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라는 것이 참 편리한 이동수단이지만
어쩌면 많은 것을 스쳐버리게 한다.
일요일 . 오랫만에 걷기로 했다.
제주 외도동에서 서귀포쪽으로 무작정, 그리고 하루종일
해안을 따라 걸어보려던 차에 202라는 숫자를 단 버스가 보인다.
제주버스터미널에서 서귀포 등기소까지 간다고 써져 있다.
탔다. 무조건. 종점까지 가보는거다.
원주민이 아닌 나로서는 참 좋았다.
동네동네 마다 다 들린다.
이러다가는 세시간 이상 걸릴 것 같아
한시간 남짓 달린 후
하귀-애월을 지나 한림의 끝부분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 20여km 되니 걸어서 돌아가는 거다.
남들은 올레길을 걸으려 비행기타고도 넘어오는데
나도 오늘은 올레! 올레! 를 외치는거다.
한림항, 비양도 가는 선착장을 지나면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
솟대, 기다림의 축약일 것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름모를 들꽃들도 보인다.
가슴을 벌리자, 이름없는 것들도 때가 되면 꽃 피우듯.
참고 기다려라, 반드시 웃을 날 오리니.
알아주지 않는다고 꽃 피우지 못하는
들꽃 있던가?
곽지해수욕장이다. 아직은 한산하다.


한림을 지나 애월로 접어들다 보면
마치 90년도에 방문했던 하와이의 '하나우마베이'와 유사한 풍경이 펼쳐진다.
'한담마을'이라 적혀있다.
차를 끌고 지나다녔다면 영원히 오지 못했을 곳인지도 모른다.
제주도에 가면 꼭 가보라.
이곳에서 보는 노을은 참 멋있을 것 같다.
노을이 지기를 기다리엔 시간이 많이 남아
계속 걷는다.



한담마을 안으로 관광객들과 함께 들어가면
풍광 좋은 여러개의 카페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인 '반딧불 한담'이란 식당에서 해물라면을 한 그릇 시켰다. 9천원
2천원을 더 주고 김을 뿌린 밥을 함께하면 충분한 요기가 된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애월 해안도로를 걷게 된다.
이정도 걸으면 다섯 시간 남짓.
서서히 지쳐갈 무렵이면 애월해안도로 중간지점에서
'망고홀릭'이란 카페를 만날 수 있다.
'망고디저트'를 시켜먹으며 애월 앞바다를 봐도 좋을 것이다.
가게 밖에 있는 쇼파에 누워 하늘을 보는 것도 좋다.
바다를 보느라 고개들지 못한 여행자의 시선을 위하여

멀리 보이는 곳이 제주 신도심으로 들어가는 초입인' 하귀'다.
바닷가인 만큼 거북이란 말을 연상시키는 마을 이름이다.
실제로는 역사상 귀일촌에서 상귀, 하귀로 분리되었다고 한다.
저 곳을 조금 지나면 내가 출발한 지점인 외도에 도착할 것이다.
이 정도를 걸으면 살갗이 조금 따가워질 정도로 타게 되니
썬크림은 필수로 발라야 될 것 같다.
힘들다. 그러나 참, 좋았던 코스다.
그리고 건겅해진 하루다.
누군가의 로망인 제주에서.
난 일상으로 하루를 또 살았다.
202번 버스가 내 옆으로 지나간다.
서귀포를 다녀오는가 보다.
-6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석청 신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