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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 견학 여행기 최성현
일본으로 자연농 견학 여행을 다녀왔다. 6월 7일부터 10일까지의 3박 4일 일정이었다. 참가자는 나를 포함하여 모두 열셋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두 곳이었다.
한 곳은 아카메자연농학교였고, 다른 한 곳은 자연농의 창시자이자, 아카메자연농학교를 만들었고, ‘신비한 밭에 서서’의 저자이기도 한 가와쿠치 요시카즈의 논밭이었다.
조심스럽지만, 나는 자연농법의 창시자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이고, 자연농의 창시자는 가와구치 요시카즈라고 보고 있다. 가와구치 요시카즈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연농이라 이름 붙인 자기만의 세계를 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본에서 나오는 책에서도 가와구치를 그렇게 소개하고 있다.
1.아카메자연농학교, 그 첫날
홈페이지의 알림글에 따르면, 아카메자연농학교의 기본 철학은 다음 세 가지다.
1) 갈지 않는다.
2) 벌레와 풀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3) 생명에 따르고, 응하고, 맡긴다
아카메자연농학교는 나라 현과 미에 현 경계 지점의 한 산골짜기에 있고, 6,300평 규모다. 가와구치 요시카즈를 중심으로 1991년 3월에 시작됐으나, 2014년부터는 나카무라 야스히로가 대표를 맞고 있다. 카와구치 요시카즈는 작년(2023년) 6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아카메자연농학교에는 나라마다 담당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한국인 담당자는 오구라 치에코씨다. 여러 번 뵈었고, 한국의 우리 집에도 다녀가신 분이지만 오랜만이었다. 그 밖에 아카메자연농학교의 대표인 나카무라 야스히로씨를 포함하여 스텝 중에는 아는 얼굴도 여럿이었다. 반가웠다.
그곳에 아는 사람이 여럿인 까닭은 아카메자연농학교에 여러 번 갔기 때문이다. 또 내가 ‘신비한 밭에 서서’의 번역자이기 때문이다.
아카메자연농학교는 달마다 한 차례씩(제2 토, 일요일) 열리는 정례집합일定例集合日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1박 2일 일정이다. 우리는 6월의 정례 모임(8일과 9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다. 정례 모임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오전 10시 반에 시작되는데, 이날에는 학교 전체를 돌보는 일을 한다. 그 일을 통해 배운다. 길의 풀을 깎고, 고쳐야 할 곳은 고치고, 다리를 놓고, 건물을 손보거나 새로 짓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울타리를 손보고, ……등등.
논밭은 논밭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길이 있어야 하고, 다리도 있어야 한다. 수로도 있어야 하고, 울타리도 필요하다. 비나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 논밭 농사는 그 위에서 이어갈 수 있는데, 첫날은 그걸 배우는 날이다.
이때 아카메자연농학교에서는 중심이 되는 사람을 세운다. 나머지는 그의 지시에 따른다. 중심이 되는 이는 그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책임 아래 해내며, 그것을 통해 배운다. 나머지 사람은 자기에 맡겨진 일을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 가운데 완수해 내는 걸 통해서 배운다.
“보수는 없어요. 스텝은 물론 대표도 같아요. 모두가 봉사입니다.”
이곳은 배움터다. 대표는 대표 역을 해내며 배우고, 스텝은 스텝대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완수해 내며 배운다.
“참가비요? 없어요.”
처음 오는 사람은 참가비가 없다. 와서 보고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면 신청을 하고, 신청을 하면 논밭이 주어진다. 그때부터 아카메자연농학교 학생인데, 운영자금은 자발적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통장 계좌는 없다. 모임 때 담당자가 직접 받고, 해마다 4월 정례집합일에 회계 보고를 한다.
“배우고 싶은데 돈 때문에 못 배우는 일이 이곳에는 없어요.”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요. 일절 안 받아요. 그걸 받으면 일이 복잡해지거든요. 자립이 기본인데, 보조금은 그걸 깨기 때문에 안 받아요.”
지역 주민과의 갈등은 없을까?
“그걸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하나는 지주님들에게 지대를 드리고 있어요.”
아카메자연농학교에서는 6,300평을 빌려 쓰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모임 때마다 말합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해가 되는 일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그분들의 지지가 필요하니 인사를 잘하라고. 사유지는 물론 공유지의 풀 하나라도 절대로 손대지 말라고.”
첫날 일정은 오후 5시에 끝났다. 그 뒤에는 모두 함께 대중목욕탕으로 가서 몸을 씻었다. 이번만이 아니다. 늘 그렇게 한다.
