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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국가를 말하다 - 공화국을 위한 열세 가지 질문
박명림, 김상봉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11.
김상봉 선생님, 선생님의 지난 서신은 개인에 대한 국가의 권리와 의무의 한계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선생님과 나누는 공화국에 관한 논의가 관념적인 공허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갖게 됩니다. 인간 삶과 사회에 관한 논의가 정신적 물질적 삶의 조건의 개선에 관한 구체성과 실질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 역시 늘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학문과 이론의 출발은 언제나 인간의 실존과 현실 상황이며, 그 귀결 역시 그것의 개선이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고도로 추상적인 담론들 및 시장적 물질적 언술들의 난무 속에 선생님과 나누는 논의가 인간적 사회적 가치의 실질적인 회복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인간과 사회의 근본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금번 대담의 주제를 말씀드리기에 앞서 한국의 지난 근대 이후 민중 저항의 역사에 대한 선생님의 거시적 해석을 듣고 보니 그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저 역시 1995년 해방 50주년 기념으로 현대 한국 역사의 기본 동학을 해명하려 썼던 졸고가 하나 생각났습니다. 흥미로운 일치점인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 근대 이후 한국의 역사를 두 가지 현상의 반복과 결합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는 이른바 ‘열광의 순간’moment of madness이고 다른 하나는 ‘수동 혁명’passive revolution이었습니다. 각각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설명할 때 사용된 이론 틀인데 저는 이를 한국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즉 1876년의 동학농민전쟁, 1919년의 3⋅1운동, 1945년의 해방과 분출, 1960년의 4⋅19혁명, 1979~80년의 부⋅마항쟁−서울의 봄−5⋅18민중항쟁, 1987년의 6월민주항쟁 등 한국은 반복적인 밑으로부터의 저항의 역사, 즉 ‘열광의 순간’의 지속적인 재연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순간은 전부 당대의 전체 시대정신, 또는 국가 의제를 함축한다고 보았습니다. 프랑스와 아주 유사하였지요.
그러나 이렇게 밑으로부터 제시된 당대의 보편적 근대 의제들은 거의 대부분 전부 위로부터의 보수적 방법을 통해 실현되어왔다는 점 또한 반복되어온 패턴이었습니다. 동학농민전쟁의 패배와 한말 위로부터의 개혁 시도 및 식민화, 3⋅1대중저항의 패배와 식민지 억압 및 산업화, 1945년 밑으로부터의 국가 건설 노력의 실패와 남북 분단국가 수립, 4⋅19혁명의 단기적 성공−2공화국의 실패 및 뒤이은 5⋅16쿠데타와 위로부터의 근대화−시민 사회의 성장, 1979~80년의 단기 성공과 5⋅18민중항쟁의 패배 및 위로부터의 근대화와 민주화 운동, 6월민중항쟁과 군부 출신 후보의 당선−3당 합당 및 보수적 민주화 등의 반복적인 조합을 말합니다.
