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은 일년 열 두달 중 가장 시적인 달 같다. 시월, 詩月......
일하기 좋고 글쓰기 좋고 놀기에는 더욱 좋은 시월 어느 날.
혼자서도 잘 노는 나는 여느 때완 다른 방법으로 고성 동시 동화 숲으로 갔다.
글벗들과 자동차로 갔던 곳 혼자 시외버스 타고 가니, 오롯이 누리는 공간과 시간이 사뭇 즐길만 했다.
그러니까 오늘 컨셉은 낯설게 하기랄까.
친숙한 나머지 못 보고 지나쳤던 삶의 진실을 새롭게 만나게 되는 낯설게 하기는
관습에 무디어지는 걸 경계하는 문학의 본령이기도 하니......

"앗, 고분이네!'
부산 사상터미널에서 고성 가는 버스를 타니 두 시간 뒤 고성 터미널에 닿았는데,
택시로 동시동화의 숲으로 가는 차창 밖에 두둥 나타난 고분군.
두 번이나 왔건만 그전엔 못 봤으니 벌써 '낯설게 하기'의 효용이 작동한다.
소가야 시대 족장 무덤이라는 친절한 기사님. 과연 고성의 기사님답다.

벼 익는 냄새 구수한 누런 벌판 너머 보이는 먼 산자락에 동시 동화나무의 숲이 있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는 달'.
이는 인디언 카이오와족이 10월을 부르는 말이다.
저 산 속에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쫄깃거린다.
도착해 전화하면 태우러 오시겠다 하셨지만 오늘 미션은 낯설게 하기.

들을 지나고 마을을 휘돌아 숲에 들어서니 향기 매운 구절초가 산비탈 수 놓은 사이로
건물과 사람들이 보인다.

잘 오셨습니다. 여기가 동시 동화 나무의 숲입니다.
문득 고금의 현자와 자기 혁명을 이룬 사람은 모두 숲으로 갔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마른 잎 냄새와 바스락거리는 소리, 간간히 툭, 열매 떨어지는 소리 우주를 울리는 가을 숲.
저녁 연기 깔리는 마당에서 반가히 맞고 인사 나누는 사람들 모습이 세상 풍경같지가 않다.

해후의 기쁨 느껴지는 박숙희 선생님과 문삼석 선생님이 그리는 풍경.
옛 그림 속 정경처럼 한 없이 빨려들어 내 마음 머무는 듯.

먼 길 애쓰셨습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환한 표정의 명도와 부여잡은 손길의 온도는 재 보나마나 등온......
진주교대 대학원 이지호 교수님과 한정기 작가님의 풍경화.

연못가 개구리 삼형제도 전국각지에서 오신 손님들을 떼창으로 반겨주었다.


배익천 선생님의 환영사와 정성스레 마련한 거룩한 저녁식사,
"여러분이 계셔서 늘 반갑고 고맙습니다."
상대가 할 인사말을 본인이 하시는 홍종관 선생님의 인삿말 어법에서 짐작되는 인품.

문삼석 선생님. 오른 쪽은 박숙희 선생님. 왼쪽은 정혜진 선생님

"오늘 저녁 이런 국 처음 먹어 본 사람 손 한 번 들어보세요."
노원호 선생님이 지침하신 자긍심 가득한 국은 청도스타일 추어탕.
국을 만드신 예원선생님과 노원호 선생님의 고향이 청도.
이연수 선생님은 두 대접이나 드시던걸요.
노원호 선생님은 문학지 발간 지원에서 푸대접 당한 아동문학 위상에 대해 언급하시며
좋은 작품으로 자기 입지를 당당히 굳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진주교대는 특이하게 아동문학창작과를 개설했다는데, 평론도 하시는 이지호 교수님이 대동한
꽃미남 꽃미녀 제자들이 밤늦도록 도우미와 기쁨조로 기여해 고맙고 흐뭇했다.
파란색 커플웨어는 인천에서 오신 최지영 동시인님과 부군.
사진 찍고 탁자와 의자 정리하시는 등 잘 생긴 서방님의 외조가 돋보였다.

