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K. 비일의 성전 신학]
비일은 데살로니가후서 2:4의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는다’는 것에 대해서 문자적이 아니라 은유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주석가들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을 묵시문학의 범주에 넣고 있으므로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앉는다”라는 개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앉음’의 의미는 성경 여러 곳에서 ‘통치’를 말하고 있다. 장차 적그리스도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어떻게 통치권을 행사할 것인가에 대한 비일의 예리한 연구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는 데살로니가후서 2:4의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이 텍스트가 이스라엘 안에 있을 미래의 한 성전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이 텍스트는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했던 과거의 특정 사건을 가리키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게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만약 이것이 적절한 설명이라면 바울은 그렇게 예언했을 것이다(어떤 이들은 이를 주후 70년의 로마의 정복과 동일시함). 주후 1세기 당시에는 어떤 성전 모독도 염두에 둘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후서 2:3-4은 바울의 시대에 아직 발생하지 않았던 “배교”, 아마도 20년 후인 주후 70년에만 국한되어 발생하는 것이 아닌 점증하던 “배교”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출현은 주후 90년대의 요한이 여전히 예고하는 바이기도 했다.
마샬(I. H. Marshall)은 이 텍스트가 어떤 특정 성전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결론지음으로써 정반대 입장을 취한다. 대신 마샬은 4절이 단순히 "하나님을 향한 악의 저항을 표현"하기 위해 은유적인 방식으로 말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견해도 가능하겠지만 이 텍스트가 언급하는 성전은, 지금까지 논의해왔던 바와 같이, 참된 성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교회를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이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바울 서신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구절은 예외 없이 교회를 가리킨다. 요한계시록의 "성전"은 지상이나 천상에 있는 참된 신자 모두를 가리킬 수 있다.
- 다니엘 11:30 이하의 예언과 그 첫 성취(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와 그의 제국)는 언약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며, 이 공동체 안의 성전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뿐 아니라 만일 주전 2세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다니엘 11:31-36의 첫 성취라고 한다면, 이 성취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성전 건축물—마지막 때의 영적 성전인 교회의 예표론적인 예언이 되었던—과 관련된 한 사건으로 간주되었던 것 같다.
- "배교"와 성경의 다른 책들에 나오는 이 단어의 용례는 모두 언약 공동체 안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향한 이전의 신앙 고백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과 관련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전에 앉는다"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적그리스도가 가시적인 성전의 의자에 직접 앉는다는 것을 가리키지는 않는 듯하다. 도리어 이 텍스트는 신약성경의 다른 은유적인 사용법과 마찬가지로 은유적인 차원의 "앉는" 행동을 염두에 둔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3:2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권위 있는 성경 해석과 재판을 표현하는 구절)라고 말한다. 또한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에 관해 계속 언급하는데, 이는 그분의 "통치"를 은유적인 차원에서 언급한다. 왜냐하면 하늘에는 이런 가구가 문자적으로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성전에 앉는다'라는 개념을 문자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견해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이 본질적으로 묵시문학에 속한다는 많은 주석가의 관찰에 의해 추가로 증명된다. 요한계시록에서 "보좌에 앉는다"(kathizō 또는 kathēmai와 함께 쓰임)라는 표현은 종종(약 15회) 권위의 자리에 있는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 또는 성도들을 가리킬 때 비유적으로 쓰이는데, 이는 예수가 하늘의 구름 위에 "앉으셨다"라고 묘사하는 명백히 은유적인 표현에 의해 한층 강화된다(계 14:14-15). 하지만 데살로니가후서 2:4과 가장 비교될 만한 텍스트는, 바빌론을 부정적인 의미에서 제사장의 옷을 입고(계 17:4; 18:16)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계 17:1)로 묘사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바빌론이 입고 있는 제사장의 옷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에 대한 통치권으로 이해된다(계 17:15, 18; 18:7). 