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각 책의 기별과 신학 공부를 오늘 계속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욥기의 기별과 신학을 공부했는데, 욥기의 주인공은 욥입니다만 오늘은 욥의 아내, 즉 욥의 부인에 대한 연구를 특별히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24번째 강의로서 "욥의 아내는 과연 천하의 악처였는가?"라는 주제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욥의 아내를 천하의 악처로 알고 있습니다. 욥이 고난을 받고 있을 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한 그 한마디 외에는 성경에 다른 기록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예고해 드린 대로 성경 밖의 문헌들을 참고하여 욥의 아내에 대해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묘사된 내용만 보면 욥의 아내는 그야말로 악처처럼 보입니다. 그녀가 한 말 때문에 일반적으로 불명예의 전당이나 치욕의 전당에 올릴 만한 성경의 4대 악녀 중 한 사람으로 생각되곤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악한 여성으로 나타나는 인물이라면 이세벨, 들릴라, 미갈 등이 있는데, 과연 성경에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욥의 아내는 그들 중 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고대의 다른 문헌에 나타난 것처럼, 한때 불평하고 원망하긴 했지만 전체 생애를 합쳐서 보면 가장 오해받고 억울한 여인이며 나중에는 성녀로 추앙받아 마땅한 인물일까요? 욥의 아내를 바라보는 성경 밖 문헌의 시각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성경 자체인 욥기 2장 7절에서 9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바로 이 구절 때문에 욥의 아내는 아주 악처로 낙인찍혔습니다.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겠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여기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할 때, '욕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바레크(Barekh)'입니다. "바레크 엘로힘 웨무트(하나님을 바레크하고 죽으라)"라는 이 세 마디에 그녀의 인격과 성품이 모두 요약된 것으로 사람들은 판단합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 서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바레크(바라크)'라는 말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복을 주다', '축복하다', '송축하다'라는 뜻으로 영어의 블레스(Bless)와 같습니다. 이 단어의 가장 기본적이고 방대한 본래 뜻이 바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둘째, '무릎을 꿇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셋째, 반어법적으로 사용되어 '욕하다', '저주하다(Curse)'의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온몸에 종기가 나 장상한 노인의 모습으로 제 가운데 앉아 긁고 있는 욥과, 그 앞에서 촛불을 들고 당신이 이래도 하나님을 믿겠느냐며 쏘아붙이는 아내의 모습을 그린 성화들이 전해집니다. 화가들의 상상력이 더해진 장면입니다.
이 '바레크'라는 단어는 동사 '바라크'의 피엘(강세형) 명령법 형태입니다. 강하게 명령할 때 쓰는 형태입니다. 이 동사는 구약성경 전체에 자그마치 325회나 사용되었는데, 가장 빈번하고 중요한 의미는 단연 '복을 주다', '축복하다'입니다. 창세기 1장 22절에 하나님이 창조된 생물들에게 복을 주실 때, 창세기 12장 2절에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때 쓰인 단어가 바로 이 '바라크'입니다. 욥기 1장 10절에서도 사탄이 여호와께 말할 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라고 할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라크가 언제나 축복하다는 뜻으로만 쓰이지는 않습니다. 이 단어가 '복을 주다'로 쓰일 때는 대개 주어가 하나님이고 목적어가 사람이나 사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사람이 주어이고 하나님이 목적인 경우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는데, 사람이 하나님을 축복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으므로 이때는 '송축하다'로 번역합니다. 예를 들어 시편의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할 때 쓰인 동사가 바로 바라크입니다. 이런 구절에서 여호와를 축복하라고 번역하면 말이 되지 않기에 송축하다로 번역하는 예가 구약에 약 35회 나옵니다.
만약 욥기 2장 9절을 이 본래의 긍정적인 의미로 번역하면,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송축하고 죽으라"고 말한 것이 됩니다. 굳이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 누린 복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송축하고, 부활의 소망을 안고 이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라"고 권고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단어의 원래 의미상으로는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바라크라는 동사는 문맥 속에서 반어법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평소 "아이고 잘한다"라는 말이 실제로는 비난을 뜻하듯이 말입니다. 욥기 1장 11절에서 사탄이 여호와께 트집을 잡으며 다음과 같이 말할 때 바라크가 반어법으로 쓰였습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리이다"
1장 10절의 "복되게 하사"도 바라크이고, 11절의 "욕하리이다"도 똑같은 바라크입니다. 10절에서는 복을 주다로, 11절에서는 반어법적으로 욕하다로 사용된 것입니다. 일종의 언어유희이자 대조적인 용법입니다.
