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기 국제문단 신인상 심사평
침묵은 ‘참음’이요 ‘다짐’이며 ‘발원’이다
시인, 본지심사위원 조남선
시대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면 존재할 수가 없다. 현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본래 그렇다. 모든 존재 자체가 변화무쌍한 무상의 진리 속에서 움직여지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거스르려 들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고 역반응이 생겨 화를 당하기 마련이다. 선조들께서는 그 이치와 도리를 잘 깨달아 생활에 반영하고 자연에 적응하면서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다. 특히 선각자(先覺者)에게는 그러한 중심에 오랜 침묵이 존재해 왔다. 침묵은 ‘참음’이요 ‘다짐’이며 ‘발원’이다. 조상들의 삶이며 오늘날의 부모와 자식들 간의 일도 전혀 다르지 않다. 오로지 연속 침묵의 기도로 성취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유지하다 생을 마친다. 그 자체가 진리이다.
모진 고난과 설움이 인생을 반전시켜주는 영화 같은 사건들도 많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상황으로 몰락하는 경우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기록만 남아있다면 오늘날 문학과 영화산업이 발전하면서 실제와 같이 재현해 보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정서와 효심이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의 순수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왜 그런가? 2020년 국제문단 시 부문에 응모한 류 성주님의 시를 살펴본다.
“낭자머리 이야기”
류 성주
“ / 아이야, 할머닌/열일곱 나이에 시집 올 때/ 탐스럽고 윤기 흐른 댕기머리 풀어/ 옥비녀 꽂았더란다/ 종갓집 맏며느리가 뭔지도 모른 채/ 이른 새벽 아궁이 불 지피며/ 옷고름 소맷귀로 코눈물 훔쳤더란다/ 삶의 흔적들 늘어만 가고/ 빛바랜 은비녀 손자 노리개로 내어주며/ 아들 딸 며느리 둘러앉히고서야/ 낭자머리 예순 해를 돌아보았단다/ 아이야, 병석의 팔순 할머닌/ 머리숱 헐렁해진 흰머리 낭자/ 거추장스러워 단발 했단다/ 종부의 영혼을 내려놓았단다/ 밋밋해진 할머니 뒷모습이/ 이쁘기도 왜 그리 쓸쓸하기도 한지/ 금비녀 하나 받지 못한/ 할미 인생 이랬노라 시위한 것 같아/ 아빤 눈물 찍었단다./”
100년도 채 못사는 인생사 돌아보면 누구나 자기설움에 눈시울을 적신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고, 또 자식의 자식까지를 미뤄보며 가시밭길 인생사를 파노라마처럼 그려보기도 한다.
류 성주님의 수작(秀作)은 역시 위에 소개한 “낭자머리 이야기”다. 어렴풋이나마 동 시대를 거쳐 살아오면서 어머님의 일생과 부족했던 부모와 자식 간의 상호 도리를 반추(反芻)해 미래세대에게 까지도 귀감이 될 의미 깊은 詩라 하겠다. 당선작으로 채택한 두 작품 “어머님, 당신이 계시옵기에” “당신을 그리는 까닭은” 등 모두 어머님을 그리는 자식의 애절함을 강하게 그리고 있다. 자유 산문시로서 내용적으로 약간 길다는 특성이 있으나 반복하여 읽고 또 읽어도 진부하거나 지루함이 없어 깔끔하다. 류 성주님의 다수 응모작품 중에서 위 세 편을 심사위원 전원의 의견일치를 보아 2020년 <국제문단> 제24기 ‘여름 호’ 운문 부 신인상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진심으로 축하하며 류 성주 작가님은 수필과 시 부문 두 장르를 섭렵하여 국제문단의 선봉장이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심사위원 : 시인 이상진, 소설가 윤형복, 시인 조남선
제24기 운문 부(시) 신인상 당선작
낭자머리 이야기
류성주
아이야, 할머닌
열일곱 나이에 시집 올 때
탐스럽고 윤기 흐른 댕기머리 풀어
옥비녀 꽂았더란다
종갓집 맏며느리가 뭔지도 모른 채
이른 새벽 아궁이 불 지피며
옷고름 소맷귀로 코눈물 훔쳤더란다
삶의 흔적들 늘어만 가고
빛바랜 은비녀 손자 노리개로 내어주며
아들 딸 며느리 둘러앉히고서야
낭자머리 예순 해를 돌아보았단다
아이야, 병석의 팔순 할머닌
머리숱 헐렁해진 흰머리 낭자
거추장스러워 단발했단다
종부의 영혼을 내려놓았단다
밋밋해진 할머니 뒷모습이
이쁘기도 왜 그리 쓸쓸하기도 한지
금비녀 하나 받지 못한
할미 인생 이랬노라 시위한 것 같아
아빤 눈물 찍었단다.