이런 결론은 요한계시록 19:15에서와 같이 동일한 이사야 11:4 텍스트에 기초하는 데살로니가후서 2:8의 묵시록적 표상과 일치한다. 그런데 이 두 신약 텍스트는 공통적으로 마지막 원수를 심판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요한계시록 텍스트가 원수 집단과 그들의 지도자를 격퇴시키는 예수의 모습을 그리는 반면에, 데살로니가후서 텍스트는 종말론적인 원수를 "그 입의 기운으로 죽이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린다. 이 두 묵시록적 텍스트는 예수가 불순종의 대상이 된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서 원수의 유죄를 밝히고 그들을 벌하시는 모습을 강조한다(8절에 대한 아래 설명을 보라). 데살로니가후서 2:4의 은유적인 성격도 2:15과 맥을 같이하는데, 2:15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문자적으로 병사들처럼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으라거나 무엇인가를 양손으로 굳게 "붙들라고" 명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리를 믿으라고 명한다!(Callow 1982: 81-82)
따라서 데살로니가후서 2:3-4은 마지막 날의 공격자가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 한가운데로 들어올 것이요, 교회로 하여금 크게 배교하여 불신앙에 빠지게 할 것임을 의미한다. 그 후에 그는 교회 안에 거짓을 퍼뜨림으로써 교회를 통제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마지막 날의 대적자가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리라는" 설명은, 그가 자신을 신격화할 것임을 의미하는데 이는 신성모독의 전형이다. 이런 신성모독 행위는 그리스도와 로마의 통치자들이 이스라엘과 성전을 정복하고 나서 우상을 숭배하도록 성전 안에 신상들을 직접 세웠던 행위와 맞먹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 텍스트는 적그리스도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엄청난 영향력과 권세를 과시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으로 칭할 정도가 되리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다니엘 11장에 있는 종말론적인 대적자에 대한 묘사와 더 많이 일치한다. 왜냐하면 다니엘 11장은 그가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할" 것이요, 자신을 거짓된 신으로 위장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단 11:36-39a). 따라서 그가 자신을 진짜 신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여전히 거짓 신이나 우상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크게 범죄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는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을 변형시켜 그분이 계시하신 진리와 반대되는 다른 율법을 가르친다(단 7:25; 8:11-12, 25; 11:30-32 등이 이를 확증함). 바로 이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는 "불법의 사람"으로 불린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처럼 행동한다. 본질적으로 적그리스도는 자신이야말로 궁극적인 입법자라고 주장하지만, 그가 주는 율법은 성경의 율법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레고리 K. 비일, 강성열 역, 『성전 신학』(새물결플러스, 2014), pp. 381-384.
첫댓글 좋은 내용입니다. 신비주의적 환타지 세계관을 방지하는 좋은 글입니다.
공감합니다!
초신자를 위해 요약해 드립니다:
그레고리 K. 비일은 데살로니가후서 2:4의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는다’는 표현을 문자적인 물리적 건물이 아닌 은유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하나님의 성전'은 미래의 유대인 성전이나 과거 예루살렘 성전의 특정 사건이 아니라, 구속사의 연속선상에 있는 '교회(신앙 공동체)'를 구체적으로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앉음’이라는 행동은 마태복음의 모세의 자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문자적 자리가 아닌 권위와 ‘통치’를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은 본질적으로 묵시문학의 범주에 속하므로, 요한계시록의 다양한 은유적 표현들처럼 상징적인 표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학적으로도 자연스럽습니다.
다니엘서의 배교 예언과 역사적 성취가 언약 공동체 내부를 중심으로 일어났듯이, 종말의 배교 사건 역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점진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앉는다는 것은 마지막 날의 대적자가 참된 교회 한가운데로 침투하여 들어올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는 교회 안으로 들어와 배교를 일으키고 거짓 가르침과 왜곡된 진리를 퍼뜨림으로써 신앙 공동체를 통제하고 자신의 권세와 영향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는 적그리스도의 행위는 자신을 진짜 신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신격화하여 하나님과 맞먹는 권위를 주장하는 신성모독의 전형입니다.