2. 아카메자연농학교의 밤
저녁 시간은 산장에서 보낸다. 모두 함께 저녁밥을 먹는데, 밥은 당번이 먼저 와서 지어놓는다. 식사 준비에 우리 쪽 참가자인 콩풀과 현재가 참여했다. 지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도 ‘어머니’라는 이름의 중심이 되는 사람을 정하고, 나머지는 설혹 실력이 더 뛰어나더라도 그의 지시를 따른다.
식사가 끝나면 9시부터 ‘앉아서 하는 공부’가 시작되는데, 우리가 동참한 날에는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책 ‘신비한 밭에 서서’의 한 부분을 함께 읽고, 그것을 주제로 이야기가 시작됐지만, 그 내용은 자연농의 기본은 물론 자연계의 이해, 혹은 농업을 넘어서 예술, 종교, 정치, 교육, 경제, 의료, 문학 등 여러 분야를 오갔다.
“앉아서 하는 공부는 말을 통해서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부딪치지 않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말싸움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리라. 이 시간은 듣기. 사색, 그리고 말하기를 통해서 자연농에 대한 이해는 물론 전인적 인격 성장을 목표로 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이 시간 앞머리에서 우리는 짚풀 작가인 짚풀이 선물해준 짚으로 만든 빗자루와 팔덕선이란 이름의 부채를 아카메자연농학교에 선물했다. 팔덕선이란 여덟 가지 이로움을 가진 부채라는 뜻이다. 선물로 가져왔지만 다섯 가지 이상 부채의 이로운 점을 맞추지 못하면 드릴 수 없다며 퀴즈를 진행했는데, 즐거운 시간이었다. 서로 많이 웃었다.
이 자리를 빌려 짚풀에 감사를 표한다. 짚풀은 그걸 우리가 선물로 가져갈 수 있도록 밤을 새워 만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수고비도 거절했다. 짚풀의 그 고운 마음에 고마운 마음 크다.
모두 대단했다. 자정을 넘겼는데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12시 반이 돼서야 이 시간은 끝이 났다.
3. 아카메자연농학교 둘째날
기상 시간은 오전 7시였다. 침구를 치우고, 청소를 하고, 아침 식사를 했다. 설거지를 하고, 도시락을 쌌다. 각자 지참한 도시락에 당번이 지은 밥과 반찬을 담았다. 이렇게 1박 3식에 얼마를 내야 했을까? 1,500엔이었다.
‘왔을 때보다 떠날 때 더 깨끗이’ 산장을 치우고, 정돈한 뒤 아카메자연농학교로 이동했다. 보기 좋았다.
일요일에 오는 참가자도 적지 않았다.
“사전 신청, 그런 거 없어요. 아무나 그냥 정해진 시간에 오면 돼요.”
일요일의 가장 중요한 시간인 실습 시간은 10시에 시작됐다. 먼저 6월의 주요 농사일인 모내기에 대해 아카메자연농학교 대표가 자세하게 말하고, 스텝은 그것을 실연해 보였다. 하루 전날에 우리 견학 여행팀이 수확을 도운 보리와 밀밭이었다. 그 논에 모를 심었다. 못자리는 그 밭 한쪽에 있었다.
1) 못자리에서 모를 뜨는 법.
2) 보리, 밀과 풀을 밟아쓰러뜨리는 법.
3) 줄 간격과 포기 간격은 얼마가 좋은지? 그 까닭은 무엇인지?
4) 몇 포기를 심는지, 그 까닭은 무엇인지?
5) 어떻게 심는지?
6) 모내기를 마친 뒤에는 논두렁콩을 심었고, 그 방법도 자세히 보여줬다.
논에서의 공부가 끝난 뒤에는 토마토 아주심기 등을 비롯한 밭 농사 공부가 이어졌다.
그 내용은 아카메자연농학교 출신의 농부 가카미야마에츠코와 아라이 요시미가 쓰고, 가와구치 요시카즈가 감수한 책 ‘자연농 교실’에 소개한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그 책을 참고하면 되시겠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밥을 먹은 뒤의 오후 일정은 두 가지 일로 나누어졌다. 아카메자연농학교 학생들은 각자 자기 몫의 논밭에서 오전에 배운 것을 염두에 둔 실천의 시간을 가졌다. 그것이 공식 일정이었다.
처음 온 참가자는 스텝이 진행하는 ‘견학 투어’에 참가한다. 농장의 역사와 운영 방식, 자연농의 주요 농기구, 기본 철학 등 아카메자연농학교의 전모를 보여주는 농장 둘러보기가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데, 우리도 이 투어에 참가했다.
이 ‘견학 투어’를 마치며 아카메자연농학교에서 자연농을 배우고 싶어지면 어떻게 할까? 스텝에게 그 사실을 말하면 된다. 그러면 땅이, 곧 논밭이 주어지며 학생이 된다.
