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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공단 비정규직의 깃발.. 아사히비정규지회
질라라비 154호에 실린 글입니다.
철폐연대, 교육공간와 손소희회원 작성
어느날 구미 국가산업단지 4차단지에 위치한 【일본계 디스플레이 제조업체인 아사히글라스】공장에서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아사히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 170명이 문자한통으로 해고를 당했다는 소식과 노조에 140여명이 가입했다는 소식, 투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겹겹 전해졌다.
그 노조는 금속노조가 아니라고 했다. 무슨 사연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한참 뜨거운 8월의 여름날 소일거리 삼아 농사지어 수확한 옥수수를 들고 투쟁하고 있다는 아사히글라스공장 주소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공장 앞 8차선 도로 양쪽으로 천막농성장과 휴게시설과 식당, 주방시설 등의 농성장 규모는 마치 문자한통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했던 아사히글라스 공장규모에 비례해서 지었다고 할 만큼 엄청 큰 규모의 농성장이었다.
수줍게 찾아간 첫 방문이었는데, 바깥에서 본 규모에 놀라면서도 한바뀌 다 돌아보질 못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아사히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인연을 맺고 투쟁을 지지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아사히비정규지회를 비롯해 12개의 투쟁사업장이 “함께 투쟁해서 함께 승리하자”는 슬러건을 걸고 전국에 흩어져있는 투쟁사업장을 만나기 위해서 3박4일간의 버스를 타고 긴 행군을 했다. 한광호 열사를 모신 서울시청 분향소에서 긴 일정을 마무리했지만 빠른 시일 내에 한광호 열사 투쟁에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다.
3월31일 한광호 열사를 모신 서울시청으로 향한 차안에 아사히비정규지회 지회장의 목소리가 격앙된 듯 하다. 아사히비정규지회에 비상스런 일이 발생했다.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의 하청업체 GTS는 일년 전 폐업한다며 문자한통으로 170명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쫓았었는데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의 심부름이나 해대며 거간꾼 노릇을 하고 있다.
그날도 하청업체 GTS가 나서서 2차 명에퇴직 신청서를 개별조합원 가정에 우편으로 발송했다는 연락이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아사히글라스 원청이 지배 - 개입 -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는 판정이 결정되고 원청의 부당노동행위 사실을 공고하고, 노동자들의 생계지원 대책 마련할 것을 주문받은 날로부터 며칠 후에 벌어진 것이다.
하청업체 GTS는 지난 1차 명예퇴직 신청을 하지 않았던 조합원들에게 기존에 정해진 금액에 돈 300만원을 더 쳐주겠다는 조건을 내밀면서 또 한손에는 ▲해고통지에 불복하는 항의행위 중단 ▲특별위로금 지급 ▲위로금 지급으로 근로계약 기간 중 모든 급여·수당 등 정산 인정 ▲아사히글라스를 포함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모든 청구권 포기 ▲구미고용노동지청에 고소·고발 취하 ▲아사히글라스와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 등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집회, 유인물 배포 불참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확약서를 내밀어 작성케했다.
누가 봐도 아사히글라스를 위한 확약서였다. 아사히글라스의 지시가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누가 봐도 이 투쟁의 끝은 원청인 아사히글라스가 고용을 책임지고 노조를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조합원들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긴병에 효자 없고, 긴 싸움에 장사 없듯, 돈 앞에 쓰러지지 않을거란 기대는 어렵다. 더군다나 주말을 끼고 우편물이 집으로 속속 도착하면 가정에서의 압박과 조합원들이 겪을 심적 갈등과 고뇌를 노조가 다 채워줄 수 있을까?
그런 와중에 아주 심각한 내부문제가 발견되었다.
노조의 주요직책을 맡은 자가 비열한 아사히글라스의 음모에 걸려들어 노조를 배신하고 위험에 빠뜨리게 한 것이다.
그렇게 상당수의 조합원들을 떠나보내면서 아팠지만 “이젠 정말 싸울 사람만 남았다. 앞으로 할 일은 잘 싸우는 것이다” 라며 아사히비정규지회는 최강의 23명의 독수리형제들이 남았다. 그렇게 다시 긴 싸움을 준비해가기로 했다.
2차 명예퇴직 사건은 아팠지만, 그 아팠던 시간을 해결해가는 과정은 그 어디보다 민주적이고 훌륭했었다는 것을 알기에 투쟁결의를 밝힌 스물세명의 노동자들은 자랑스럽다.
