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녘
임 길 택
저녁을 먹고
불 없이 마루 끝에 나앉았는데
저기 저쪽 묵은 논자락가에
누군가가 와 서 있었습니다.
소리 질러 봐도 대답이 없어
고무신 신고 마중 나가니
층층이 꽃 피운 구릿대 한 그루
밤이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늘 향한 꽃송이들 어루만져 주고
고개 숙여 꽃내도 한 번 맡아 보고
잘 자라 이르며 어둠길 돌아나오는데
걸음마다 풀들이 채여댔습니다.
여러 집안으로 나뉜 식물 집단 가운데 구분하기 쉽지 않은 분류군이 산형과 식물이다. 다 자라면 어느 정도는 알아볼 수 있지만 갓 돋은 어린잎만 보고는 헷갈릴 때가 많다. ‘구릿대’는 산형과 식물 중 키가 큰 편인 풀이다. 줄기를 곧게 뻗는 데다 어긋나게 갈라진 가지와 깃 모양 잎을 풍성하게 매달고 있는 외관이 성인 남성의 체형 정도까지 자란다. 어둠 속에서는 ‘저기 저쪽 묵은 논자락가에/누군가가 와 서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우산살마다 작은 꽃송이를 매단,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우산을 펼친 듯한 꽃차례에 달리는 흰 꽃 곁에 다가서면 짙은 향기로 이내 혼곤해지는 느낌을 안겨주는 풀이다.
<구릿대>
구릿대는 전국에서 흔하게 보는 산형과의 두해살이풀이다. 1~2m 정도까지 자라며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잔털이 있다. 줄기는 적자색을 띠며 흰 가루가 덮이고 속이 비었다. 뿌리잎이나 하부의 잎은 잎자루가 길고 3개씩 2~3회 깃모양으로 갈라진다. 끝 부분 작은잎은 다시 3개로 갈라지며 가장자리에 예리한 톱니가 있다. 6~8월 줄기와 가지 끝에 큼지막한 겹우산모양꽃차례가 달리며 20~40개의 소산경마다 자잘한 흰 꽃이 다닥다닥 핀다. 작은 꽃부리는 5갈래로 갈라진다. 일부 한의서에는 구릿대가 미백 등 피부미용에 효능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구릿대 추출물을 첨가한 화장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방에서는 가을에 캐서 말린 뿌리를 ‘백지’라 부르며 약용한다.
임길택 시인
1952년 전남 무안 출생. 목포교대, 방송통신대 영어과 졸업. 강원도 산마을과 탄광마을에서 15년여 동안 교사생활. 1990년 경남 거창에서 교사생활. 1997년 12월 11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남.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탄광마을 아이들』 『할아버지 요강』 동화집 『산골마을 아이들』 『느릅골 아이들』 『탄광마을에 뜨는 달』 수필집 『하늘 숨을 쉬는 아이들』 등 (임길택 시인의 유고 시집 『똥 누고 가는 새(실천문학사, 1998년)』에 수록된 약력임)
첫댓글 도랑주변에 많이 널려있는 식물이지요?
작년에 제즤도 거문오름에 갔었는데 거기는 사람 키만큼 자란 구릿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더군요.
구린내가 나서 구릿대라고 하나요?
네. 이름 유래가 그리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