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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싸이미디어(http://cafe.daum.net/siandpeople)에 올라 있는 조나단(강호덕)의 게시글을 모두 펌했습니다. 카페지기 브리프(서기원 다큐작가)가 올린 로드무비 이외에, 조나단이 올린 게시글이 22편 (문학 12, 의견 6, 편지 2, 공지 2) 있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2009. 6. 1 ~ 2011. 11. 23 입니다.
2009년부터 최근까지 6년 동안 조나단은 네 사람을 짝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늘 마음 속으로 그리워했던 딸이 첫 번째고, 2009~2011년까지는 서기원 작가, 2011~2014년까지는 그 시기에 동거했던 아내 차칸바보, 2012~2014년까지는 저를 짝사랑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4년 말에 잠시 청계님을 짝사랑할 뻔했었지요.
조나단의 글을 펌하면서, 짝사랑에 관한한 조나단이 참 끈질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기원 작가에 대한 조나단의 짝사랑은 2009. 6. 1 부터 2010년 연초까지 7개월간 지속됩니다. 그러다가 1년쯤 쉬었다가, 2011년도에 11개월간 다시 지속됩니다. 이 시기에 조나단이 필요로 했던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조나단은 서기원 작가에게 무엇을 필요로 했나?
서기원 작가와 조나단은 2009년 초에 로드무비 촬영을 했던 것 같고, 2009. 8. 1 에 KBS1 열린채널을 통해 방영되었습니다. 조나단은 이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고, 삶에 대한 자신감이 확장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 추측에 그 약효는 작년 가을까지 약 5년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 조나단은 정신장애인의 당당한 모습을 자신의 삶으로써 입증해 보이고자 했고, 정신장애인들이 결집하기를 희망했습니다. 당사자조직을 결성하려는 시도도 했고, 끝에는 쉼터를 운영하려는 시도도 했습니다.
제 추측에, 조나단은 서기원 작가를 통해서이든, 또는 다른 누구를 통해서이든, 제 2의 로드무비 촬영을 희망했던 것 같습니다. 몇 년전에 한 번 기회가 왔었지요. 방송국에서 PD와 작가가 조나단을 찾아와서 한 두차례 미팅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기획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결렬되었지요. 당시에 그 방송국은 보다 자극적인 내용, 치료를 소홀히 하면 정신장애인은 본인에게도 사회에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요지의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정신장애를 방치하면 큰 일난다는 협박성 발언과 동영상이 지나치게 난무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얼핏 표면적으로는 좋은 의도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고정관념을 심화시키는 방식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또한 그러한 기획의도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이익이 아니라, 서비스제공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기여하는 기획의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나단이 원했던 보다 더 소박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댓글입니다. 3년 간에 걸친 조나단의 구애에 서기원 작가는 무관심으로 일관했습니다. 로드무비의 촬영과 방영은 조나단과 서기원 작가에게는 상당히 다른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조나단에게는 자신의 존재이유와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일이었던 것 같고, 서기원 작가에게는 자신이 구상하는 일련의 작품들 중 한 편의 작품에 불과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조나단은 인간적인 교류를 원했고, 추가적인 촬영기회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기원 작가에게는 조나단은 작업이 끝난,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일만한 가치가 없는 인물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조나단의 끈질긴 게시글에 서기원 작가는 거의 댓글을 달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한 응답이 아마도 "트위터로 연락해라." 였던 것 같은데, 이것은 조나단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감안하지 않은 응답이었습니다. 조나단은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였기에 폴더폰을 사용했습니다. 조나단 만이 아니라 상당수 당사자들이 그러한 실정입니다. 그리고 그 폴더폰 조차도 사용법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기에 버벅거리며 사용하는 실정입니다. 서기원 작가로서는 그러한 실정은 짐작도 못했겠지요.
