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긴 글>
李尙迪과 歲寒圖
李尙迪與歲寒圖
李尙迪字惠吉 號藕船 家世司譯院 公亦以譯官出入中國 前後至十二次 能於詩文翰墨 彼土之名士如吳嵩梁 劉喜海 何紹基 葉潤臣等 皆折節與交 由是 名振海內 甞慕金秋史之學 傾心致款 每入燕 必求新刊異書 致之海上謫所 秋史 感其義 畵歲寒圖 附以跋文以示意焉 蓋以藕船之愛己不變 如松柏之經霜雪而不凋也 藕船又持此入燕 得中土人士十六之讚辭與題詩 由是歲寒圖之名 遂爲天下所激賞
李尙迪은 字는 惠吉, 호는 藕船이다. 집안이 대대로 司譯院에 벼슬하였는데 公도 譯官으로 中國에 드나든 것이 전후하여 12차나 된다. 詩文을 잘하고 글씨를 잘 써서 저곳의 명사들로 吳崇梁, 劉喜海, 何紹基, 葉潤臣 같은 사람들이 예의를 갖추어 交遊하였다. 그리하여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다.
일찍 金秋史의 학문을 사모하여 마음을 기울여 정성을 다하였다. 北京에 들어갈 적마다 반드시 새로 간행된 진귀한 서적들을 구하여 이를 바다 위에 귀양살이하는 곳[濟州]까지 보내었다.
秋史는 그의 정의에 감격하여 '歲寒圖'를 그리고 그의 대한 발문을 써 붙여 자기의 뜻을 표하였다. 이것은 藕船이 자기[秋史]를 사랑하는 마음이 소나무와 잣나무가 추위를 겪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藕船은 또 이것을 가지고 北京에 들어가서 中國의 인사 16명의 찬사와 시를 받아왔다. 이로 인하여 '歲寒圖'의 이름은 마침내 천하 사람들의 격찬을 얻게 되었다.
- 恩誦堂集
李尙迪 ; 1804∼1865.
출신은 譯官이나 시문과 글씨를 잘하고 中國에 다니면서 그곳에 많은 명사와 교유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지식을 수입하여 문화교류에 크게 이바지한 학자다. 憲宗이 그의 시를 외면서 칭찬하므로 자기의 시문집을 '恩誦堂集'이라 하여 간행하였다.
벼슬은 知中樞府事에 이르렀는데, 哲宗 때의 이 知中樞를 永久職으로 한다는 특명이 내렸다. 30여 년간에 걸쳐 12차 中國 나들이가 있었고 그곳에서 사귄 名士의 수가 100명에 달하였다.
歲寒圖 ; 金正喜가 李尙迪에게 그려준 그림인데, 쓸쓸하고 초라한 집 한 채와 소나무 두어 그루가 서 있는 풍경을 그린 것이다. 이는 '論語'에 孔子가 "추위가 닥친 뒤에라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는 말에서 그림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곧 평소에 자기를 좋아하던 사람도 자기가 나라에 죄를 받고 오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에 모두 멀어지기 쉬운데 藕船은 끝까지 그 정리를 변하지 않는 것을 칭찬하고 고맙게 여겨서 그려 보낸 것이다.
- 출처 : 한문강좌 / 임창순 편저
歲寒圖題贊 - 2
5. 조진조(趙振祚 *12)
昔靈均作橘頌 亂曰 行比伯夷 制以爲象兮 屈子之意 豈與夫子歎松柏異哉 美橘者 以其受命不遷 美松柏者 則曰 如松柏之有心 於虖 是皆可感也已 爰倣九章橘頌爲松柏頌 以廣玩堂之志 兼正藕船 其辭曰
옛날 영균(靈均, 屈原의 자(字))이 '귤송(橘頌)'을 지었는데 그 난(亂 *13)에서, '품행이 백이(伯夷)에 견줄 만해, 이 글을 지어 본보기로 삼노라.' 했으니 굴자(屈子, 屈原)의 뜻이 孔子가 송백을 찬미한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귤을 찬미한 것은 천명을 받아 버리지 않기 때문인데, 송백을 찬미할 때는 '송백에 마음이 있는 것처럼'이라고 했으니 이것은 모두 감동할 만한 것이다. 그래서 구장(九章 *14)의 '橘頌'을 본뜬 '송백송(松柏頌)'을 지어 玩堂의 뜻을 넓게 펼치고, 아울러 藕船의 질정을 바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后皇降種 ; 하늘과 땅이 종을 내릴 때,
因才篤兮 ; 타고난 바탕을 북돋아주었네.
