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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받은 은총 중 가장 큰 은총은 가톨릭교리신학원 졸업으로 자부 합니다.
가톨릭교리신학원 다니며 제출한 묵상의 글 중 일부인데 쑥스럽지만 용기를 갖고 글 전체가 저에게 주신 사랑과 은총의 코팅 총론이 될것으로 생각 하여 감히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
제목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자신이 애착 하고 있는 마지막 한 조각을 포기 할 때 기적의 꽃이 피워 진다는 진리처럼 모든 것으로 부터 버려졌던 제가 기적같이 하느님을 만나게 된 은총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부모님께서 불교를 믿으시는 생활 영향으로 결혼 전까지 사찰에 가는 것이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며 별 부담 없이 다녔던 사람으로 저의 친, 인척 들 중 몇 명의 개신교신자가 있을 뿐 현재까지도 저희 가족들 외에 천주교 신자가 전혀 없는 집안입니다. 그러던 중 저의 삶에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저의 짝궁 스텔라를 필연 같은 만남을 통해 교제를 하던 중 그녀가 다니는 성당을 같이 가자는 제의가 있어 잠시 들리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가 무릎을 꿇고 성호경을 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는지 그녀에게 더 가까이 가게 되었고 많은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와 신혼 생활 중 휴일이 되어 일찍 부모님 댁에 가면서 저와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주일 미사 다녀와서 가면 안 되냐” 저는 “미사가 뭐 그리 중요 하다고 어머니께 싫은 소리를 듣게 하느냐” 하며 옥신각신 하게 되어 저는 상당 기간 동안 천주교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갖던 중 1986년 12월 초경 그녀가 다니는 성당 증축 봉헌 행사에 우연히 참석 하게 되었는데 그 성당의 주임 신부님과 인사를 나누며 신부님 말씀을 들어보니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혼배성사 하는 것이 도리로 생각 하여 정말로 어색한 혼배 성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전의 저로 돌아가 성당이 무엇인지 혼배성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저의 가치 기준으로 세속생활에 탐닉 하며 저 자신의 육체적, 물질적 만족만 채우며 걱정도 안하고 그녀의 속이 썩는지도 모르고 태평세월속의 왕처럼 살았습니다. 그러한 사상누각 같은 왕좌가 무너지기 시작 한 것은 아버지께서 어느 날 저에게 인생 당부를 겸한 여러 말씀중 하나로 ‘형규야! 큰며느리를 15년 가까이 보니 참으로 괜찮은 며느리인데 종교 문제로 가족들 간에 반목이 있었는데 내가 죽거든 집안의 화목을 위해서라도 종교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하거라’ 이런 말씀을 하시고 3개월 후 돌아 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7년 정도 되었을 때 업무 차 소백산 정상 비로봉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며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하늘을 보며 이 생각 저 생각 하던 중인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돌아 가시기전 하신 말씀이 갑자기 생각날 뿐만 아니라 막내딸 히야친타가 수일 전 첫영성체 했다는 그녀의 전화가 생각 하는 순간 저의 몸 전체가 약간 흔들리는 현상과 잠시 멍해지는 느낌이 들어 “내가 요즘 무리를 하여 몸이 허약 해졌나”하는 생각이 들어 빨리 하산 후 평소보다 일찍 숙소에서 잠을 청 하는데 산에서 느꼈던 비슷한 현상이 다시 나타난 이틀 후 신기 하게도 누구의 권유도 없이 제 발로 걸어가 단양 성당 문을 두드리고 예비자 교리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육 받던 중 전보 발령으로 남은 교육을 남해 성당에 가서 받게 되었는데 어느 날 남해 성당 주임신부님이 “서울에 있는 신학교 입학 동기 신부님 두 분이 오셨는데 안내 부탁 합니다” 해서 저는 서울에서 내려오신 신부님들을 제 사무실로 모시고 인사를 나누던 중, 서울 신부님이 “집이 서울 이라는데 가족들 다니는 성당이 어딥니까?” “네 압구정1동성당입니다” “제가 압구정1동 주임 신부인데요”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진주라 한양에서 천리 길이라 하는데 천리가 넘는 남해에서 가족들이 다니는 성당 주임 신부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서울 신부님이 저에게 “자매님 이름은요, 000스텔라인데요, 모르겠는데요, 큰딸은 000도르테아인데요, 모르겠는데요, 둘째딸은 000율리안나인데요, 모르겠는데요, 막내딸은 000히야친타인데요” 대답이 끝나자 서울신부님이 저를 잠시 바라보더니 “혹 자매님이 논현동 두산빌딩에서?” “예 맞는데요” 이 말을 들은 서울신부님이 남해신부님에게 “얼마 전 첫 영성체한 000히야친타에게 첫 소원 무엇이냐 물었더니 뭐라고 한지 아십니까? 