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라디보스토크
“그래 블라디보스토크으로 가자”
여행이란 즐거움이여 삶의 활력을 생성시키면서 나의 추억을 만드는 모멘텀(기세, 힘)이다.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유럽 블라디보스토크를 바다로 22시간에 걸쳐 만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 지방에 있는 러시아의 유일한 부동항구도시이자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 종착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는 이틀이면 도보로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지 만 우리는 4박5일 중 2일은 선상 하루 산행을 포기하니 관광 만 3일 그래서 넉넉하다. 여기서 보고 듣는 블라디보스토크에 관한 많은 이야기 중 가장 좋았던 꿀팁 만 본다.
나이가 들며 여행할 때 관광지 답사보다는 그곳에서의 여유를 즐기리라고 마음을 정하지만 결국 블라디보스토크를 하나라도 더 보려고 새벽 일찍 일어나 밤늦게 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그것은 미지의 새로움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의 힘이 였다고나 할까.
우리 말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샤슬릭, 킹크랩, 곰새우 힝칼리 하차푸리, 하르초스트, 볼린등 러시아에는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많다는데. 내가 아는 음식은 킹크랩과 보트카뿐이니....
코롱산악회 72명을 실내체육관앞 주차장에서 9시에 동해항을 향해 출발 한다. 산행 친구들이 여럿 있어 즐겁고 편한 분위기다.
동해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DBS크루즈 훼리(이스턴 드림호 이코노미)에 일찍 승선하여 점심은 선내식으로 마찬다.
말로만 듣던 22시간 선내생활은 22시간 후에 느껴진다. 앉아서 가는 긴 비행기 여행보다 훨랑 좋았다. 쉼쉼이 휴게소에서 쉬며 마시는 맥주 소주를 곁들인 안주 그리고 나이트클럽에서 광란의 시간은 느낀 사람들만 알자. 선내의 피로를 취침과 작은 사우나에서 풀고 나니 벌써 불라디보스토크다.
18일
해변가의 상징물처럼 보이는 금각교(金角橋 금뿔다리)는 APEC 회의 개최를 위해 만들었단다. 이곳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시각으로는 최고의 명물이다.
다리를 건너면 루스커섬으로 극동연방대학이 있다. 이 섬에는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는 아쿠아리움관광은 돌고래 쑈를 볼수 있다고 한다.
기차역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약 만 킬로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인 역사는. 러시아혁명(1912년) 때 세워졌다는 역건물은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건물에 속한다고 하는 이 역건물을 보며 혁명광장으로 이동한다.
우리민족의 역사와 어우러진 혁명광장이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혁명광장이다
정식명칭은 혁명전사광장으로 러시아혁명에 희생된 전사 병사들을 기념하는 광장이라는 뜻이다
이 광장은 1917년부터 1922년까지 소비에트 혁명 성공을 기념하는 곳 답게 광장 중심에는 전사들의 동상이 서있다.
올해로 러시아 10월 혁명 100주년입니다. 1917년 10월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는데, 사회주의 혁명의 확산을 두려워 했던 서방국가들은 동맹을 맺고 러시아와 전쟁을 치룬다.
1922년 볼세비키가 이곳 블라디보스토크를 다시 되찾으면서 러시아 혁명이 완성된다.
기념탑을 보면 왼쪽 작은 동상들이 1917년의 혁명을 오른쪽 작은 동상들이 1922년 블라디보스토크를 되찾고 혁명을 완수한 것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1937년 소련공산당은 이곳에 거주하던 우리동포들을 중앙아시아 척박한 오지로 내몰았다 일본의 첩자라는 죄목을 붙여서... 고려인 강제이주를 위해 우리 동포들을 집합시켜 놓았던 곳이다. 여기 집결시킨 후 아마도 기차역까지 끌고 갔을 것이고 거기서 시베리아열차를 타고 중앙아시아지역으로 목적지도 모른 채 끌려갔을 것이다
그 때가 바로 1937년이다. 강제적인 이주지만, 사실은 추방이다 그런 고통의 역사가 진행된 곳이다.
혁명광장을 지나 10분 정도를 걸으면 또 다른 관광지인 2차세계대전에 실제 참전한 C-56잠수함 박물관으로 향한다.
지금까지 잠수함에 가본적이 없어서 내심 꼭 보고 싶었다.
병사들의 조각상 앞으로 2차 세계대전에 쓰인 잠수함이 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S-56 잠수함은 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 함선 10척을 침몰시켰다는 전설의 잠수함으로 개조해서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다. 당시 이 잠수함에 승선했던 승무원들은 태평양과 대서양의 영웅으로 숭상 받았다고 하며, 빠르고 강한 어뢰와 대포를 보유하였고 빠른 속도를 자랑하였다고 한다.
S-56 잠수함 박물관으로 표기되기도 하고 C-56 박물관으로도 표기되나 영문 알파벳 S는 러시아에서 C로 표기되어서 C-56으로 표기되는 듯 하다. 잠수함 함수엔 소련 시절의 깃발이 게양되어 있다.
입장료는 100루블로 한화로는 2,000원 정도라고 한다.
