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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파란색이었다.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사실 파란색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은 온통 파랬으니까. 그래서 억울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색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왜 하필이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여기까지. 그 단단한 음성은 내겐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입술이 달달 떨렸다.
“아버지.”
“........”
“저 버리지 마세요.”
이렇게 버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출발하세요.”
“아버지!”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를 통해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왔다. 이윽고 창문이 올라간다. 아버지가, 아니. 회장님이 내 쪽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아버지!”
시동이 걸렸다. 그제야 다급한 마음이 든 나는 미친 사람처럼 울며 차 문을 두드렸다.
“다시, 다시 해볼게요! 아버지! 저 다시 할게요.”
주변 사람들이 아리송한 얼굴을 하고 나와 검은색 외제차를 바라보았다. 차는 빠르게 골목길을 돌아 도로로 나아갔다. 난 울면서 그 뒤를 쫓았다. 아버지, 아버지! 매정한 차는, 아니 매정한 아버지는 결국 그렇게 나를 버렸다. 온통 나를 파랗게 물들여놓고.
* * *
나는 수영 선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영 선수로 길러졌다. 원래 내가 나고 자란 곳은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마을이었다. 아버지는 선원이었는데 불의의 사고를 당해 바다에서 실종되셨다. 그 때 나는 겨우 두 돌을 지난 어린 나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렇게 된 이후부터 술집에 나갔다. 난 좁디좁은 방 한 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엄마를 기다리다 잠이 들고, 술 냄새에 섞인 진한 향수 냄새를 맡으며 잠에서 깼다.
여덟 살이 된 후부터는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조기교육은커녕 유치원도 가본 적이 없던 난, 우리 반에서 가장 공부를 못했다. 2학년에 올라가기 전에야 겨우 한글과 구구단을 깨우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엄마는 매일 울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현실에 치여서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 당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엄마를 울게 만들었다는 것뿐이다. 검은색 마스카라가 그녀의 눈물을 타고 흐르면, 어린 난 영문도 모르면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가 우니까 나도 슬펐다. 눈물이 나는데 나까지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소리를 죽였다. 그렇게 엄마는 매일 밤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열 살.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었다. 체육시간, 선생님은 특별 야외 프로그램으로 우리를 데리고 동네 수영장으로 향했다. 아이들 모두 예쁜 수영복과 물안경을 챙겨왔지만 나는 그런 게 없었다. 선생님은 낡은 수영복을 대여해 와서 내게 빌려주셨다. 난 한 번도 수영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하늘색의 물은, 나에게 설렘을 넘어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했다. 물에 들어갔다. 까치발을 들어야만 겨우 얼굴을 물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깊이였는데 난 그게 무섭다기보다는 재미있었다.
“지용아, 너 수영 배웠었니?”
“수영이 뭐예요?”
수영을 배우긴 커녕, 그 때 나는 수영장이라는 단어도 처음 접하는 어린아이였다. 우리가 선생님에게 배운 것은 고작해야 음-파 음-파하는 호흡법과 발차기였다. 그러나 난 그런 시시한 동작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내 눈은 오직 성인 풀에서 자유형을 하는 아저씨를 쫓았다. 팔을 이렇게, 다리를 이렇게. 고개를 이렇게.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난 용기를 내서 꽉 쥐고 있던 킥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체육선생님은 물속에서 크롤 스트로크를 구사하는 나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여기 와본 적 있지?”
“아니요.”
“그럼 지금 하는 건 누구한테 배웠어?”
“저 아저씨요. 저렇게, 따라했어요.”
선생님은 무언가를 고민하듯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진지한 어투로 내게 물었다.
“지용아, 너 수영 배워보지 않을래?”
수영 배워보지 않을래? 그 다정한 목소리가 아직도 또렷했다. 그 당시 어렸던 나는 꽤나 우쭐했던 것 같다. 받아쓰기도 제대로 못한다고 혼나기만 했었는데 처음으로 칭찬을 받아서, 친구들의 부러운 눈빛을 받아서. 그게 좋았다. 어린 마음에 하겠다고 했다. 낡은 선풍기만 있는 집은 너무 더웠고, 또 심심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수영부에 들어갔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지만 난 물 속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빨랐다. 한 번 배워준 영법은 잊는 법이 없었다. 물에서 자유자재로 몸을 놀리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천재. 선생님은 분명히, 내게 그렇게 말했다. 너는 천재라고. 미래의 올림픽 금메달감이라고. 그 때 난 올림픽도, 금메달도, 심지어 천재라는 단어도 몰랐지만 선생님을 따라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뜻은 몰랐지만 기분이 좋았다.
