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베르탱은 근대 올림픽 창시자로 추앙받고 있지만 여성 스포츠인들은 좋아하기 힘들다. ‘여자는 경기하지 말고 구경이나 하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1800년대 말이라는 시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여성의 능력이나 역할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임에 틀림없다.올림픽만 보더라도 현재 남성 전용 종목은 거의 없다. 복싱 등 극히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대부분 남녀 세부종목으로 나눠져 있다. 배드민턴 혼합복식 등 혼성 종목도 있고, 승마는 남녀 구별없이 경쟁한다. 그 비중이 남자와 거의 똑같다. 우리나라도 학교 체육을 통해 여성 스포츠가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여자선수들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종목별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에서 남자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림으로써 국위선양의 기수가 됐다.1970년대 GAISF 사무총장이며 세계역도연맹 사무총장이었던 오스카 스테이트는 한국의 스포츠에 대해 “여자가 남자보다 잘 하고, 몇 개 종목에 한정된 소수 정예주의다. 북한에는 꼭 이겨야 하며 일본에게는 덜 져야 한다. 올림픽 개최는 꿈도 못꾸고, 아시안게임이나 한 번 치렀으면 한다”고 했다.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해방 후 첫 금메달을 땄으니 스테이트가 거의 정확히 분석했다고 본다.검정치마를 입고 전국체전에 출전하던 여성 선수들은 큰 지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한국여성 특유의 부지런함과 악착스러움을 바탕으로 일취월장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올림피안은 48년 런던올림픽 포환던지기에 출전한 박봉식(이화여대)선수였다. 아깝게 너무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67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박신자 김추자 김명자가 주축이 된 한국여자대표팀은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고 은메달의 영광을 차지했다. 당시 유엔대표부에서 근무하던 나는 이들 일행이 귀국길에 뉴욕에 들렀을 때 삼복정이란 한국음식점에서 한식을 대접할 기회가 있었다. 1년 뒤 박신자는 청와대의 지원을 받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의 체육대학에 유학했다. 박종규 경호실장 집에서 송별회를 하는 등 지금의 박태환, 김연아에 버금가는 대접이었다.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정현숙 이에리사 박미자가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구기 사상 최초로 세계정상에 올랐다. 서울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면서 열광했던 장면이 생생하다. 72년 뮌헨올림픽에서 아깝게 4위에 그쳤던 여자배구팀은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드디어 동메달을 땄다. 남녀 통털어 한국의 구기종목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준결승에서 당시 세계최강인 일본에는 졌지만 동독, 폴란드, 쿠바를 상대로 잇따라 역전승을 거뒀던 감격이 새롭다. 여자배구는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했었다. 조혜정, 유경화, 유정혜,변경자 등이 맹활약했는데 유경화는 내가 결혼 주례를 하는 기쁨도 가졌다.김운용
[출처] 96. 한국의 여성 스포츠(상)|작성자 동방불패 김운용
한국의 여성 스포츠(중) 올림픽30년, 태권도40년
2010. 8. 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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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97. 한국의 여성 스포츠(중)
2009.01.12 01:30 입력 / 2009.02.02 01:11 수정
서울올림픽 유치 성공한 뒤 본격 선수 육성여고생 궁사 서향순부터 올림픽 금맥 캐기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한 여자핸드볼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여자핸드볼은 서울 대회에 이어 2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한국 여자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올림픽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1981년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 아래 선수들이 육성됐고, 84년 LA 올림픽부터 꽃을 피웠다.양궁 여자개인전에서 서향순이 우승, 한국 여성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모두 세계선수권 7관왕 김진호의 금메달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승리의 여신 니케는 여고생 서향순에게 미소를 보냈다. 올림픽 금메달은 역시 임자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박찬숙·김화순·최경희 등이 활약한 농구와 윤병순·성경화 등이 이끈 핸드볼은 나란히 은메달을 땄다.한국 구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은 여자핸드볼이 차지했다. 88년 서울 올림픽이 무대였다. 수원에서 열린 소련과의 결승전. 누구도 한국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신장이며 체격이며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여자선수들은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기어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미나·기미숙·박현숙·성경화·김현미·김명순·김경순·석민희·김춘례·한현숙·이미영·이기순·임미경·김영숙·송지현. 