그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친백성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마음대로 변형시키고 대적하는 거짓 율법을 가르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둡니다.
결국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궁극적인 입법자로 여기며 하나님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불법의 사람’이라 불리며, 교회는 이러한 영적 지배와 통치권 찬탈에 대해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 요약을 보니 내용이 잘 이해됩니다.
텍스트 중심의 성전 해석을 넘어 오늘날 교회가 처한 영적 현실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비일의 예리한 통찰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적그리스도의 지배가 눈에 보이는 건물의 점령이 아니라 교회 내부의 진리를 왜곡하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영적 통치라는 점이 매우 신선하면서도 두렵게 다가옵니다.
역사적 사건이나 미래의 유대 성전으로만 치부하며 방관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점진적인 배교를 경계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교묘하게 변형시켜 스스로 입법자 노릇을 하는 불법의 세력들을 분별해 낼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겉모습만 교회가 아닌 진리 위에 굳건히 서서 늘 깨어 기도하며 영적 경각심을 유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깊이 있는 글입니다.
공감합니다 😁
가짜를, 적그리스도를 알아내는 능력은 성경, 진리를 정확히 알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위폐를 가려내려면 진폐를 정확하게 알면 되듯이요.
교회에서 영양가 없는 부차적인 활동으로 교인들의 시간을 갉아먹을 것이 아니라 진리를 꾸준하게 알아나갈 수 있는 성경과 교리 학습량을 확보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코람데오 공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마지막 때에 영적 성전인 교회를 어지럽히고 진리를 왜곡하려는 불법의 세력들 앞에서도, 우리가 오직 기록된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점진적인 배교와 거짓 가르침을 온전히 분별하게 하옵소서.
겉으로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아니라 늘 깨어 경각심을 가지게 하시고, 세상의 헛된 권위와 법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와 율법만을 두려워하며 따르는 참된 언약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어두워져 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 교회가 진리의 등불을 높이 들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온전히 지켜내게 하시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거룩하고 흠 없는 신부로 날마다 준비되게 하옵소서. 아멘.
아멘!
칼빈은 '하나님의 성전'을 문자적 건물이 아니라 교황 제도가 왕 노릇 하며 찬탈해 버린 '로마 가톨릭교회'로 보았으며, 비록 더럽혀졌을지라도 그 안에 참된 교회의 흔적(잔재)은 남아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적그리스도를 단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령한 통치권과 성도의 영혼을 사로잡고 대적하는 사탄의 거대한 '정치적·종교적 체제(왕국)'로 규정했습니다.
교황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높이며 교회의 예배와 교리를 마음대로 제정하는 오만한 신성모독을 저지름으로써, 성경이 예언한 '성전에 앉아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자'의 모습을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했다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외형적인 로마 교회 체제가 아닌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참된 신자들의 영적 공동체**로 보았으며, 이 성전은 인간의 교리와 전통으로 결코 더럽혀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교황이 하나님의 말씀 대신 인간의 법과 가르침을 제정하여 양심을 구속하는 행위 자체를 **하나님의 통치권을 찬탈하고 성전에 앉아 자기를 높이는 적그리스도의 전형**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적그리스도의 미혹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교회의 모든 전통과 제도를 폐지하고,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순전한 복음의 권위만을 성전 안에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좋은 지식 잘 참고합니다.
벌코프는 적그리스도를 역사의 마지막에 나타날 '특정 개인'으로 보면서도, 그가 출현하기 전까지 역사 속에서 교회를 대적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는 '반기독교적인 체제와 영적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높이는 것을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완전히 찬탈하고 종교적·정치적 권력을 최고조로 행사하는 절대적인 신성모독**으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벌코프는 교회가 종말에 다가올 배교의 징조들을 철저히 분별해야 하며, 적그리스도의 통치는 결국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심판과 입의 기운으로 완전히 멸망당할 미래적 사건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레고리 K. 비일은 데살로니가후서 2:4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앉는 행동’을 실제 의자에 앉는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권위와 지배를 뜻하는 묵시문학적 ‘영적 통치’로 바라봅니다.
