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은 사랑이 아니라, 따스한 정으로 산다.”는
말은 비단 동양적 세계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 치매(Alzheimer's disease)를 소재로 한 영화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는 치매로 고통 받는 어느 노부부의 모습을 통해, 사랑을 완성하는 건 뜨거운 열정이 아니라 헌신과 희생이란 사실을
보여준다.
나름 윤택한 은퇴생활을 즐기던 그랜트와 피오나의
삶에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치매란 놈이 찾아온다. 기억을 잃어가는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채 헤매기도 한다.
자존심 강한 그녀는 하얀 백지가 돼가는 자신의
모습을 남편에게 보이기 싫기에, 그의 반대를 무릅쓰고 요양소에 들어간다. 규칙에 따라 한 달간 요양소를 방문할 수 없었던 그랜트는 학수고대 기다리던 아내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아내가 다른 치매
환자 오브리와 사랑에 빠진다. 하얗게 지워진 남편과의 추억 대신 새로운 남자에 대한 설렘이 온통 그녀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걸 깨닫게 된
그랜트는 절망감에 허덕댄다.
혈기왕성의 젊은이였다면 분명 폭발하거나
무너졌겠지만, 삶의 연륜과 사랑의 연수(年數)로 무장한 남편 그랜트는 질투가 아닌 수용의 태도로 아내를 위해 헌신한다. 심지어 오브리가 재정적
문제로 요양소를 떠남으로 피오나가 절망에 빠졌을 때 그녀의 행복을 위해 연적과의 재결합을 주선한다. 기억이 하얀 아내가 차라리 다른 남자랑
행복한 게 불행과 외로움에 내팽개쳐지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가히 열부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속 좁은 작자는 그랜트가
오브리의 아내 매리언과 하룻밤을 보낸 걸 두고 바람을 피웠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한 아내나 남편과 수십 년을 살았고, 치매를 앓는 그 배우자를
지극 정성으로 돌본 경험이 없다면 부디 돌은 던지지 말길 바란다. 그 외로움을 심장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입을 다물길 바란다.
요즘 많은 부부들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무조건 나쁘다고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부부가 오랜 결혼생활 끝에 함께 삶의 황혼을 맞이하고, 늙고 연약하며 병든 상대를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는 건 참으로 감동적이며 고결한 일이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이런 경우를 점점 찾기 힘들기에 더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의술이 발달했다 해도 특별한 자들만이
100세를 맞는 짧은 인생,
누구나 다 맞이하는 그 종말의 시간에 인간은
무엇으로 위로를 받으며 저 세상으로 떠나가는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추억의 시간들이 아닐까. 특별히 삶의 시간 대부분을 나누며
해로했던 사람과의 추억이 차갑게 다가오는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감쌀 위안의 손길이 아닐까.
영화 어딘가에서 그랜트는 아내 피오나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의 옛 시절에 대해 얘기한다. 그녀는 그랜트가 말하는 십팔 청춘 소녀가 자신임을 알지 못한다.
피오나
“처음 만났을 때 몇
살이었어요?”
(How old were you when you
met?)
그랜트 “그녀는 열여덟이었어요.”
(She was 18.)
피오나 “어머나! 결혼하기엔 너무 어렸던 거
아니에요?”
(Holy! That's pretty young
to get married, eh?)
그랜트 “내가 그러자고 한 거 아니에요.”
(Wasn't my idea.)
피오나 “그럼 그녀가 프러포즈했다고요? 와,
멋지다!”
(You mean she proposed to
you? Well, that's lovely!)
비록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시절이지만, 그
추억을 함께 나눌 상대가
있다면 행복한 삶이다. 그 상대의 머릿속이 하얗게
다 지워졌다 하더라도.
첫댓글 맛베기 잘 봤어요~
다음에는 전부 올려 줄수 있나요? ㅎ
줄거리를 통해서
한편의 영화를 본듯한 느낌입니다
치매아내 남편의
헌신적인사랑과~~인내를 보면서
과연 요런 남편이 몇명이 될찌
생각해보게함니다
음악과영상
감사드려요
편한밤되세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