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 불
눈을 뜨면 촛불을 켠다. 막대형 가스라이터가 편리하지만 나는 성냥을 고집하여 향촉에 불을 붙인다. 착! 하고 피어오르는 불꽃이 화르르 치솟았다간 서둘러 스러진다. 거기다 아련한 화약 냄새는 후각을 타고 라이터는 흉내 내지 못하는 향수鄕愁를 일으킨다. 성냥이 구멍가게 급 슈퍼에는 있어도 대형마트에는 없다. 그만큼 수요가 희소하다는 증거다.
내 소년 시절 램프나 스토브 또는 아궁이 불쏘시개에 불을 붙일 때는 성냥이 유일한 점화수단이었다. 성냥갑이 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덕용에서 휴대용 까지 용도도 다양하였다. 성냥개비가 다돼갈 즈음에는 성냥 통 측약 종이가 헐어서 어디에 대고 밀어야 불이 붙을지 난감할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성냥불이 안 붙으면 나를 불렀다.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한 가지 요령은 있었다. 어머니가 못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초의 일이었다. 누이도 성냥불을 켤 때면 나에게 부탁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폼을 잡고 한 방에 탁 불을 붙여 주었다. 남자다움을 으스대는 순간이기도 했다.
곱상하게 성냥을 그어서는 불꽃을 보기 어렵다. 두약豆藥알갱이를 힘주어 성냥갑에 두드리듯 그어 줘야 한다. 요즈음은 가계에서 성냥을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구석에 진열한다. 요즘 성냥은 갑 자체가 튼튼할뿐더러 나뭇개비와 두약과 측약도 잘 만들어져 불붙이기가 쉽다. 불꽃을 쉽게 일으키자면 나름대로 요령이 필요하다. 앞으로 당기면서 그으면 자칫 불똥이 오지랖으로 떨어진다.
엄지와 검지로 성냥 꼬챙이의 두약 반대편 끝을 쥐고 중지로 꼬챙이 허리를 지지하면서 약지로 유황알갱이를 누르고 한방에 탁 두드리듯 민다. 두 번 세 번 그으면 두약이 분리이탈 한다. 중지로 적당히 힘을 유지하지 않으면 나뭇개비가 부러지기 쉽다.
화약이 점화하자마자 약지를 벌리는 동작이 굼뜨면 손가락 끝을 데일 수도 있다. 데어본 사람은 손가락 2개만으로 불을 붙이려 하다 보니 실수가 잦다. 아예 성냥불 붙이는 일을 트라우마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막대라이터 점화버튼을 누를 때도 눈을 질끈 감는다.
성냥 중에는 6각형 8면체로 된 유엔 표 성냥과 사각형 육면체로 된 향로 표 성냥이 질이 좋았다. 알갱이가 다 소진될 때까지 측약이 그런대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는 성냥이었다. 두약이 땡글땡글 하고 꼬챙이도 실하여 불을 붙이는 중 화약이 으스러지거나 부러지는 경우가 적었다. 성냥공장도 소비가 적으니 거의 다 폐업하고 서 너 군데 정도 생산을 하고 있다.
성냥불 붙이는 방식이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게 맡겨진 일은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듯 한 방에 탁 밀어붙이는 것이 습관으로 몸에 배었다. 눈앞에 전개된 문제점은 그 자리에서 처리하는 방식이 생활 가운데 유익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 오지랖이 넓다는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은 혼자 누리는 자존감이었다.
주지를 맡아 산중 절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상좌승이 “스님, 보타 더러 개똥 좀 치우라 하시지요.”하고 고자질을 한다. 보타는 얼마 전 출가를 결심하고 절에 들어와 수행 중인 행자다. “개똥은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 것이니라.” 개똥 보는 눈 따로 있고, 치우는 손이 따로 있다면 그 개똥은 거름되기 틀렸다.
그렇다. 눈앞에 전개된 일을 즉각 처리하는 자세가 성냥불 정신이다. 허드렛일일수록 솔선수범하는 마음 씀씀이가 성냥불 정신을 실천하는 덕목이다. 성냥불 하나 켜는 데 무슨 정신일도 하사 불성까지 들먹여야 할까 마는 성냥불을 켜는 자세로 일에 임하면 매사가 신속하고 사회생활이 수월하다.
건축공사도 과일장사도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다. 기획과 설계가 끝나면 시작을 주춤거리지 않는다. 계획은 충분히 고려하되 그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한 방에 탁」하고 시작하면 결과도 좋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완벽하게 기획을 해도 일을 하다 보면 수정을 요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획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오류는 발견될 때 수정하면 된다. 수정 작업 또한 발견 즉시 「한 방에 탁」이다. 업무영역을 분담해야 하는 전문분야일수록 커뮤니케이션은 긴밀할 필요가 있다. 이 또한 신속해야 결실이 좋다.
이왕 해야 할 일이라면,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듯 하는 것이 좋다. 모든 일에 통용되는 천편일률적인 성공법칙은 없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연설가인 지그 지글라씨는 자신의 저서 『정상에서 만납시다』에서 「시작을 확실하게 할 것」을 강조하였다. 데일 카네기도 『인생론』에서 「시작의 중요성」을 어필하였다.
왜 편리한 라이터를 두고 성냥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레인지, 인덕션 등은 성냥이나 라이터가 없이도 점화가 가능하다. 광고용 성냥이 눈에 띄는 걸 보면 성냥을 선호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더러 있나보다. 서부영화의 총잡이가 부츠 옆구리에 두약을 그어 권련에 불을 붙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보는 장면이 되었다.
전자초에 전선을 연결하여 촛불을 흉내 내는 경우가 있다. 제법 일렁이는 움직임을 곁들인다. 그러나 가짜다. 편리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겨울의 딸기, 한여름의 홍시는 맛의 차원을 넘어 저장기술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기도 하지만 촛불을 흉내 낸 등불은 연등이나 인등만으로 충분하다.
바비큐 화덕에 불을 붙일 때는 토치가 좋다. 군인들은 라이터를 주로 쓴다. 나로호 점화를 위해 성냥을 그어댈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촛불을 켤 때는 성냥을 고집한다. 성냥불은 피는 것도, 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파열음과 불꽃 그리고 때로는 하얀 재를, 또 때로는 가냘픈 숯검정을 남긴다. 성냥 불꽃에는 무상을 한순간에 응시하는 희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