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산아래에서 긴긴밤 한솥밥먹고 한이불 쓰며 쌓은 동지애 탓일까요? 오대산의 정기를 받고 선자령 칼바람에 단련된 영향일까요? 속속 도착하는 교육생들의 모습이 활기차고 발걸음에서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웃음띤 얼굴로 나누는 인사에서도 부쩍 가까워졌음이 감지됩니다. 오늘은 멋쟁이 김주용샘의 손에 설탕가루가 뿌려진 도너츠가 들려 있습니다. 한 입 베어문 입 안에 달달함이 퍼지고 기분이 업 앤 업 좋아집니다. 널찍한 광장에서 체조로 몸을 풀고 단체 인증샷 촬영으로 일정을 시작합니다.
첫 관찰 수종은 살구나무와 매실나무입니다. 관찰할 나무가 두어그루에 불과해 선점하기 위한 강사님들의 눈치작전이 치열합니다. 방이 빠질동안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곳곳에서 강사님들의 썰전이 펼쳐집니다. 그 옛날의 수리산골,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담배를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갔던 역사에서 유래된 담배촌의 마을이야기부터 매실과 살구에 대한 온갖 썰들이 설파됩니다. 꽃이 붉다하여 홍매요, 눈속에 피어서 설중매이고, 가지 끝에 한송이 오롯이 피어 일지매라 한다는 이름풀이, 살구와 매실을 구분하는 생활의 지혜, 행인이라 불리는 살구씨가 기침과 가래를 삭히는데 좋다는 한방효능까지 동원됩니다.
차례로 관찰에 들어갑니다. 매실나무는 어린가지가 녹색이고 가지가 변한 가시, 즉 경침이 많은데 비해 살구나무의 어린가지는 붉고 가시가 매실나무보다 적은 것이 동정 포인트입니다. 마침 매실나무와 살구나무가 나란히 자라고 있어 비교 관찰하기엔 딱입니다. 부지런히 루페를 옮겨가며 차이를 확인하고 꾹꾹 눌러 담습니다.
먼저 관찰을 마친 조는 계단을 올라 경사면에 비스듬히 서서 가지 하나씩을 잡고 서 있습니다. 해안가가 주서식처인 모감주나무입니다. 꽃귀한 한 여름철에 노란꽃을 흐드러지게 피워 서양에서는 황금비 내리는 나무(Goldenrain tree)라는 이름을 가진 모감주나무로 이야기꺼리가 많은 편에 속합니다. 꽈리모양의 열매가 3개로 갈라져 유아들에겐 ‘열매가 배타고 다니는 나무’로 통용되며, 금강자라 불리는 씨앗은 염주로 쓰였다고 하지요. 가지에 도드라진 피목이 눈에 띄고 삼각형 모양의 겨울눈에 털이 나있다는 특징을 기억해둡니다.
다시 이동합니다. 돌계단에 설치된 변형된 파고라에 굵은 덩굴가지가 이러저리 휘감겨 있습니다. 익숙한 등입니다. 조경수로 워낙 흔히 보아온 나무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겨울눈을 들여다 본 기억이 없습니다. 잔가지에 털이 보이고 튀어나온 입자국이 보입니다. 턱잎 달린 가시, 즉 엽침이 있다는 강사님의 지적에 다시 루페를 들이댑니다. 안보입니다. ‘있는 게 맞아’ 하는 의문이 들 무렵, “여기 있네요” 옆 동기의 외침에 자리를 옮겨 눈에 담아둡니다. 질문이 이어집니다. “등이 오른쪽으로 감겼나요? 왼쪽으로 감고 올라갔나요?” 어느 쪽인지 헷갈리는데, 강사님이 감긴 방향대로 손을 돌립니다. 오른쪽인가 싶은데 강사님이 “자! 보세요” 하며 정면을 향해 손을 빙글빙글 돌립니다. 왼쪽으로 돕니다. 둘 다 정답이라 합니다. 식물인지, 사람인지 보는 시점에 따라 다르지만 결국은 같다는 설명입니다. 쉬운 듯 어려운 선문답 같습니다.
다시 10여분 남짓 걷습니다. 저 앞에 선발진이 2팀이 모여 있습니다. 로터리 데크 쉼터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시간을 끌고 데크를 타고 올라온 덩굴손 같은 가지를 관찰합니다. 등인가 싶지만, 좀 전에 본 등과는 다릅니다. 데크 아래 나무를 보니 덩굴이 아니라 떨기나무입니다. 도대체 짐작이 안됩니다. 가지를 조금 잘라 가져오라 합니다. 꺽이기는 하는데 껍질이 주욱 벗겨질뿐 잘라지지 않습니다. 감이 옵니다. “종이 원료~ ” 힌트가 주어지자마자 닥나무가 바로 나옵니다. 관찰 대상은 아니지만 보기 힘든나무이며 특징인 툭 불거진 동그란 잎자국을 잘 봐두라 합니다. 드디어 차례가 왔습니다. 서둘러 관찰대형으로 자세를 잡습니다. 겨울눈이 새부리 닮은 모양으로 독특합니다. 보리수나무입니다. 맨눈이고 어린가지에 난 은백색의 비늘털과 가지끝이 변한 가시를 기록해둡니다. 데크 뒤편의 가죽나무의 큼직큼직한 눈도 살피고 이동합니다.
쉬엄 쉬엄 발걸음을 옮기자니 낮익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강사님들이 놓칠리 없습니다. “이 나무는 무슨나무지요? ” 쪽지 시험이 이어집니다. 쪽동백, 생강나무, 진달래. 답이 척척 나옵니다. 시험치를 맛이 납니다. 신이 난 강사님은 “이 나무 눈도 보세요”라며 덜꿩나무라고 알려준다. 까치, 까마귀에 이어 꿩이 등장합니다. 병아리(꽃나무)를 포함해 새이름이 들어간 나무도 적잖게 있습니다.
