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에 비례해 복을 주시지 않는 이유는? / 김지영
지난 추석 때의 일이다.
연휴 마지막 날 전해진 한 건의 교통사고 뉴스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폭우가 내린 남해고속도로에서 SUV 차량 한 대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차선을 벗어나 언덕으로 올라갔다. 뒤따라오다 이를 본 의사 이영곤씨(61)는 급히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사고차량으로 달려갔다. 운전자는 다행히 큰 부상이 없었다. 이씨가 운전자 상태를 이모저모 확인한 뒤 자신의 차량으로 돌아가 승차하려는 순간, 뒤에서 오던 차가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이씨를 들이받았다. 이씨는 한 시간 뒤 숨졌다.
사고소식이 알려지자 그를 알고 있던 이들은 안타까움에 발을 구르며 입을 모았다. 경남 진주에서 30년 동안 내과의원을 운영했던 이씨는 어떤 환자라도 차별 없이 다정하게 대했을 뿐 아니라 사정이 어려운 환자들에겐 무료진료를 했다. 또 오랫동안 교도소 수용자 진료를 맡아했고 지역장학금도 기꺼이 쾌척을 했으며 드러나지 않은 봉사도 숱하게 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사연을 듣는 이들은 절로 허탈해지며 이런 말을 한다. “참,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선행을 하는 이들에게 복을 주시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큰 화를 주실 수 있느냐는 항변이다. 사실, 일일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선행과 양심적인 삶을 산 이들이 비참하게, 또는 억울하게 화를 당하는 일들은 일상사처럼 많이 발생한다. 죄 없는 사람들이 끔찍하게 희생당하는 일도 너무나 많다. 세월호 참사도 그렇고,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한 유다인 학살도 그렇다.
그것이 세상의 모습이며 인간의 역사이다. 세상은 천국이 아닌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말하면, 인과응보가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는 곳이 현세다. 만약 사람의 선행과 악행에 대해 정확하게 셈을 해서 그 산출결과대로 대가가 주어진다면 이 세상에는 선행을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선행을 하는 대로 그에 비례해 복이 쏟아지는데 누가 선행을 하지 않겠는가.
선행과 악행에 대해 인과응보 원리가 정확하게 적용되는 곳이 이 세상이라면, 성공·출세·치부·건강·장수를 누리고 있는 이들은 모두 선행을 많이 한 대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개중에는 선한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한 이들도 많지만, 오히려 약삭빠른 처세나 악행으로 현재의 성과를 달성한 이들도 많다. 특히 물질적 교환가치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자본주의체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는 하느님이 무심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일과 하늘의 일은 그 기준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꾸짖은 적이 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느님의 일에 대해 마태오 복음(5,45)을 인용하자면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하느님의 일이란 ‘차별 없이 베푸는 완전한 사랑’임을 역설하는 대목이다. 아침부터 일찍 나와서 일을 한 일꾼이나 늦은 오후부터 일을 한 일꾼에게 똑같은 품삯을 지급하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장)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인과응보는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윤리 기반이다. 또 자신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비는 기복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하지만 선행을 하면서 그에 비례한 보상을 받고자 미리 셈을 해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하느님의 나라 그 자체를 위함이어야 한다는 게 예수님의 메시지다.
그런 점에서, 보상은커녕 극형이 따를 줄 알면서도 믿음의 길을 갔던 순교자들은 위대한 신앙인이다.
‘하느님의 진리는 변하지 않으려니와’ 이 세상에서 종교도, 신학도 그 패러다임은 발전해왔다. 또, 그렇듯 신앙의 발상지는 전환·발전을 해도 오히려 주변부는 근본주의를 고수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제는 인과응보론의 재래식 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흐름이 대세다. 또 ‘기복’이 자연스러운 본능이라 하지만 새 흐름에서는 갈수록 ‘남에 대한 배려’, 즉 이웃사랑을 강조한다.
사실 새 흐름은 그 모두가 당초부터 예수님이 강조했던 ‘오래된 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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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냐시오)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