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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동안 성경을 읽고 들어도 처음 접하는 내용이 많을 것입니다. 사람의 구원과 생명이 걸린 성경 말씀이므로 진위 여부를 눈을 뜨고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버지가 되려면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지니라(창 17:4)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열국 백성들을 구원하실 메시아가 오실 가계(家系), 곧 씨(혈통)와 땅(기업)을 잇는 계보를 기록한 책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을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게 하여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횃불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종살이를 마치고 4대가 400년 만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창 15:16,17). 아브라함에게 씨와 땅을 주어 그 씨의 수를 많게 하고, 땅의 지경을 넓혀서 한 나라를 이루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처럼 그 언약은 아브라함이 여러 민족의 아비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씨와 땅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씨와 땅이 더 크게 번성하여, 이 지구촌 모두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도 씨와 땅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메소포타미아는 가나안 땅보다 더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아버지 집과 고향을 떠나도록 불러내셨습니까? 그것은 갈대아 우르는 그들이 발을 딛고 사는 땅이 하나님이 주신 줄 모르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주인, 곧 우상을 숭배하는 씨가 사는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새로 주실 가나안 땅은 빈 곳이 아닙니다. 거기에도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땅을 두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십니까?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곳은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중동의 화약고”라고 불릴 만큼 민족 갈등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는 지역이 되게 하셨나 말입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도 갈대아 우르 사람들처럼 사악하고, 탐욕을 부추기는 바알 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음란을 즐기고, 물질의 풍요를 추구하며, 아이까지 제물로 바치는 바알 신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바알 신의 가르침대로 사람과 땅을 상품처럼 여기고, 소유하고 팔고 사며, 이를 생활화한 족속들입니다(창 23:13, 49:32). 그래서 바알 신을 섬기는 가나안 족속들의 씨와 땅을 전멸시키고, 그 땅에 하나님만 섬기는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새로운 씨를 주고, 새 땅을 개척하여 새 나라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가나안 땅에서 세워진 새 나라를 바탕으로 하여서 세계 열방으로 나라를 확장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 손자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있으나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좋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한 씨와 땅에 대한 믿음과 순종은 나약합니다. 이 말은 족장들이 신앙생활은 그런대로 잘 하는 편이지만, 생활신앙이 나약했다는 뜻입니다. 야곱을 보아도 야곱은 장자권과 물질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생활신앙도 강해 보이지만, 실제 생활은 양 떼를 기르는 유목민 생활을 하며,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 저곳(세겜, 벧엘, 베들레헴, 헤브론 등)으로 유랑만 했습니다. 야곱은 기업에 대한 정착 의지가 약하여 한 평생 나그네처럼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창 47:9). 그러므로 아들 요셉의 경제관이 성경적이어서 점수로는 90점이라면, 아버지 야곱의 경제관은 인간적이었고, 50점을 받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4대가 되면, 애굽에서 객이 되어 땅이 없이 살아야 하는 생활 훈련을 시키십니다. 400년 종살이 기간은 장자권을 가진 유다 지파에게는 족보까지 끊어버리고, 강도 높은 종살이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이렇게 4대의 족보와 400년의 역사를 끊어버리신 하나님은 횃불언약대로 기한이 차서 약속의 땅을 주시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땅을 알고 땅을 차지(정복)하는 데 앞장을 설 수 있는 여호수아를 선봉장으로 삼아서 횃불언약을 성취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4대 400년 동안 땅이 없어서 끊어버린 구속사를 다시 시작하십니다.
여호수아는 땅을 보고 악평(간과, 무시, 외면, 거부)하지 않고, 세상에 모든 물질 중에서 그 땅만이 가질 수 있는 물리적 특성을 알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땅만이 나와 백성들의 삶을 보장하는 생존의 필수품이라는 단순한 사실관계도 알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홍해를 건넜어도 땅이 없으면 백성들이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고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다가 광야에서 죽는다는 단순한 인과관계를 알았던 지도자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믿어도 기업이 없는 제사장들처럼 땅을 추상화하거나 영성화하여 공중에 날려버리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땅이 없으면 내가 발 디딜 틈도 없고, 숨도 쉴 수가 없어서 1분을 버티기가 어려운 땅의 실체를 알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땅에 대한 생각이 같고, 이에 담대함과 실천력까지 갖춘 갈렙과 협력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지파별, 가족별로 백성들에게 분배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각기 기업으로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가족과 기업으로 돌아가서 자기 생업을 꾸릴 수 있는 상태가 바로 희년입니다.