巖阿岑崟 ; 우뚝 선 바위 사이,
在所託兮 ; 자리를 잡고 있네.
霜葉零瘁 ; 서리 내려 잎 시들어도,
夸條沃兮 ; 시원스레 가지 뻗었네.
賢貞不改 ; 바꾸지 않은 올곧은 절개,
德如玉兮 ; 덕성이 옥을 닮았네.
受命大造 ; 대자연에서 받은 운명은,
惟其無曲兮 ; 굽힘 없는 그것이네.
春風初來 ; 봄바람이 막 불어올 땐,
若相競兮 ; 다투는 듯 보이지만,
夫於抗衡 ; 대항할 상황에선,
靜以正兮 ; 조용하고 반듯하네.
蟉蟠鐵屈 ; 굽은 쇠처럼 서려있을 땐,
時爲枋兮 ; 방(枋) 나무가 되기도 하네.
空山峨峨 ; 공산에 우뚝 솟으면,
眇不可徑兮 ; 까마득해 다가설 수가 없네.
偃格夭矯 ; 어여쁘게 누워있으면,
芳難贈兮 ; 향기로움 내어주기 어렵고.
翠蓋層結 ; 푸른 잎 일산 겹겹이 쌓이면,
理疏順兮 ; 그 무늬 성글고 곱네.
文禽不巢 ; 꿩이 둥지 틀지 않는 것은,
憎其爲峻兮 ; 드높을 걸 싫어해서네.
文章不露 ; 자태를 드러내지 않음은,
知所重兮 ; 소중한 것을 알아서네.
楨幹千秊 ; 둥치가 천년이 되면,
終得所用兮 ; 결국 쓰임새를 얻게 되네.
至人無悶 ; 번민 없는 지인(至人)인 양,
高山仰兮 ; 높은 산처럼 우러러보네.
穆羽淸濁 ; 청음과 탁음이 조화를 이뤄,
和鳳皇兮 ; 봉황과 잘 어울렸네.
彈琴其下 ; 그 아래서 거문고 타며,
樂先王兮 ; 선왕(先王)의 도를 즐기네.
明告君子 ; 군자들께 분명히 고하노니,
度無以尙兮 ; 이보다 더할 것이 없을 것이네.
種棘得棘刺 ; 가시나무 심어 가시 얻고,
種桃獲桃實 ; 복숭아나무 심어 복숭아 얻네.
西風一飄蕩 ; 가을바람 한번 스치면,
美惡同衰褐 ; 아랑곳없이 모두 시드네.
森森百木長 ; 모든 나무의 우두머리로,
秉性自矜別 ; 자긍심 갖고 태어났네.
名材足大廈 ; 좋은 재목은 큰 집 짓기에 충분하고,
嘉蔭到遐室 ; 아름다운 그늘은 먼 방까지 닿아있네.
恒人競華秀 ; 여느 사람들은 화려함을 다투나,
君子崇本質 ; 군자는 본질을 중시하네.
樹無百年計 ; 나무는 백년의 계획이 없는데,
豪擧誠何益 ; 대단하게 치켜세운들 무슨 보탬이 있으랴.
所以魏公子 ; 그래서 위공자(魏公子 *15)가,
獨擅龍門筆 ; 용문(龍門 *16)의 붓을 독점했네.
