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우리나라 화물선인 삼호 쥬얼리 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 해군인 청해 부대가 전광석화처럼 작전하여 선원 18명 전원을 구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하는 것 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덴만 작전’ 보다 더 귀한 작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와 사망의 세력에 붙들려 영원히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여 살려낸 것입니다. 그리고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삶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구원은 주님 안에서 사망에서 새 생명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의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마귀와 육체의 종이라는 3가지의 사슬에 매인 종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본문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 죽으면 심판이 이루어지고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인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구원은 주님 안에서 땅에서 하늘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그 영이 죽어 있기에 하나님을 모를 뿐 아니라 세상, 땅에 있는 것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인 돈과 정욕, 권세, 자식, 쾌락 등 삶이 가치나 목적,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세월과 함께 다 지나가고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삶이 허무하고 어려워지게 됩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말한 나폴레옹(1769-1821)은 마지막 귀향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으면서 “괴롭다!” 며 부인 조세핀을 찾다가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늘로 태어난 자들의 나중의 삶은 다릅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좋다. 참 좋다. 저 세상은 아름답구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믿는 자의 죽음은 새로운 세계의 시작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율법에서 은혜의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으면 가장 먼저 눈을 뜨는 것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영어로 ‘grace’, 헬라어 ‘카리스’라는 말을 씁니다. 은혜를 깨달을 때 모든 것이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된다는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 감사와 찬양을 알게 되면서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 세리장 삭개오,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요셉은 다 주님 안에서 구원 받고 율법에서 은혜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은혜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And...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주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도 은혜로 받았기에 삶도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으로 교회의 많은 부서에서 봉사를 합니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하지만 결국 내가 노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잡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원망, 불평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자신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율법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은혜로 한다는 것은 그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또 기도하며 그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시도록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의 그릇이 되어 나를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로 사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시험 들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고, 설혹 좋은 결과를 만나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율법이냐, 은혜냐. 지혜로운 선택으로 날마다 삶에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