이때가 출애굽 후 처음 약속의 땅에서 맞이하는 희년입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인 백성들 모두가 나의 기업이 있는(있어야 하는) 희년이었습니다. 아직 일곱 지파에게 분배해야 할 미정복지가 있어서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하는 공식적 희년 선포는 하지를 못했습니다(레 25:8~10). 그래도 주전 1445년 맞는 출애굽 희년은 백성들의 집단 거부로 이루지 못했지만, 49년을 더 지나서 맞은 부족한 첫 희년입니다. 이 해가 주전 1396년입니다. 그러므로 끊어진 역사 4대, 400년은 땅과 경제를 알고 애굽에서 토지법을 세워서 희년을 성취시킨 요셉과 역시 땅과 경제를 알아서 토지분배로 희년의 요건을 충족시킨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족보에서 유대인의 시조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어지는 주류의 역사(족보)는 땅과 경제를 몰라서 끊어져 버린 역사(족보)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역사는 땅을 알고 희년법에 순종(준행, 성취)하여온 요셉과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전 2082년 횃불언약으로 시작한 "희년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햇불언약은 언약을 하신 그 해부터 14회 차 희년 주기를 맞는 주전 1396년, 여호수아의 토지분배를 통하여 "(부족한) 첫 희년"이 성취가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토지법을 세워서(창 47:26) 희년의 요건을 충족시킨 요셉이 총리로 부임을 한 해가 주전 1886년입니다. 주전 1886년은 희년 주기로 역산하면 희년이었습니다.
이처럼 희년은 지도자가 땅을 알아야 그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 열국이 모두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들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만 알아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이 나라에 필수적 구성요소인 씨와 땅을 함께, 그리고 동시에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믿음만 있으면 공짜로 주어지나 땅은 순종을 해야 상급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지도자는 희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씨와 믿음의 땅을 알아야 믿음의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씨와 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삶의 계보를 통하여 믿음의 역사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보면서도 땅이 없는 족보만 보고 있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땅은 빼거나 건너뛰는 성경만 읽고 있습니다. 이것이 길게는 3,500년, 짧게는 2,000년 동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희년을 집어넣은 족보 풀이, 땅이 들어간 성경 이해는 매우 생소하게 느낍니다. 그리고 땅과 희년에 대해서는 거부감, 냉소, 무반응, 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광야의 백성들처럼 희년은 하나님이 공짜로 이루어 주시거나 남들이 앞장 서서 나서주기를 바라고, 자신은 뒤에서 지켜보려고만 합니다.
땅이 없어 멈춘 4대 400년 족보, 요셉과 헤스론 후손이 잇는다.
헤스론이 갈렙 에브라다에서 죽은 후에 그의 아내 아비야가 그러 말미암아 아스훌을 낳았으니 아스훌은 드고아의 아버지더라(대상 2:24) 아수바가 죽은 후에 갈렙이 또 에브랏에게 장가들었더니 에브랏이 그에게 훌을 낳아 주었고(대상 2:19).