여기에서 잠깐 생각해봐야 합니다. 서기원 작가는 정신장애인들의 삶을 다루는 다큐를 제작하여, 그것으로써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깨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싸이미디어는 그러한 목적을 지닌 카페이고, 그 카페에는 정신장애인의 삶을 다룬 그의 작품이 다수 올라있습니다. 사회일반인들이 정신장애에 무관심하고,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 또한 원망하고 한탄만 할뿐 상황을 개선해보겠다고 나서서 실제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자면, 서기원 작가는 매우 훌륭하고 고마운 분입니다. 하지만 조나단의 구애에 대한 그의 냉담함을 바탕으로 추측해 볼 때, 그에게 있어서 정신장애인은 살아있는 사람, 함께 교류해야 할 사람, 울고 웃으며 동고동락해야 할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정신장애인이나, 편견해소라는 것은 단지 그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어떤 이미지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조나단이 매일 아침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활동은 인터넷 카페에서 자신의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댓글은 조나단에게는 매우 소중한, 반가운 것이었는데, 아마도 피부에 와닿는 사랑 또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서기원 작가의 무응답, 냉담함을 지적했지만, "댓글을 달아주지 않는 무심함"에서 저도 마음이 아프고 후회되는 점들이 많습니다. 조나단은 파란마음 하얀마음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카페에 총 400편 이상의 문학작품을 올려두었었는데, 늘 제게 "자신의 글을 읽어봤는지? 를 물었고, 자신의 글을 읽어봐달라." 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나단의 글을 읽지 않았습니다. 가끔 조나단이 자신의 글을 출력해와서 제게 읽으라고 주기도 하고, 때로는 제 앞에서 낭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에야 저는 마지못해 읽든지 또는 귓전으로 듣곤 했습니다. 조나단이 자신의 글에 대해 논평해주기를 요청하면, 저는 건성으로 칭찬하고, (불필요한) 조언과 충고를 하곤 했습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저는 마음 속으로 조나단을 무시하고 있었던 거지요. 조나단의 글에 담긴 의미를 포착하지 못한 채, 사소한 표현의 잘못, 맞춤법의 잘못 등을 지적하면서, "너는 아직도 멀었어. 더 노력해야 해."라는 메시지를 주곤 했지요. 달리 표현하자면, 늘 나는 잘난 사람, 너는 못난 사람 역할놀이를 하고 있었지요. 어느날 제 아내가 지적하더군요. "당신은 호덕이만 보면 왜 자꾸 나무라고 그러는데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덜 그러는데, 유독 조나단에게는 많이 나무라기도 하고, 충고도 하고 그랬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후로 그러지 말아야지 했지만, 또 종종 나무라는 실수를 하곤 했습니다.
조나단이 이번에 2차 자살시도를 하기 일주일쯤 전에도 저는 나무랐습니다. 조나단의 1차 자살시도를 비꼬며 비난했지요. "너는 그게 죽을라는 거가? 죽을라면 확실하게 죽는 방법을 택하던지. 요즈음은 약이 좋아서, 약을 암만 많이 먹어도 안 죽는다는 거 몰랐나? 쓸데없이 화상이나 입어서 사서 고생하고 이게 뭐하는 짓이고? 진짜 죽을라면 목을 매던지, 높은 데서 뛰어내리던지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지. 니가 진짜 죽을라 했는 거 맞나? 왜 목숨을 갖고 장난치고 그래?" 그렇게 화를 내며 나무랐지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목을 매 버렸네요.