“지용아.”
“엄마!”
입학식 때도 오지 않았던 엄마가 교실 앞까지 찾아왔다. 예쁘게 꾸미고서 한껏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 번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지금처럼 이렇게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나를 만나러 왔다. 보통 엄마들처럼 교실 앞문에 서서 수줍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사실만으로도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이 기뻤다. 가방을 챙기고 엄마를 따라 나섰다. 처음 해보는 조퇴였다.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니까 더 좋았다.
“뭐 먹고 싶어?”
“네?”
“먹고 싶은 거. 뭐 있냐구.”
엄마 손은 말랑말랑했다. 손톱에 예쁘게 칠해진 붉은 매니큐어를 바라보다 그냥 학교 앞 분식집을 가리켰다. 엄마가 없으면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거나 햇반에 김을 싸먹거나 하는 게 전부였다. 엄마가 내게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엄마는 내가 허겁지겁 떡볶이를 먹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동안 다른 친구들이 사먹는걸 바라만 봤었는데 직접 먹게 되니 기분이 끝내줬다. 그걸로 그치지 않고 엄마는 문구점을 들러 가질 엄두도 못 냈던 로보트며, 과자며. 이것저것 집었다. 내가 꿈을 꾸는 걸까? 믿기지 않아 손에 들린 로봇 장난감으로 내 볼을 콕 찔러보았다. 아프다, 꿈이 아니네.
엄마가 학교에 오고, 내 이름을 불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손도 잡아줬다. 오늘은 일기장에 그렇게 쓰면 되겠지?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해서 적어야하는 일기가 너무 싫었는데 오늘은 빨리 일기가 쓰고 싶었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화장을 지울 생각도 않고 멍하니 곰팡이가 피어있는 벽만 바라보던 엄마가 천천히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맛있었어?”
“네.”
“........”
“이것도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엄마.”
로봇을 들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학교에서는 인사를 잘해야 착한 어린이라고 배웠다. 나는 엄마에게 착한 아들이 되고 싶었다. 엄마는 한숨을 쉬다가 천천히 다가와 내 뺨을 쓸었다.
“지용아.”
“네?”
“수영, 재밌지?”
“네.”
갑자기 수영은 왜? 그런데 엄마가 내가 수영하는 건 어떻게 알지? 아, 수영부에 들려면 부모님 동의서를 받아야했다. 술에 취한 엄마가 건성으로 휘갈겼던 사인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그 때 봤었구나 하며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엄마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네 부모님 되실 분이 올 거야.”
열 살 밖에 안 된 나는, 엄마의 말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거기 가면, 맛있는 것도 매일 먹고. 갖고 싶은 것도 다 가질 수 있어.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수영, 마음껏 할 수도 있고.”
“엄마.”
“이제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엄마가 어떻게 엄마가 아니야? 파리한 엄마의 얼굴을 보자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어린 마음 안으로 불안함이 스며들었다.
“나 너무 힘들어.”
“........”
“너무 힘들어, 지용아.”
엄마가 또 운다. 꺼이꺼이 울며 가슴을 친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손에 든 로봇을 꽉 쥐었다.
“그래서 너 버리는 거야. 돈에 눈멀어서 어린 자식 파는 거야. 응, 내가 나쁜 년이야. 애미 자격도 없어.”
“엄마!”
“가. 가서 잘 살아. 그게 나 도와주는 거야, 제발.”
“........”
“제발...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무릎까지 꿇으며 애원하는 엄마 앞에서 안 가겠다고 떼를 쓸 수가 없었다. 버릇처럼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는 웅크린 나를 감싸 안고 한참을 울었다. 제발 떠나달라며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나는 베개가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안녕히 계세요.”
까만색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방에 들어왔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근사해 보이는 아저씨는 초라한 우리 집과 어울리지 않았다.
ㅡ안녕 지용아? 이제 내가 네 아빠야.
중후한 목소리에 어깨에 힘이 바짝 실렸다. 아닌데, 우리 아빠는 바다에서 돌아가셨는데. 내뱉지 못한 말이 입에서 맴돌았지만 왠지 지금 꺼내선 안 될 것 같았다.