햇불언약 4대 400년은 애굽 종살이 기간의 단절된 족보와 역사를 뜻합니다. 400년 기간은 애굽 종살이 430년 또는 광야에서 살은 40년을 포함하여 땅이 없이 살아온 총 470년 기간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땅을 아는 요셉이 주전 1806년 애굽에서 죽은 후, 땅을 아는 여호수가가 요셉의 뼈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진입한 주전 1406년까지, 400년 기간을 뜻하기도 합니다. 1회 희년이었던 주전 1396년까지는 410년 기간입니다. 땅을 주시겠다는 횃불언약을 주신 해도 주전 2082년인데, 이해를 희년 주기로 역산하면 희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횃불언약은 희년의 요건 충족과 희년 주기를 따른 족보상의 연대가 4대 400년의 인간 역사이고, 하나님의 구속사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횃불언약이 말하는 족장시대 4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형제인 유다와 요셉의 4대를 뜻합니다. 이 4대의 족보가 애굽 종살이 기간은 땅(기업)이 없으므로 멈추어 있다가 400년 후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으면서 그 멈춘 족보가 다시 이어집니다. 물론 장자인 유다 지파의 족보는 470년 기간 동안 5대만(유다-베레스-헤스론-아미나답-나손) 이어지고 있으므로 요셉 지파와 비교하면 대수가 줄어든 나머지 약 5대 정도의 기간을 말합니다. 유다 지파의 족보는 유다의 4대손 람에서 아미나답 사이는 오랜 기간 완전히 끊어져 버렸고, 나손의 친아버지 아미나답(출 6:23)은 헤스론의 첫째 아들(여라므엘)이나 둘째 아들(글루배)의 후손을 택하여 법적인 계보로 입적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땅을 잃고 애굽에 종살이 하는 후손들의 족보를 끊어지게 하고, 그 대신 야곱과 형제 그리고 그 일가족을 모두 구원한 요셉 지파의 자손들은 족보가 끊어지지 않고 10대의 족보를 이어왔습니다. 역대기 족보에서 요셉 아들 에브라임에서 여호수아까지 10대를 말합니다(대상 7:20~27). 이것이 횃불언약이 족보를 따라 성취되는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사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장자권을 가진 유다 지파의 직계 자손은 족보가 끊어지는 창피를 당하지만, 그 끊어진 계보를 다른 씨와 땅을 통하여 다시 잇고 번성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헤스론을 통해 끊어진 족보 대신 다른 씨와 애굽 아닌 다른 곳, 곧 새 땅에서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헤스론은 일찍 애굽 종살이에서 가나안 땅 에브라다로 이주를 하였고, 에브라다에서 죽었습니다(대상 2:24). 여기서 에브라다는 유대 땅 베들레헴을 말합니다(창 48:7, 룻 :1:2, 삼상 17:12, 미 5:2). 야곱이 헤브론으로 이주를 하다가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어서 장사된 곳입니다(30:16~19). 헤브론이 언제쯤 베들레헴으로 이주를 했는지 모르지만, 출애굽 이전인 것은 분명합니다. 헤스론은 본처에서 여라므엘, 람, 글루배 세 아들이 있고, 셋째 아들 글루배는 갈렙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대상 2:18). 헤스론은 60세에 마길의 딸을 새 아내로 맞는데 이때가 베들레헴으로 옮긴 전후 시기로 보입니다. 이 시기는 야곱과 유다가 죽은 직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헤스론이 새 아내를 맞은 것은 외도한 것이기보다 애굽에 두고 나온 본처와 아들 람 대신 베들레헴에서 새 가정을 꾸미고, 가정을 이루고 살기 위해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베들레헴(에브라다)으로 이주한 헤스론의 후손을 특별하게 인도해 오셨습니다. 먼저 헤스론의 장남은 아들이 있기는 하나 후손이 자꾸 끊어지고 있으며(대상 2:26,30,32), 둘째 아들 람이 헤스론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본 대로 람도 아들이 없어서 족보가 끊어집니다. 그러나 역대기 족보를 보면 헤스론은 역대상 2장과 4장에 걸쳐 자손들이 방대하다고 할 정도로 크게 번성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야곱의 열두 아들보다 후손들이 더 크게 번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손들의 번성에는 족보에서 소개한 이름과 지명들을 볼 때, 에브랏(대상 2:19), 에브라다(2:24,4:4), 베들레헴(대상 2:51,54) 같은 이름과 지명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헤스론 자손들이 베들레헴으로 이주하여 베들레헴 지역을 터전으로 삼아서 번성한 것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헤스론은 일찍 애굽 종살이에서 벗어나서 베들레헴으로 이주했습니다. 