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기행
김양희
몇 번 문을 두드렸으나 기척이 없었다. 설핏 돌아서는데 안에서 헐렁한 차림의 어르신이 나온다. 식사 중이었는지 뭘 씹으면서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러 왔어요. 저 이제 집에 가려고요. 건강하세요.-’
‘응, 그려. 행복해. 행복하게만 살면 돼.’
그러고 보니 뒷집 오라버니는 십팔번이 ‘행복해’라고 했다. 뙤약볕에서 팔십 중반 노인이 종일 밭에서 마늘을 뽑아내고 있었다. 허리 수술 후라 돕지는 못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유리잔에 냉커피를 받쳐 들고 가져갔다. 밭둑에서 벌컥벌컥 달게 마시고는 이마에 땀을 씻는다.
그렇게 힘들게 거둔 마늘을 언니 댁에 한 뭉치나 줬으면 됐지 ‘부산 동생 갔어?’ 하시며 내 몫까지도 또 들고 오셨다. 나누는 재미. 자신의 육신이 망가지도록 거둔 농작물을 저렇듯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사시는 순박한 이 농군의 모습이 바로 예수요 부처다.
여주 언니 댁에서 보름 이상이나 머물렀다. 새벽이면 긴긴 저수지를 돌아 상큼한 공기 마시며 흥천면의 논둑길을 걸었고 해 질 녘이면 유월 바람이 보리 익는 내음을 싣고 왔다. 적막함. 그것 외에는 무어라 표현할 말이 없을 만큼 한가롭고 고요한 한촌 마을이었다. 한밤이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하도 요란해 선잠을 설치고는 창을 닫아야 했다.
언니는 날만 새면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잔디를 손질하고 마가목이며 목련이 둘러싼 울타리 나무들의 수형을 고르는 일에 하루 시간을 바쳤다. 덕분에 정원의 파초 잎은 선들바람을 불러왔고 카 작은 히아신스는 아기자기한 눈웃음을 보내왔다. 평생을 꽃을 쫓아 살더니 만년에도 수목 가꾸는 일에 정성을 다 쏟았다. 팔순 나이가 무색할 정도였다.
멀리멀리 떠나와 있어도, 곡진한 언니의 정성이 살갑게 다가와도, 그렇다고 너무도 갑작스러운 사별의 슬픔이 영영 가시는 건 아니었다. 현실과의 타협을 익힐 뿐, 살아가야 한다는 엄연한 삶의 무게를 점점 마음 안에서 익히고 다지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이웃분들의 순수한 시골 인심이 더러는 위안을 가져오기도 했다.
대부분의 토박이 주민들이 연만하신 터라 옆집의 노부부도 여든다섯, 여든셋의 고령이었다. 며칠 전 방충망 문을 비집고 누군가가 빼꼼히 얼굴을 디밀었다. ‘동생 있는가?’ 이웃은 모두 오라버니 형님이요 실지로도 혈육 같은 정을 나누며 살고 있었다. 언니는 지병도 다스릴 겸, 말년에 전원생활을 위해 일 년 전 낯선 경기도 여주 시골 마을에 자리 잡았으나 동네 분이 모두 형님 아우였다.
점심 먹지 말고 건넛마을 이 포에 있는 맛집에 해물칼국수 먹으러 가자는 초대였다. 핸들은 팔 학년을 한참 지난 오라버님이 잡았다. 평생을 살아오신 고장이니 운전은 젊은이 못지않게 익숙했고 목소리도 카랑카랑하시다. 커다란 냄비에서 펄펄 끓고 있는 바지락 칼국수는 금방 동이 났다. 맛집 이름에 걸맞게 앞마당에는 차들이 즐비했다.
노부부는 많은 농사를 짓는 태생 농민이었으나 나름 멋진 삶을 꾸리고 있었다. 외지에 나가 있는 일곱 명의 자녀들은 앞다투어 부모를 찾았고 농투성이라 일에만 몰두하지 않고 틈틈이 짬을 내어 자주 나가 외식도 즐기곤 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장로요 권사인 부부는 믿음 생활에도 충실해 새벽기도에도 열심이었다. 더러는 부부 외식에 언니가 함께하는 터였다.
세종대왕 능이 있고 명성 황후 생가가 있는 여주는 전통적인 양반고을의 기품을 지녔다. 곳곳에 효자비와 송덕비가 있고 역사를 간직한 고장답게 마을이 조용하고 잘 가꾸어진 모습이었다. 인정과 예절을 중시하는 주민들의 표정에서는 시기 질투나 다툼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선지 이 마을엔 대문 있는 집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행복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호화로운 저택의 높은 담 안에 행복이 있을까. 부귀 명예만을 쫓는 현대인들의 삶에 안락한 인생이 보장되는 것일까. 소박하지만 자연에 감사하며 작은 행복을 꾸려나가는 농촌 삶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간 정들었던 옆집 형님에게도 작별인사를 전한다. ‘외지에서 이사 온 언니에게 잘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다음 올 때는 제가 또 음식 대접할게요. 고마웠어요.’
‘아니, 안 사도 돼.’ 키가 작고 눈이 감실감실한 형님이 까매진 얼굴로 정겨운 눈인사를 보내며 따라 나온다.‘
부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