제24기 운문 부(시) 신인상 당선작
어머님, 당신이 계시옵기에
류성주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문 나서는 애들 향해
“찻길 조심 하거라."
걱정하는 손주 있어
당신은 행복하시겠습니다
불혹 나이 넘긴 자식에게도
조심운전 당부 잊지 않으시더니
이젠 손자들에게로
대물림 걱정이시네요 그려
환갑 나이에야
조상님 제(祭)올리는 종헌관이 되고서
“저도 이렇게 되었나요."
겸연쩍어 하는 자식 있어
당신은 행복하시겠습니다
어느 뉘가 당신을
다 늙어 빠진 할메라 부르더이까
지금도 자식 손자 염려하는 처지인 것을
어느 누가 당신을 꼬부랑 망구라 하더이까
귀밑머리 희끗해진 자식과
버젓이 함께 하거늘
부모의 내리 사랑에 비해
자식은 어설프기만 한 부모 공경
오늘도 서로서로 기댈 언덕이라서
흐뭇한 마음 가득 안고
이른 밤 자리에 듭니다.
제24기 운문 부(시) 신인상 당선작
당신을 그리는 까닭은
류성주
당신이
이 여름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함은
땀의 결실을 이해하고 소중하게 여미는
태생의 계절인 까닭입니다
벌써 가을걷이를 염두에 두며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이듬해 봄 잉태할
새 생명의 씨앗 까지도 갈무리 하는
지향적 삶을 실천하는
덕목이 숨 쉬고 있는 까닭입니다
어느 뉘가
곁에 있든 아니든
보든 말든
묵묵히 밭 갈고 김매며
비갠 후 단내 나는 머릿수건 고쳐 두르며
앞뒤 텃밭에서
자연의 섭리를 주섬주섬 꿰어 담는 까닭입니다
이미 당신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충만 된 세속의 현인인 까닭에
그래서 사랑이고
하여 아리기만 한 사랑입니다.
제24기 국제문단 신인상 당선 소감
우연일까? 필연의 과정이 먼저이었을까?
지난달 만우절 이른 아침 울린 전화기를
끌어 잡는 순간 불길함이 엄습한다.
거짓 같은 현실이 전화기 너머로부터 맏형님
음성이 건네진다.
“아우야, 어머님께서 93세의 생애로 영면하셨다."
낭자머리 이야기는 13년 전으로 거스른다.
팔순 생일을 병석에서 맞이한 어머님은 조촐하게
준비한 음식을 환우들과 나누며 “어미야, 내 낭자 좀
잘라주라. 침대 아래로 자꾸 떨어져 거추장스럽다."
딸, 며느리 앞세우더니 빛바랜 은비녀가 맏며느리
손에 쥐어진다.
어머님을 떠나보낸 후 스친 생각 하나,
어머님을 영원히 기리는 것!
해묵은 시상 노트를 꺼내 망설임 없이 탈고하여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응모했다.
그리고 며칠 후 신인 당선 축하와 당선 소감문 제출 통지문이 답지한다.
어머님의 생전 모습이 금세 떠오르자 가녀린 떨림과
울림이 촉촉합니다.
못다 한 불효를 할 수 있게 야무지게 일어서는 일!
그 작은 응모의 동기를 졸작의 행간에서 찾아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가슴 여며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또한 <국제문단> 경향 문우님들과 운문
부문에서도 알현할 앞으로의 날들에 가슴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삶의 무게에 무디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위로와 희망만의 시계가 아니길 바라고 다짐도 곁들입니다.
류성주 : 2008년 국제문예 수필부문 신인상 등단, (사)한국문인협회원,(사)한국저작귄협회원
역임: 국제문단문인협회 수석부회장, 한국육필문학회 홍보이사
계간 「국제문단」편집위원
공저:「우리 꿈을 향한 불꽃」「둥지를 날다」「하얀 태양」
「내 마음은 공사 중」등
수상:제27회 국민독서경진대회 서울시 예선
편지글 부문 최우수상(서울시장상.2007)외 1
행정안전부장관상 국민독서진흥(2008)
제2회 국제문학상 산문부문 수상(2015)
현재: 영등포구 기록물 평가위원회 심의위원
영등포구 마을공동체위원회 심의위원
문래동주민자치회 자치회관 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