열 살. 고작 열 살에게 이별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얼마 없는 옷가지와 로봇이 들어있는 가방을 껴안고 엄마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엄마는 아저씨와 내가 알지 못하는 말들을 주고받다 흐리멍덩한 눈동자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분 사이의 대화가 끝나고 내가 아저씨를 따라 반지하 단칸방을 나서던 때, 멀찌감치 떨어져있던 엄마가 달려와 나를 돌려세웠다. 엄마는 작은 내 손에 쭈글쭈글한 지폐 세 장을 쥐어주며 당부했다.
ㅡ다신 오지 마. 거기서 행복하게 살아.
ㅡ.........
ㅡ버림받지 말고. 예쁨만 받으면서 그렇게 살아.
난 영문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를 따라 낯선 차에 올랐다. 쥐가 나오고, 벌레가 기어 다니고, 여름에는 물이 새는. 그렇게 낡고 허름한 집이었지만 막상 그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기만 했다. 집에 간다고 할까? 엄마한테 간다고 할까? 아니. 엄마는 좋아하지 않을 거야. 엄마는 내가 가지 않으면, 불행할거야. 매일 울 거야. 가슴을 치며 울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린아이 특유의 본능은 어린아이답지 않은 체념에게 묻혀버렸다. 난 그렇게 철이 들었나보다.
잠에서 깼을 땐 커다란 집 앞이었다. 정원이 있고 커다란 개가 있는 그런 집. 으리으리한 외관에 난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가 초라한 반지하와 어울리지 않았듯이 나도 이 멋진 집에 어울리지 않았다.
“넌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야 해.”
“........”
“만약 네가 금메달만 따온다면, 나는 너를 내 친자로 입양 할 생각이다.”
아저씨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했다. 친자? 입양? 눈만 깜박거리는 나를 보며 아저씨는 아까처럼 다정하게 웃어보였다.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는 기분은 음, 뭐랄까. 이상했다. 발가락이 간질간질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럴 수 있지?”
“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아저씨는 내 손을 잡고 커다란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아저씨, 아니 회장님과 사모님 사이에는 아들이 있었다. 두 분이 결혼한 지 6년 만에 갖게 된 소중한 아이였다. 그 소중한 아들은 건강을 염려해 시켰던 수영에 흥미를 붙였고, 수영 국가대표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올림픽을 3개월 앞두고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애지중지 기른 자식의 사망. 그 충격으로 사모님은 정신이 나가버렸다. 그리고 회장님은 아들의 소원이자, 자신의 소원이었던 금메달. 올림픽 금메달에 광기어린 집착을 갖기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꿈을 대신 이루어줄 선수를 찾던 회장님의 눈에 띄어 이 집에 오게 되었다.
나이를 먹고, 알아서는 안 될 것들을 알아갈 수록 나 역시 치열해졌다. 여기서 버림받게 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회장님은 나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엄마에게 많은 돈을 주었다. 궁상맞은 생활을 청산 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돈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난 엄마에게 버림받았다. 엄마는 돈과 나 사이에서 돈을 선택했다.
사모님은 평소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씩 약을 까먹고 먹지 않은 날이면, 나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가, 우리 아들. 사랑하는 내 새끼. 사모님은 나를 죽은 자신의 아들로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그녀의 애정공세를 받아내야 했다.
“흐, 흐으, 하...”
“너무 느려. 거기서 느려지면 어떡해? 열 바퀴 더.”
내겐 전담 코치가 붙었다. 그리고 내가 24시간 동안 연습을 할 수 있는 수영장도 갖게 되었다. 나는 침대보다 물속에 더 오래 있었다. 잠에서 깬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수영장에 있었다. 손과 발은 물에 팅팅 불어 쪼글쪼글해졌다. 하루 종일 보는 것은 파란색 타일 바닥과 코치님의 무서운 눈. 기초 영법과 호흡을 다 가르친 코치님은 내가 열두 살이 되던 해부터는 본격적인 선수 훈련 스케줄을 짰다.
내 하루는 새벽 네 시부터 시작했다. 조깅을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수영을 하고. 수영을 하고. 또 수영을 하고. 딱 기절하기 직전까지 수영을 했다. 코를 찌르던 락스 냄새는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열두 살이 감당하기에 힘든 운동량이었다. 아니, 열두 살에게 시켜선 안 되는 운동량이었다.