온 몸이 갈기갈기 휘갈겨진 몸뚱아리의 상처가 아물 시간도 주지않고 자본은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정권과 결탁해서 노동자들을 괴롭힌다.
지쳐서 쓰러질때까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때까지, 탄압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다.
자본의 구원투수로 구미시가 행정대집행에 나섰다.
이유는 지나다니는 시민들의 보행에 불편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이유를 구미시가 대고 있는 것이다.
외국자본 투자유치 한다는 명분으로 엄청난 특혜를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에게 주었다.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는 구미에서 무상임대와 세금면제 혜택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구미시는 자국의 노동자 그것도 구미시에 거주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내쫓겨났을때부터 지금까지 구미시의 시민이었던 그 노동자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단 한번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구미시가 유령시민의 불편을 이야기 하고 있다니 말이다.
농성장 거점은 구미시청 과 아사히글라스 공장 두 곳이다.
청주시노인병원 노동자들이 청주시청앞에서 천막농성장을 세 번이나 찢겼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때 동원된 공무원이 600명정도라고 했다. 구미시가 청주보다는 좀 많이 나와줘야 아사히비정규지회 체면이 설텐데 하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풀기도 했다.
4월21일 새벽5시경 구미시청 농성장과 아사히글라스 공장앞 천막농성장 행정대집행이 시작되었다.
구미시청 천막농성장은 자가용을 둘러싸고 농성장 실내에는 우리편 사람들이 들어앉아있었는데도 구미시는 장비를 동원해서 차를 빼내고 사람이 있던말든 전혀 개의치않고 다 들어냈다.
내가 공장에 도착했을 때 공장의 입구 8차선도로를 경찰이 막아섰다.
차를 한쪽에 세워두고 걷기로 했다. 사복차림의 여성과 남성들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막아선다. 공무원이냐고 물었다. 맞다고 한다. 공무원이면 신분을 밝히라고 하니, 오히려 나에게 신분을 먼저 밝히면 자신들도 밝히겠다고 한다. 어이상실이다.
공무원이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사고의 위험 때문에 통행을 금지시키겠다는데, 그들이 무슨 근거로 그럴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차량통제를 맡고 있던 경찰들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말든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정말 막무가내식 행정에 치가 떨린다. 그들은 공무원을 사칭한 사기꾼 무리였을거란 인상을 지울수가 없다.
긴 실랑이 끝에 그들도 지쳤는지 길을 열어주었고, 나는 공장을 향해 비를 맞으며 걸었다.
방송차 위에 지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 하는 모습이 보인다.
천막농성장에는 밧줄로 몸을 묶고 버티는 우리측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렉카 기사가 천막농성장을 둘러싸고 있는 차량한대 한 대의 문을 따고, 렉카로 이동시켰다.
아침9시경 구미시 남유진시장이 현장에 나타났다. 3시간이면 다 끝날줄 알았던 행정대집행이 새벽 5시부터 공단의 노동자들이 출근하고 일을 하는 중에도 마무리가 되지 않으니 걱정이 돼서 온 듯 하다. 아니, 아사히글라스가 야단칠려고 호출했을까?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기색이 보일라면 구미경찰 놈은 “저항하면 연행해” 라고 가차없이 소리를 질러댄다.
공무원이 경찰놈에게 “집행하는데 방해가 많이 되는데, 연행 좀 하시면 안될까요?” 라고 했더니 경찰놈이 “방해하는 사람들은 다 연행해”라고 했다.
연행자가 속출하게 되고 차량을 다 빼낸 후 방송차위에서 사람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지회장을 어떤 보호조치도 없이 경찰들이 차량지붕위로 올라가 무작정 끌어내리는 것을 두눈으로 보았다. 지회장이 연행되자마자 철거용역들은 천막농성장을 찢어대기 시작한다.
천막농성장에 사람이 한몸으로 묶여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마구 부서대기 시작하자 천막성장이 무너지고 사람이 깔리기 시작하고 그때서야 응급후송차량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가슴속에는 분노가 용광로 불구덩처럼 활활 타오르는데, 눈물인지 빗물인지 내 몸에는 물줄기만 뿜어져나온다.
비는 한없이 내리기 시작한 날에 아사히글라스 공장의 규모에 비례해서 지었던 천막농성장의 휴게시설과 주방과 식당 시설들은 무참하게 다 찢겨져 나갔다.