헤스론이 본 애굽 생활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니라서 종살이를 하거나 미래가 없다는 것을 미리 예견하고, 거기를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헤스론은 베들레헴으로 이주하여 60세 나이에도 새로 아내를 얻어서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을 더 두어 그 자손들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 자손들은 가나안 땅 동편 길르앗 지역에 60개 성읍을 미리 정복했습니다(대상 2:22,23). 무엇보다도 함께 이주한 아들 갈렙이 아내 에브랏과 결혼하여 아들 훌을 낳고, 그 자손이 번성합니다. 그런데 훌의 자손들은 스룹바벨의 자손들처럼 계보가 나누어져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헤스론이 애굽에 남긴 후손들은 장자권 계보를 이어가면서도 대가 끊어지고 있지만, 베들레헴으로 옮긴 헤스론의 자손들은 이렇게 크게 번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들레헴으로 옮긴 헤스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헤스론은 어원이 “하차르”이며, “울타리를 두르다”, “땅을 구획하다”라는 뜻이 있고, 여기서 “체류”, “정착”, “촌락”이라는 파생어가 생겼습니다. 헤스론은 이름이 가진 뜻과 같이 일찍 베들레헴으로 이주하여 그 땅을 개척하고 정착하였습니다. 믿음 좋은 족장들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을 유랑 생활로 객처럼 살은 것(창 47:9)과 비교하면 이름부터 대조적입니다. 헤스론의 본처 소생인 셋째 아들 이름도 글루배인데 인명사전에 “힘센”으로 표기하고 있어서 베들레헴 개척에는 걸맞는 이름입니다. 특히 글루배를 갈렙이라고 부르는 것은 글루배와 발음이 비슷하여 본래 같은 이름일 수 있지만, 가나안 땅 정복에서 가장 큰 쓰임을 받은 장수 갈렙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러 준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헤스론의 아들 갈렙은 딸의 이름이 “악사”인데 여분네의 아들인 갈렙의 딸도 이름이 “악사”이므로 두 명의 갈렙은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애굽이 종살이 400년 동안 헤스론을 미리 베들레헴으로 보내어서 애굽에서 끊어진(끊어질) 유다 지파의 씨와 땅을 잇게 하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베들레헴 땅을 개척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삼고 정착한 헤스론의 자손들을 따라서 베들레헴에서 다윗 왕이 태어나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애굽 종살이 시기에 이미 베들레헴에서 왕과 구세주가 탄생할 수 있도록 장소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땅과 기업을 경솔하게 대하거나 잃어버린 유다 지파의 직계자손에 대한 족보는 끊어지는 아픔을 겪게 하십니다. 그러나 땅과 경제를 앓아서 기근에서 야곱 일가족을 구원하고, 나라까지 구제한 요셉의 후손은 번성하게 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을 소중하게 여겨서 일찍이 베들레헴으로 이주하여 새 땅을 개척한 헤스론 자손들도 크게 번성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횃불언약에서 약속한 4대, 400년의 구속사는 하나님이 희년과 기업을 경시한 족보의 계보는 끊으시고, 희년과 기업을 중시하여 땅을 개척하고, 희년법을 성취시킨 족보의 계보는 복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족보로 축약하여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입니다.
사사시대의 살몬은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아니요 그 위는 헤스론이요 그 위는 베레스요 그 위는 유다요(눅 3:32,33)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으니 나손은 유다 자손의 방백이며 나손은 살마를 낳고 살마는 보아스를 낳고(대상 2:10,11)
갈렙의 자손 곧 에브라다의 맏아들 훌의 아들은 이러하니 기럇여아림의 아버지 소발과 베들레헴의 아버지 살마와 벧가델의 아버지 하렙이라(대상 2:50,51)
-족보 요약- (위 족보에 근거하여 필자 요약)
<누가복음 족보(눅 3:32,33> : ①유다 ②베레스 ③헤스론 ④람 ⑤아미나답 ⑥나손 ⑦살몬 ⑧보아스
<역대상 족보(대상 2:10,11)> : ①유다 ②베레스 ③헤스론 ④람 ⑤아미나답 ⑥나손 ⑦살마 ⑧보아스
<역대상 족보(대상 2:50,51~54)> : ①유다 ②베레스 ③헤스론 ④글루베 또는 갈렙과 에브라다 ⑤훌 ⑥살마 ⑦ 베들레헴 족속 이하 여러 족속들
룻기 족보, 누가복음 족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의 시조는 살몬 또는 살마입니다. 이 사사시대의 시조를 누가복음은 “살몬”이라고 하고, 역대기는 “살마”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사전에서 “살몬”과 “살마”는 모두 어원 불명으로 나옵니다. 다만, 인명사전에서 살몬은 나손의 후계자(아들)로 보고, 살마라는 인물은 나손의 아들과 훌의 아들로 구분하여 서로 다른 사람으로 봅니다.