마라톤 하프 코스를 완주하고 돌아오면 근력 운동을 해야 했다. 복근이 당기다 못해 찢어지는 기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느낌,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흐려지는 시야. 그 모든 괴로움이 하루마다 반복 됐다. 그만하고 싶었다. 물 위에 떠있는 느낌이 끔찍했다. 물 아래로 들어가는 게 무서웠다. 눈앞을 뒤덮은 파란 빛깔이 소름끼쳤다. 하나도 재밌지 않아.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했다. 죽어라 해야 했다. 버림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벌써 내일이구나.”
코치님 말씀처럼 하다 보니 됐다. 대회만 몇 번을 나갔는지 모르겠다. 수영복만 입고 스타팅 블록에 서 있으면 가장 먼저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그 눈을 보고 있으면 물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숨이 턱턱 막혔다. 1등으로 골인을 해야만 아버지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수영 천재, 물속의 황태자, 금빛 사냥꾼. 온갖 낯 뜨거운 수식어들이 내 이름 앞에 붙었다. 열여섯이 되는 해, 나는 당당히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게 되었다.
아버지는 좀처럼 만족하지 못 했다. 트로피와 상장, 메달이 진열장에 꽉 찼지만 그런 건 아버지에게 어떠한 기쁨도 주지 못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유일한 것은 죽은 아들이 그토록 원했던 올림픽 금메달뿐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올림픽.
시차적응을 위해 며칠 일찍 비행기에 올랐다. 훈련을 하는 내내 컨디션이 좋았다. 열여덟 예비 금메달리스트. 아버지는 신문에 커다랗게 난 내 기사를 보며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당당하게 조 1위로 예선통과를 한데다 결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 세간의 이목이 작은 동양인에게로 집중되었다. 나는 눈 뜨기 힘들만큼 찬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있었다.
“제 꿈은,”
제 꿈은. 물 밖보다 물속에 있던 날이 더 많았던, 어린 내 꿈은,
“금메달 입니다.”
난생 처음으로 해본 인터뷰였다. 덜덜 떨며 인터뷰를 마쳤다. 정신없이 시간은 흘렀고,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스타팅 블록에 서있다. 출발 신호가 울렸다. 동시에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다. 나는 주저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파란색의 물. 어린 내게 도피처가, 때로는 감옥이, 때로는 희망이 되어주었던 그 물속으로.
두 팔을 정신없이 휘저었다. 옆을 볼 겨를도 없었다. 빠르게 턴을 했다. 나는 남들보다 숨이 길었다. 때문에 대시도 괜찮았고, 단거리에선 노브리딩으로 막판 스퍼트를 내는 기술도 좋았다. 커다란 외국인들 사이에서 나 혼자 동양인이었다. 작고, 어리고 아직은 보잘 것 없는. 그러나 금메달을 손에 거머쥐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작지 않다. 보잘 것 없지 않다.
골인 지점이 가까워진다. 함성이 더욱 커졌다. 이제 손만 뻗으면, 한번만 더. 조금만 더 닿으면 내가. 번쩍이는 금메달이 눈앞을 스쳤다. 그러나 나는 멈춰 섰다. 내가 멈추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폭발적으로 물속에서 질주했는데 배터리가 다된 로봇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두 팔이, 두 다리가 움직이질 않는다. 쥐가 났나보다. 물 위로 떠올랐다 가라 앉았다를 반복했다. 아버지의 표정이 점차 차가워진다.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서서 경기장을 나갔다.
* * *
“경험이라고 생각해라. 4년 뒤에는,”
아버지의 말소리가 귓가를 웅웅 떠다녔다. 눈앞에서 금메달을 놓쳤다. 나를 향하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정전이 된 것 마냥 한 순간에 꺼졌다. 올림픽, 그 뜨거운 축제는 끝났고 울고 웃던 사람들도 열광으로 가득하던 거리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만 여전히 차갑고 어두운 물속에 갇혀있었다.
“그 땐 꼭 금메달을,”
“아버지.”
내 부름에 아버지가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텅 비어버린 눈빛이 누군가를 닮았다. 왜 그에게서 우리 엄마가 보일까? 엄마. 엄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어렴풋이 고개를 쳐들었다. 제발 가 달라고 애원하던 그 모습.