그 글을 쓸 당시만 해도 저는 끝없이 분출하는 민중의 힘에 대한 놀라움과, 반복되는 보수적 현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공존했습니다. 그러나 87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수 차의 ‘작은 영광의 순간’은 반복되었지만 크게 보아 보수적인 민주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현실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말씀하신대로 언제 실질적인 영광의 순간이 다시 다가올 줄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참된 민주공화국을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의 국가 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제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국가⋅민족⋅전체를 다시 성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국가와 시민⋅국민, 전체와 개인의 관계가 직면한 근본적 위기로부터 연유합니다. ‘위기’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한국에서 국가와 시민, 전체와 개인의 관계는 거의 ‘파탄’에 이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과도하고 거의 전일적이었던 국가주의의 시대를 지나자마자 갑자기 국가의 역할을 시장과 기업이 대체하려고 하면서 나타나는 국가−개인 관계의 파탄 및 기업 국가 현상으로 인해 바른 국가의 역할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국가의 역할 상실로 인한 이 ‘파탄’이야말로 고단한 한국적 삶을 둘러싼 모든 문제의 핵심이자, 우리가 지금 좌우를 넘는 지혜를 통해 공동체를 재건하지 않으면 안 될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시민, 전체와 개인의 관계를 재구성하지 않으면 바람직한 공화국의 건설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 한국 사회의 위기는 진보의 위기도, 보수의 위기도 아니고, 공동체 전체와 공화국의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국가가 세계 10위권으로 발전하는 동안 대다수 한국민의 삶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칸트의 언명을 그대로 인용하면, “국가의 번영이 국민들의 불행과 병행하여 커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는 이토록 발전했는데 개별 삶은 왜 더 안정적이고 자유롭고 행복해지지 않고 있습니까? 동시에 왜 이 국가 공동체에서 살고 싶다는, 이 공동체를 사랑한다는 비율은 왜 더욱 줄어들고 있습니까? 늘 국가 우선, 전체 우선을 말해온 한국에서 국가는 과연 지금 자신 있게 자신에 대한 헌신과 애국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요구할 수 있어야 함에도 국가가 시민에게 요구할 수 있는 자발적 충성의 공통 가치들, 자랑들, 현상들이 지금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 시민으로서 정직하게 말씀드려, 이 질문에 긍정의 답을 내놓기란 참 어렵습니다. 저는 여기에 관계 파탄의 기저 요인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국가 우선의 논리도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국가가 빠른 속도로 발전해오는 동안, 이미 말씀드린 기록적인 자살률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의 지속은 전체 우선주의와 국가 발전 제일주의가 산생한 개인 파괴, 생명 단절,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사회 붕괴의 연쇄 고리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국가 우선/전체 우선주의가 배태하고 생산⋅증폭⋅악화시킨 국가 발전−개인 파괴/생명 단절−사회 해체의 이 무서운 연쇄고리는 결코 추측이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국가 발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두렵고도 명백한 증거입니다. OECD, IMF국제통화기금, UNFPA유엔인구기금, 한국인구보건복지협회 등 여러 기관의 자료들에 따르면 한국은 장차 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합니다. 그들은 2017년부터는 생산 가능 인구가, 2021년부터는 총 인구가 감소한다고 경고합니다. IMF에 따르면 한국이 2050년에 총 인구 대비 노동력을 2000년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무려 총 인구의 35퍼센트에 이르는 누적 이주 노동자를 필요로 합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이러한 규모의 인구가 유입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요?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의 발전과 개별 삶들의 불안화” “외면적 국가 발전과 내면적 국가 이탈” “평균 소득의 증가와 생명 단절의 증대” 등 이 극단적인 부조화의 누적 속에 우리는 “국가는 발전하나 개인은 떠나고 싶은”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온 것입니다. 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국가 발전이었나요? 인간⋅시민⋅국민 개별 삶들의 안전⋅개선⋅행복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국가 발전이란 개념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국가 자체가 개인을 전제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 국가에게 권리의 상당 부분을 양도하는 것은 그러한 양도를 통해 삶의 어떤 가치와 조건을 보장받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개인이 확보하기 어려운 최소한의 안전일 수도, 자유⋅안정⋅평등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인간에 앞서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공통의 인간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합니다. 즉 국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역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것이 국가거나 돈이건 이념이거나 간에 인간 실존에 앞선 다른 어떤 가치나 존재가 우선할 때 인간은 수단화되고 도구화됩니다. 우리가 군대를 가고 세금을 내고 질서를 지키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건설되고 유지될 국가 공동체가 우리 삶을 보호⋅안정⋅발전시켜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국가 우선의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이후 국가와 시민, 전체와 개인의 관계가 자발적 충성과 헌신으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했던 우리에게 이 급격한 파탄은 예상치 못한 역전이었습니다.