아빠가 엄마와 저하고 손잡고 같이 성당 가는 것이 첫 번째 소원이라 했는데 그 문제의 아빠를 여기서 만난 것입니다.” 저는 순간 굳어 저 버렸으나 제방에서 모시고 있던 세분 신부님들은 잠시 후 빙긋이 웃으시며 남해신부님은 저에게 “박형규씨 방이지만 잠시 나가 있어 달라” 하셔서 나가 있으니 잠시 후 저를 부르시더니 서울 신부님께서 “신부 셋이 결정했습니다. 외짝교우가 너무 오래 가면 안 됩니다. 주모경을 매일 암송 하고 주모경 100번 필사해서 제출 후 곧 있을 성모대축일인 8월15일 영세 받고 서울에 있는 가족들에게 더 이상 고통의 시간을 보내지 않게 하세요” 저는 영세 후 6개월은 훈련소신병처럼 원칙적으로 노력 하였으나 슬슬 저의 악습과 세속의 본능이 나오기 시작 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사 불참 하다 점점 안 나기 시작 되더니 결국 한달 에 한번 겨우 나가는 무늬만 천주인이 되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가 갑작스런 불명 병에 걸려 장기 요양이 필요 하여 어린 자녀들을 서울에 두고 남해에 내려와서 제가 돌보게 되었는데 차도가 전혀 없게 되자 그녀가 남해성당 신부님을 모시고 병자성사를 하게 해 달라 하였는데 저는 그때까지 그녀가 병자성사를 요청 하는 사유도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신부님께서 저에게 “자매님을 데리고 본당 제대 앞에서 경건한 마음을 갖고 낫게 해달라는 청원기도를 올리며 절제, 희생, 봉사 등을 중심으로 약속을 드리면 받아 주실 것입니다.” 저는 신부님 말씀처럼 그 다음날 그녀를 제대 앞 첫 번째 의자에 뉘어 놓고 이렇게 기도 했습니다.
“하느님 제처를 살려 주시면 세속 탐닉을 버리고 미사 참여 철저히 할 것이고 레지오 활동에 참여 하고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 하겠습니다”
청원기도와 그녀가 살려고 하는 의지를 하느님께서 들어 주셨는지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회복 되어 5개월 만에 서울로 올라갔고 저도 얼마 후 서울 근무 발령 받아 가족들과 같이 생활 하며 주일 미사 참석뿐만 아니라 저의 영세를 이끌어 주셨던 압구정1동 신부님의 뜻을 받들어 적극적인 신앙생활과 레지오를 통한 봉사를 열심히 하는 1막 2장 같은 사랑과 은총을 주셨는데 또 다시 저의 의지 부족으로 세속 생활에 빠져 들더니 첫 번째 가벼운 냉담 보다 더 깊은 유혹의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 물적, 육적의 욕망의 포로가 되어 급기야 제 입으로 담기 힘든 일까지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그녀의 하루도 빠지지 않는 새벽미사 와 기도 생활이 철저해지며 강해졌던 것은 제가 버림받기 일보 직전임을 알게 된 그녀가 알고 저를 도와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해에 평생 일터로 생각 했던 직장에서 도태 되고 3개월 후 어머니도 갑작스럽게 돌아 가셨습니다. “나보다 더 엉망으로 사는 인간들도 잘 살고 있는데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느냐?” 하는 원망과 한이 맺혔던 얼굴의 모습으로 살고 있으니 제 주변 가까이 있던 많은 지인과 사랑과 복 등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 줄도 모르고 더 악다구리를 부렸습니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제 처와 딸들은 제가 비신자 때보다도 더 지독스러운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저를 포기 하지 않으셨는지 저에게 1막 3장 같은 사랑을 주신 것 같습니다. 영육이 피폐 해지고 눈동자가 늘 충혈 되어있던 저에게 그녀와 주변 친구, 지인들이 저를 돌보기 시작 하고 저의 본당에 영성이 깊은 형제들이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저의 과거 허물을 덮어 주며 도와주기 시작 하는 것을 느꼈고 특히 2008년 견진성사 시 저에게 훌륭한 대부님을 보내 주셨으며 동시에 가톨릭교리신학원 입학의 영광을 주셨고 너무도 좋은 학우님들과 인연을 맺어 주시고 있기에 저는 초심을 잃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 식사 전, 후기도와 십자 성호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천주교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식사 전, 후 기도가 늘 생활화 되 있어야 한다고 예비자 교리교육 시 수없이 들었는데 이를 지키고 생활 하는 교우들이 생각 외로 적다는 통계를 주일 강론 시간에 몇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처음에는 무척 안 되었습니다. 식사 전 기도를 못할 때와 식사 후 기도가 안 되는 사유를 상당 기간이 흐른 뒤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 또는 교우들과 같이 식사를 같이 할 때는 누군가에 의해 자연적으로 되는 데 직장 또는 사회생활 하며 이방인들 앞에서는 “혼자 하기 불편해서, 높은 사람이 있어서, 어려운 자리가 되어, 쑥스러워서...”