지금까지 성경 연구자들은 모두 역대기 족보에서 '나손의 후계자 살마'와 '훌의 아들 살마'는 다른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족보 연구의 대가 박윤식 목사도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으므로 다른 사람으로 간주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유다의 적통 계보로 신분이 확실한 헤스론의 자손들을 추적하면, 나손의 후계자 살마는 헤스론의 둘째 아들 람의 4대손이고, 헤스론에서는 5대손입니다. 훌의 아들 살마는 헤스론의 셋째 아들, 아니면 또 다른 아들인 갈렙의 3대손이고, 헤스론에게는 4대손입니다. 그러므로 살마는 다 같은 헤스론의 직계 자손인데 이름은 같고, 대수만 한 대 차이가 납니다. 여기서 한 대의 차이는 살마와 아버지, 부자지간에 발생한 차이가 아니고 그 앞 대, 곧 ④람과 ⑤아미나답 사이에서 족보가 끊겨서 생긴 차이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대수가 다르거나 이름이 서로 충돌하면(동명이인 또는 같은 사람이나 이름 표기만 다른), 성경에서 다른 근거들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손의 후계자 살마와 훌의 아들 살마가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 나손의 후계자 살몬(살마)은 가나안 진입 당시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여리고성을 정탐하기 위해 정탐꾼으로 보낸 두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두 명의 정탐꾼에 대해 이름을 밝히지 않고 가만히 보냅니다(수 2:1). 여기서 “가만히” 보낸 것은 정탐자의 역할이 비밀 첩보원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고 보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약 1,400년 후 신약시대를 열면서 마태복음 족보에 처음으로 이름이 밝혀지고 사실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로 마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하여 기생 라합을 소개하므로써(마 1:5), 여리고성 정탐꾼 중에 한 사람이 살몬(살마)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다른 성경에는 라합이 없고 믿음과 행위를 함께 중시한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서 라합의 이름이 나옵니다(히 11:31, 약 2:25). 이렇게 기생 라합과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은 살몬에 대해서 천년 이상 이름이 숨겨져 있습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살몬의 선임자인 나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나손은 아미나답의 친아들입니다. 출애굽 당시 제사장인 아론의 아내 엘리세바가 아미나답의 딸이자, 나손의 누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출 6:23). 그러나 족보에서 아미나답의 선임자 람은 아미나답의 친아버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④람 ⑤아미나답 사이에 400여 년간(실제 350년 정도) 족보가 끊어져 있으므로 친아들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미니답의 친아들인 나손도 혈통이 끊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나손은 광야 1세대로 유다 지파의 두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 정탐에서는 유다 지파의 대표로 참여하지 못하였고, 그 자리는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돌아갑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이름이 오를 선택의 기준에서 보면 나손은 적어도 세 가지 정도의 결격사유가 발생합니다. 나손은 ㉠가나안 땅 정탐 전에 일찍 죽었을 가능성, ㉡범죄나 과실로 인한 두령 자격을 상실했을 가능성, ㉢정탐 이후 가나안 땅에 대한 악평의 대가로 광야에서 죽은 경우, 이 세 가지입니다. 그런데 나손은 이 결격사유 ㉠, ㉡, ㉢ 중 ㉠과 ㉡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손이 ㉠과 ㉡이 아닐 경우라도 ㉢가나안 땅을 악평하고 진입을 거부하여 광야에서 죽었고, 약속의 땅에 발을 디뎌보지 못한 것은 확실합니다. 광야에서 약속의 땅을 악평하고 가나안 땅 진입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한 자들은 20세 이상 성인이면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모두 죽었기 때문입니다(민 13:29,30,3738).