우연하게도 이번에 만난 나무는 아래로 향해 돋는 잎이 박쥐를 닮았다하여 이름붙은 박쥐나무입니다. 이름도 독특하지만 특이한 특징을 가진 나무입니다. 가지는 지그재그로 뻗고 전형적인 엽병내아에 겨울눈에 수북한 금빛이 살짝 도는 털을 동정 포인트로 요약해둡니다. 이어서 만난 누리장나무의 겨울눈도 개성이 튑니다. 민소매에 짙은 갈색의 맨눈, 말편자 모양의 입자국에 늦게까지 매달려 있는 열매까지 너무 독특해 다시 봐도 바로 떠올릴 것 같습니다. 그리 머지 않은 곳에서 만난 노린재나무는 상대적으로 겨울눈이 너무 보잘 것 없어 찌질해보이기까지 합니다. 튀어나온 입자국과 하나인 관다발자국, 그리고 특유의 수피를 기억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쉬운 길은 끝나고 오르막 데크가 나타납니다. 경사가 제법 가파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굽니까? 눈쌓인 오대산, 선자령 알프스도 넘었는데 이정도는 껌입니다. ‘천천히반’소속도 걱정없습니다. 동료들이 양쪽 또는 앞뒤로 수호천사처럼 나란히 붙어 걸음을 맞추며 전진합니다. ‘하나 둘’, 쉬고 또 ‘하나 둘.’ 어느새 고개마루에 섰습니다. 「사랑-가족행복-건강을 머물게 하는 언덕」입니다. 차례로 멈춰서서 빌어봅니다. ‘사랑, 행복, 건강도 좋지만 그보다 속마음은 올 겨우내 본 겨울눈의 기억이 오래 머물기를 바랍니다.’ 조금 내려가나했더니 다시 긴 오름길입니다. 다시 서로 격려하며 뚜벅 뚜벅 한걸음씩 옮깁니다. 드디어 내리막입니다. 잠시 숨돌리고 관찰을 이어갑니다. 잎이 고추잎을 닮았다는 고추나무입니다. 반바지 혹은 핫바지를 닮았다는 열매가 더 독특하다고 하는데 남아 있지 않아 아쉽습니다. 어린가지는 적갈색에 가지끝이 마르는 특징을 잘 기억해둬야 동정이 쉬울텐데 이름만 쏙 파고들 뿐 좀 지저분해 보이는 것 말고 이름만큼 동정포인트가 얼른 들어오지 않아 걱정입니다. 다음에 만난 초피나무는 확실히 기억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가시가 마주나고 누운털에 덮힌 맨눈인데 굴피나무, 비목나무와 함께 수리산에 식생하는 세가지 남부수종중 하나. 입력 완료입니다.
이제 수리산의 시그니처 나무인 비목나무를 만날 차례입니다. 길 양편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를 유심히 살피며 패스 패스 지나치다 한 나무 앞에 멈춥니다. 오동통한 꽃눈과 길쭉한 잎눈이 제대로 달려 있습니다. 어린가지에 오도독 피목이 발달해 있고 마치 권투글러브를 낀 두손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암수딴그루로 어린 나무는 잎눈만 달고 어느 정도 성숙해야 꽃눈이 생기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꽃눈이 하나인 것부터 4개 달린 것도 보입니다. 잎눈과 꽃눈이 같이 있으면 동정이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문제는 잎눈만 있을 때입니다. 관다발자국이 1개이고 비목나무 특유의 매우 연한 갈색의 수피도 추가로 기억해둡니다.
산을 거의 내려와서 마지막 관찰 수종인 고광나무를 만납니다. 나무상태가 썩 좋지 않지만 집중해봅니다. 겨울눈이 아주 특이하다며 꼭 기억해두라고 합니다. 세모진 입자국 속에 숨어 있는 겨울눈이 얼핏 ET를 닮았습니다. 겨울눈 각도에 따른 가지 뻗음이 축구공 형상이고 잎에서 오이향이 나는 특징도 기록에 남깁니다.
관찰은 모두 끝났습니다. 하산 목표지점인 최경환 성지에 모였습니다. 쉽지 않는 산행코스였는데 모두들 자신감 뿜뿜 여유 있어 보입니다. 선자령 특훈이 효력을 발휘하나 봅니다. 서서히 겨울숲에 특화된 산꾼이 되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첫댓글 현재 스코어 100종의 나무를 관찰하였는데 과부하 현상으로 오류작동중입니다.
다른 선생님들보다 보고 또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수리산은 4조 같은조 48기 임학수 선생님의 도움으로 재를 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비장함으로 출발하여 뿌듯함으로 내려왔던 선자령에서는 이런 것이 전우애인가 싶었어요 ㅎ
수리산에서는 이럴라고 선자령 특훈을 했구나 싶을 정도로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또 해내고 말았지 말입니다!
이제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들다니 ㅎㅎ 내일 찐~한 뒤풀이도 기대됩니다 :)
믿어지지 않는 끝이 보입니다. 정말 이번 겨울 특별한 겨울이었고 모든 대장님들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동기들도 고맙고 대견합니다. 특히 후기를 올려주신 선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수~고 ~ 많~이~하~셨~습~니~다. 한 수 배워 갑니다.
우리 대장님 다친신 건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겨울눈이야 쫌 모르면 어떻겠습니까 ㅎㅎ 이번 겨울 잘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