卽用玩堂繪意 贈藕船正之 南蘭陵 趙振祚
玩堂 그림의 이미지를 묘사해서 藕船에게 주며 질정을 바란다. 남난릉(南蘭陵) 조진조(趙振祚).
印文 '趙振祚印'
*12) 조진조(趙振祚) ; 자는 백후(伯厚)이며 강소성 무진(武進) 출신이다. 관리로서 바른 의견을 많이 건의했다. 시와 고문사(古文詞)에 능하고 한학(漢學, 漢代學)에 조예가 깊었으며 저서에 '명당고(明堂考)' 등이 있다.
*13) 악곡의 마지막 장, 또는 사부(辭賦) 등에서 전편의 요지를 총괄하는 마지막 부분이다. '난왈(亂曰)'로 시작한다.
*14) 초사(楚辭)의 대칭이다. 전체가 9장인데 따른 별칭이다.
*15) 위공자(魏公子) ; 위(魏)나라 소왕(昭王)의 아들인 신릉군(信陵君). 삼천 명의 식객을 거느리며 많은 이력을 남겼다. '史記'에 그의 열전인 信陵君傳이 전한다.
*16) 용문(龍門)은 지금의 섬서성 한성(韓城) 서남쪽에 있는 지명. '史記'의 저자 司馬遷이 이곳에 태어난 까닭에 司馬遷에 대한 이명으로도 쓰인다.
6. 반준기(潘遵祁 *17)
淵明賦松徑 ; 연명(淵明, 陶淵明)은 소나무 길을 노래하고,
坡仙詠柏堂 ; 파선(坡仙, 蘇東坡)은 백당(柏堂)을 읊었네 *18).
凡卉自榮落 ; 여느 꽃들은 피고 시들 뿐이지만,
晩節堅益彰 ; 한 겨울 절개는 굳건함 더욱 빛나네.
新圖寓規箴 ; 새 그림에 잠언을 담았으니,
久要在不忘 ; 오랜 약속은 잊지 않음에 있네.
經師釣鰲手 ; 경전분야의 조오수(釣鰲手 *19)여서,
瑯環祝瓣香 ; 낭환(瑯環 *20)에서 판향(瓣香 *21)으로 축원하네.
放筆爲直幹 ; 붓을 들어 곧게 뻗은 몸통 그렸으니,
結交多老蒼 ; 사귀는 벗에 노련한 이들이 많네.
乞補一卷石 ; 돌멩이 하나 *22) 보완해 넣었으니,
袖中東海藏 ; 소매에 넣어가 해동(海東, 朝鮮)에 보관하구려.
藕船尊兄大雅正題 潘遵祁
藕船 존형 大雅의 질정을 바라며 다마산인(茶磨山人 반준기(潘遵祁)
印文 '登山觀梅'
*17) 반준기(潘遵祁, 1808∼1892) ; 청대(淸代)의 서화가로 자는 각부(覺夫)⋅순지(順之), 호는 서포(西圃)⋅간연퇴사(簡緣退士)⋅포충거사(抱沖居士). 실명은 향설초당(香雪草堂)⋅사매합( 四梅合)⋅물자기실(勿自欺室)이며 강소성 소주(蘇州) 출신이다. 진사에 급제한 뒤 잠시 관직에 나갔다가 이내 귀향해 평생 은거의 삶을 살았다. 화훼화에 뛰어났다. 저서에 서포집(西圃集)이 있다.