자랑스러운 이름들이다.서울 올림픽 땐 탁구에서도 여자복식 양영자·현정화가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어 첫 금메달을 따냈다. 또 여자하키는 값진 은메달을 획득, 한국 여자구기가 세계 정상 수준에 올랐음을 보여줬다.여자핸드볼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올림픽 2연속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는데 마침 새로 선출된 IOC 부위원장 자격으로 내가 시상을 하는 영광을 누렸다.한국 여자양궁은 84년 LA올림픽 이후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단체전은 여유 있게 우승했으나 개인전에서 박성현 선수가 중국선수에게 져 금메달을 놓친 게 아쉽다.여자선수들은 유도와 태권도 등 격투기에서도 메달 행진을 계속했고, 배드민턴에서도 단식과 혼합복식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특히 중국이 절대강세인 여자역도에서 장미란이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다.겨울올림픽 종목에서 여자선수의 활약상은 훨씬 뒤에 나타났다. 시설도 열악했고, 선수층도 얇았다. 이남순·유선희 선수가 빙속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92년 알베르빌 올림픽부터 쇼트트랙이 정식 종목으로 되면서 단숨에 세계 정상의 실력을 과시했다. 전이경 선수는 올림픽에서만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원혜영·김소희·김윤미·안상미·최민경·주민진·진선유·고기현 등이 뒤를 이었다. 지금은 피겨스케이팅에서도 김연아 선수가 세계 정상급 실력을 과시하면서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올림픽 종목은 아니지만 골프에서 한국 여자선수들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다. 박세리·김미현·박지은 등 1세대 선수들에 이어 이른바 ‘박세리 키즈’라고 불리는 신지애 등 2세대 선수들이 미국 LPGA 무대를 석권하고 있다.김운용
[출처] 97. 한국의 여성 스포츠(중)|작성자 동방불패 김운용
한국 여성스포츠(하) 올림픽30년, 태권도40년
2010. 8. 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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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98. 한국 여성스포츠(하)
2009.01.13 00:53 입력 / 2009.01.13 01:28 수정
여성 체육인 격려하려 윤곡상 제정박신자부터 김연아까지 45명 수상
2007년 윤곡상 시상식 때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함께.
IOC의 방침은 여성스포츠를 남성스포츠와 동등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수뿐 아니라 각종 국제단체에 여성 임원의 진출이 활발하다. IOC에서는 여성 위원은 물론 여성 집행위원, 여성 부위원장도 탄생했다. 승마·하키·배드민턴·스쿼시 등의 국제경기연맹에서도 여성 회장이 나왔다. 각국 올림픽위원회(NOC)에서 여성이 위원장을 맡는 경우도 많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의 조직위원장도 여성이었다.그러나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여성에 대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체육계 임원 진출이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여자 선수들이 남자 선수보다 더 많이 국위를 선양했지만 행정적으로는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한양순· 윤덕주·신민자·조정순·조경자·권윤방·홍양자·이덕분 등이 그나마 체육회 부회장이나 선수단 부단장을 맡아 한국 여성스포츠를 대표했다.보조 역할에 그치던 여성 스포츠 지도자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탁구선수 출신인 이에리사가 태릉선수촌장이 됐고, 정현숙과 이덕분은 선수단 단장을 맡아 여성 파워를 과시했다. 한국의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자기 희생을 통해 국위 선양을 했지만 그 보상과 영예가 남자들에 비해 미흡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이들에게 직업을 주선하고, 생활보장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마침 서울올림픽이 끝난 이듬해인 1989년 고(故) 한양순 회장이 여성스포츠회를 맡고 있을 때 IOC 위원인 나는 아호 ‘윤곡’을 따서 ‘윤곡 여성체육대상’을 창설했다. 남자 스타에게 주는 상은 백상스포츠대상 등 몇 개가 있으나 여자 선수만 대상으로 하는 상은 윤곡상이 유일하다. 각 경기단체에서 추천을 받아 선정위원회가 결정하는데 처음에는 한 명만 줬으나 94년 최우수선수상을 신설하는 등 지금은 5개 부문으로 늘어났다. 여성스포츠회가 상패를 주고, 내가 개인적으로 상금과 메달을 수여한다. 2008년이 꼭 20년째였는데 제1회 수상자가 농구의 박신자였으며, 제20회 최우수선수상은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가 받았다. 20년 동안 윤곡상 수상자는 모두 45명으로 이 중에는 백옥자·이에리사·정현숙·현정화· 정성숙·김경욱·전이경·오영란·이은경·라경민·김계령·윤미진·장미란·남현희·이효정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여자 선수가 망라돼 있다. 특히 ‘아시아의 마녀’로 불렸던 포환던지기의 백옥자와 여자농구대표팀의 김계령은 모녀가 차례로 윤곡상을 받았다. 더 많은 여성 스포츠 스타가 더 큰 영광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많은 여성 지도자가 배출돼 한국의 스포츠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줬으면 좋겠다. 이 글을 통해 그동안 자기 희생으로 나라의 이름을 세계에 빛낸 모든 여자 임원·감독·선수에게 무궁한 경의를 표한다.김운용
[출처] 98. 한국 여성스포츠(하)|작성자 동방불패 김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