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우리나라 종합 주간지 중에서
가장 이름있는 '시사신문 & 시사포커스'의
컬럼니스트인 안규호 논설위위님의 컬럼을 게제합니다.
안규호님께서는 저와는 중학교 동기 동창생으로써
저희들 동기생 친구들에게도 늘 긍지와
본을 보여주는 훌륭하고 자랑스런
친구입니다.
“100년후를 내다보는 교육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교육은 가장 진보된 투자로 여겨지고 있다. 투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생산성은 높아지고 수익도 증대된다.' 이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피터 드러커의 ‘명언’ 이다.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투자비용이 적게 들지만 가장 확실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녀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요즘 사교육비를 포함해 워낙 교육비가 많이 들어 아이 낳기도 힘든 세상이라고 하지만 인생사를 단순화하고 눈앞의 계산보다 좀 멀리 내다본다면 그래도 자녀 교육만큼 투자비용 대비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
이런면에서 볼 때 경북 영양군 일원면 주곡리 주실마을은 자녀 교육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조광조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한양조씨 집성촌인 주실마을은 이미 100여년 전에 백년대계를 앞장서 실천했다. 형편이 넉넉한 집안이나 그렇지 못한 집안을 가리지 않고 자녀 교육에 나섰다. 100년 후가 흐른 지금 주실마을은 우리나라에서 마을 단위로는 최다 박사를 배출해 낸 자녀 교육의 ‘명소’로 꼽힌다. 대학교수가 14명, 교장이 19명 등 거의 한 집에 한 명꼴로 박사를 배출해 오고 있다. 그 구심점에는 호은종택과 작은집인 옥천종택이 있다. 시인 조지훈은 바로 호은가의 후손이다.
주실마을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일제시대에 유학생이 가장 많은 마을로 꼽혔던 주실마을은 유학생이 한 집꼴로 있어 음력설 때 제사 지낼 자녀들이 없게 됐다. 그래서 주실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양력설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자녀 교육 투자는 광복 후에 그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의 ‘인문학 3걸’로 꼽히는 조동걸(역사), 조동원(금석학), 조동일(문학) 등은 주실마을이 배출한 핵심 인재들이다.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장도 주실 마을 출신이다. 조운해는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의 맏딸 이인희(현 한솔그룹 고문)와 결혼해 그의 사위가 됐다. 한솔은 현재 그의 세 자녀들이 이끌고 있다.
주실마을은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백년대계를 내다보며 가문과 국가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아왔다. 100년 전 밥을 굶어가며 자식들을 유학 보낸 ‘주실마을 엄마’들은 ‘대치동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아이들 세대가 살아주기를 바라는 욕망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이런 주실마을에서 오래전부터 지켜오던 ‘3가지 불차(不借)“가 있다.
‘불차‘라는 것은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3불차’의 으뜸은 돈이다. 돈을 빌리려면 구차한 자신의 형편과 사정을 늘어놓아야 한다. 때로는 거짓말도 섞어서 속이기도 해야 한다.
둘째는 사람으로 이것은 양자(養子)를 들이지 않는 다는 뜻이다. 다른 종가집들은 중간에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많이 들였다. 양자를 들이는 외에 아들이 없다는 구실을 핑계 삼아 첩을 들이거나 씨받이를 찾는 집안도 있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가정의 불화는 외도(外道)에 있다.
세 번째는 글이다. 평소에 늘 좋은 글을 대하고 지식을 닦으라는 충언인 것이다. 창씨 개명에 시달렸던 일제시대에도 버티었던 강인한 지조의 집안이었다.
‘3불차’ 중 가장 핵심은 ‘인불차’이다.
구차하게 인물을 빌려오느니 좀 부족하다 싶어도 당장 앞만 보지 않고 꾸준히 가르치고 또 가르쳐서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만약 본인이 그 인물이 아니라면 그 아들 또 아니면 그아들을 바라보면서 ‘100년 대계의 교육’을 시킨것이 오늘발 빛을 발하는 것이다.
5년이하를 바라보며 온통 사교육으로 어지로운 요즘 주실마을을 거론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사신문,시사포커스 논설위원 안규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