*18) 백당(柏堂)은 지금의 절강성 항주(杭州)에 있는 서령인사(西泠印社)의 주요 건축 물 중 하나인데, '함순임안지(咸淳臨安志)'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기술돼있다. 진문제(陳文帝)가 천가(天嘉) 2년(561)에 광화사(廣化寺)를 건립했는데 절에 두 그루의 측백이 심어져 있었으나 한 그루는 이미 고목이 되었다. 栢堂은 宋나라 때 스님 지전(志詮)이 지은 집이다. 宋나라 蘇東坡가 지은 고산이영(孤山二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측백이 두 그루였는데 한 그루는 사람들이 채취해갔다. 산 아래 사는 노인이 어렸을 때부터 고목인 상태였다고 하는데, 견고한 것이 금석과 같아서 마르지 않은 것보다 견고했다. 승려 志詮이 그 옆에 집을 짓고 당명을 柏堂이라 했다.[陳文帝天嘉二年建廣化寺 寺有當時所植二柏 其一已枯 宋釋志詮所作之堂 宋蘇東坡作孤山二詠序云 柏二株 其一爲人所薪 山下老人自爲兒時見其枯矣 然堅悍如金石 愈於未枯者 僧志詮作堂於其側 名曰柏堂
*19) 조오객(釣鼇客)이라고도 하며 오(鼇)는 전설속의 큰거북이다. 호방하고 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람을 비유한다. 典源 '열자(列子)' 권5 탕문(湯問)에 관련 고사가 나온다.
*20) 낭환(琅環) 또는 낭환(琅环)'이라고 하는데 전설 속의 선경이다. 옥황상제의 장서처(藏書處)라는 전설에 따라 서고에 대한 미칭으로도 쓰인다.
*21) 일판향(一瓣香), 일주향(一炷香, 炷는 양사)과 같은 말로 향을 사르며 자신의 정성을 표하는 것이다. 스승 등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활용된다.
*22) 원문의 '一卷石'은 '작은 돌멩이 하나'라는 뜻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자신의 글에 대한 겸사로 쓰였다.
7. 반희보(潘希甫 *23)
尺幅雲林筆 ; 운림(雲林 *24)의 필의(筆意)로 그린 한 폭의 그림,
來從萬里船 ; 만 리 밖 배를 타고 왔네.
冬心高士傳 ; 한겨울 절의는 고사(高士)가 전하고,
神物太平年 ; 신령한 사물은 태평세월 알리네.
岩壑材難棄 ; 산골에서도 재목은 버리기 어려운 터,
氷霜節愈堅 ; 찬서리에 버틴 지조가 더욱 올곧네.
賞音寄絃外 ; 음을 아는 이에게 현 밖 마음 전하노니,
珍重海山顚 ; 바다 건네 먼 곳에서 평안하구려.
奉題歲寒圖 卽請藕船尊兄詞壇正定
'歲寒圖'에 시를 써서 藕船 존형께 질정을 청한다.
印文 '補之'
*23) 반희보(潘希甫) ; 자는 보생(保生), 호는 보지(補之)이며 반준기(潘遵祁)의 아우이다. 청대(淸代)의 대표적인 장서가이다. 저서에 '화은암유고(花隱盦遺稿)'가 있다.
*24) 원대(元代) 말기의 대표적인 화가 예찬(倪瓚)의 호이다.
8. 김준학(金準學)
追題家藏歲寒圖詩 ; 집안에 소장한 '歲寒圖'에 추후 시를 쓰다.
捲地風來海日冥 ; 대지를 휘감아 부는 바람에 태양조차 어둑한데,
猶留松柏眼中靑 ; 송백은 변함없이 눈앞에 푸르네.
百年經術稱奇士 ; 백년에 날 경학은 뛰어난 학자라 일컫고,
一代詩名見客星 ; 한 시대 시의 명성은 혜성과 같았네.
可耐殷民懷故國 ; 은(殷)의 유민 고국 생각은 감내할 수 있어도 *25),
更難王相宴新亭 ; 명사들의 신정(新亭) 모임은 다시 보기 어렵네 *26).
至今枯槁君休咲 ; 지금 마른 모습을 비웃지 말고,
佇看龍鱗動渤溟 ; 용린(龍鱗 *27)이 渤海(朝鮮)를 진동시킬 일을 지켜보게나.
後學金準學謹艸
후학 김준학 삼가 쓰다.
印文 '北學於中國', '金準學印', '孔優'
*25) 주(周)나라에 망한 은(殷)나라 유민이 고국을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周나라를 피해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를 캐며 지냈다는 백이숙제(伯夷叔齊) 고사가 이를 대표한다.