"잘 쪼고 있습니다. 계속 쪼겠습니다."
열린 아동문학 미술 편집인이신 이영원 선생님.
처음 도착해 인사 나누고 주변을 둘러 볼 때, 어디선가 들리는 기계음 따라 가 보니
계곡의 정자 옆에서 어스름해지도록 돌을 쪼고 계셨던 분.
작업하실 때의 빨간 점퍼 벗고 노란 점퍼로 갈아입으셨다.
열린 아동문학 표지 그림을 그리셨고 열린 아동문학상 상장도 선생님이 제작하신 수제 상장.


요즘 동시공부 하신다는 고성 군청 송정욱 과장님.
권하시는 저 술은 내 생애 처음 맛 본 꾸지뽕 막걸리. 예쁜 살구색에 먼저 반했고 맛도 그만이었다.

우리는 5.18문학상 수상 동기입니당.
부산의 한정기 선생님과 동시집 '떡볶기 미사일'을 내신 서울에서 오신 김영 선생님.

가을호에 실린 동시 '백두산에 곰 놓아주기'의 전병호 선생님과 동화의 이연수 선생님.

서울에서혼자 버스 타고 오셨다는 이연수 선생님은 나랑 룸메이트.
동화구연 하다가 동화를 쓰게 됐다는데 밝은 성품과 높은 친화력이 여러 사진에서 엿보였다.




이야기하고 귀 기울이고 술잔도 기울이고 마음도 기울이며 숲속의 가을 밤이 깊어간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 공감하고, 술과 노래와 웃음으로 공명하며
영감을 주고 받았는데(작가에겐 오로지 영감만 필요, 할멈은 무용)
원통하게도 그 밤의 끝까지는 못 가고 새벽 세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록을 소진하면서 절정에 도달한 나무들이 붉은 열매로 빛나는 아침.
아침 산책길에 만난 참나무, 먼나무, 삼지 닥나무, 덜꿩나무, 비목......
그리고 무수한 나무들.

전설의 글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아름다운 돌. '원숭이 꽃신'의 작가님.

샘물 한 잔 마시고 왼손을 머리에 얹고 잔을 털며 "앗쭈구리!" 외치면
글샘 기운 받는다고 어제 저녁 열심히 연습한 분들이 아침 산책길로 잡은 글샘 오솔길.

아침 산책에 나선 선후배 작가님의 미소가 쑥부쟁이보다 아름다워라.

내려 가는 길에 상수리도 줍고

실크스카프와 상수리


평소에 불면 있는 분, 두통 있는 분, 늦게 잠자리에 든 분 등 모두 꿀잠 자고 맑은 기분으로
일어났다고 신기해하며 힐링체험 나누며 아침밥 달게 먹었다.

헤어지기 아쉬워 이리저리 인물 조합하며 사진촬영 중.

저는 찍는 사람을 찍습니당. 그러니 언제나 뒤를 조심하라구요.


뒤를 조심하라니께요.

행복하고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가면서 드세요. 소쿠리에 담긴 인정, 떡과 과일.

갈까부다 갈까부다. 가을 산에 울려퍼지는 한정기 작가님이 열창한 '쑥대머리.

차 시간 남은 분들은 쑥부쟁이 머리에 꽃으며 놀이 중.
그러니까 이 분들이 방방곡곡 조합의 꽃놀이패렷다.

"고성 공룡 발자국이 인기 좋다던데 우리도 남기자."
주방 앞에 찍힌 귀여운 고양이 발자국을 보니 저절로 떠오르는 판타지.

자정향실에서 바라보이는 산봉과 치유의 약수 등 빼어난 이곳 지형에 대한 배익천 선생님
말씀 들으니 마음속에 어휘 하나가 떠올랐다. 인걸지령.
걸출한 인물이 신령스러운 땅을 만드는 법.
터를 잡고 큰 포부로 힘든 역사 하시는 세 분이 계시길래 이 곳이 신령스러워지는 거라는 걸
새삼 확인한 시간이었다.
첫댓글 보기 좋습니다. 풍성하고 아름답습니다.
멋져요 가을이 한가득입니다요
네년봄 뉴스특보!...동시숩 다름쥐가 모두 굶어 사망!.......알고보니
00기작가님이 지난가을 도토리를 싹주워갔다고 함..........ㅎㅎㅎ 작가들의 상상에 ......ㅎㅎㅎ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