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희어서 돌아올 곳은 두들…‘從心’의 귀향 반겨줄 文宇
![]() |
소설가 이문열이 집필실 겸 문학 연구와 후학 양성을 위해 세운 ‘광산문학연구소’. 일반적인 문학관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입구 현판에는 ‘광산문우(匡山文宇)’라 적혀 있다(작은 사진). |
그 땅의 처음은 화산의 분화구로 추측된다. 귓불처럼 도드라졌던 화구의 가장자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못 판판해져 한눈에 언덕의 모양새가 된 듯하다. 그래서 언덕을 뜻하는 지역말로 ‘두들’이라 했다. 두들은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이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다. 갓난아기 때인 1950년부터 햇수로 3년, 그리고 10대 시절인 1962년부터 햇수로 2년이 다만 짧은 거주의 기억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 곳곳에서 비장하리만치 깊은 자부심으로 묘사되는 두들은 언제나 그의 고향이었다. 2001년 그는 두들에 서재이자 집필실이고 동시에 사랑방인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다. ‘광산문학연구소’다. 입구 현판에는 ‘광산문우(匡山文宇)’라 적혀 있다. 그것은 꼭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 혹은 ‘내가 돌아갈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1. 광산문학연구소 또는 광산문우
긴 돌담 속에 큰 대문간, 그 속에 작은 대문이 열려 있다. 대문 속으로 단 낮은 집필실의 오른쪽 가장자리와 단 높은 강당의 왼쪽 가장자리가 한 칸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하다. 통로 앞에는 짧은 담이 서 있어 이어질 것 같은 걸음을 슬쩍 감춘다. 작가의 집필실이라는 것은 저절로 뒤꿈치 들고 기웃거리게 하는 이름인데, 자글거리는 마당길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자글대는 인기척에도 내다보는 얼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둘러보는 마음이 편해진다.
광산문학연구소
이문열 작가가 2001년 자비로 설립
학사·강당·서재·사랑채 등 들어서
“후배를 위한 소설 사랑방 같은 공간”
영양 두들마을
석계 선생이 병자호란때 이주 개척
아내 장계향은 소설 ‘선택’ 주인공
李작가 수많은 작품 속 배경이기도
광산문학연구소. 이문열 작가가 자비로 설립한 문학연구소다. 경내에는 학사, 강당, 사랑채, 서재, 대청, 식당, 정자 등이 ‘ㅁ’자로 들어서 있다. 꽤 큰 규모다. 그는 이곳을 ‘그냥 개인 창작실이고 개인 서재고 후배를 위한 소설 사랑방 같은 공간’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재 이 공간에서는 세미나와 학술토론회, 문학캠프,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문학 관련 행사가 열린다. 일반적인 문학관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작가의 삶과 문학세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곳이다.
그의 현재 거처는 ‘부악문원(負岳文院)’이다. 1998년 경기도 이천의 부아악산(負兒岳山)에 터를 잡은 문원은 그의 집필실이자 살림집이기도 하고, 작가지망생과 문학연구자, 국내외 번역가 등이 머물며 문학 활동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고향땅에 연구소를 지은 후 장서 2만여 권을 내려 보냈다 한다. 일시는 불분명하지만 언젠가 귀향할 것이라는 의미일 게다. 그때가 종심(從心) 때라는 귀띔도 있다. 그는 이곳을 지을 때 일면 서원(書院)을 염두에 두었다 한다. 늙어가면서 젊은 친구들과 함께 글을 이야기하는 공간, 서로 주고받는 강학(講學)의 공간, 내가 더 많이 공부하는 집(宇)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어째서 문우(文宇)인지는 알 듯하다. 그러나 왜 광산(匡山)인지 선명하게 밝힌 곳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다만,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을 생각하며 쓴 시를 떠올린다. ‘광산 글 읽던 곳에 머리 희어서는 좋게 돌아오라(匡山讀書處 頭白好歸來)’. 여기서 광산(匡山)이란, 이백이 글을 읽던 곳을 의미한다. 그에게도 ‘머리 희어서 좋게 돌아갈 곳’이 바로 이곳, 고향이 아니었을까.
#2. 작가의 고향 두들마을
두들마을을 개척한 이는 석계 이시명 선생이다. 선생은 인조 18년인 1640년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선생의 부인은 안동장씨 장계향이다. 그녀는 최초의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집필한 여중군자로 이름 높다. 장계향은 작가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석계 부부는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도토리를 얻을 수 있는 상수리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왜란과 호란으로 궁핍해진 이웃에게 도토리 죽을 끓여 나누었다고 전한다. 두들마을에는 지금도 상수리나무가 많다. 수령 370년이 넘는 고목은 모두 50여 그루에 이른다. 광산문우의 동쪽에는 정부인 장씨 예절관과 전시관이 있고, 남쪽에는 음식디미방 교육관과 체험관, 정부인장씨유적비 등이 있다. 정부인 장씨의 유산은 마을에서 가장 넓게 자리한다.