*26) 동진(東晉)의 명사들이 신정(新亭, 강소성 강녕현(江寧縣))에 모여 국운의 쇠퇴를 안타까워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진서(晉書)' 왕도전(王導傳).
*27) 소나무의 이칭으로 울퉁불퉁한 소나무의 껍질이 용의 비늘과 같다는 데에서 온 것이다. 여기서는 '歲寒圖'에 보이는 두 그루의 송백을 지칭한 것으로, 앞으로 이 그림이 크게 명성을 떨치게 될 것이라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9. 반증위(潘曾瑋 *28)
金君海外英 ; 김공(金公, 秋史)은 해외의 영재로,
夙昔聞盛名 ; 일찍이 훌륭한 명성 들어왔네.
盛名毁所歸 ; 훌륭한 명성에 훼손이 뒤따라,
輒爲世網嬰 ; 속세의 그물에 걸리고 말았네.
滔滔視流俗 ; 도도한 세태 속에서,
誰知士之淸 ; 누가 선비의 맑은 정신을 알아보랴.
慨念風塵中 ; 풍진 세상 개탄하지만,
早識賢友生 ; 일찍이 어진 벗 하나를 알았네.
高誼篤始終 ; 고매한 우의는 시종 돈독하여,
歲寒無渝盟 ; 찬 겨울에서 변함이 없네.
如彼松與柏 ; 저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本性同堅貞 ; 본성이 올곧았네.
貌此後凋質 ; 한 겨울 푸른 이 나무를 그림은,
用以答厚情 ; 후한 정에 보답하려 함이네.
藕船先生屬 潘曾瑋稿
藕船 선생의 부탁을 받아 반증위(潘曾瑋) 쓰다.
印文 '季玉父'
*28) 반증위(潘曾瑋, 1818∼1886) ; 자는 보신(寶臣)⋅옥감(玉淦)⋅계옥(季玉)이며 강소성 소주(蘇州) 출신이다. 반세은(潘世恩)의 넷째 아들이고 반증기(潘曾沂)⋅반증영(潘曾瑩) 반증수(潘曾綏)의 아우이다. 일생을 독서와 시문 저작에 치중해, '정학편(正學編)'⋅'자경재문초(自鏡齋文鈔)'⋅'영화사(詠花詞)'⋅'양한초당도기(養閑草堂圖記)' 등을 남겼다.
10. 풍계분(馮桂芬)
華飾結衆悅 ; 화려한 꾸밈은 뭇사람의 환심 사지만,
古皃非世諧 ; 고졸한 모습은 세상과 어울리는 것 아니네.
巖阿耿微尙 ; 살골에서 지조가 빛나면,
逎爲群忌階 ; 사람들의 시기가 뒤따르네.
金君振奇士 ; 김공(金公, 秋史)은 비범한 인물로,
嶽嶽靑雲崖 ;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절벽이네.
端友高亮特 ; 단정함 친숙함 고상함 명량함 등이 특출해,
一氣沆瀣皆 하나의 기질 *29)로 잘 엮여있네.
勁骨夙所植 ; 굳센 기골은 일찍이 갖췄으니,
努力培根荄 ; 부디 뿌리를 북돋기 바라네.
舒蘤際易(陽)春 ; 화창한 봄날 꽃이 필 때,
豈不凡卉偕 ; 어찌 뭇 꽃들과 함께하지 않으랴만,
風箱一以厲 ; 바람과 서리가 세차게 몰아칠 때,
蒼翠逾等儕 ; 푸르름이 더욱 두드러지네.
後凋宣聖訓 ; '시들지 않음'으로 성인의 가르침 펼쳤으니
未嗟時世乖 ; 세상의 그릇됨 한탄하지 말지어다.
固窮道彌堅 ; 곤궁할수록 도가 더욱 굳건한 법,
勖矣君子懷 ; 부디 군자의 가슴 펼치시구려.