㉢의 경우 나손이 낳은 친아들이 있고, 가나안 정탐 당시 나이가 20살 되지 못했으면 가나안 땅의 악평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광야 2세대이므 가나안 땅을 밟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들이 없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있었더라도 여호수아가 보내 토지 정탐꾼으로 선발되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래서 나손의 직계 혈통은 유다 지파의 대표자를 선택하여 기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합니다. 살몬은 곧 나손의 방계 혈통, 곧 헤스론의 다른 아들에서 찾아야 합니다.
셋째, 이렇게 새로운 계보를 이은 살몬도 다시 300여 여년 동안 5대 이상의 족보가 끊어지고 있습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살몬과 보아스 사이에 약 300년간, 5대 이상의 족보가 생략(누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포로기 초기, 사실상 마지막 왕이었던 여고냐의 혈통이 끊어지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집니다. 단절된 여고냐의 혈통은 법통상 스알디엘이 잇기는 하지만, 스알디엘 역시 아들 없이 일찍 죽고, 그 계보를 계대결혼을 통하여 얻은 스룹바벨이 잇는 것과 비슷합니다.
마태복음 족보는 이에 더하여 스룹바벨의 후계자도 계보를 단절시켜 버리고, 상당한 기간(약 5대)이 지나서야 아비훗을 그 후계자로 계보에 올립니다. 마태복음 족보는 공동체의 공적 지도자에 대한 계보이므로, 이들이 바알 신과 바알 경제제도를 따르다가 성전은 훼파되고, 나라까지 패망하게 한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이름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족보는 각 분기별로 14대씩 선택하여 이름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애굽 종살이 400년, 광야의 반역기 40년, 그리고 사사시대 약 400년 역사에서도 유다 지파의 적통 계보, 직계 자손은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족보에 이름을 올리려고 해도 올릴 사람(씨, 후손)이 없었습니다.
넷째,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먼저 살몬을 비밀리에 세워서 여리고성을 정탐하게 하고 가나안 정복에도 협력하게 합니다. 그리고 정복 후 살몬에게 베들레헴 땅을 기업으로 주고, 적통 계보가 끊어놓은 유다 지파의 족보를 다시 세워줍니다. 물론, 여호수아가 그렇게 한 것이라기보다는 족보에 이름을 올리고 빼는 결정 업무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이 구속사를 그렇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다섯째, 살몬에서 끊어져버린 약 5대, 300여 년의 족보와 역사는 룻과 보아스가 잇습니다. 룻은 모압 사람이지만, 윗대 조상 라합처럼 유다 지파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보아스는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에브랏, 베들레헴 사람”으로, 베들레헴 토박이입니다(룻 4:11).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사사시대에도 유다 지파의 적통 장자권자나 혈통보다 하나님의 구속사에 쓰임을 받은 자를 선택하여 기록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 정탐꾼을 보낼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몬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보낸 것이나, 살몬이라는 이름이 1,400년이 지나서야 밝혀지는 것도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선택 기준과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 사사시대를 이어가는 한 시대의 정체성 문제와도 직결되는 주제입니다. 여기서 유다 지파에 관한 정체성 문제란 장자권 혈통을 가진 유다 지파에서 적통 장자가 무능하거나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어가야 하느냐에 관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주제에서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사사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윗이 등장할 때까지 주류가 아니고, 비주류가 구속사에 쓰임을 받고 있는 비주류가 족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왕조시대에 하나님이 주류인 왕들의 계보와는 별개로 비주류인 나단 계보를 세워서 누가복음의 족보를 이어오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 이후 다윗 왕의 등장까지 400년(396년, 주전 1406년~주전 1010년) 가까운 사사시대가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소견대로 살았던 시대의 혼란기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사사시대는 유다 지파의 족보에도 그런 시대적 혼란에 대한 아픔의 역사가 들어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사시대의 시조와 베들레헴에 대한 사전 이해