연행자는 지회장을 비롯해 4명이었고, 병원으로 후송된 사람도 4명이나 되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농성장이 철거된 공장 앞 8차선 도로는 쓰레기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연행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경찰서로 이동했다.
경찰서 민원실을 통으로 우리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어 휴식 겸 면회를 기다리게 되었다. 아사히비정규지회 노동자들과 민주노총구미지부 노동자들 그리고 구미KEC지회 노동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구미KEC지회 노동자들의 연대에는 감동이 묻어났다.
그/ 녀들은 아사히비정규지회에 사람이 줄어든 마당에 행정대집행일 전날부터 현장의 교대근무하는 조합원들을 구미시청과 공장앞으로 나눠서 함께 지켜주었고, 농성장에서 철야농성 후 아침에 출근해야 할 사람들은 출근하고, 야간근무를 마친 사람들은 바톤을 이어받아 공장앞 천막농성장 사수투쟁을 함께 했다.
야간근무하고 아침부터 비를 홀딱 맞으며 싸우는 와중에 대의원이 연행되기도 했다.
노조의 집행간부 몇몇이 자리를 지켜주는 수준,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연대투쟁이 아니었다. 잠 한숨 못 잔 그 / 녀 들이 경찰서까지 면회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연대라는 것이 얼마나 관성적이고 허공의 메아리같은, 실체가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구미시청 공무원들, 경찰들, 철거 용역직원들을 상대하며 울부짖었던 피로감이 밀려들고, 경찰서의 따뜻한 온기에 눈은 스르르 감기기 시작했지만 구미KEC지회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구미KEC지회의 연대가 역동적일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그 / 녀 들의 역사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사히비정규지회 지회장이 수감되자 구미KEC지회 간부들은 살뜰히 아사히비정규지회 노동자들을 챙기고, 당장 천막농성장이 철거되었으니 임시거처를 구미KEC지회 공장밖에 마련된 노조사무실을 사용하라고 흔쾌히 내주었다.
구미시는 직장에서 쫓겨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집이나 다름없는 천막농성장을 맨몸뚱아리로 내쫓았지만, 노동자 형제들은 그들의 고통에 눈감지 않았고 고개 돌리지 않았다.
그들의 아픔을 온몸으로 함께 아파해주는 이들이 바로 구미KEC지회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 마음으로 연대해왔기에 지금까지도 아사히비정규지회 노동자들이 투쟁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였을거다. 물론 그들이 투쟁하는 이유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수많은 이유중의 또 하나가 말이다.
경찰서에 수감된 사람들 면회는 금방 되지 않을거 같았다.
몇명만 대기하고 나머지 인원은 집으로 돌아가 씻고 저녁에 모이자고 했다.
집이 구미가 아닌 나로서는 계속 있기도 어려워 다음날 면회를 기약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추위에 몸을 떨어선지 감기기운으로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차헌호”라는 이름이 뜬다.
이거 뭐지? 보이싱 피싱인가? 아니면 누가 장난치는걸까?
손이 덜덜 떨렸다.
전화를 받아 조심스럽게 “여보세요?”하고 물었다.
“오늘 고생많으셨습니다” 라는 목소리가 보이싱 피싱은 아닌거 같다.
아니 우찌 이런일이?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보편적으로 48시간 꽉꽉 채워서 내보낸다고 생각하고 , 안에서 푹 쉬다오시라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벌써 나오다니 말이다.
아무튼 쉴 기회를 놓친 걸 보면 참 복도 없는 사람, 일복만 많은 사람이겠다 싶지만, 어쨌든 빨리 나와서 반갑고 다행스럽다. 사실 연행될 이유도 없는 것이긴 한데 말이다.
조합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을텐데, 연행된 사람들이 빨리 나와서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사히비정규지회는 늘 그래왔듯이 공장앞에서 아침출근투쟁을 하였다.
천막농성장이 없어진 그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아침식사는 김밥을 둘러앉아 먹었다.
한참 쉼을 즐기고, 구미시청을 향했다.
구미시청의 폭력적인 강제철거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천막농성장이 세워졌다.
우리들의 댓글은 투쟁! 투쟁! 투쟁! 이다.
독수리 23형제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다.
첫댓글 LG하청에서도 한번에 300명 을 해고했다죠
대부분 용역이라 부르는 여성!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쓰다 버려지는 여성!
비정규직 천만이 넘는 시대에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면 희망이 없겠죠
소희샘!
잘 읽었습니다
진정한 최고의 열매시군요! 만남이 기대되고요제가 배울 게 더 많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