저는 조나단의 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라의 열쇠"에 올라온 조나단의 글만 읽었습니다. 그건 조나단의 글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카페에 대한 관심이었을 뿐이지요. 하지만 그게 제게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카페를 만든 이후, 카페에 올라오는 조나단의 글들을 읽으면서 조나단의 글에 대한 제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어~~ 곧잘 쓰는데." 이전에도 몇 번씩 대충 봤던 글이지만 다시 정독해 보고는 "아~~ 이 글에 이런 심오한 뜻이 있었나? 대단한데."하고 감탄한 경우도 있지요. 제가 조나단의 글을 달리보게 된데에는 청계님의 해설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청계님께서 몇 마디 말로 핵심을 짚어내신 해설을 읽고나서 조나단의 글을 보면, 그 글이 바로 전과는 전혀 딴 글로 다가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내가 언젠가 형편이 되면, 조나단 글을 추려 뽑아서 책으로 출판해 줘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살아 생전에 읽었으면 좋았을 글을, 살아 생전에 댓글을 달아 줬으면 좋았을 일을, 저는 뒤늦게 이제야 합니다. 저는 오늘에야 싸이미디어 카페에 올려져 있는 조나단의 게시글을 처음으로 읽었고, 그것도 모두 다 정독했습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10시간쯤 걸렸지요. 그것도 사진으로 캡처해서 우리 카페에 올리는 시간을 모두 합해서 10시간이니, 그냥 읽기로만 하자면 2시간 남짓이면 족했을 듯합니다. 허탈한 웃음이 나옵니다. 2시간이면 할 수 있었던 일을, 조나단 본인은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일인데, 내가 아들처럼 생각한다고 말로만 그래놓고, 그 2시간을 본인이 가장 원하는 일에 투자해주지 않았었구나. 지금 제 옆에 조나단이 있어서 이 얘기를 듣는다면, "내가 싸이미디어에 올린 네 글 다 읽어봤어." 이 말을 듣는다면, 조나단은 얼마나 뛸 듯이 기뻐하겠습니까? 조나단이 2차 자살시도를 하기 일주일 전에, 내 속상한 마음에, 본인을 나무라고 비난하던 그 시간에, 제가 이 말을 해줬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조나단은 자신이 짝사랑했던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조나단이 제일 좋아했던 일, 가장 사랑했던 일은 문학입니다. 자신의 아픔을 시와 수필로 표현했고, 자신의 소망을 그 속에 담았습니다. 조나단은 자신의 시와 수필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조나단의 부모도, 형제자매도, 조나단의 글을 읽어주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조나단이 짝사랑했던 서기원 작가도, 그의 아내 차칸바보도, 저도 그의 글을 읽어주지 않았습니다. 조나단이 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닌데... 단지 읽어주기만을... 그리고 댓글 달아주기를... 느낀 점을 말해주기를... 바랐을 뿐인데,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은 누구도 그 글을 읽어주지 않았습니다.
긴 한숨이 나옵니다. 조나단은 평생토록 사랑을 갈망했고, 짝사랑을 했지만, 사랑을 받지 못했네요.
조나단이 필요로 했던 건 댓글이었죠. 그리고 컴퓨터. 하지만 조나단의 컴퓨터는 늘 고물이었습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컴퓨터로, 한 번씩 카페에 접속하려면 장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컴퓨터로, 수시로 고장나서 말썽을 부리는 컴퓨터로 400편 이상의 글을 썼지요. 그리고 5년간 매주 한 번씩 문학강좌를 들으러 다녔지요. 늘 대학교에 진학해서 국어국문학을 배우고 싶어했지요.
제가 조나단의 글을 읽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제가 댓글을 달아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컴퓨터 한 대를 사줬더라면? 스마트폰 한 개를 사줬더라면? 대학등록금을 대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는 잘 나가던 시절에, 말로는 당사자들의 재기를 외치면서, 정작 왜 그런 일들을 해주지 않았던 걸까요? 대학교수직을 그만두고 백수로 지낼 때, 그래서 시간이 펑펑 남아돌 때, 저는 왜 조나단의 글을 읽지 않았을까요? 왜 댓글을 달아주지 않았을까요?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네요. 조나단이 자살로 자신의 외로움을 말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도 조나단이 제게 뭘 원했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겠죠. 이제야 간신히 알아차렸는데, 조나단이 옆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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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솔한 글이네요.
아 호덕이형...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이 까페를 가입하고 처음 접하는 부고라 놀라기도 했는데 부디 좋은 곳에서 원하는 글과 좋은 사람들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글은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저는 조나단과 처음인연이 24년전이네요~ 조나단의 글에 격려와 비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남고 시절에도 함께했고 대학압학 시기에도 함께 였었습니다 ~서기원 작가님과도 동석을 했었답니다
다큐에 나온 조나단이 자랑스러웠고 작가님과의 다음 촬영에는 동행하기로 약속도 했었답니다
조나단의 인품에 박수갈채를....
교수님!! 지나간것은 항상 그립고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법이죠~
두번다시 조나단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모두 노력하고
힘써야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