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원(思惟園)
권춘수
내 고향 군위에는 경주 불국사보다 100여 년 앞서 조성된 국보 제109호로 지정된 아미타여래 삼존석굴을 비롯하여 삼국유사의 인각사와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 의흥 삼국유사 테마파크 등 유적지가 많다. 그럼에도 부질없는 욕심에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재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몇 해 전에 부계면 창평리를 오가며 창평리 뒷산에 트럭 수 십 대가 들락거리며 트랙터 등 중장비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산과 들 어디에서나 개발사업이 한창이었으므로 예사로 보았다.
문화원(원장 박승근)에서 박경리 토지문학관 등 문화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유원思惟園에서 2023년 5월 3일 오후 5시 KBS 대구방송총국 주최로 KBS 교향악단이 ‘찾아가는 음악회’를 갖는다고 문화원 회원들에게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30여 명 회원 모두 교향악단 음악회도 볼 겸 참석하기로 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사색의 공간 사유원이라는 것이 군위에 들어선 것도 모르고 지냈다. 기회 나는 대로 가보고 싶었다. 마침 문화원에서 함께 간다는 소식에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사유원에 대한 내력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사유원은 20만 평 넘는 임야에 수령 백여 년이 넘는 모과나무와 세계적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이 함께 공유하는 사색의 공간이다. 위치는 군위에서 약 40km 떨어진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2에 있다. 면적은 임야 20만 평 정도이다.
사유원이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의 애정 어린 손길이 묻어나 있다. 300년 된 모과나무 4그루가 일본으로 밀반출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나무를 사서 가꾸어 왔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30여 년간 수집한 백 년 넘은 모과나무가 약 108그루 넘는다. 규모가 점차 커지자, 나무를 옮겨 심을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이곳을 찾았다. 이후 배롱나무, 소나무, 모과나무 등을 옮겨심어 정성을 다하여 오늘날 사색의 공간이 되었다.
사유원에는 여러 조각과 건축물이 있다.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극도의 비움에 이르는 문’이라는 뜻을 가진 치허문致虛門이 있다. 이 문은 바로 사유원의 정문이다. 알바로 시자 건축가가 설계한 소요헌逍遙軒이 있다. 소요헌은 천천히 거닐며 사색하는 곳으로 다양한 공연과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건축물이다. 조경가 정영선, 박승진이 다듬어 만든 풍설지천년 風雪幾千年 또는 농월대弄月臺가 있다. 이곳은 수령 300년 이상 모과나무 108그루를 전시하는 정원이다.
풍설기천년은 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세월을 이겨낸 모과나무의 강인함을 표현하고 천년을 가는 모과 정원이 되라는 의미에서 명명하였다고 한다. 승효상 건축가의 별유동천은 수령 200년 이상 된 배롱나무 19그루가 있는 배롱나무 정원이다. 7~8월에 꽃이 피면 배롱나무꽃 향기와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이곳은 별천지가 된다. 맞은 편에는 다양한 야외공연이 있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알바로 시자 건축가가 건축한 높이 20.5m로 지은 소대巢臺가 있다. 이곳에 오르면 사방으로 아름다운 수목원의 경치와 창평지를 조망할 수 있다. 이외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새들의 수도원 조사를 비롯하여 사담, 명정, 현암, 첨단, 오당, 측소 등 다양한 건축물이며 정영선, 박승진 조경가가 만든 한유시경, 유원 정원을 즐기며 볼 수 있다. 20만 평 되는 사유원을 샅샅이 구경하려면 1박 2일은 소요될 것으로 생각한다.
사유원의 특이한 점이라면 일반 수목원과 달리 하루 입장객이 200명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는 점과 음식물을 반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거기다 입장료가 비싼 것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평일에는 5만 원, 주말에는 6만 9천 원이다. 여러 가지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이 날로 늘어나는 것을 보면 사유원이 다른 일반 수목원과 특이한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안내원이 있어 친절히 안내하며 건축물, 공연 등에 관하여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사색할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오후 5시 정각에 음악회가 열린다. 사회자의 안내로 김진열 군수가 상기된 얼굴로 단상에 가벼운 걸음으로 나온다. 인사 말씀하시며 군위가 대구로 편입된다고 해서 군위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더욱더 전진하여 아름다운 변화 행복한 군위를 추구하기 위하여 알차고 보람된 군위로 거듭날 것입니다.라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500여 명 관중을 압도하는 당당한 모습에 믿음이 간다며 500여 명의 기립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소요헌에서 KBS 교향악단의 봄은 봄이다. 등 순서로 연주가 시작된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넓은 공간에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으로 구성된 단원들이 음률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현란한 연주가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가 터져 나온다.
음악회가 끝나고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는다. 사람들은 공연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오면서 봄에 교향악단이 왔으니, 가을에는 사물놀이패가 오면 좋겠다고 한마디씩 한다. 세상의 눈이 집중된 사색의 공간 사유원이 우리의 소중한 군위 문화의 유적지로 길이 빛내 주기를 소망한다.
첫댓글 옥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