앞에서 상세히 말씀드린 OECD 통계는 우리에게 예리한 비교 통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개인주의, 다원주의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는 공공성과 사회 정책을 통한 시민 삶의 안정과 상대적 평등이 유지되고 있는 데 반해, 전체 우선, 국가 우선의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는 공공성과 사회 정책이 허약하고 그리하여 개별적 삶들은 파편화하고 불안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컨대 국가가 공적으로 개인을 위할 때 비로소 전체와 사회가 좋아진다는 점입니다. 저는 사회 경제 관련 OECD 비교 통계는 우리 사회에 하나의 충격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을, 나아가 전체를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는 전체 우선, 국가 우선의 한국 사회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구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배제하는 국가 우선 논리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에서 전체와 국가 우선/민족 우선의 사유 체제가 발전하게 된 데에는 깊은 역사적 배경이 존재합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중국⋅일본과 함께, 명확한 국경을 기준으로 근대 이전부터 1천년 이상 정치 공동체와 종족 공동체가 일치해온, 매우 예외적인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봉건제를 경험하지 않아 지방과 도시의 자치와 자율을 허용하지 않는 중앙집권국가를 유지해왔습니다. 근대 이전부터 국가와 민족이 일치해온 이른바 ‘역사적 국가’라는 것이지요. 중앙집권적인 ‘역사적 국가’의 장기 지속은 개인⋅다원⋅지방⋅자율보다는 국가⋅중앙⋅전체⋅공적 헌신의 뚜렷한 우위를 노정해왔습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는 국가와 민족 개념이 서구와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고전적 문건들을 보면 식민과 다원주의는 약하지만 국가와 ‘공’公 개념, 국민 정체성과 의식은 서구보다 더 빨리 발전한 사회였습니다. 중국과 한국, 일본 사이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단순한 종족 정체성을 넘어 국가와 국경, 국민의 구별의식이 뚜렷했습니다. 이는 근대 국민 국가 등장 이전의 서구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종족을 넘는 국가와 국민 개념의 빠른 고안과 발견까지는 좋은데 이것이 개인과 시민, 민중을 배제한 전체 우선주의, 국가 우선주의로 귀결되었다는 점입니다.
요즈음에도 이러한 현상은 우리 관념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국가 발전이 곧 개인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마치 국가가 발전하고 있다는 전체 지표나 통계만 보고 곧 개인과 시민 역시 발전한 것 같은 환상과 신화를 갖고 있습니다. 종종 자기가 발전한 것으로 착각하는 시민도 있습니다. 또 국가 권력의 정당성은 전적으로 시민으로부터 발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시민의 권리가 마치 국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처럼 인식하는 국민도 적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근대 이후의 경험 역시 중요합니다. 제국주의에의 망국을 포함한 근대 국가 형성 과정은 더욱더 강한 국가 우위, 전체 우위 관념을 초래했습니다. 그리고 건국 이후 인민들은 근대적 계층이나 계급, 시민이나 개인이 되기에 앞서 먼저 국민이 됨으로써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었습니다. 시민화 단계를 거치지 않은 개인의 철저한 국민화였습니다. 남북의 생사를 건 장구한 투쟁은 국가와 국민의 동일시를 더욱 강화해왔지요. 이러한 점은 국가 발전의 한 토대를 이룬 요인이었으나, 개인적⋅시민적 요구를 투과하지 않았기에 국가의 국민 대우는 처음부터 존중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국전쟁은 좌우를 넘어 국가 우선 논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을 배제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한국전쟁처럼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한 경우도 없습니다. 저는 20대에 4⋅3사건과 한국전쟁을 공부하기 위해 제주도⋅휴전선⋅다부동⋅지리산을 포함한 여러 곳을 답사하며 국가가 자행한 숱한 민간인 학살을 목도하고는, 국민 생명 보호를 존재의 제1이유로 삼아야 할 국가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통곡했습니다. 국가는 사과와 배상⋅보상은커녕 외려 국가에 의한 희생자들을 빨갱이로 몰아왔습니다. 인도에 반하는 국가의 이중범죄였지요. 