석계선생의 선업을 이은 이는 넷째아들 항재(恒齋) 이숭일(李嵩逸)이다. 이후 후손들이 더해져 두들마을은 재령이씨(載寧李氏) 집성촌으로 이어져 왔다. 마을에서는 많은 학자와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는데, 조선시대 퇴계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킨 갈암 이현일과 밀암 이재, 근세에 의병대장을 지낸 나산 이현규, 일제강점기 유림 대표로 파리장서사건에 서명한 운서 이돈호, 이명호, 이상호 등의 독립운동가와 항일 시인인 이병각, 이병철 등이 두들 출신이다. 이문열은 항재의 12세손이다.
마을에는 석계선생의 유적인 석천서당과 석계고택, 작가 이문열이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석간고택 등이 남아 있다. 광산문우 옆에는 한옥 북카페 ‘두들 책사랑’이 있다. 이문열의 작품은 물론, 마을 출신 문인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을 앞에는 화매천이 흐른다. 천변에는 수백 년을 넘긴 참나무 고목이 군락을 이루고, 절벽에는 석계선생이 짓고 항재가 새겼다는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 등의 글씨가 남아 있다. 이 중 낙기대는 ‘배고픔을 즐기는 곳’으로 보릿고개로 힘든 주민들을 위해 구휼식량을 배급하던 곳이라 전한다. 정부인 안동장씨 시절부터 시작된 이러한 전통은 광복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이문열의 자전적 소설 ‘변경’에서 열일곱 인철의 회상을 통해 말하는 고향 두들 땅은 ‘감동’이기도 하고 ‘감옥’이기도 했으며, ‘실패의 예감을 자아내던 황무지’이기도 했고 ‘비옥함과 다사성을 감추고 있는 한 넓고 위엄 있는 영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름드리 참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언덕에 오르자 상상 속에서나 그려보았던 덩그런 기와집들이 잇따라 나타나 이미 도회적인 안목으로 내게 느닷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거기다가 그 뒤 사흘 고향에 머물면서 들은 자기 옛 고향의 영광은 그것을 한때의 충격에서 깊은 감동으로 키워 마침내는 뒷날의 내 의식에까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소설 변경 中)고도 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그의 집필실 벽에는 고향집을 스케치한 액자가 걸려 있다고 한다.
#3. 두들광장에 올라
마을의 가장 위쪽에는 넓은 평지가 있다.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는 참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광장을 ‘도토리공원’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하 많은 상수리나무 가지들이 오래된 지붕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저 광경은 또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금시조’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황제를 위하여’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선택’ ‘변경’ 등 그의 수많은 작품 속 배경과 인물의 고향이기도 하다.
먼 동쪽에 보이는 겹으로 솟은 산봉우리 중 하나가 창수령(蒼水嶺)을 감추고 있다. 소설 ‘젊은날의 초상’에서 ‘해발 칠백미터. 나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았다. 창수령을 넘는 동안의 세 시간을 나는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했던 그 고개. 어느 젊은 날의 고된 고갯마루에서 그가 본 것은 아름다움이었다.
두들마을에도 고된 영락의 근·현대사가 있었다. 그 영락 앞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풍화된 화강암 언덕 위에 서식하던 참나무붙이가 당당하던 시절, 늘어선 수십간 고가들이 그림처럼 서 있고, 그 한 곳 서당 대청에서는 낭랑한 강 소리가 울려 퍼지던 시절, 몇 년마다 한번씩 문중 출신의 현관들이 임금의 하사품을 실은 나귀와 종복들을 앞세우고 퇴관해 오고, 가을이면 인근 소작지의 아름드리 거둔 나락바리를 인도하여 분주하게 그 언덕을 오르내리던 시절.’(암포 신문인협회 中)이 있었다고. 그리고 지금이, 다시 그 좋은 시절이 아닌가 싶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경상북도
![]() |
두들마을에 있는 음식디미방 체험관. 음식디미방은 석계 이시명의 부인인 안동장씨 장계향이 집필한 최초의 한글조리서로, 현재 두들마을에는 체험관을 비롯해 전시관, 예절관 등이 들어서 있다. 장계향은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