藕船先生是正 馮桂芬稿
藕船 선생의 시정을 바라며, 馮桂芬 쓰다.
印文 '馮桂芬印'
*29) 원문 '沆瀣'는 당(唐)나라 때의 최해(崔瀣)와 최항(崔沆)의 병칭이다. 崔瀣가 과거에 응시할 때 시험관인 崔沆이 그를 선발한 것을 두고 사람들이 "좌주와 문생이 하나로 뭉쳤다.[座主門生沆瀣一氣]라고 한 데에서 온 것이다. 송(宋) 전역(錢易)의 '남부신서(南部新書)'.
11. 왕조(汪藻 *30)
四節遞推敚 ; 사계절 번갈아 바뀌어갈 때,
世人競春容 ; 사람들은 봄을 앞 다퉈 탐내네.
春容有憔悴 ; 봄 얼굴은 초췌하고 마는데,
歲寒誰與同 ; 찬 겨울을 누가 함께할까?
翳彼松柏姿 ; 푸르른 저 송백의 자태여,
鬱鬱凌嚴冬 ; 찬 겨울 앞에 우뚝하구나.
胡爲標貞柯 ; 어찌하여 힘찬 가지 쭉 뻗어,
偏在霜雪中 ; 홀로 눈서리 속에 서있는가.
匪伊異平時 ; 너는 평소와 다름이 없는데,
俗眼多塵蒙 ; 세속의 눈이 먼지에 가렸을 뿐이네.
因思吉士心 ; 문득 떠오르는 건 현인의 마음,
守道無窮通 ; 곤궁과 현달에 상관없이 도를 지키네.
根枑不彫落 ; 뿌리가 튼튼해 시들지 않거니와,
繁華非所崇 ; 번화함은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네.
棟梁待晩成 ; 동량은 늦게서야 완성되는 법,
相期保初終 ;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지키게나.
藕船先生疋政 汪藻初稿
藕船 선생의 수정을 바라며, 왕조(汪藻) 쓰다.
印文 '小珊翰墨'
*30) 왕조(汪藻, 1814∼1861) ; 자는 한휘(翰輝), 호는 감재(鑒齋)⋅소산(小珊). 실명(室名)은 정이헌(靜怡軒)⋅수접헌(繡蝶軒)이고 절강성 항주(杭州) 출신이며, 반증위(潘曾瑋) 표형(表兄)이다. 도광(道光) 21년(1841)에 진사가 된 뒤 공부후보낭중(工部侯補郎中) 등을 역임했다. 저서에 '정이헌시초(靜怡軒詩鈔)'와 '수접암사초(繡蝶軒詞鈔)'가 있다.
12. 조무견(曹楙堅 *31)
早聞秋史名 ; 秋史라는 이름 일찍 들었으나,
惜哉未一面 ;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네.
疇人術旣殫 ; 주인(疇人 *32)의 학술을 이미 마치고,
[著有算學啓蒙] ; [저서에 算學啓蒙이 있다] *33)
經史尤貫丳 ; 경학과 역사에 더욱 정통했네.
譬我賈董流 ; 中國의 가의(賈誼)나 동중서(董仲舒) 같은 인물로,
洵彼邦之彦 ; 그 나라에서 뛰어난 학자이네.
世事習模棱 ; 세상은 모호한데 익숙하지만,
先民有狂狷 ; 뜻이 크고 흔들리지 않는 선민(先民)이 있네.
詰曲傷迷陽 ; 굴곡진 길에 상처를 입었으나,
身窮道不變 ; 곤궁해도 도(道)는 변함이 없네.
日下使車來 ; 北京에 사신이 찾아와,
[謂藕船] ; [藕船을 말함.]
文酒設歡讌 ; 글과 술로 흥겨운 잔치 벌렸네.
示我歲寒圖 ; 내게 보여준 歲寒圖는,
寒林莽一片 ; 겨울 숲의 모습이었네.
