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5 주일설교
복 있는 사람(5)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
요한계시록 20:4~6
1. 시작하는 말
어제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양궁 선수 김제덕과 안산 혼성팀이 금메달을 땄습니다. 화살은 매회당 두 발씩 주어집니다. 그래서 한번 실수하면 다음에 만회할 수 있고 내가 실수해도 파트너가 만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오로지 한 번뿐이며 만회할 기회가 없기에 단번에 잘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잘 사는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박사들이 나와서 토론을 하거나 국민투표에 붙인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잘사는 인생이 무엇인지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1970년대, 제가 어릴 때는 부자로 사는 것을 잘산다고 했습니다. 가난했던 그 시절, 보리밥을 먹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면서 잘사는 집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아침마다 울려 퍼지는 음악을 따라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노래하며 허리를 졸라매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잘산다는 말은 사라지고 웰빙(Well-being)이라는 콩글리쉬가 등장했습니다. 그때부터는 배부르게 먹기보다 분위기 좋을 곳에서 맛있는 것, 예쁜 것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먹는 것에 여유가 생기자 무농약, 친환경 식재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우리 국민은 누구나 자가용이 있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졌고 국내 휴가는 물론이고 코로나19만 아니면 당장이라고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모두 잘살고 있을까요? 지금 우리 국민들은 모두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과연 무엇이 잘사는 것이며 무엇이 복된 인생일까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을 잘 살고 복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 역순으로 해답 찾기
여러분 앞에 두 가지 길이 있다면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답은 역순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로 예를 들어볼게요.
어린이들에게 미로찾기 그림을 주면 순진한 아이들은 연필을 들고 그어가며 길을 찾느라 고생합니다. 하지만 영악한 아이들은 도착지점에서 시작해서 역순으로 단숨에 길을 찾아 버립니다. 사다리타기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첨에서 출발하면 몇 번을 선택해야 당첨되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인생이 잘 사는 인생, 복된 인생인지 알려면 이쪽에서만 인생을 바라보지 말고 저쪽에서 확인해보면 쉽게 정답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출발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인생을 살펴보면 무엇이 잘사는 인생인지, 무엇이 복된 인생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3. 해답집에 대한 상반된 태도
그런데 사람은 아무도 인생을 역순으로 살아볼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리 역순으로 살펴보고 무엇이 정답인지 가르쳐 주는 설명해주는 해답집을 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인생살이에 대한 해답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고, 해답집이 없어서 방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생에 대한 해답집을 받은 사람 가운데 그 해답집을 거부하고 자기 실력으로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우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해답집을 가진 사람 가운데 소수만이 해답집이 가르쳐 주는 정답을 따라서 복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해답집을 가지고도 그 해답을 거부하는 이유는 아무리 봐도 해답집이 말하는 해답이 정답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해답집에서 말하는 잘 사는 인생길은 좁고 괴롭고 힘들고 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소수의 사람들은 왜 그 좁고 힘들고 망할 것으로 보이는 길을 믿고 따라갈까요? 그 이유는 해답집을 주신 분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인생길의 해답을 주신 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넓은 길은 사망의 길이며 좁은 길은 생명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 예수님은 인생의 미로 전체를 아는 분입니다. 사실은 인생의 미로를 설계하신 분입니다. 인생길을 이렇게 헷갈리게 설계하신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이 예수님을 신뢰하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4. 좁은 길이 더 힘든 이유
우리가 예수님을 신뢰하고 좁은 길을 선택했는데 우리 주변의 사람들 때문에 이 길은 더욱 힘이 듭니다. 사람들은 자기와는 다른 길을 가는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왜 자기와 다른 길을 가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할까요? 만일 우리가 맞으면 그들은 틀린 것이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확신에 차서 이 길을 가니까 우리 길을 버리고 자기네와 같은 길로 오라고 압박합니다.
더 큰 이유는 사탄 때문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을 괴롭히라고 세상 사람들을 부추깁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예수님의 길이 진짜 복된 길일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달콤한 말로 유혹도 하고 험악한 말로 협박도 합니다. 우리의 좁은 길에 가시를 깔고, 함정을 파며, 권력을 이용하여 박해를 합니다. 때로는 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신자 가운데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해가 무서워서 믿음의 길을 떠나는 배교자도 생깁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고난을 감수하며 꿋꿋하게 예수님의 길을 갑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명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천성 길을 버리고 죄에 빠진 자들을
예수 영접하시기 어찌 감사 안할까?
5. 길을 재확인하라
사람이 그냥 세상을 사는 것도 힘들고 예수님 믿으면서 말씀대로 사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는다고 잡아가고 가두고 때리고 믿음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죽이자 신자들 가운데는 이런 박해를 받으면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맞는 것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생깁니다.
사도 요한의 시대에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극심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버렸고 지도자를 잃은 신자들은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요한 자신도 신자들에게 천국 소망으로 이기라고 말하기에 지치지 않았을까요?
이처럼 좁은 그 길이 정답이 맞는지 헷갈리는 사람들을 붙잡아 주는 특효약은 그 길을 재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먼저 그 길을 통과해서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어느 주일에 혼자 예배를 드리는 요한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찬란한 모습이었고 무시무시한 심판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예수님이 이 세상 세력을 심판하실 모습과 하늘에서 신자들에게 주실 상급을 보여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순교한 신자들과 고생하다가 죽은 신자들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 복된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인지 7번 말해줍니다. 그 가운에 오늘 주신 말씀은 복 있는 사람, 다섯 번째 말씀입니다.
6.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
다섯 번째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입니다. 첫째 부활이란 무슨 뜻이며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은 왜 복 있는 사람일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신자와 불신자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음 도표를 보세요.
신자는 육체적 죽음 후에 첫째 부활을 하여 낙원에 갑니다. 반면에 불신자는 육체적 죽음과 함께 음부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첫째 사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첫째 사망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신자는 육체가 부활하여 완전하게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갑니다. 이는 둘째 부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둘째 부활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반면에 불신자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육체와 영혼이 함께 영원한 불못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7. 무엇이 복된 인생인가?
예수님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복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말은 영원한 불못, 지옥에 끌려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믿음을 지킨 여러분은 저절대로 지옥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여기서 천년이란 숫자적인 개념이 아니라 완전의 개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히 왕 노릇을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살 때 신자는 좁은 길, 험한 길로 가며 손해도 보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만 신자나 불신자나 죽음은 같지 않습니다. 신자의 죽음은 첫째 부활입니다. 둘째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죽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8. 마치는 말
여러분, 우리가 몇 년이나 살다가 죽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누구나 한번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인생은 연습이 없고 재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복된 인생으로 판결을 받도록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순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해답을 따라 좁은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복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할 여러분은 사람들의 압력이나 죽는 병도 아닌 코로나19가 무서워서 쉽사리 예배를 포기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