여러 가지 훈장이며 소련 군인이 실제로 사용했던 수첩과 당시 사진들이 남아있지만, 전부 러시아어로만 적혀져 있어서 무슨 뜻인지는 모르고 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잠수함 박물관의 마지막은 함미의 어뢰 탑재 공간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소련인들의 군모를 사는 것도 여행의 한쪽
잠수함을 뒤로하고 니콜라이 개선문을 만나러 간다.
제정 러시아(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을 기념으로 세워져서 니콜라이 개선문으로도 불리지만 조금 작은 규모이다
네 군대로 통하는 문을 통과하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워 진다는 이 문도 볼세비키 혁명 이후 헐었었는데, 소련 붕괴 뒤 다시 세웠다.
19세기 러시아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니콜라이 개선문의 최상단엔 제정 러시아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로 장식되어 있다.
단체 사진을 찍고 내려선 곳은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영원의 불꽃 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전쟁을 얘기하면 '나폴레옹 전쟁'과 '2차 세계대전'을 얘기한다. 그만큼 위기에 빠졌던 전쟁이고, 끝내 승리한 전쟁이기도 해서다.
각각 소련이 독소전쟁으로 인해 2차대전에 참전한 시기인 1941년과 일본의 항복으로 2차대전의 종지부를 찍은 1945년을 의미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꺼지지 않고 계속 불타고 있을 불꽃.
작은 불꽃이지만 그들의 참전 용사를 기리며 365일 내내 불을 밝히고 있다.
영원의 불꽃에서 왼쪽엔 조금 전에 본 잠수함과 그 너머로 러시아 군함들이 보인다.
영어 아니 외국어가 안 통하는 그릴 문자 만 보이는 특이 한 나라 미인 보트카 자작나무 인형의 나라는 나에게는 무진장 답답 거북한 도시일 뿐이다.
오늘 일정은 이곳으로 마치고 일행은 보트카 한잔을 곁들인 저녁을 마차고 호텔로 향한다. IN CITY 호텔은 새로 신축 중이어서 큰 기대 없이 우리 여관 정도 생각하며 킹크랩을 주문하여 빨간소주로 입을 축이며 밤을 보낸다.
19일
신한촌 기념비를 찾았다
수많은 독립운동 계획들이 수립되고 한인 독립운동의 기지였던 신한촌에 기념비를 세웠다
신한촌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버스로는 10여분 떨어진 곳으로 시내 중심부에 살던 고려인들을 한 곳에 모아 두려는 작은 고려인 이주 정책이었다. 이러한 작은 시도가 후일 고려인 이주 정책의 모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신한촌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이곳에서 극장도 짓고 나름 소사어티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
신한촌 기념탑은 화강암으로 한국에서 직접 공수한 거라고 한다.
고려인, 조선족, 해외동포들.. 나라가 망해서 떠돌았던 이들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독립운동 참여 여부를 떠나 이 정도의 정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에 말도 안 되는 사회주의 집권적 정책인 스탈린의 고려인 대 이주 정책에 의해 다시 중앙 아시아로 대규모 이주 정책이 이루어 지기 전까지는 이곳 신한촌이 집단 고려인 거주지인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이곳으로 밀려난 고려인들이 다시 또 중앙 아시아로 속절없이 강제 이주 당하여야만 했던 조상들의 한이 맺힌 곳이다
작은 울타리 안에 초라하게 서 있는 기념비가 아직도 러시아에서 고려인들에게 대한 대우를 말해 주는 듯 하여 가슴 아프다
이런 현장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의 뿌리를 든든히 하는 작업들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과 전 재산을 받쳐 지켜왔건만 후세들은 이국땅에서 외롭게 싸우다가 가신 선열들의 넋을 위로하는데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듯싶다.
일동 묵념은 우리가 선조에게 드리는 유일한 우리의 작은 선물이 었다.
이어서 기대했던 기차여행이다. 어제 보았던 기차역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인 역사로 통헤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건물에 기대 보며 황단열차가 아니라 짧은 코스인 나제젠스까야역 까지 1시간에 걸처 내선기차 투어다.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화장실가기다. 기차역내 화장실이 유료란다. 가이드를 따라 단체입장이다.
광활한 러시아의 대평원을 드볼작의 유머레스크를 음미하며 착각 착각 레일소리에 타고 내리는 억센 발음의 러시아인의 삶도 보고 느끼며 기차여행을 즐겼다,
기차역을 뒤로 하고 현지인과 접 할 수 있는 재래시장을 방문해서 현지의 문어를 사려고 백방 노력했지만 문어를 아는 사람이 없다. 문어는 동해항에서 먹기로 하고 독특한 시장 우리시장에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모두들 신가함에 취해 시장을 누빈다.
우수리스크에서 점심을 먹는다.
1863년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를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건립한 고려인문화센터는 1만㎡ 부지에 지상 2층, 연면적 4천㎡ 규모이다.
기념관에는 발해시대부터 현재까지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전시관이 있다.
최재형선생은 연해주와 만주 독립운동가들의 대부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았던 사업가이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대부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고, 말년에는 이 조그마한(?) 집에 사셨다고 한다.
