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노을이 보며 시작하는 오늘은 무엇인가 알게 모르게 기대감이 모아집니다. 보이는 것이 아름답거나 듣는 것이 고우면 마음도 저절로 아름답게 순치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면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숨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선 경계심이 사라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거칠고 부조화스러운 것들을 대면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불편을 느끼게 되고 피하고 싶어 지면서 경계심을 갖게 되지만 아름다운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여명의 시간은 동이 트는 모습만으로도 감동과 함께 하루 일정 중에 계획이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지만 더군다나 아침빛과 함께 곱게 물든 아침노을은 기대이상의 무엇인가 꼭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꼭 성취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노을을 물든 아침 길을 걸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노을빛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한 점으로 시작된 노을은 태양의 떠오르는 크기에 따라 노을은 점점 폭넓게 확산되어 가는 모습이 정점을 이른 후 노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어서 나타난 높고 푸른 창공과 흰구름은 가을의 전형적인 하늘 모습으로 변신해 버렸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이 가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사색 속으로 자신을 몰아가 보았습니다. 내가 지닌 모든 것에 대하여 깊이 헤아려 생각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면 이외로 헤아리지 않고 대부분 스치듯 지나친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게 됩니다. 이런 일은 노년으로 갈수록 더욱더 그 폭이 넓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일이든 깊이 생각 없이 이 나이에 무슨 이라는 관념이 나를 지배하며 생각의 원천에서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는 깨달음에 자꾸 헛 깨비가 되어 가는 자신의 몰골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자화상을 재발견하면서 40- 50대를 지나 오면서 혈기 있게 살며 스스로 기호하며 살았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지금 古稀의 현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지금의 나의 정체성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된 선택이나 기준도 없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표주박에 지나지 않다는 자조가 탄식에 실려 심연 끝에서 솟구쳤습니다. 선택이 모호해진 삶의 환경, 진보를 구사하긴커녕 생각조차 끊긴 마음은 거의 황폐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연해지는 초라함을 경험하는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믿음의 종속관계인 신앙의 현실만 보더라도 너무 형식에 묶여 있는 무기력 갇혀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한 때는 내가 너를 통해 복음을 전달 할 것이다라는 당신의 분신을 자처하던 종교적 총기가 서렸었는데... 이끼가 낀 것조차 가늠하지 못했다니, 老衰라는 단어에 스스로 모든 것을 길들이는 요즈음 행실에 단단한 반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키우는 중입니다. 한두 번으로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면 아주 간단한 최종적 판단은 " 이 나이에 무슨~~"라는
생각에 자신을 침몰 시키는 어리석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자각을 세워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