이 주를 욕하리라는 표현은 2장 5절에서도 사탄에 의해 한 번 더 반복됩니다. 바로 이러한 사탄의 참소 배경이 문맥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모든 성경 번역본은 2장 9절에서 욥의 아내가 한 말인 '바레크 엘로힘'을 반어법적 맥락에 따라 "하나님을 욕하라(저주하라)"고 일관되게 번역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앞에서 이 단어를 욕하다는 뜻으로 썼기 때문에 아내의 말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문맥상 가장 부합합니다. 따라서 이를 송축하고 죽으라고 번역하는 것은 전체 문맥의 흐름에 맞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번역대로 욕하고 죽으라는 표현이 문맥상 부합합니다.
그렇다면 욥의 아내는 정말로 구제 불능의 악녀이자 악처였을까요? 극한의 상황에서 내뱉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신 이 세 단어만으로 그녀의 전 생애와 임품을 통째로 악하게 평가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누군가 화가 나서 욕 한마디를 했다고 해서 그의 인생 전체가 저주로 가득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내뱉던 순간에는 그녀의 마음 상태가 심각하게 무너지고 험악했을지라도, 그녀의 길고 지난한 평생 생애를 통해 나타난 인성과 성품은 어떠했을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 자체는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므로 성경 밖의 고대 문헌들을 탐색해 보는 것입니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라는 유명한 독일 화가가 그린 명화 중에는 욥의 아내가 제 가운데 앉아 있는 남편의 머리에 양동이로 물을 거칠게 쏟아붓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는 욥을 시원하게 목욕시켜 주는 모습이 아니라, 욥을 멸시하고 괴롭히는 심술궂은 악처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연출한 것입니다. 또한 다른 성화들 속에서도 세 친구가 와서 욥을 정죄할 때 아내 역시 뒤에서 남편을 지탄하고 원망하는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곤 합니다.
성경 이외의 문헌 가운데 욥의 아내에 관한 구체적인 행적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문서는 외경인 『디브레이 이요브(욥의 전기)』와 위경인 『욥의 유언(Testament of Job)』입니다. 이 두 문서는 약간의 공통점이 있으나, 전자는 욥의 전 생애를 다루고 후자는 욥이 말년에 자녀들에게 남긴 유언과 결말을 위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 밖 전승들에 의하면 욥에게는 전처와 후처가 있었는데, 전처의 이름은 '우지트(Sitidos)'라고 합니다. 나중에 이 우지트가 죽은 후 얻은 후처의 이름은 야곱의 딸인 '디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아내의 이름인 '우지트'는 그들이 살던 땅인 '우스(Uz)'에 여성형 접미사(it)를 붙여 만든 이름으로, 우스 땅의 여인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70인역의 브록 전승에도 우지트는 아랍 여인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반면 욥의 후처로 전해지는 '디나'는 창세기 30장과 34장에 나오는 야곱의 딸 디나입니다. 유대인들의 성경 해설서인 타르굼(Targum)에도 디나가 욥의 아내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이 전승이 사실이라면 욥은 야곱의 사위이자 에서는 야곱과 쌍둥이 형제이므로, 에서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욥이 야곱의 딸 디나와 결혼해 욥기 42장의 마지막 축복으로 일곱 아들과 세 딸을 다시 낳았다는 구도가 성립됩니다. 물론 이러한 외경과 위경의 기록들을 영감된 성경만큼 100% 신뢰할 수는 없지만, 고대 문헌들 속에서 욥의 아내 우지트라는 여인이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억울하게 오해받고 있는지 변호해 주는 단서가 됩니다.
외경 『욥 전기』에 의하면, 욥의 아내 우지트는 성경에 묘사된 것보다 훨씬 더 주도적이고 헌신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성경 욥기에서 욥이 겪은 극심한 재앙의 무게가 사실은 아내인 그녀에게도 고스란히 닥쳤으며, 욥이 내뱉은 불평의 배경에는 그녀가 겪어야 했던 처절한 호구지책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욥은 성 밖 잿더미에 앉아 자그마치 48년 동안이나 고난의 세월을 보냈고, 그 기나긴 기간 동안 아내 우지트는 가정을 지키고 남편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온갖 궂은 노역과 고생을 도맡아 했습니다. 남편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쫄딱 망해버린 처지에서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 신음하는 남편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 부잣집의 물을 길어다 주는 하녀로 전락해 일했습니다. 동방 최고의 거부의 아내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하녀가 된 것입니다. 양식이 완전히 떨어졌을 때는 시장 바닥으로 나가 떡 장사에게 구걸하기도 했습니다.