실제 조선 노비로 태어나 러시아로 이주하고 거부가 된 기업가인 그는 한인사회의 꿈나무를 키워내려고 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하는 분들을 물질로 돕다가 가족과 함께 피살되었다고 한다 안중근의사에게도 많은 물질적 도움을 주기도 했다.
헤이그 밀사로 파견되셨던 이상설 선생 유허비도 만난다.
선생은 이곳 한인들의 중심지 우스리스크에서 활동하셨는데, 돌아가시면서 유언을 하셨다고 한다.
“ 나라 잃은 백성이니 제사를 지내지 말고, 시신은 화장을 해서 강에 띄워 바다 건너 고국 땅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리고 안중근의사는 "세계 대세에 밝고 동양시국을 간파한 동양평화주의자"라고 높이 평가하셨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간산주마로 달려온 하루의 일과는 대평원 발해성터를 향했다.
고구려(기원전 37년? ~668년)가 만주와 연해주까지 지배했으며 고구려가 신라에 망하자 유민들이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발해(698~ 926)국을 다시 세웠다.
거란에 망해 대를 이어오지 못했지만 우스리스크에 당시 15부의 행정구역중 솔빈부(率賓部)의 솔빈(率賓;수이푼)이라는 말이 남아 있고 발해성터도 발굴되었다.
철종때 함경도 주민들이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자 고향을 버리고 젖과 꿀이 흐를지 모를 만주와 연해주로 빠져나갔다.
1860년 러시아 땅이 된 연해주는 개발이 필요했고 그래서 집단 이주를 받기도 했다.
천성이 부지런한 한민족 후예들이 잘 적응하며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고 있었다.
아무르만 블라디보스토크 서안의 ‘개척리’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은 아무 흔적이 없지만 고려인들이 정착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율브린너 생가를 찾았다. 왕과 나의 복장인 동상을 보면 그의 눈빛을 느껴본다.
율브린너 집안은 이곳의 부호였답니다. 바로 뒤의 3층 건물이 율브린너 생가입니다.
이제는 러시아 방문의 한쪽 킹 크랩을 먹으로 갑니다.
보트카를 곁들이 풍성한 킹크랩 가위를 든 모습은 모두 기분이 최고다. 작은 동태찌개가 저녁을 더 맛있게 했다..
20일
불라디보스토크에서 제일의 명소인 블라디보스토크 전망대 (독수리 전망대)는 금각교를 중심으로 시내를 한눈에 불수 있는 곳으로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 인데 날씨가 안 도와 줍니다.
외국인 관광객 뿐 아니라, 러시안 국내 관광객들도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지역 주민들도 선셋과 야경을 보기 위해 즐겨 찾는 이곳! 야경을 보며 차 안에서 데이트하는 현지인 커플을 많이 볼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가장 높은 곳에서 한눈에 볼 수 있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대표하는 금각 교 그리고 바다와 도시 전경과 함께 멋진 사진도 남기고 도시 안이 아닌 위에서 내려다보며 시내 관광과 또 다른 기분을 느껴 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방문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에서 가장 긴 금각교 사장교(1,104m)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인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산으로 191m의 낮은 산이며 시내를 내려다 보기에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금각만과 아무르만, 그리고 그 주변 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시내 중심부가 한눈에 보인다.
러시아 정교회 중 불러디보스토크에서 제일 크다는 정교회는 생략하고 벤취에서 친구들과 쉴 랍니다.
러시아사람들의 생활에 종교생활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다는 정교회다. 러시아인구의 70%가 믿고 있는 러시아정교회 사원은 원래 가톨릭과 하나의 교회였으나, 11세기 무렵 유럽이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등으로 분리되는 등 대변화를 격게 되자, 자신들이 전통교회의정통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으로 정교회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교회를 나와 기대에 부푼 아르바트거리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회고의 명소가 아르바트 거리다. 이곳은 일명 ‘예술의 거리’라 불리는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를 본떠 이름까지 똑같이 만든 곳으로, 거리 곳곳에 예술가들의 낭만이 가득하다. 젊음의 열기를 느끼는 곳인데 1시간에 이 거리를 돌아 보기는 힘들어 수 십개의 분수대를 보는 것으로 젊음의 거리를 조용히 소화했다.
17일 동해여객선 터미널 처럼 블라디부스톡 부두에서 DBS크루즈 훼리(이스턴 드림호 이코노미)에 올랐다.
크루즈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는 여행의 즐거움을 음미하며 72명의 식구들을 머리에 입력 시킨다. 그리고는 한국으로 향한다.
( 우리들의 일상 여행담 보다 불라디보스토크의 관광을 안내하는 쪽으로 한자 적었습니다. 참고로한 카페 불러그 주인께 감사 드리고 함께한 식구들 고맙습니다 행복했습니다.)
|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다시한번 생각하게만든 멋진글입니다~~~수고하셨습니다~^^
산행팀과 여행팀으로 나뉘어져 함께 많은 시간을 못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생생한 후기 감사합니다.
와우((멋진 후기 감사히 읽었슴당^^
((( 안녕하세요^^ 백두님^^
많은 웃으주셔서 감사했어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