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허위사실유포죄로 제기한 것은 정치 코미디였던 것처럼, 검찰과 보수우익이 MBC 피디수첩의 촛불집회 관련 방송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이데올로기적 코미디였다. 대통령이 거세진 촛불집회를 두고 사과방송을 해놓고서는 금새 얼굴을 바꿔 좌익 빨갱이로 몰아간 것은 정말 상식이 없는 처사였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이데올로기다. 정치만이 아니라 종교까지도 좌익과 우익으로 나눠져서 합리성이나 공익은 뒷전이고 편 가르기에만 급급하다. 정말 잔인할 정도로 상대편을 밟는다. 편 가르기를 위해서라면 자기 내부의 부조리와 모순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6.25 후 반세기를 지배한 반공이데올로기로 기득권을 가진 보수우익의 발악은 상식을 넘어섰다. 진보좌익도 기득권자가 되기 위해서 보수우익의 부조리와 모순을 끈질기게 붙잡고 몰아치면서도 자기 내부의 비윤리와 분열에 대해서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 이런 양상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었던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되는 동아리에 들어가려고 면접을 보는 중에 만났던 좌익편향의 선배들에게서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명분과 열의를 보면서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또 같은 과 동기 중에 10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이 형은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과 연을 대고 자금을 받아 단과대표로 나섰는데, 선거과정에서 그의 기회주의적인 행동에 치를 떨었던 기억도 있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모습은 여전한 것은 본다.
오늘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신우가 하는 말이 ‘아빠 조선일보는 참 나쁜 거 같아요’하는 것이다. 어린 아들이 특정 언론을 비판한다는 것은 수상한 일이 아닐 수 없어 ‘왜 그런가’ 물었더니 조선일보가 법원의 MBC 피디수첩에 대한 무죄판결을 3면에 걸쳐 비판을 하고 판사의 얼굴을 대문짝하게 게재하여 그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린 아들이 비판한 것은 조선일보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한 사람을 인신공격한 잔인성이었다. 어린 아들이 바라보는 눈이 진실된 눈이 아닌가 싶다.
조선일보에 몸 담은 사람들에게 상식이 있는가 싶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상식과 윤리의 차원에서 도를 넘어섰다. 이 언론에서 느껴지는 것은 정론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야망, 탐욕이다. 이들은 국민 다수인 서민 보다는 기득권자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때론 기득권자가 되어 권력을 향유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익은 도서관을 싫어한다는 말이 옳다. 조선일보의 논지에는 논리도 없고 과학도 없다. 누군가의 책을 비평하더라도 전체 흐름을 읽지 않고 부분만 가지고 논평한다. 무식한 보수우익 때문에 발생할 지적 인프라의 붕괴가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미네르바 사건은 단적인 예가 된다.
예수님은 당시의 기득권자들과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헤롯에 대해서나 열심당에 대해서나 편을 드신 적이 없고, 양쪽 모두를 경계하셨다. 그렇다고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무관심하신 것은 아니다. 오히여 본인 스스로가 이슈의 중심이 되셨다. 죄인들과 함께 하기,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거나 병자를 고치기 등이었다. 예수님이 제시한 이슈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에 관한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이데올로기적 비판도 감수하셨고, 결국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