여기서 언급된 ‘하나님의 성전’ 역시 이스라엘의 역사적 건물이나 미래에 지어질 제3성전이 아니라, 종말론적 언약 공동체인 ‘교회’를 은유적으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는 마지막 때의 대적자가 외형적인 건물이 아니라 참된 교회 내부로 은밀히 침투하여 성도들을 미혹하고, 점진적인 배교를 일으켜 교회를 영적으로 장악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그가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는 신성모독은 자신을 진짜 신이라 주장하는 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신격화된 권세를 과시하며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방식으로 채워집니다.
결국 적그리스도는 성경의 진리와 율법을 제멋대로 왜곡해 가르치며 자신을 최종적인 입법자의 위치에 두기 때문에 ‘불법의 사람’이며, 교회는 이러한 영적 미혹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공감합니다!
물리적인 성전 건축이나 먼 미래의 사건으로만 치부했던 구절을 '교회 내부의 영적 통치권 찬탈'이라는 은유로 풀어내어 오늘날 우리 공동체를 돌아보게 만드는 예리한 분석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위협이 외부의 박해가 아니라, 교회 한가운데서 진리를 교묘하게 변형시키며 성도들을 사로잡는 점진적인 배교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 깊은 영적 경각심을 줍니다.
말씀을 왜곡하여 스스로 입법자 노릇을 하는 불법의 세력들을 분별해 내기 위해, 오늘날 교회가 가시적인 규모나 외형보다 '순전한 복음의 진리' 위에 먼저 굳건히 서야 함을 깨닫습니다.
아멘!
적그리스도가 먼 미래의 외부적인 인물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 진리를 왜곡하며 우리 신앙을 잠식해 들어올 수 있다는 통찰이 정말 두렵고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네요.
단순히 건물이나 물리적 사건을 넘어, 하나님의 율법을 교묘히 변형해 스스로 통치자의 자리에 앉으려는 그 영적 기만술을 우리가 매일 깨어 분별해야 함을 절감합니다.
묵시문학적 맥락을 통해 적그리스도의 실체를 꿰뚫어 본 이 분석 덕분에,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로서 더욱 말씀 위에 굳건히 서야겠다는 거룩한 경각심을 얻습니다.
아멘 🙏 🙏 🙏
다니엘( 단 ) 7장
25.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5. 그가 가장 높으신 분께 대항하여 말하며, 가장 높으신 분의 성도들을 괴롭히며, 정해진 때와 법을 바꾸려고 할 것이다. 성도들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까지 그의 권세 아래에 놓일 것이다.
25. And he shall speak great words against the most High, and shall wear out the saints of the most High, and think to change times and laws: and they shall be given into his hand until a time and times and the dividing of time.
다니엘( 단 ) 8장
25.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속임수를 행하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로운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
25. 그는 음흉하여서 매사에 속이는 데 능숙하고, 마음이 방자하여서 평화롭게 사는 사람을 많이 죽이며,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손을 대지 않아도, 그는 끝내 망할 것이다.
25. And through his policy also he shall cause craft to prosper in his hand; and he shall magnify himself in his heart, and by peace shall destroy many: he shall also stand up against the Prince of princes; but he shall be broken without hand.
엄중한 말씀 앞에 옷깃을 여밉니다.
가시적인 건물의 붕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교회의 본질과 진리가 내부로부터 교묘하게 왜곡되어 영적 지배권을 내어주는 일임을 깨닫고 깊이 자성하게 됩니다.
참된 신앙 고백에서 점진적으로 떨어져 나가는 배교의 위험 속에서, 내 삶과 공동체가 오직 그리스도의 순전한 법 아래에만 머물고 있는지 끊임없이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아멘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