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3, 4 코스와 송악산 걷기
1. 일자: 2024. 5. 6~7(월~화)
2. 장소: 올레길 3 코스(해비치~하천리), 송악산 둘레길, 4코스(해비치~해병대길)
3. 행로와 시간
[제주 올레 3코스 : 해비치 ~ 표선해수욕장 ~ 하천리포구 ~ 배고픈다리 ~ 하천리 버스정거장 / 5.70km]
[송악산 둘레길 : 2.69km]
[제주 올레 4코스 : 해비치 ~ 작은 늪~ 해양수산연구원 ~ 와하하GH ~ 세화리 포구 ~ 해병대길 초입 / 6.64km]
< 올레길 3구간 일부 >
어제는 제주에 하루 종일 몹시 많은 비가 내렸는데, 오늘 새벽은 다행히 날씨가 맑다. 비가 오는 것은 하늘에 소관이라 여기고 마음 편히 먹고 하루를 보내고 새날을 맞았다.
새벽, 숙소 창으로 바다 내음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는다. 다행이다. 숙소를 나선다. 3코스와 4코스 갈림에서 망설이다 표선해수욕장 방향으로 방향을 튼다. 3코스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빛이 올라 온다. 태양이 떠오른다. 오렌지빛 기운이 짙어지더니 붉은 원이 바다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커진다. 몹시 그리던, 그러나 오늘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이 불현듯 내게 찾아들었다. 바다, 그것도 제주 바다에서 해맞이를 하다니, 감동이다. 한참을 해비치 바다에서 서성이며 새날의 행운을 즐긴다.
표선 등대를 지나 해수욕장을 따라 걷는다. 색색의 건물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뽐낸다. 이쁘게 치장한 카페들도 여럿 보인다. 포구에는 정박한 배들이 줄지어 서 있고, 멀리 한라산 위에는 구름이 인다. 아침 햇살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해수욕장 모래 위를 걷는다. 이런 호사가 또 어디 있으랴.
서귀포 방향으로 길을 튼다. 어제는 빛의벙커 가는 길에서 본, 비에 젖었던, 해변에 오늘은 곱게 물주름이 드리워 있다. 그 안에 내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다. 모래와 현무암이 뒤섞인 해변을 걷다 이내 숲으로 들어선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작은 숲의 기운이 찬란하다. 빛의 농담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잠시 어둠을 지나니 빛이 더 또렷하다.
올레길은 바다와 돌담 사이에 있다는 말은 참이다.
도로 옆으로 박석이 곱게 깔리고 돌 틈으로 푸른 풀이 돋아난 고운 길을 걷는다. 이 길을 낸 그 누구의 착한 마음이 내 발 밑에서도 전해진다. 작은 쉼터를 스치고 하천리 마을과 포구를 지난다. 삽살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마을 주민을 만난다. 사진 한 장을 부탁한다. 인근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한다. 두란두런 말동무가 되어준다.
이름이 특이한 배고픈다리는 한라산에서 바다로 연결되는 하천 위에 놓인 돌다리였다. 어제 내린 비로 다리가 끊어졌다. 할 수 없이 도로로 걸어간다. 어르신이 표선으로 돌아가는 버스 편을 알려준다. 하천리 버스정거장 앞에 선다. 오늘 아침 올레길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5.7km, 1시간 40분의 올레길 걷기는 행복한 설램이었다.
< 송악산 둘레길 >
표선에서 송악산까지는 무척 멀었다. 정상적으로 가도 60km 거리에 1시간 20분이 소요되는데, 해안도로도 달리고 서귀포에서 외돌개도 들리느라 시간은 더 늘어졌다. 이 역시 거리 감각의 아듄함이 낳은 용감함이었다.
한낮 햇살이 내리째는 정오, 송악산에 도착했다. 다행히 시원한 바람이 분다. 언덕을 오른다. 기억은 바라 봄과 먼 냄새의 연결로 되살아 난다. 이곳은 2015년 백두대간 완주를 앞둔 시점에 288동기들과 함께 왔던 추억의 장소이다. 그때는 참으로 즐거운 내 인생의 봄날이었다.
천천히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이는 바다와 산방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산방산은 군시절 유격 훈련을 받던 곳이다. 훈련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오늘 따라 옛 기억이 또렷하다. 늙어어가고 있다는 뜻이리라.
9년 전도 그리고 지금도 송악산둘레길은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최고의 트레킹 코스였다. 아지랑이가 인다. 다시 주차장에 선다.
행복한 40분은 빠르게 지나갔다.
돌아오는 길, 용머리해안에도 잠시 들렀다.
< 올레길 4구간 일부 >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 새벽 올레길에 나선다. 검푸른 바닷가에 연한 붉은 빛이 감돈다. 오늘이 지나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제주바다의 풍경을 마음에 담는다. 해는 금방 떠오른다.
작은 늪에 물새 두 마리가 자맥질을 한다. 한가한 어촌 풍경이 펼쳐진다. 근사한 팬션도 여럿 보인다. 마당이 넓고 건물이 근사한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다음에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한다면 이곳에 숙소를 마련하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익숙한 풍경이 젖어든다. 바다쪽에는 현무암이 즐비한 해변, 곳곳에 등장하는 해녀의 집, 등대가 이어진다. 섬쪽으론 마을과 펜션과 카페, 양식어장, 음식점이 있다. L마트 광어가 이곳에서 양식됨을 알게 되었다.
반복되는 풍경에 조금 지겨워지려 할 무렵 세화리 마을에 도착한다. 펜션과 카페는 제주 문화로 자리 잡았나 보다. 한 집 건너 등장한다. 포구를 돌아드니 둘레길은 어두운 숲으로 이어진다. 잠시 암전에 든 기분, 이내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이곳이다 라는 생각이 스치고, '해병대'는 바다와 접한 벼랑이란 뜻임을 직감한다. 한참을 어두운 숲과 벼랑을 걷다 걸음을 멈춘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무리하지 않을 참이다.
숙소로 데려다 줄 택시를 부른다. 이내 온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새벽에 노화와 건강을 주제로 강연하는 유튜브를 보았다. 계(과함을 경계), 정(마음챙김), 혜(원리 이해)가 저속노화의 비법이란다. 50대 중반이 넘어서부터 이곳저곳에 탈이 나고 병치레도 잦다. 새겨 둘만한 정보다. 더 오래 건강하게 살며, 더 많이 새로운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되새기는 건강 바램이다.
다시 일상에 나설 용기와 휴식을 얻고 제주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