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데도 새벽부터 일어나 살살살 재봉틀을 돌렸다. 지난번에 언니에게 인견 통바지를 만들어 주었다. 언니는 그거 입다가 다른 건 도저히 못입겠다는 소릴 한다. 조카랑 조카 사위도 같은 말을 한다. 그 소리를 듣고서 가만 있을 내가 아니다. 또 재봉틀 앞에 앉아 다섯 벌째 만드는데 갑자기 진주의 성주사 부부가 생각났다. 그부부에게 누구보다도 먼저 시원한 커플룩 바지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 원옥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수곡 시골집 밭에 나와 있다고. 내일부터 개학준비로 급식소에 나가봐야 한다기에 당장 통 영으로 날아 오라고 했다. 4시 조금 넘어 온다기에 그 사이 커플룩 실내복 바지를 만들었다. 초록색 야자수 무늬가 그려진 인견 7부 바지 두 벌을 누비 손가방 하나랑 같이 포장했다. 선뜻 받는 원옥이의 태도는 간사스럽지 않아 언제나 편하고 보기좋다.
성주사 내외는 내가 진주 수곡초에서 근무할 때 우리 가족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도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시절은 꿈만 같다. 생애에서 가장 평화롭고, 고요했던 무욕의 시간이었다.
벌집 다찌에서 이른 저녁을 대접하려 예약을 하려니 하필이면 오늘이 그 단 하루의 여름 휴가날이란다. 그래서 웰빙 쌈촌에 샤브사브를 먹으러 갔다. 식사 후에는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원옥이를 위해 통영타워 카페 "녘"으로 갔다. 아니나다를까 원옥이의 취향을 저격했다. 건축이나 목공일에 탐구형인 성주사님도 건물이 어떤 구조원리로 회전을 하는지 신기한 듯 요모조오 살펴본다. 한시간 조금 지나니까 거의 한 바퀴를 회전하는 타워카페를 신기해 하며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즐긴다. 사실 나는 차 한 잔값이 7천원 하면 그 집 잘 안간다. 그런데도 성주사 부부가 오면 좋다는 데는 다 보여주고 싶다. 그 부부는 우리 가족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던 사람이니까.
차를 마시고 다시 우리 집으로 왔다. 그 부부가 과일을 먹는 동안 남편은 자기에게 작아진 옷을 모두 챙겼다. 바지 허리 32, 남방이나 티셔츠는 95를 입었는데 배도 나오고 허리도 굵어져 맞지가 않는다. 내가 사 준 옷들이 그대로 남편 옷방에 좌르르 걸려 있는걸 옷걸이 째 내려 이사 가방에 담았다. 성주사는 아직 공직에 있으니까 이래저래 입을 기회가 있을 거니까. 원옥이도 오늘도 우리 집에 온다고 아침에 급히 콩을 삶아 된장을 치대 한 통 퍼담아 왔다. 늘 그 부부는 그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