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의 옛 역길 탐방- 마산 석전동 근주역
왜구 침략을 막아라 ‘합포성지'
어찌된 영문인지 지난번 동읍 자여역 탐방에 이어 이번 마산 근주역 탐방길에도 이른 아침부터 여름비가 추적이고 있다. 우리 역사문화의 다소 생소한 영역인 옛 역의 남아있는 모습들을 담아보려 하는데 날씨가 따라주지 않는다.
창원 의창동에 있는 창원읍성에서 마산 근주역으로 가기 전 중간지점에 있는 합포성지를 먼저 둘러봤다. 합포에 병영성을 쌓았다 하여 오늘날 ‘합성’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음으로 본다.
창원은 성(城)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 고려, 조선 등 시대별로 산성과 왜성이 다 있고, 개수도 많다. 일본이 가까이 있다 보니 대외적 요인이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마산회원구 합성동 73-4번지 근처에 가니 합포성지 이정표가 조그맣게 있어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보는 순간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보통 성지(城址)라 하면 문화재 자료로 귀중하게 보존되어 있어야 하는데, 합포성지는 눈여겨 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만큼 주택 골목 안에 허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비록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그 옛날 쉴새없이 왜구들이 침입하던 긴장감을 가지고서 멀리까지 차근차근 눈여겨 보았다. 기록에 의하면 1378년(고려 우왕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배극렴 장군이 병사와 주민들을 동원하여 쌓은 다음,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까지 마산과 창원 지역의 치소성으로 행정 기능 뿐 아니라 경상우도의 절도사가 주재하던 병영의 역할을 수행한 성이라고 되어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3호로 등록되어 있으며, 성의 둘레는 1.3km, 높이는 4m까지 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성벽의 흔적만 남아있으니 그 웅장함을 그려볼 수가 없다. 더구나 성은 밟아서 다져야 튼튼해지는 법인데, 남아있는 성벽마저 손실될까봐 아예 밟지 못하게 막아놓았으니 이해 못할 노릇은 아니다.
조선시대 이 지역 교통체계의 중심적 역할을 한 근주역(近珠驛)으로 향했다. 지금의 마산회원구 석전동에 위치하였으며, 인근에는 봉화산이 있고 봉화산에는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는 보통 산꼭대기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가장 낮으면서도 멀리 보이는 곳인 산허리에 있어야 빠르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도 짚어보면서 근주역 자리를 찾아보았다. 근주역은 북서쪽의 함안과 북쪽의 칠원, 동쪽으로 창원․김해, 서남쪽으로는 진해로 향하는 편리한 교통의 결절지대라고 한다. 역사자료에 따라 조선시대 역참을 관리하던 정총석의 찰방선정비를 찾아 갈뫼산 등산로를 올라가보았다. 등산로 입구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동네가 근주역이 위치한 자리였음을 추측해본다. 그런데 정작 찰방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골목 근처를 다 뒤져보다가 휴대전화 검색으로 석전동 산11번지 온양 정씨 선산으로 이전했다는 정보는 입수하였는데, 비가 오는 관계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근주’라는 이름의 아파트가 남아있고, 마산역으로 이어지는 철길 밑 공원이름도 근주공원이어서 그 흔적을 가늠해볼 수 있다.
근주역을 지나면 중리를 거쳐 함안과 칠원으로 갈린다. 후두둑 내리던 비가 조금씩 그치는 듯하여 근주역과 함안을 오가던 옛길을 떠올리면서 차로 달려본다. 함안에서 유명하다는 함읍우체국 맞은편 한우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나니 역을 오가던 많은 사람들의 번잡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