의 모든 특권들을 소유한 성도들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라고 칭한다(히 12:23 A.R.V.).
3.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역시 올바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연관된 표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 중에 먼저 나신 자”란 표현이 있다(골 1:15). Williams는 “어떤 피조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라고 변역했다.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볼 수 있는 형상, 모습, 현현이시다. 윌리암즈는 그것을 정확한 모습이라고 번역했고, Knox는 참된 형상이라고 번역했다. 그는 사람이 처음 창조 받은 모습이다(창 1:26). 그리고 타락 후에 반드시 변화되어야 할 모습이시다(골 3:10, 고전 15:49). - (빌 3:20 주 재림시 육체까지 주의 형상으로 변화됨) 먼저 낳은 자에 관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골 3:18),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고(16절), 만물 중에 으뜸이시고(18절),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시고(19절, 2:9), 모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1:15), 만물 이전에 계시고(17절), 만물을 붙드시는 자시다(17절). 그러므로 그는 창조 받은 피조물이 아니요, 그는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 사상은 시간적으로 선재하시고 구별하신 분이라는 두가지 의미가 포함된다.
Ⅷ. 파생했다는 아리안 사상은 성서와 외인이다
1. 아리안 주의의 근본적 오해
과거 어느 지점에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독생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왜곡된 사상은 이미 우리가 본 바와 같이 4세기에 Arius에 의하여 강하게 제시되었다. 그는 그리스도는 만세전에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어느 때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의미 - 하나의 파생된 존재, 하나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 때부터 이 사상은 계속 퍼지고 주기적으로 여러 세기에 거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혼란과 오해를 초래해 왔다. 영원한 과거 어느 시대에 그리스도는 아버지에게서 낳았다는 사상은 성서에는 거의 성질이 다르다. μονογενε?를 영원한 과거의 어느 지점에서 말씀의 한 신비한 탄생 혹은 시작이라고 해석하는 사상은 하나님이시오 최고의 의미에서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하나님이시오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시다. 이상의 설명한 그런 분이 요한복음의 유일한 아들 우리의 창조주, 구세주, 속죄 희생, 봉사하는 제사장, 최후 심판장, 오시는 왕, 예수님 영원하신 그리스도, 우리의 무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2. 지체의 발생의 산물은 제외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 혹은 술어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특별한 관계를 표시한다. 그러나 지체라는 사상은 배제한다. 0000에 있어서 지체는 생산의 산물과 연영 관계를 의미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아들이라는 단어는 파생의 분명한 의미가 있고 시간적 요소가 내포된다. 우리 인간의 용법상 아들은 특별히 아버지의 선재를 의미하고 그러므로 아들의 종속적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신령한 아들에게 적용할 때에는 아리안 사상은 전혀 틀렸다. 창조, 출생, 생상 등은 반드시 한 시작을 의미하고 절대적인 무한과 영원성과 모순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과거와 현대에 영원히 하나님(신령한), 아버지와 같은 본질, 즉 같이 영원하시고, 그러므로 자존하시고 항시 존재하신다. 그런 존재는 독립된 개체이면서 절대적인 신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아리안 사상을 배제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이다. 그리고 그 분만이 참 독생자인 유일한 아들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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