열여덟, 첫 올림픽 출전은 내게 흑역사만 남겼다. 그리고 돌아온 겨울은 내게 한 살이라는 나이를 더 선물했다. 열아홉. 열아홉 권지용.
“저요.”
“........”
“......못 하겠어요.”
세 달 만에 와보는 수영장. 오랜만에 입는 수영복은 불편하기만 했다. 심호흡을 가다듬었지만 파란색의 물이 발가락 끝에 닿자마자 흠칫 몸을 떨었다. 온 몸이 마비가 온 것처럼 뻣뻣해졌다.
“아버지. 저요, 못 하겠어요. 수영.”
무서워. 무서워요. 손이 덜덜 떨린다. 깊은 물도 아닌데, 수영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겁이 난다. 파란색 물이, 코를 찌르는 락스 냄새가. 처절했던 내 지난 8년이,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가. 버림받지 않으려 이를 악물며 눈물을 삼켰던 순간들을 또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 미치도록 무서웠다.
내 증상은 쉽게 낫지 못했다. 멀쩡하게 걷고 뛰다가도 물 앞에만 서면 몸을 덜덜 떨었다. 차라리 부상을 당한 거라면 재활 훈련을 하고, 더 열심히 연습하면 될 텐데. 참 웃기게도 몸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물을 무서워하는 수영 선수라니. 누가 들으면 배꼽을 잡고 웃을 이야기. 그리고 회장님에게는 심각한 이야기. 나에게는 사형 선고.
쪽팔리게 열아홉에 파양이라니. 아니, 파양도 아니지. 처음부터 입양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냥 죽은 아들의 꿈을 이루어 줄 대리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금메달을 따면 호적에 올라가고, 그러지 못하면 철저하게 버려지는.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이젠 죽고 없는 스물 한 살의 국가대표와 끊임없이 비교를 당했었다. 나는 완벽해야했다. 숨이 막히고, 힘들어도 티를 내선 안 됐다. 버림받으면 정말 갈 곳이 없으니까.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데 끝은 또 이렇게 잔인하다.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친엄마가 살고 있는 집주소가 적힌 쪽지였다. 내가 가여웠는지 비서 아저씨가 몰래 알아봐준 것이었다. 택시는 느리게 출발했고 나는 눈을 감았다. 하필이면 비가 내린다. 참 웃기지. 예전엔 그렇게 좋아했던 물인데, 이젠 고작 바닥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마저 무섭게 느껴지는 걸 보면.
내리 몇 시간을 달린 끝에 택시는 멈춰 섰다. 지갑을 열어 미터기에 적힌 금액만큼 꺼냈다. 그러고도 돈은 많이 남아있었다. 예전에 지냈던 곳에 비해 동네는 평범했다. 여기가 맞나? 주변을 얼쩡거리며 맴돌았다. 그러기를 또 몇 시간. 저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온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엄마......”
날 지나쳐서 빌라 안으로 들어가려던 여자는, 내 부름에 느리게 고개를 돌린다. 거의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자를, 아니 엄마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가끔씩 꿈에 나와 지독하게 나를 울렸던 엄마, 우리 엄마.
“........”
“나야.”
엄마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내 얼굴을 찬찬히 훑는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보통 이런 장면에서 울던데. 현실은 많이 다른가보다. 엄마는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어색하게 다른 쪽 어깨에 걸쳤다.
“네가 여긴 웬일이니?”
핏기 없는 입술을 비집고 나온 첫 물음에 헛웃음이 터졌다. 잘 지냈니, 아프진 않았니. 따뜻한 말은 기대도 안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첫 마디부터 왜 왔냐는 건 너무하잖아.
“저....”
“엄마!”
쫓겨났어요, 수영을 못 해서요. 대답을 해야 할까 말아야할까 고민하는 사이 계단 바로 윗집의 문이 열리며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아이가 달려 나왔다.
“엄마, 내 초콜릿 사 왔어?”
아이는 우리 엄마를 엄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는 저 꼬마를 모른다.
“응, 그럼. 사왔지!”
“이 형아는 누구야?”
“어, 어...그게... 자, 이거 들고 들어가 있어. 엄마 금방 갈게.”
기가 막혔다. 훈련이 끝나고 지독하게 잠이 안 올 때 가끔씩 봤던 드라마에서 나오던 뻔한 클리셰.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꼬마 아이는 나와 엄마를 번갈아보다 그녀의 시장바구니를 낚아채 다시 집으로 달려갔다.