豈無桃李姿 ; 복사꽃 오얏꽃이 어찌 없으랴만,
三春露華衒 ; 봄날 화려함 뽐내네.
靑蒼抱冬心 ; 푸르름이 한 겨울을 품고,
挺然傲霜霰 ; 찬 서리 속에 꼿꼿이 섰네.
烏虖人間世 ; 아 인간세상,
百年迅飛電 ; 백년이 번개처럼 지나가네.
所期在千秋 ; 기약한 일은 원대한 천추이니,
勿與榮悴戰 ; 속세의 번영 따위와 다투지 말지어다.
相逢不可知 ; 만날 날 알 수 없으니,
請以此詩先 ; 우선 이 시를 전하노라.
道光乙巳孟春卄有二日 題秋史歲寒圖 卽奉藕船先生是正 吳縣曹楙堅艮甫氏
道光 을사년(1845) 1월 22일 秋史의 歲寒圖에 제(題)를 써서 藕船선생께 드리며 시정을 바란다. 오현(吳縣) 조무견(曹楙堅) 간보씨(艮甫氏).
印文 '堅印', '壬辰第四', '舊史氏'
*31) 조무견(曹楙堅) ; 청대(淸代)의 사인(詞人)이자 시인으로, 자는 수번(樹蕃), 호는 간보(艮甫)이고 강소성 오현(吳縣) 출신이다. 도광(道光) 12년(1832)에 진사(進士)가 된 뒤 형부주사(刑部主事)와 호북안찰사(湖北按察使) 등을 역임했다. 저서에 '담운각시집(曇雲閣詩集)'⋅'담운각사초(曇雲閣詞鈔)'⋅'음포집(音匏集)'이 있다.
*32) 일반적으로 천문과 역산(曆算)을 전공한 자를 가리키는데, 선대의 업을 계승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33) 산학계몽(算學啓蒙)은 수학서로 원대(元代)의 수학자 주세걸(朱世傑)의 저서이다. 中國에선 실전되고 朝鮮에 전래됐는데, 秋史 金正喜가 이 책을 완원에게 전했고, 나사림(羅士琳) 등이 완원의 서문을 받아 양주(揚州)에서 발간했다. 본문에서 '저서에 算學啓蒙이 있다.'는 표현은 秋史가 해당 책을 전달만 한 것인데, 그것을 저술로 잘못 이해한 데서 온 것으로 보인다.
13. 진경용(陳慶庸 *34)
大樹百根 ; 수많은 뿌리의 큰 나무,
常茂不落 ; 언제나 잎이 지지 않네.
芳聲後時 ; 후대에 남은 고운 명성,
因摧受福 ; 시련으로 인해 복을 받은 것이네.
數被嚴霜 ; 된서리 자주 맞아도,
不改柯葉 ; 가지와 잎이 변함이 없네.
和氣所居 ; 온화한 기운이 서려서,
無所不得 ;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네.
集易林八句 卽奉藕船大雅是正 陳慶庸稿
초씨역림(焦氏易林 *35)의 8구를 모아 藕船 大雅께 질정을 바란다. 진경용(陳慶庸) 쓰다.
印文 '笙叔'
*34) 진경용(陳慶庸, 1795∼1858) ; 자는 건상(乾翔)⋅생숙(笙叔), 호는 송남(頌南)이며 복건성 천주(泉州) 출신이다. 청말(淸末)의 저명한 정치개혁가로, 英國에 저항할 것과 군사력으로 국권을 신장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주기(朱琦)⋅소정괴(蘇廷魁)와 함께 '세상의 3대 강직한 어사(御使)'라는 평을 들었다. 한학(漢學)과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은 학자이기도 하다. 저서에 '주경당집(籒經堂集)'⋅'삼가시고(三家詩考)'⋅'설문사(說文辭)'⋅'고주고(古籒考)' 등이 있다.
*35) 초씨역림(焦氏易林) ; 한(漢)나라 초공(焦贛)의 역(易)에 관한 저서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