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르타는 신약성경의 루카복음 10장 38-42절과 요한복음 11~12장에서 등장합니다. 두 곳의 내용을 종합하면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성녀 마리아의 언니이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성 라자로의 누이로 예루살렘 인근 베타니아에 살면서 주로 집안일을 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들 3남매는 주님의 친구이자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로, 예수님께서도 종종 그들 집에 머무르셨습니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께서 방문하셨을 때의 일을 전하며 성녀 마르타를 활동적인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던 성녀 마르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루카 10,40) 하고 말했을 때, 주님께서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1-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성녀 마르타는 보통 활동적이고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의 상징으로, 성녀 마리아는 기도하며 관상 생활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범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요한 복음 11장을 보면 성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을 때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가시지 않고 며칠 뒤에 베타니아로 가셨는데,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갔고, 성녀 마리아는 그냥 집에 있었습니다.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1-22)라고 원망과 함께 신앙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예수님과의 대화에서도 그녀는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라며 완전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가까이에서 주님을 섬기는 봉사를 통해 차츰 완전한 신앙 고백으로 나아간 참된 제자의 모범이었습니다. 성녀 마르타는 ‘여주인’, ‘부인’이라는 뜻의 아람어(당시 유대인들이 쓰던 언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환대’의 대표적 인물이며 요리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라자로를 소생시키기 전에 마르타 앞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라고 선포하신 다음,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라는 말씀으로 죽었던 라자로를 되살려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나 수석사제들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라자로까지 죽이기로 결의를 하게 됩니다.(요한 12,10). 이후 라자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에서 열린 예수님을 위한 잔치에 참석해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았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외에 신약성경 안에서 죽음에서 소생한 그의 행적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프랑스 교회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 승천하신 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 라자로와 동료들과 함께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이스라엘을 떠나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프로방스 지방에 도착해 그 지방에 복음서를 전달했다고 하는데, 중세의 전설에 의하면 성녀 마르타는 한 마을에서 그곳 사람들을 괴롭히던 ‘타라스크’라는 괴물을 십자가를 들고 성수를 뿌려 얌전하게 길들였다고 합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마을 이름도 ‘타라스콩’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런 프랑스 전승에는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 이후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주님께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카 7,36-50)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았던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2일 목록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주셨고 부활의 첫 목격 증인이 된 인물로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했고, 7월 29일 목록에서 성녀 마르타에 대해서는 구세주를 환대한 집주인으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 라자로와 남매 사이로 프랑스 남동부 타라스콩에서 선종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에서는 관련 목록에서 프랑스 전승과 관련된 언급을 삭제하고,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뿐만 아니라 죽었다가 주님에 의해 소생한 성 라자로와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던 성녀 마리아를 함께 기념하도록 함으로써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던 전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을 7월 29일로 정하고, 기존의 로마 보편 전례력 7월 29일에 기념하던 ‘성녀 마르타 기념일’을 대체하기로 한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2021년 1월 26일)을 승인 확정했습니다. 그동안 서방 교회 전통에서 성녀 마리아의 신원이 분명하지 않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 기념일만 수록했었습니다. 성 라자로는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는 빠졌지만, 옛 “로마 순교록”의 12월 17일 목록에서 주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이자 주교로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소개하며 기념해 왔었습니다.
이번 교령은 최신 “로마 순교록”의 연구 결과와 일부 지역 전례력에서 이미 3남매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해 온 사실 등을 근거로 7월 29일을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함께 기념하는 날로 변경 · 확정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 예수님은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고, 이런 까닭에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한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라고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