등 이런 저런 사유가 되다 보니 자신감을 잃게 되고 몸에 배지 못해 못하게 되는 게 현실이었던 같습니다. 식사 전, 후 기도문 내용의 참 뜻을 알게 되면 당당히 할 수 있다 자부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식사 전, 후 기도를 하며 자부심을 느낀 경험이 있었는데 이 경험을 겪고 이 후 전교의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약 2년 전 학교 동기들 모임이 있을시 평소처럼 식사 전 기도를 하고 있으니 주변에 있던 친구들 몇몇이 “ 야! 형규 천주교야? 어! 변해도 너무 변하는 것 아냐? 짜가 아니야?...” 그 순간 잠시나마 당황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 이 자리에서 내가 변해졌고, 또한 변하고자 노력 하는 모습 등을 당당히 말 하고 이것을 통해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면 이것이 나의 사업 발전을 위해 경제적 은총을 받아 나 자신과 가족들의 영광 보다는 이 모든 것이 주님 영광 드러낼 수 있는 좌석이 될 수 있다’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 좌석에서 저는 상당히 흥분 되고 긴장 된 상태로 지난 시간을 설명 하였고 현재 열심히 하고 있는 신앙생활 그리고 성경 필사 완료 후 축복장 받은 사실 그리고 카톨릭교리신학원 다니는 사실 등을 당당히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 좌석에서 만난 친구들의 입 소문으로 상당히 많은 친구들이 변했고, 변해져 가는 것에 대해 축하 말과 전화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러나 우리 천주교는 돌아온 탕자, 길거리의 창녀, 세리 자케오등의 변화와 회개를 통해 구원을 받는 믿음의 신앙입니다. 주님은 사랑이며 은총이기에 이방인들 앞에서의 나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복음을 전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 자신은 엄하게 다스리고 타인(이방인)들에겐 관대 한 마음과 자세로 생활 하여야 할 것이며 이방인들로부터 어떠한 수모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분노 하지 않을 수 있는 내공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
“간과 쓸개를 내 놓을 수 있는 정도로 낮출 수 있는 사람이 성공 한다.” 우리말의 깊은 뜻 을 보면 주님이 보여 주신 사랑, 봉사 희생 등 모든 것이 담긴 뜻과 같다 생각합니다.
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 글을 인용 해 보겠습니다. “부르심과 응답의 역학 관계로 만남과 변화라는 새로운 삶의 방향이 설정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온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라는 말처럼 복음을 전하려면 前 나의 모습과 언행을 버리고 주님을 닮아 주님처럼 하여야 하고 주님처럼 보여야 하며 주님처럼 웃어야 합니다. 제가 좋아 하는 성경 말씀을 몇 구절 옮겨 보며 묵상하겠습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23:46), 아버지, 저들을 용서 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로마14:8),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 해주면 그가 용서 받을 것이고, 그대로 놔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20:23)”
첫댓글 산에오르면 형제님!
약속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청원기도에서 자매님의 건강회복을 위해 하느님과 약속하여 청이 이루어 지셨는데,
하느님이 주신 은총과 약속을 뒤로하고 욕망의 포로가 되셨습니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능가하는 무슨 유혹이 있으셨나요?
보통 남성들의 권위와 욕망의 일종이라 쉽게 생각 하세요. 총론을 말씀 드렸으니 각론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올리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하느님과의 리얼리티 드라마! 각론이 무척 기다려 집니다.
아릿한 마음의 저편에 편안한 기다림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장편의 "고백록"을 읽은 것 같습니다.
동병상련의 밑바닥에 소스라쳐 놀랬습니다. 그래도 이세상은"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마테오-19:19)
는 사람들이 있어서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파이팅!!!
영조대왕 형님의 말씀 깊이 새겨 참된 그리스도 삶이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언제 한번 대포 한잔 모셔야 하는데요?
항시 남는 것이 시간이라서..........
바오로의 의지에 감명 그 자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