그 충격이 진실 규명과 국가의 사과⋅배상⋅보상을 촉구하는 제 학문적 실천의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분노와 충격은 반대 방향에서도 다가왔습니다. 개인은 국가를 위해 희생할 수도 있고, 공동체의 유지가 전제되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나 안전은 보장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말씀하신 대로 동의를 전제로, 자유를 위한 전체에의 일정한 희생은 필요하지요. 공동체에의 자발적 참여와 헌신은 공화국⋅공화주의의 필수 요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국전쟁 참전 희생자 및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처우를 보면, 반공주의가 기저 가치인 나라에서 국가 수호와 반공을 위해 생명을 바치고 다친 사람들과 그 후손들에게 국가가 해준 보훈과 보상은 거론할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국가의 이러한 두 가지 태도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념을 넘어 국가 우선⋅전체 우선을 위해 개인⋅국민⋅시민을 너무도 무가치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사회에서 좀 때 이르게 6⋅25 담론과 기념행사를 폐지하자고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6⋅25 담론이 갖고 있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 반인간적 담론과 기념행사에 매몰되어 방치된 ‘국가에 의한 희생자들을 위한 포용’과, ‘국가을 위한 희생자들에 대한 보훈’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맹목적인 기념행사에 들어가는 예산을 전환하여 인간을 위한 보훈에 사용하자는 것이었지요.
저의 6⋅25 담론과 기념(식) 폐지 주장에 대해 격렬히 항의하며 협박하던 한 전쟁 관련 보수 단체 인사가 직접 만나 제 의도를 확인하고는 오히려 더 빨리 시작했어야 한다며 사과하던 기억이 새삼 새롭습니다. 국가 우선과 전체 우선주의로 전도된 이념은 이처럼 국가 자체를 물신화해 국가의 바른 역할을 보지 못하도록 왜곡합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탈냉전 민주화를 거친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그러합니다.
근대 이후 인간들은 국가−시민 관계에서 국가에 맞서거나against, 국가를 위하거나for, 국가에 의해서by 자신의 가치를 실현해왔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우리는 국가를 통해through, 그리고 국가와 함께together 실현하는 조합을 추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이념으로 매몰되어 인간을 보지 못하던 국가 우선⋅전체 우선 논리가 민주성⋅공공성⋅공화성의 상실 속에 사사⋅이념⋅연줄⋅지역⋅파당 우선의 현실로 은폐⋅고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사회를 배려하지 않는 허구의 국가 우선 논리가 초래할 현실의 모습입니다.
결국 국가와 공동체의 사사화를 넘기 위해 한국과 동아시아에 오래 존재해온 공 개념의 긍정성을 발전시키면서 국가주의나 억압적 공공성, 또는 위로부터의 공공성을 어떻게 민주적 공공성, 밑으로부터의 공공성으로 구성하고 변환시킬 것이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 최초의 밑으로부터의 자생적이고 자각적인 민주 정체를 발전시킨 한국의 발전 모델은 향후 공화국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가느냐에 따라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때 국가의 변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시민의 자발적 참여입니다. 전체를 위해 동원된 시민이 아니라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증대될 때 국가 역시 시민과의 상보적이고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며 존재하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하루빨리 참된 국가 이성과 공공성을 회복해 국민⋅시민의 개별적 삶들을 보듬과 안정시키려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 없이는, 시민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국가의 안정도 발전도 어렵습니다.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우리 국가와 사회는 개인과 시민의 발전을 위한 분배⋅복지⋅교육⋅의료⋅환경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처럼 계속 국가 우선을 고수하다보면 위기에 직면한 시민들의 삶으로 인해 파탄난 국가−시민 관계가 끝내는 국가 자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걱정을 선생님과 함께 나누며 오늘 편지를 마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168-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