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에 의하면, 자연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선입관과 편견을 배제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베이컨은 배제해야 하는 선입관을 '우상'이라고 부르며
주요한 것으로는 다음의 것을 들고 있다.
'종족의 우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본성에 뿌리를 둔 가장 끈질긴 잘못이다.
인간의 마음은 울퉁불퉁한 거울과 같은 것이어서
사물의 본질을 왜곡하고 변색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온도의 물을 때로는 미지근하게 때로는 차갑게
느끼는 감각의 착오를 들수 있다.
'동굴의 우상'이라고 불리는 것은 우리들 개인적 버릇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우리들은 자칫 자신만의 버릇이나 취향의 틀을
만들어 엉뚱한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마치 동굴 속에 틀어박혀 외부 세계를
전혀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의 편견과 비교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시장의 우상'은 타인과의 교제나 교섭으로 형성되는 우상이다.
사람들은 각기 서로 교섭하는 데 말을 사용하지만,
그 말이라는 것은 사물의 표준적 유형을 나타내는 기호이지
결코 개개의 사물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말을 사물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편견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 편견 때문에 우리들은 현실에서 벗어난 말뿐인
공허한 논쟁과 공상에 딸려 들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이라는 것은 권위나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철학사상 권위 있는 학설이라고 하여 무비판적으로 무조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공상적인 창작 세계의 재현인
무대극을 보고서 현실적인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베이컨
그렇다면 완전히 '존재'를 망각한 현대에서
철학은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하이데거에 의하면, 철학의 과제는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에서 전혀 사유되지 않은 '존재'에 주목하고,
이것을 사색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첫째로 전통적
형이상학에서 '존재망각'의 운명을 자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를 통하여 '존재의 밝음'의 한가운데에 몸을 두고,
'존재'로부터의 재촉에 따라서 '존재의 소리 없는 소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그에 답하는 것이다.
이때 철학적 사색은 이미 철학이 아니라, '존재'를 생각하는
소박하고 단순한 '시작적(詩作的) 사색'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작적 사색에 의하여 사색되는 '존재'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존재'란 만물을 지탱하는 어머니인 고향으로서 '원자연'이다.
그것은 모든 '존재자'를 지탱하는 '근거'이다.
-하이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