그렇게 모든 일정이 끝났고,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아카메자연농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 아카메구치역까지는 도보 40분이었다. 솔직히 고단했다. 올 때는 시골길이라서 즐겁게 걸었지만, 갈 때는 차를 타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 마음을 알았을까, 아카메자연농학교에서 일본 쪽 참가자들의 차에 우리를 나눠 태워 역까지 데려다주었다. 참 고마웠다.
이때만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아카메자연농학교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했다. 내가 아는 한 우리만이 아니다. 그들은 늘, 언제나 친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
4.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논밭
마지막 날이었다.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집은 마키무쿠역에서 가까웠다. 걸어서 10분쯤 걸린 듯하다.
가와구치 요시카즈 내외가 세상을 떠나며 집이 비어 있었다. 제자들의 안내를 받아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영정 사진과 유골이 봉안돼있는 제단에 인사를 드렸다.
그 집에서 우리를 맞은 제자는 셋이었다. 모두 여성이었고, 그 가운데 한 분은, 내 책을 여러 권 읽었다는, 벌써 10년 넘게 일본에 살고 있다는 한국인이었다. 그밖에 아카메자연농학교 대표 나카무라 야스히로님, 한국인 담당자 오구라 치에코씨도 와주셨다. 모두 함께 논밭을 둘러보았다.
먼저 논으로 갔다. 논흙을 나카무라 대표가 손수 파서 보여주었다. 무경운 40년 이상의 논이었다! 주검의 층이 10센티 이상은 돼 보였다. 40년 이상 쌓인 그 논의 볏짚과 풀의 덩어리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두 손을 모았다. 그곳은 자연농의 성지였기 때문이다!
“이 논에서는 과영양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물을 깊이 안 대요. 고랑에만 차게 대요.”
고랑은, 책에 따르면, 4미터 간격이다.
“혹은 이랑이 조금 덮일 만큼만 대요. 그보다 더 많이 대면 주검의 층에서 너무 많은 양의 거름이 스며 나와 벼에 안 좋기 때문입니다.”
고랑의 물이 증거였다. 검붉었다!
밭은 밭대로 좋았다. 300평쯤 돼 보였다.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어 눕히고, 그 위에 심은 여러 가지 작물이 보였다. 풀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 만큼 풀이 많았고, 키도 컸다. 밭 가로는 여러 가지 과일나무가 있었고, 마침 그 가운데 무화과와 자두 열매가 익어 있어 하나씩 따서 맛을 보기도 했다.
“나무 아래에는 무나 소송채 씨앗을 흩어뿌립니다. 소송채나 무는 나무 아래서도 잘 자랍니다. 솎아 먹어가며 키웁니다.”
무와 소송채 파종은 김매기로 한다고 했는데,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풀 위로 씨앗을 뿌린다. 풀베기는 그 뒤에 한다. 톱낫으로 숨은 눈 아래를 벤다. 그러자면 땅을 조금씩 건드려야 하는데, 그때 씨앗은 땅속이 묻히게 되고, 그것이 파종으로 이어진다.
점심은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사랑방에서 모두 함께 먹었다. 각자 지참한 도시락을 꺼내놓고 나누어 먹었다. 즐거웠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시간이었다.
5.
다른 참가자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도움이 됐을까? 후속 모임이 없었기 때문에 알 수 없는데, 이런 우려가 있다.
그것은 이번에 보신 것이 자연농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아카메자연농학교는 한 달에 한번씩 모인다. 그 한계가 있다. 어떤 곳에서는 풀에 묻혀 작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밭에서도 같았다. 그 분이 살아계실 때는 어땠나? 달랐다. 그래서였으리라. 아카메자연농학교에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모입니다. 풀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아시고, 여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자연농의 논밭이 모두 여기와 같지는 않아요.”
아카메자연농학교 홈페이지에는 홋카이도에서 가고시마까지 예순여덟 곳의 자연농 배움터가 소개돼 있다. 외국에도 한 곳 있는데, 그곳은 한국의 개구리네 집이다.
그 예순여덟 곳은 모두 자연농의 철학을 잘 이해하고, 또 실천하고 있는 농가다. 자연농의 세계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아카메자연농학교와 기본 철학이나 기술은 같지만, 논밭의 모양은 다른데, 그 까닭은 한 곳은 학교이고, 나머지는 농가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한 달에 한 번 논밭에 모이지만, 농가에서는 하루에 자주 논밭에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편이 된다면 자연농 농가에도 가보시면 좋다. 서너 곳을 봄과 가을, 두 차례쯤 가보시면 자연농의 전모가 보이리라.
참고서적으로는 ‘자연농 교실’이 좋다. 그 책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 견학 여행은 깊이를 만들어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