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문명의 자산(볼테르)
1. 저자
*볼테르(Voltaire): 본명은 프랑스와 마리 아루에(Francois Marie Arouet, 1694∼1778).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한 공증인(公證人)의 막내 아들로 태어남. 1704년 10세의 어린나이에 파리에 있는 예수회파의 루이 르그랑(Louis-le-Grand)대학에 입학. 대학에서 주로 문학과 신학공부에 열중. 루이 15세 왕의 섭정을 비난하던 프랑스와는 1717년 4월 16일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었음. 감옥에서 처음으로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앙리아드』(La Henriade)라는 장편시를 완성. 석방 후 그가 쓴 희곡 『외디푸스』(Oedipe)가 무대에 올려져 대성공을 거두면서 문필가로서의 주목과 환대를 받기 시작. 1725년 12월 볼테르는 한 사교장에서 어떤 후작에게 불손한 언동을 보여 결국 영국으로 추방됨. 3년간의 영국생활은 그의 학자적인 사상가로 성장한 계기가 되었음. 그는 1년 만에 영어를 완전히 습득하고 당대의 문예사조를 비롯해서 뉴턴, 로크, 흄, 샤프츠베리, 포프 등의 사상에 정통하게 됨. 그가 이때 쓴 『철학서한』(Letters Philosophiques -일명 영국인에 관한 서한)은 영국인이 누리는 자유에 비교하여 고국의 부패한 귀족들 및 그들과 결탁한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판. 이 책 때문에 바스티유에 투옥될 위험에 처한 그는 샤틀레 백작부인과 함께 로렌지방의 그녀의 성으로 피신. 볼테르는 이곳에서 생활하는 15년 동안 문학, 철학, 역사 등에 걸쳐 많은 저서들을 출판. 주요저서로『철학서한』(1733)『자디그』(Zadig. 1747)『캉디드』(Candide. 1759).『관용론』(Treatise on Tolerance. 1763) 『린제니』(L'Ingénu 1767) 등이 있음.
2. 볼테르의 사상: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 자유사상가였던 볼테르는 진보적인 로마 카톨릭 신자였지만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 평생 투쟁했다.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디드로 등의 백과전서파를 적극 지지하고 기독교적인 광신, 종교적 편견, 독단적 형이상학 등을 맹렬히 공격하면서 17세기의 이원론적 경향에 반기를 들어 뉴턴이 확립한 자연과학적 인식을 휴머니즘의 윤리에 의거하여 현실 사회와 결부시키려고 하였다. 그의 회의적 상대주의는 자연 과학적 인식의 현실화·통속화의 결과였다. 만년에는 이론적 회의를 실천적 확신에까지 끌어올려 자연법의 규범성을 신이 준 불변의 법으로 인정하려 하였다. 그가 각광을 받은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으나, 유럽의 전 지성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수년간을 스위스 제네바에서 보내다가 1753년 프랑스령 근처인 페르네에 정주하며 시·극시·우화·소설·수필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작품을 발표하여 전 유럽에 '볼테르 시대'를 이룩하였다. 진보파의 영수로서 '페르네 장로'라 불렸고 반 봉건, 반 교회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그 중에서도 광신이 원인이 된 부정재판을 탄핵한 칼라스 사건 등의 실천운동은 유명하며, 『관용론』은 그와 같은 활동의 소산이다.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 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위인들이 들어가는 팡테옹(Pantheon)에 안치된다.
3. 장 칼라스 사건과 관용론.
1). 장 칼라스 사건: 성실한 신교도 칼라스는 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광신적 대립이 지배했던 프랑스 남부의 툴루즈에서 모범적인 가장으로 평온하게 지내고 있었다. 1762년 5월 9일, 그의 큰아들 마르크 앙투안이 삶을 비관한 끝에 목을 매고 자살한다. 이 사건을 보려고 모여든 군중들 가운데 누군가가 칼라스의 큰 아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했기 때문에 가족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소리쳤다. 이런 소문은 맹신적이고 신교도에게 적대적인 툴루즈 시민들 사이에 퍼져 나갔고 여론에 격앙된 시에서는 아무 증거도 없이 칼라스 가족을 체포했다. 거듭되는 가혹한 심문에도 칼라스 가족은 범행을 부인했으나 맹신과 편견에 오도된 재판관들은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이 가장에게 수레바퀴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에 처했다. 칼라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볼테르는 재판절차의 부당함에 분개했고 이 사건 속에 자신이 공격하고자 하는 옛 시대의 야만적 형벌제도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절감했다. 결국 3년이 지난 1765년, 칼라스의 무죄와 복권이 선고되어, 볼테르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억압해온 옛 체제의 낡은 권위를 무너뜨리고 야만적 형벌제도에 대한 계몽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볼테르는 당시의 종교적 편견에 의해 조작된 칼라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동·서양의 역사와 성서, 강론, 도덕론을 뒤져 불관용에 대한 반론의 논거를 찾아내어 그 유명한 관용론을 집필한다.
2) 관용론: 볼테르는『관용론』의 서문에서 관용정신에 대해, 그것은 ‘소극적 인정과 방임을 넘어 다른 종류의 사고방식과 행위양식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승인하는 태도’라고 밝히고 있다.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나는 내 목숨도 내놓을 용의가 있다.’고 주장하며 당시의 온갖 종교적 맹신주의자들에 대해 관용의 중요성을 강조. 그는 이성을 바탕으로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과 인정미, 효율성과 합리성을 강조. 특히 그는 종교적인 맹신으로 인한 박해를 맹수에 비유하며 ‘인간은 말 몇 마디 때문에 서로를 죽인다’고 말한다.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오만과 이성을 상실한 불관용성에 대항하여 이성과 관용을 주장한 볼테르의 사상은 몽테스키외, 장 자크 루소 등과 함께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을 형성하였다.
4. 텍스트 분석- 관용: 문명의 자산
1). 관용의 문법: “나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나는 내 목숨도 내놓을 용의가 있다.”(p.624)
2). 종교의 필요성: “인간이 신이라는 신성한 관념을 상실하면 그런 관념을 대신해 허상들이 들어선다.”(p.624). 인간의 사회는 어디든지 종교가 필요하다. 법은 공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대신 종교는 개인적으로 숨어서 저지를지 모르는 범죄를 막기 때문이다.
3). 맹신의 어리석음: 중세시대 사람들은 성경이나 율법의 존재를 모르고 자신들이 믿는 대로 종교를 해석했고, 마법사와 악마에게 사로잡힌 이들의 말에 현혹되었다. 점차 그들은 건전한 그리스도적인 믿음으로 개종되었다.
4). 이성의 힘으로 깨어나는 프랑스: 파스칼, 니콜, 아르노, 데카르트, 가상디, 벨, 퐁트넬등과 같은 계몽주의적인 철학자들을 예로 들어 이성의 힘으로 점차 맹신으로 벗어나는 프랑스인들의 변화를 기술.(p.626)
5). 맹신의 위험성: “그러나 갖가지 맹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이웃을 미워 할 것을 가르치는 맹신이 아닐까?”(p.627)
6). 과학적 사실들을 근거로 한 이성과 관용: 볼테르는 지구와 태양의 공전, 밀물과 썰물이 보여주는 지구 중력, 빛의 굴절과 반사의 무지개이론(p.626) 등을 들어 ‘성서’의 올바른 이해와 실천을 강조. 이는 다양한 과학적 학설을 예로 들어 맹신이 가져오는 종교의 불관용과 야만적 박해에 이성과 관용의 중요성을 기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