“재혼하셨어요?”
“응.”
“친아들?”
“그래. 그건 그렇고, 네가 여긴 왜.”
엄마의 얼굴에 불안감이 언뜻 스쳤다. 내가 이 행복을 깰까봐 두렵나보다. 나 쫓겨났다고 그러니까 같이 살면 안 되겠냐고 말이라도 꺼내볼까? 손을 모아 싹싹 빌던 9년 전의 엄마가 지금과 오버랩 되었다. 아, 나는 안 되는구나. 그 때도 지금도. 엄마에게 나는 족쇄고, 불행의 씨앗이구나.
“인사하려구요.”
“.......”
“앞으로 못 볼 거예요. 다신 안 올 거거든요.”
“.......”
“그래도 낳아주신 분인데 인사는 드려야하니까.”
엄마의 얼굴에 여러 가지 감정이 스친다. 불안함, 안도감, 미안함, 고마움. 그걸 다 읽어내는 내 자신이 끔찍하게 싫었다.
“부모님은........잘 해주시니?”
“......네.”
“그래, 다행이네.”
영양가 없는 대화들이 오갔다. 남보다도 못한 사이. 왜 그 말이 지금 떠올랐을까? 입술을 꾹 깨물고 안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이거, 받으세요.”
“........”
“대회 상금 모아둔 건데 얼마 안 돼요.”
“네가 이걸 왜.”
“저는 돈 많아요.”
그리고 이젠 필요 없어요. 뒷말을 꾹 삼키며 허름한 빌라 건물을 훑었다. 예전에 살던 반지하보다는 낫지만 이 곳 역시 좋아보이진 않는다. 같은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엄마는, 행복해보였다. 내가 없으니까. 사양하는 손에 두툼한 봉투를 꽉 쥐어주었다. 그녀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갈게요.”
“지용아.”
“.........”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이 이렇게 아픈 말이었나? 사과를 받는 쪽은 난데, 왜 내가 아플까.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서있던 엄마는 잰걸음으로 다가와 주머니를 뒤적인다. 힘없이 펼쳐진 내 손바닥 위로 꼬깃꼬깃한 지폐가 올려졌다.
“밥이라도 사 먹어.”
엄마는 모르겠지. 어린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행복하세요.”
“그래, 너도.”
“엄마.”
“........”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뭔 줄 알아요?”
떡볶이, 엄마가 처음 사줬던 분식집 케찹맛 떡볶이. 아직도 그 맛을 생각하면 헛구역질이 올라와요. 주먹을 꽉 쥐었다. 엄마는 대답이 없다. 대신 느린 한숨과 함께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회장님 말씀 잘 들어.”
“네.”
“........”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진짜 안녕히 계세요.
* * *
또 다시 택시를 잡으려했지만 이 곳엔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발길 닫는 대로 걸었다. 저 멀리서 버스가 보였다. 목적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버스 위로 올랐다. 버스 요금으로 만원을 집어넣었다. 잔돈을 받지 않고 걷자 기사님이 나를 불러 거스름돈을 거슬러주셨다. 어울리지 않는 부유한 생활은 나를 얼간이로 만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걷다, 또 택시를 잡아타고 내린 곳은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다. 태어나서 바다를 실제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방파제를 따라 느리게 걸었다. 짭조름한 냄새가 났다. 같은 파란색인데 수영장과 바다는 너무나도 달랐다. 냄새도, 크기도. 철썩이는 파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기서는 내가 잠겨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지? 이렇게 넓으니까. 또 이렇게 깊으니까.
심호흡을 했다. 방파제 위로 튀어 올라 신발 앞 코를 적시는 파도가 무서웠다. 파랗고, 파란. 끝을 알 수 없는 깊이가 두려웠다. 저 안에 담겨져도 손짓 한 번 하지 못할 나를 알기에, 소리 한번 크게 지르지 못할 바보 같은 내 모습을 알기에 죽을 만큼 겁이 났다. 그렇지만 죽어야했다. 살아있어서 뭐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 흔한 사랑 한 번 받지 못하는데 살아서 뭐해.
내 모든 것은 엄마가 나를 버린 열 살, 그 때에 멈춰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수영 말고는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데 그런데 이제 그 수영마저 할 수가 없다. 나를 가득 채운 파란색이 진저리 날 만큼 싫다.
