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사상 주민들은 비옥(肥沃)한 충적토(沖積土)지대인 이곳의 적당한 자리에 갈대를 베어내고 주위를 돋우어 땅을 개척하여 농사를 지어 왔는데 홍수가 나거나 해일이 일면 하루 아침에 물바다가 되는 재난을 겪어 왔다. 강선대에서 보관중인 고문서에는 조선시대 동래부(東來府)에 속했던 사상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하여 제방(堤防)을 쌓았던 기록이 전해온다. 이곳에 제방을 쌓아 낙동강의 홍수에 농토와 인명, 그리고 재산의 침수(沈水) 피해를 막아주기 위해 치수사업(治水事業)을 벌였던 동래부사(東來府使)들의 공덕(功德)을 기리는 비석 3기(基)가 덕포2동 상강선대 앞에 세워져 보존(保存)되어 있다.
[부사이경일축제혜민비] 높이 191㎝, 폭 51㎝, 두께 10㎝로 1788년에 세운 것이며, 비문의 내용에는 축제의 필요성과 제방의 규모를 밝히고 있다. [부사박제명축제혜민비] 높이 135㎝, 폭 56㎝, 두께 11㎝로서 1832년에 세운 것으로, 사상지역의 입지조건과 축제의 필요성을 밝히고 동원된 인원수 등을 밝히고 있다. [부사이명적축제혜민비] 높이 184㎝, 폭 47㎝, 두께 16㎝로서 1840년에 세운 것으로 홍수의 피해 상황과 축제에 동원된 인원수를 밝히고 있다.
구한말(舊韓末) 사상지역에 신교육(新敎育)을 실시(實施)하기 위하여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학교가 사립 명진학교(私立明進學校)였다. 설립 연대는 구전으로 융희(隆熙) 3년(1909년)이라고 하며, 그 때 괘법동(掛法洞)에 건립(建立)한 학교의 교문(校門)에 세워 놓았던 2개의 석주(石柱-돌기둥)중 한 개는 <경상남도부산부사상면(慶尙南道釜山府沙上面)>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행방을 알 수 없다. <사립명진학교(私立明進學校)>라고 새겨진 다른 한 개는 마을의 개울에 걸쳐서 디딤돌로 사용하던 것을 뒤늦게 발견하여 이를 현재의 덕포동 소재 사상초등학교로 옮겨 놓았는데 석주의 <사(私)>라는 글자가 깨어져 보이지 않고 있다.
괘법동에 있는 사상역 앞 쪽에는 회산(晦山)이라는 산이 있었는데, 이 산은 예로부터 유명한 경승지(景勝地)로서 팔경대(八景臺)가 있었다. 동래부지(東來府誌) 고적조(古蹟條)에 <팔경대는 동래부의 서쪽으로 30리 되는 사천촌(沙川村) 낙동강변에 있는데 경색(景色)이 중국의 소상(瀟湘)과 같으므로 이렇게 이름하여 부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보다 뒤의 기록에 보면 <팔경대는 동래 서쪽30리 되는 사천리 낙동강 하류에 있는데 강과 산의 뛰어난 경치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아득하게 멀고 끝이 없어 중국의 소상과 같으므로 이렇게 이름하여 부르고 있다>고 나와 있다. 중국 소상 주변의 뛰어난 경치를 표현한 소상팔경에 비유되는 사상팔경은 낙동강 하류지역의 경승지였으나, 사상공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저습지를 매립할 토량을 확보하기 위해 팔경대가 있던 회산이 깎여 없어지면서 사라져 버렸고 현재는 기념탑이 사상 터미널 맞은 편 파라곤 호텔 앞 화단에 세워져 있다.
사상팔경(沙上八景) - 구덕조무(九德朝霧): 구덕산에 서리는 아침안개 - 원포귀범(遠浦歸帆): 멀리 포구에 돌아오는 돛단배 - 평사낙안(平沙落雁): 하늘을 날다가 모래펄에 내려앉은 기러기 - 칠월해화(七月蟹火): 칠월의 갈대밭에 게를 잡기 위해 밝힌 횃불 - 팔월노화(八月蘆花): 팔월의 강변에 피는 갈대꽃 - 서산낙조(西山落照): 서산으로 지면서 강물에 비치는 햇빛 - 운수모종(雲水暮鐘): 운수사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 - 금정명월(金井明月): 금정산에서 떠오르는 밝은 달빛
냉정은 냉정우물, 냉정샘터등으로 불리는데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2동 185번지에 위치한 사상구 명소 중 하나이다. 냉정에 관한 역사와 유래를 자세히 알려주는 문헌기록이 많지 않은 관계로 지금까지 대개 구전으로 전해 오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냉정(冷井)은 가야에서 주례동으로 넘어오는 엄광산 산등성이의 고개아래 자리잡고 있는 자연샘이다. 이 때문에 샘물 뒤쪽에 위치한 가야와 주례사이의 교통로에 해당하는 고개를 냉정치, 즉 냉정고개라 부르게 되었으며 앞쪽의 마을 또한 냉정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샘물은 옛부터 냉정고개를 왕래하는 행인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귀한 쉼터였을 뿐만 아니라 부산장, 동래장, 하단장, 구포장, 김해장 등을 왕래하던 사람들에게 물좋은 샘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조선숙종(1714년)에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擇里志)에 보면 조선13도중 물이 청냉하고 감미로운 곳이 3-4개소가 있는데 냉정동의 물맛이 천하일품이었다고 한다. 일본 막부시대(幕府時代)에 지방의 제후들이 다도(茶道)에 심취하여 다용수(茶用水)를 조선국까지 와서 구해가며 가야산의 물이 좋다고 찬탄하였는데 이 가야산이 주례동 동쪽의 가야리 뒷산이며 이 산의 다용수가 바로 냉정동의 물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현재는 도시로 개발되어 대규모 학교와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지하수가 오염되고 물의 성분이 달라져 주민들의 빨래터로 이용되고 있으며 사상구에서는 1999년 샘터를 새롭게 정비하고 정화사업을 펼쳐 깨끗이 단장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