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맞는 벗들이 한자리에 모여 허물없이 흉금을 털어놓는 광경은 참 아름답다.
아무 속셈도 없다.
굳이 말이 오갈 것도 없다.
바라보기만 해도 삶은 기쁨으로 빛나고 오가는 눈빛만으로도 즐거움이 넘친다.
- 미쳐야 미친다. 정민. 195쪽.
대성 여고를 올라가는 중간쯤 삼거리에 편의점이 생겼다.
그 편의점의 이름은 Buy the way.
진월동 최초의 편의점이다.
해석하면 ‘사러 가는 길’이 되려나?
요즘 한참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을 막 읽은 터라 편의점에 대한 기억이 더 떠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는 슈퍼와 구멍가게만 있었는데 24시간 편의점이라는 것이 들어오니 신기했다.
정말 24시간 잠도 안 자고 문도 안 닫고 편의점을 여는지 궁금해 밤늦게 12시 넘어 편의점을 찾아가 본 적도 있었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가장 놀라운 점은
첫째, 음료가(콜라, 사이다, 환타 등)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는 것.
큰 컵을 수도꼭지 밑에 대고 꼭지를 돌리면 음료가 콸콸콸 쏟아져 나온다.
신기하다.
게다가 가격은 상당히 저렴하다.
당시 돈으로 1,200원 정도?
하여 나의 아버지께서는 그 편의점에서 콜라 마시기를 상당히 즐기셨다.
교회 저녁 예배 마치고 나면 우리 가족은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를 즐겨 마시곤 했다.
아버지는 콜라, 어머니는 사이다, 나와 동생은 환타
둘째, 편의점 통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
나의 최애 컵라면은 새우탕 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게다가 편의점에서는 더울 때는 에어컨을, 추울 때는 히터를 틀어준다.
하여 Buy the way 편의점은 우리 동네의 사랑방이 되었다.
이제는 배가 고프면 동네 친구들과 분식점이 아닌 편의점을 찾는다.
분식점에서는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경제적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이기에 편의점을 더 선호했다.
편의점을 함께 다녔던 그 당시 내 친구들은 홍환이, 소현이, 정현이, 다행이...
이 친구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교회 예배를 마치고 나면 편의점에 들러서 컵라면에 삼각김밥, 그리고 음료 한 잔씩 하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친구들과 라면 먹으면서 교회 이야기, 학교 이야기, 여학생 이야기 등을 나누었던 것 같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는 남학생들이라 아마도 여학생 이야기를 제일 많이 했던 것 같다.
남중, 남고를 다녀서 여학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교회 모임을 통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것 때문에 교회를 열심히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 이유도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까까머리 남학생 4명이 모여서 각자가 좋아하는 라면을 호호 불어 가며 좋아하는 여학생들 이야기에 하하 호호...
얼마나 재밌었을까...
살아가는 낙 아니었을까?
그런 재미로 친구도 만나고 교회도 다니고 했던 것 같다.
이 편의점은 진월동의 사랑방이자, 카페이자, 음식점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에게는 커피 한잔하며 추위를 달래는 공간으로.
연애하는 남녀에게는 밤늦게 데이트하는 카페로.
까까머리 중고딩들에게는 배고픔을 달래는 음식점으로.
어두운 밤에도 이 삼거리에는 하얀 불빛으로 환하게 밝힌다.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 이었던 그 편의점이 그립다.
실은 그 편의점이 아니라 나의 지나온 소중한 시간들이 모두 그립다.
오늘 밤에는 그 편의점을 생각하며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2’를 읽어야겠다.
#나의진월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