“흐윽, 으, 흑,”
엄마가 쥐어준 지폐는 손바닥에 고인 땀에 잔뜩 젖어있다. 눈물이 났다. 우는 내 모습이 초라해보여도 상관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구질구질하더니 죽을 때까지 구질구질해. 겁쟁이처럼 죽지도 못하는 내 자신이 밉고, 끔찍했다. 버릇처럼 입술을 앙다물었다. 수영 빼고 할 줄 아는 것들 중 그나마 제일 잘 하는 게 소리 죽여 우는 것인데 오늘은 그것마저 잘 되질 않는다. 파란 바다를 내려다보며 눈물만 뚝뚝 흘렸다.
내 꿈은 금메달리스트 같은 게 아니었다. 내 꿈은 그냥 평범하게 사랑 받으면서 사는 거였다. 가족이 없어도 되니까, 날 사랑해줄 누군가와 그냥 평범하게 행복하게 사는 거. 그게 그렇게 얻기 힘든 건지 몰랐다. 난 고작 열아홉 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들까?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닌데, 죽을힘을 다해서 살았는데 나는 왜. 다른 사람들은 내가 죽도록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너무 쉽게 갖고 있는데 나만 왜. 억울하고 분했다.
눈을 감았다. 무서우면 이렇게 뛰자. 이렇게 눈을 감고, 파란색으로 물든 모든 것들을 검게 지워버리자.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다가갔을 뿐인데 벌써부터 차가운 냉기가 퍼진다.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다리는 눈치 없이 덜덜 떨린다. 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스타팅 블록에 올라가있다고 상상했다. 이제 신호음이 울리면 나는,
“까꿍.”
내가 보내는 출발 신호를 들으려 마음을 다스리던 때였다. 괴상한 소리와 함께 두 눈 위로 따뜻한 손바닥이 닿았다.
“자기야, 여기서 뭐해?”
“........”
“아, 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남자의 목소리다. 안정감 있는 낮은 저음이었다. 이 남자는 나를 자신의 애인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애인 뒷모습도 알아보지 못하는 멍청한 놈. 그 어이없는 실수에 웃음이 터져야 정상인데 미친 듯이 눈물이 흘렀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남자의 손바닥을 적셨다. 당황할 법도 한데 남자는 내 눈에 올려진 손바닥을 거두지 않는다. 뒤에서 내 두 눈을 가린 어정쩡한 자세를 무너트리지 않는다. 꼭 그에게 안겨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여기 깊어요.”
“........”
“빠지면 큰일 나요.”
“끅- 흐, 흐윽,”
달래는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있다. 동정이라도 좋다. 온전히 날 향해 쏠려있는 작은 관심에 무너져 내릴 만큼 난 약해져있었다. 아니, 나는 원래 약했다. 나는 강하지 못하다. 내 눈을 가린 남자는 여전히 손을 치우지 않는다. 고작 손바닥인데, 그 손바닥에 의해 시야가 차단되자 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남자는 괜한 충고나 위로를 들먹이는 대신, 내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내 두 눈을 막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저기요,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죽게 해달라는 거 빼면 뭐든지.”
생전 처음 보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얼굴도 못 본 사이에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실례고 우스운 일이라는 건 알지만 이미 추해진 내게 자존심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어깨가 잘게 떨렸다. 끅끅 울음을 삼키려 애쓰며 힘겹게 입술을 뗐다.
“안아주세요.”
한번만, 안아주세요.
(+)
부유 프리뷰 입니다
부유 표지는 미씽님께서 작업해주셨어요♥ 진짜...너무...너무...넘나...예쁜것 (오열)
특전도 짱 예쁘니까 기대많이해주세요 ㅠㅠ
첫댓글 처음부터 다시 올리시는 건가여?
아니요 이건 낙불 판매용 프리뷰에요^.^
@필굿 아하 그렇구나...마지막에 프리뷰라고 하시길래 ?????무슨 프리뷰???했네요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1.23 14:37
아니요 일단은 최종수정본이에요ㅠㅠ 몇줄 더 추가되겠지만 완전히 새로 나오는 내용은없어요ㅠㅠ 하드북작업끝나고 시간이되면 가벼운 외전 추가할수도있어요^.^내용추가되면 공지로 알려드릴게요
@필굿 넵!! 답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