『욥 전기』 22~25장에 따르면 사탄은 욥을 핍박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아내 우지트에게도 간교한 괴로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사탄은 그녀가 시장에서 떡을 구걸하는 것을 보고 떡 장사로 위장하여 그녀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네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서 내게 주면 3일 분의 떡을 주겠다"고 제안하며 우지트를 비열하게 농락했습니다. 이때 우지트는 혼잣말로 "내 남편이 장막에서 굶어 죽어가는데 이 머리카락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눈물지으며 자기 머리카락을 아낌없이 잘라 떡과 바꾸었습니다. 사탄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녀의 머리를 거칠게 잘라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 참혹한 모욕과 굶주림은 그녀가 육체적·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비참함과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한 채 남편에게 달려가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차라리 여호와께 대항하고 죽으시오!" 그것이 성경 욥기 2장 9절에 기록된 한 문장의 배경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녀는 차라리 남편이 죽는 것이 이 끝없는 지옥 같은 곤역을 끝내는 길이라 생각할 만큼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한 절만 나오지만, 외경 속 그녀의 서사는 매우 장황하고 눈물겹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당한 끊임없는 고난과 고독은 포로지 유대 백성들에게 깊은 동정과 멸시의 대상이었기에, 『욥 전기』 25장에는 우지트의 가혹한 운명을 슬퍼하는 특별한 '우지트의 애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여인이 한때 동방 최고의 거부였던 욥의 아내 우지트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자 누구인가 한때 그녀는 14개의 고급 커튼이 달린 화려한 가마를 타고 다녔으나 지금은 머리카락을 잘라 떡 한 조각과 바꾸는구나 황금의 선조 세공으로 장식된 세마포 예복을 입고 다니던 그녀가 이제는 능마를 걸치고 구걸하는구나"
이 깊은 슬픔의 애가 속 묘사처럼 우지트는 남편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중노동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욥기 39장 전승에 보면 욥의 친구들이 문상하러 왔을 때 아내가 달려 나와 "우리 열 자녀가 집이 무너져 생매장당해 저 흙더미 속에 묻혀 있으니 제발 내 아이들의 시체라도 파내어 끄집어내 달라"고 눈물로 소리치며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죽은 아이들은 이미 하나님의 천국으로 갔으니 시체를 다시 파낼 필요가 없다"고 만류했고, 이 광경을 본 친구들은 욥이 정신이 나갔거나 귀신이 들렸다고 조롱했습니다. 이 철량한 신세 속에서 우지트는 자신이 일하던 품삯을 받으러 외양간에 갔다가 너무 허기지고 맥이 빠져 그곳에서 쓸쓸히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우지트가 숨을 거두자 평소에 그녀가 도성 안의 가난한 자들과 이웃에게 베풀었던 수많은 선행이 비로소 널리 알려졌고, 동네의 빈민들은 그녀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며 눈물로 애가를 불렀습니다. 이 전승들이 백 퍼센트 영감된 사실은 아닐지라도, 욥의 아내가 남편을 버린 사악한 악처가 아니라 끝까지 가정을 수호하려다 비참하게 숨져간 비운의 여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한편 이슬람교의 고대 전설(꾸란 전승)에서도 욥의 아내 이름은 '라히메(Rahime)' 혹은 '라흐마'로 등장합니다. 그녀 역시 남편의 고난을 묵묵히 함께 나누다 한때 불평했으나, 나중에 철저히 회개하여 성녀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이슬람 지역에서는 그녀를 '성 라히메'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다양한 문헌적 기록들은 그녀가 평생 악인으로 살다 저주받은 여자가 아니라는 확고한 인상을 남겨 줍니다. 온갖 거품을 걷어내고 역사적 본질만 남긴다면, 욥의 아내는 고난 속에서도 남편 곁을 끝까지 지키며 가정을 위해 헌신하다 숨져간 설량한 아내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튀르키예(터키) 동남부의 고대 도시인 샨르우르파(Şanlıurfa)에 가면, 이슬람교도들이 보존해 놓은 '욥의 시련의 돌'과 묘실 유적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기와장으로 몸을 긁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바위 돌이 지하 동굴 속에 보존되어 있고, 그 바로 인근에 욥의 부인인 '성 라히메의 무덤' 성지가 아랍어로 명패가 붙은 채 보존되어 전해집니다. 또한 오만(Oman)의 살랄라라는 도시 외곽에도 또 하나의 욥의 기념 묘지가 전해집니다. 이슬람 열방들이 자신들의 지리적 이권을 위해 이 유적들을 다소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주장하는 면이 있으므로 지리적 비정은 신중해야 하지만, 이 고적들은 욥과 그의 아내가 신화 속 인물이 아닌 실제 인류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임을 방증해 줍니다.