아수바가 죽은 후에 갈렙이 또 에브랏에게 장가 들었더니 에브랏이 그에게 훌을 낳아 주었고(대상 2:19)
갈렙의 자손 곧 에브라다의 맏아들 훌의 아들은 이러하니 기럇여아림의 아버지 소발과 베들레헴의 아버지 살마와 벧가델의 아버지 하렙이라(대상 2:50,51)
살마의 자손들은 베들레헴과 느도바 종족과 아다롯벳요압과 마나핫 종족의 절반과 소라 종족과(대상 2:54)
그돌의 아버지 브누엘과 후사의 아버지 에셀이니 이는 다 베들레헴의 아버지 에브라다의 맏아들 훌의 소생이며(대상 4:4)
<누가복음 족보(눅 3:32,33> : ①유다 ②베레스 ③헤스론 ④람 ⑤아미나답 ⑥나손 ⑦살몬 ⑧보아스
<역대상 족보(대상 2:10,11)> : ①유다 ②베레스 ③헤스론 ④람 ⑤아미나답 ⑥나손 ⑦살마 ⑧보아스
<역대상 족보(대상 2:50,51)> : ①유다 ②베레스 ③헤스론 ④글루베 또는 갈렙과 에브랏(에브라다) ⑤훌 ⑥살마 ⑦ 베드레헴 족속 이하 여러 족속들
역대상 2:19에서 훌은 유다의 손자 헤스론, 헤스론의 셋째 아들 갈렙이 둘째 아내 에브랏을 통하여 낳은 아들입니다. 살마는 그 훌의 아들입니다. 훌은 출애굽 당시 아말렉과 전투에서 모세의 팔을 받쳐준 장수입니다(출 17:12). 그 훌의 아들이 살마입니다. 훌이 출전한 아말렉 전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하기 직전 주전 1446년 3월 1일 이전 2월경(?)입니다. 살마(살몬)가 여리고성 정탐을 나선 시기는 1406년 유월절 이전인 1월 초순(밀과 보리 수확 직전기)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연대기로 40년 간격이므로 훌과 살마는 연대기로 보아도 친아들이 맞고, 전투 시기도 서로 부합하고 있습니다. 훌은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살마는 40년 후 가나안 땅에서, 그것도 전투장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부자지간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훌의 아들 살마는 베들레헴 사람입니다(대성 2:51). 위 본문에 소개한 성경 구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지역에 관련된 명칭이 에브랏, 에브라다, 베들레헴으로 자주 소개되고 있습니다(대상 2:19,24,50,51,54,4:4). 그런데 이 지명과 사람 이름 간에 얽힌 족보를 플어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이해가 필요합니다.
첫째, 에브랏, 에브라다, 베들레헴은 좁게 보면 지역이 약간의 차이가 날 수 있지만, 넓게 보면 한 지역, 곧 베들레헴 전체 지역을 말합니다.
둘째, 에브랏과 에브라다는 “열매를 맺다”라는 뜻으로 같은 말입니다. 에브랏과 에브라다는 사람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때는 주로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본문에서 에브랏과 에브라다는 같은 여성인지 다른 여성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모두 갈렙의 아내입니다. 룻기에서 나오미도 에브랏 사람입니다(룻 1:2). 라헬이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를 겪고 죽은 곳도 에브랏입니다(창 35:19). 룻이 아들을 낳았을 때 모인 축하객들도 여성인 라엘과 레아를 칭송하며, 특별하게 에브랏 지명을 들추어서 말하고 있습니다(룻 4:11).
그런데 베들레헴은 지명사전과 인명사전에서 사람보다 지명으로만 나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에브랏이나 베들레헴은 사람의 신분이나 출신지와 관련된 용어입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결혼한 여성을 부를 때는 이름 대신 결혼 전에 살았던 고향 마을의 이름을 따서 "달성댁", "평산댁"이라고 불렀습니다. 동네에서 어른들 간에는 남편의 이름을 부를 때, 실제 이름보다는 아내의 택호(宅號)를 따라서 “달성박산(산은 씨의 일본식 표현)”, “평산이(하칭으로)” 등으로 불렀습니다. 자녀들도 이름 대신 "달성댁 아들", "평산댁 아들"로 부르고, 자녀가 결혼하면 그 아내의 지명인 택호를, 이름 대신 부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에브랏”이나 “에브라다”는 결혼한 여성이 태어나거나 살아온 지명을 따라 불려진 이름으로 보겠습니다. 아니면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게 되어서 이름이 지명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셋째, 베들레헴의 아버지라고 했을 때 “아비”는 히브리어 사전에 첫 글자로 “아브”이므로, 육신의 아버지도 되고, 그 가족, 친족, 씨족의 “조상”으로도 쓰입니다. 특히 공적인 지도자(civic leader)를 말하기도 합니다. 역대상 2:51은 베들레헴의 아비가 살마라고 했지만, 2:54에서는 살마의 자손들(descendants)을 베들레헴 (족속)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대상 2:51은 “베들레헴의 아버지 살마” 대신 “베들레헴의 조상(창설자, 개척자) 살마”로 번역하고 이해해야 2:51과 2:54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됩니다. 역대상 4:4에서 갈렙의 아내를 “베들레헴의 아버지 에브라다”라고 하는데 여기서도 “베들레헴의 조상 에브라다(모계 혈통)”로 이해하면, 역대상 2:19의 훌의 소생들과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사사시대의 시조는 베들레헴 사람 살몬(살마)입니다.
