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남학교가 낳은 농촌운동가 배민수(3회)박사 ]
배민수(裵敏洙, 1896∼1968) 박사는 충북이 낳은 농촌 운동가이며, 독립운동가이고, 애국투사이다.
1896년 청주에서 청주 의병대장 배창근의 외아들로 태어나 청주 청남학교 제3회 졸업생으로
1916년 평양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 그는 부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하와이에 망명 중인 노백린·장일환·김형직 등과 관계를 맺고,
숭실중학생 30여 명을 중심으로 '대한국민회' 조선지부를 결성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중 1918년 동지 전원이 체포되어, 배민수 박사는 평양감옥에서 1년 옥고를 치르고
이듬해 출감했다.
그때 마침 3·1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는 함북 성진군의 3·1만세 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3월 10일 제동병원 광장에 많은 군중을 모아놓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등
연속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다시 체포되었다.
그래서 함흥 감옥에서 1년 2개월을 복역하고, 1921년 4월 29일에 출감했다.
독립 운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2차례에 걸쳐 체포를 당했던 배민수 박사는 민족지도자들이 분열하고
있을 때,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조만식 선생을 만났다.
이후 조만식 선생의 영향을 받아 농촌 운동에 눈을 떴고,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는
농민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농민교육과 농촌개혁이 절실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조만식 선생과 함께 평양 근교의 농촌을 순회하면서 계몽 강연을 주도했고,
1928년에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농촌연구회를 조직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 배민수 박사의 농촌 운동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① 농촌지도자 양성:그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농촌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고등농사학원을 중심으로 전개했는데, 이곳 출신자들에게 농학 및 농업기술 전반에
관한 전문 교육과 농촌 사업 지도를 담당하게 했다.
② 농촌 순회 지도:또 하나의 농촌 운동은 농촌 수양회로 일컬어지는 농촌 순회 지도였다.
남한 일대는 물론 평양, 만주에 이르는 지역까지 3년간 1주일 단위로 농촌 지역을 순회하면서
농촌 계몽 강연을 했는데, 그 횟수가 200여 회에 이르렀다고 한다.
③ 협동조합 운동:협동조합을 만들어 농촌을 조직화하는 한편 농촌의 생활 개선과
농민의식 개혁을 추진했다.
농촌 운동은 불가피하게 일제 침략에 대한 비판을 동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연히 일제로부터 탄압과 감시를 받게 되었다.
농촌연구회 사건 혐의로 일제로부터 수배를 받게된 배 박사는 1938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미국에 있는 동안 한국을 소개하는 연설을 할 정도로 애국심이 강했다.
1941년에 프린스턴신학대학에서 신학을 연구했으며,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3년 동안 미 국무성에 근무하면서 이승만 지도하의 독립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미군 신분으로 귀국하여 미 군정 고문으로 봉직했고,
1948년의 미군 철수령에 따라 전 가족을 동반하여 재차 도미했으며,
1951년에는 미국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 있는 매카레스트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52년 귀국한 그는 대전에 연합봉사회를 창설하는 한편 금융조합원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배민수 박사는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애국가의 곡을 도입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숭실학교 동창인 안익태의 곡을 가져왔고,
이후 그것이 국내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평생 "남을 살려야 내가 산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나 하나만을 위하는 극단의 이기주의적 풍토 속에서 상대를 먼저 잘 되게 해야 나도 잘 될 수 있다는,
"함께", "더불어"의 공동체 원리를 주장했다.
그리고 그 일에 모범을 보여 매사에 먼저 남에게 양보하고 스스로의 명예와 이권을 포기하는
신앙적 영성을 갖고 살았다.
1993년 광복절에는 배민수 박사와 함께 그의 부친 의병대장 배창근의 독립 운동 공로가 인정되어
대통령 서훈에 따라 부자가 각각 건국 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그의 장례는 숭실대학장으로 치러졌으며, 유해는 고양군 일산 삼애동산 선영에 안장되어 있으며,
이 삼애동산은 그의 유족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연세대학교 농업개발원에 배민수 박사는
농촌 진흥 유공자상(1962), 3·1독립 운동 선도자상(1966) 등을 수상했기증하였다.
농촌 운동에 대한 배민수 박사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연세대학교에서는 1980년 12월에
"배민수 박사기념관"을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완성했으며, 기념관 전시실 안에 그의 유품을
보관하여 전시하고 있다.
오늘날도 배민수 박사 기념사업회와 삼애동지회는 배민수 박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8월,
일산 연세대학교 농업개발원 배민수 박사 기념관에서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
*글 - 충북대학교 역사교육과 전순동 교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