성경 욥기에 기록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단편적인 단 한 문장이었기에, 그것만으로 그녀를 천하의 악처로 몰아붙이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외경과 위경, 랍비들의 문헌 속 프로필은 그녀가 남편이 당한 시련의 무게를 고스란히 함께 나누고 온갖 수모를 감내한 지조 있는 여인이었음을 증언합니다. 화김에 내뱉은 그 한마디 때문에 영원히 악녀로 낙인찍는 고정관념에는 수정이 필요합니다.
욥과 그의 아내는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극도의 시련을 겪은 연약한 인간들이었기에 때로는 회의하고 불평하며 입술의 실수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앙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견뎌낸 그들의 발자취는, 오늘날 까닭 없는 고난 속에 신음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위대한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욥의 아내의 삶을 거울삼아 우리가 삶 속에서 기억해야 할 다섯 가지 영적 교훈을 정리하며 강의를 마칩니다. 다음 시간 시편 공부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핵심 요약정리
단어 '바레크(Barekh)'의 신학적 해석:
욥기 2장 9절의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에서 '욕하고'는 히브리어 '바레크(바라크)'의 강세형 명령법입니다.
본래 이 단어는 '축복하다', '송축하다(Bless)'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나, 욥기 1장 11절과 2장 5절에서 사탄이 반어법(욕하다, 저주하다)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아내의 고백 역시 대다수 번역본에서 문맥에 따라 "욕하고 죽으라"로 일관되게 번역됩니다.
성경 밖 고대 문헌의 증언:
외경 『욥 전기』와 위경 『욥의 유언』 및 타르굼 전승에 따르면 욥의 첫 아내 이름은 '우지트(우수의 여인)'이며, 이슬람 전승에서는 '라히메(자비로운 여인)'로 불립니다.
이 문헌들은 그녀가 남편을 버린 악처가 아니라, 욥이 재더미에서 고난당한 수십 년 동안 남편의 생계와 호구지책을 위해 부잣집 하녀로 일하고 머리카락을 잘라 떡을 바꾸는 등 온갖 수모와 중노동을 견뎌낸 헌신적인 여인이었음을 증언합니다.
역사적 유적과 실존성:
튀르키예의 고도시 샨르우르파에 보존된 '욥의 시련의 바위'와 아랍어로 명시된 '성 라히메(욥의 부인)의 무덤' 및 오만의 기념 묘지 등은, 이들이 상상 속 인물이 아닌 실제 극심한 역경의 세월을 뚫고 살아낸 실존 인물들임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해 줍니다.
욥의 아내를 통해 배우는 5대 영적 교훈:
인간은 누구나 극심한 한계 상황 앞에서 일시적으로 의심하고 불평할 수 있는 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극한의 화김에 내뱉은 단 한마디의 실수 때문에 사람의 전 생애와 인격을 온전히 악인으로 낙인찍고 정죄하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비천한 가난을 뚫고 묵묵히 중노동의 희생을 전수한 아내의 숨겨진 봉사는 하나님 앞에 순고한 가치를 지닙니다.
타인의 아내나 이웃의 고난을 겉으로 드러난 단편적인 소문만으로 함부로 비난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욥과 아내가 겪은 처절한 고통과 연단의 기록은, 하나님의 침묵(설명되지 않는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신뢰의 줄을 놓지 않고 견뎌내는 성도들에게 배나 더한 보상과 상급의 소망을 안겨주는 위대한 귀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