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의 여유로 이웃을 섬깁시다"
말씀 / 시편 41편 1~13절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주시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헤하려고 꾀하며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이로써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깢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사람은 누구나 여유를 찾고 여유를 가지고 싶어합니다. 경제적인 여유, 시간적인 여유, 마음의 여유, 노년의 여유를 꿈꿉니다.
여유가 생기면 편하게 누리며 살고 싶고 이웃을 향해 나누고 베풀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먹고 살기 바빠서 소외된 이웃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고 나누고 베푼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의 기부 문화는 미미하지만 예전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단체들이 언론을 통해 계속 소개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사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섬기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큰 것을 가진 자요
가진자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충분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본문 시편 41편 1절에서 13절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며 우리 주위의 소외된 자를 보살피는 면에서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진 자의 여유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41편은 다윗이 병들었을 때에 아들 압살롬이 추종세력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사건을 접하고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답답한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 속에는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명백히 드러나 있습니다.
첫째 어려울 때 건짐을 받습니다.
1절에 가난한자는 경제적 궁핍만이 아니라 질병과 절망과 가진 자들의 횡포와 억압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고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곧 병든 자를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들 불구자
고아나 과부, 나그네, 그리고 레위인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사회적으로 비천한 상태애 있는 소외된 자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으로 동정하며 돌보고 구제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계시며 그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구원의 손길을 펴십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것은 곧 그들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씀입니다.(잠19:17)
나의 시간, 나의 물질, 나의 기도, 나의 노력이 주님의 눈에 아름답게 베푸는 선행으로 비춰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이 어려움 당할 때에 주님 앞에 무조건 도와달라고만 하는 염치없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우리 각자의 신앙생활을 돌아봅시다.
둘째 원수들에게서 지켜주십니다.
2절을 보면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주님께서 그를 원수들의 손에 맡기지 않으시고 보호해주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원수들의 간약한 꾀를 생각해보면 원수에게서 지켜주시는 복은 참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외된 자를 보살피는 자를 보호하시되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않으시고 원수들에게 먹히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해 주십니다. 표준 새번역은 주는 그를 원수의 밥이 되지 않게 하시리로다 라는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 10절을 보면 다윗은 수많은 원수들에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위축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원수들은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악담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예수 믿는 성도의 원수들은 이처럼 성도의 파멸을 도모하고 고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제 원수들로부터 단수인 원수로 바꾸어 말합니다. 원수들 중 한사람이 자신의 병상을 찾아와서 빈 말로 위로하는 척하다가 다가서는 다윗에 대하여 거짓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원수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다윗의 원수들은 어려움에 처한 다윗을 사정없이 공격하며 괴롭혔습니다. 심지어 그를 도와야 할 친구까지도 배반하여 악행에 가담했습니다.
그 친구는 한 식탁에서 떡을 나눠 먹는 허물없는 사이의 가까운 친구였는데 자신을 향하여 배반의 칼을 들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만큼 큰 고통을 다윗에게 안겨주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때로부터 천년이 지난 후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도 가룟유다의 배반을 예언하면서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요13:1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본절의 내용을 염두에 두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과 성도의 원수인 마귀의 실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궁극적인 원수는 눈에 보이는 특정 악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악인은 원수 마귀가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진짜 원수는 바로 사탄 곧 마귀입니다.(엡6:12)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를 원수의 손에서 보호해 주신다는 약속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에 대하여는 아무리 많은 대적이라도 이기지 못합니다.
11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베푸실 구원과 승리를 확신하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주님께 대하여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억압당하고 소외된 자들의 축복의 통로가 되길 기도합니다.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며 억울한 자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이야 말로 영원한 투자이며 나의 억울함을 해결받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를 향해 악의 화살을 쏘아 오는 마귀의 세력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주님은 능히 우리를 어둠의 세력으로 부터 보호해주십니다.
셋째 병을 고쳐주십니다.
3절을 보면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놀랍게도 치유히 복으로 나타납니다.
여기 붙드시고는 원기를 회복시켜 주신다는 의미이고 누워 있을 때마다 라는 말은 어떤 질병으로 누워 있는 상태 뿐 아니라 질병으로 인하여 생긴 여러가지 고통과 슬픔을 안고 누워 있는 상태까지도 포괄하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웃 사람들 중 약하고 병들고 힘없는 자들을 보살피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선행을 잊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병들어 신음할 때에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타락한 세상에서 살 때 병들지 않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말씀대로 경건하게 산다 하더라도 병상에 누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죄로 가득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한 영향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혹 병중에 있을 때에라도 우리를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강하게 해 주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병상에 누운 우리를 붙드시고 건강을 회복시켜 줍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확신하였고 일반적인 진리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뜻하지 아니하게 우리의 아픈 경험들에 대한 멋진 처방을 주고 있습니다.
약자를 보살피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이 임한다는 약속이 바로 그것입니다. 외롭고 상처받은 이에게 마음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고 기도로 섬길 때 이런 축복이 임하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사람이야말로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요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최대의 삶의 목표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 삶을 살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 (눅10:37) 우리의 원수 마귀에게 속아 죄의 사슬에 매여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가서 그들을 싸매어 주며 치료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마음의 여유를 가진자요 가진자의 여유를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웃을 돕는 자에게 엄청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어려울 때 구원해 내리라 간악한 원수들의 손에서 너를 보호하리라 네가 병들었을 때에 다시 회복시켜 주리라'. 저와 우리모두 복있는 사람의 반열에 들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정말 소중한 말씀주시고 해설까지 모두 보는것만으로도
은혜입니다!
건데 읽어 보는것 만이라도 쉽지않은데 자상한 설명까지 보기가
쉽지않으리요?
더구나 실천하기까지는 첩첩산중?
그러나 우리 생활 가운데 일 가운데 얼마든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나눌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일은 하찮은 퀵서비스 일이라고 자기일을 폄혜하고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동료들을 위해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신저가 남은 생의 소명입니다!
이웃을 위해 작은 6가구 빌라 마당을 매 주일 아침에 청소하고 나옵니다!
일주일 동안 주변에 식당등 점포가 가까와서 담배꽁초 커피잔등 치울게 많아요? 이사와 6개월정도 하다보니 빌라 전식구들이 저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이웃사촌이
되는것 같아요!
어디 있든지 모두 Peace Maker....? 가되어
주님의 진솔된 자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형제님 짱입니다요
이웃사랑을 실전하고 계시는군요
주님항기 널리 전파해주세요
청소해주는 이웃...
만사 저쳐두고 환영입니다.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