훌과 아들인 베들레헴 조상으로 불리는 살마는 연대기나 시대 상황과도 부합합니다. 그러므로 역대상 2장 51절과 54절에서 말하는 살마는 베들레헴의 조상, 곧 베들레헴 시조이며, 베들레헴 사람들로, 베들레헴 토박이에게 붙여진 명칭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2:51,54가 말하는 살마는 같은 역대상 2:11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된 살마가 맞는지는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1) 나손의 아들 살마와 훌의 아들 살마는 나손이 아들이 없었거나 있어도 족보에 오를 수 가 없었다면, 나손의 후계자 살마(대상 2:11)와 훌의 아들 살마(대상 2:51,54)는 같은 이름으로 보아야 합니다. 훌의 친아들이 법통상 나손의 아들로 입적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2) 다만, (1)의 경우에 연대기에서 충돌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다의 손자 헤스론과 헤스론의 손자 훌(살마의 친아버지)이 연대기에서 맞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헤스론은 둘째 아내를 맞을 때 나이가 60세이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딸과 재혼했습니다(대상 2:21). 곧 헤스론은 애굽 종살이 전반기 인물입니다. 그러나 훌은 아말렉 전투에 참여한 사람으로 출애굽 시대의 인물입니다. 그래서 헤스론과 훌은 약 300년의 기간 간격이 발생하므로 이것이 가장 큰 난제입니다. 이것은 훌이 갈렙의 아들(son)이 아니라 자손(descendants)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해석의 한계나 범위를 넘어선다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헤스론이 재혼한 시기를 역대기 2:21에서 “그 후”라고 하여 그의 아들 갈렙이 에브랏과 결혼하여 훌을 낳은 뒤에 재혼을 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이 의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1)과 (2)의 난제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살몬(역대상 2:11의 살마)은 베들레헴 사람이 맞습니다. 그 이유는 베들레헴 사람 보아스가 가나안 여리고성 정탐에서 기생 라합과 인연이 된 살몬(살마)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수 2:1, 마 1:5). 거기에 살몬(살마)은 가나안 땅 정착 이후 분배받은 기업이 베들레헴입니다. 그 이유도 살몬(살마)의 후손인 보아스가 베들레헴 기업을 무르기로 되찾을 권리를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룻 4:4,9). 한편, 헤스론과 훌의 연대기 차이는 나손의 후계자 살마와 훌의 아들 살마가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살몬(살마)은 나손의 후계자이든, 훌의 아들이든 사사시대의 시조이며, 베들레헴의 조상입니다. 왜냐하면, 살몬의 후계자가 뒷날 기업 무르기를 하는 룻기의 주역 보아스이기 때문입니다. 보아스의 손자인 이새도 베들레헴 토박이로 살아서 “베들레헴 사람 이새(삼상 17:12)”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다가 하나님께 왕으로 부름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족보를 따라서, 베들레헴 기업을 따라서, 다윗의 동네에서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십니다(눅 2:11~14).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와 하나님의 구속사는 사사시대 396년 동안 베들레헴 기업에서 시작한 살몬을 시조로 시작하여 다윗 왕가가 탄생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다음은 살몬과 보아스의 신분과 상속권 문제, 곧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보아스의 혈연관계와 살몬과 보아스 사이에 끊어져 버린 대수의 혈족들을 중심으로 한번 더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