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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Requesting that which would enrich life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부탁하기
We have now covered the first three components of NVC, which address what we are observing, feeling, and needing. We have learned to do this without criticizing, analyzing, blaming, or diagnosing others, and in a way likely to inspire compassion. The fourth and final component of this process addresses what we would like to request of others in order to enrich life for us. When our needs are not being fulfilled, we follow the expression of what we are observing, feeling, and needing with a specific request: we ask for actions that might fulfill our needs. How do we express our requests so that others are more willing to respond compassionately to our needs? 우리는 NVC의 세 가지 요소에 대해 알아 봤다. 그것들은 관찰하는 것, 느끼는 것, 그리고 원하는 것. 우리는 배워왔다. 이것들을 하는 방법을. 비판, 분석, 비난, 진단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함으로써 연민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제 NVC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요소인 부탁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부탁할 것인가?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방법.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아래 표현 방식을 따른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 느끼는 것, 특별한 부탁을 가지는 요구, 우리는 어떤 동작을 요청한다. 우리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지도 모르는 동작을 요청한다. 우리의 부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이 더 기꺼이 반응할 수 있게 하려면, 우리의 요구에 대해 연민으로 반응할 수 있게 하려면.
Using positive action language 긍정적인 동작 언어를 사용하기
First of all, we express what we are requesting rather than what we are not requesting. 무엇보다도 우리는 부탁하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 우리가 부탁하지 않은 것보다는.
"How you do a don't?" goes a line of a children's song by my colleague Ruth Bebermeyer: ‘하지마’를 어떻게 할 수 있나요?”이것은 내 친구 루스 베버마이어가 어린이를 위해 쓴 노랫말의 일부이다.
"All I know is I feel won't when I'm told to do a don't." 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더 하고 싶어요.
These lyrics reveal two problems commonly encountered when requests are worded in the negative. People are often confused as to what is actually being requested, and futhermore, negative requests are likely to provoke resistance. 이 노랫말들은 부탁을 부정으로 표현했을 때 나타나는 두 가지 문제점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가끔 혼란스러워 한다. 무엇이 진짜 부탁되는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더욱이 부정적인 부탁은 저항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A woman at a workshop, frustrated that her husband was spending so much time at work, described how her request had backfired: "I asked him not to spend so much time at work. Three weeks later, he responded by announcing that he'd signed up for a golf tournament!" She had successfully communicated to him what she did not want - his spending so much time at work - but had failed to request what she did want. Encouraged to reword her request, she thought a minute and said, "I wish I had told him that I would like him to spend at least one evening a week at home with the children and me." 워크숍에서 남편이 회사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 좌절한 한 여성이 자신의 부탁이 어떤 역효과를 일으켰는지 말한 적이 있다. 어떤 부인이 좌절했었다. 그녀의 남편이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고. 그녀는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가 역효과를 받게 되었는지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마세요” 라고 부탁했다. 3주 후 남편은 답변하기를 그는 골프 토너먼트에 등록했다고 한다. 부인의 의도는 너무 일만 열심히 하지 말고 집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달라는 의미로 부탁을 했는데,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을 하지 말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녀는 성공적으로 그와 소통했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 것 - 그가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않는 것 - 그러나 그녀는 실패했다. 그녀가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에 대해. 그녀는 다시 말하기를 권유받은 뒤, 가만 생각해 보고 난 뒤, “나는 그에게 말했어야 했다. 나는 남편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집에서 저녁을 먹는 것을 원한다고. 나와 아이들과 함께.
During the Vietnam War, I was asked to debate the war issue on television with a man whose position differed from mine. The show was videotaped, so I was able to watch it at home that evening. When I saw myself on the screen communicating in ways I didn't want to be communication. I felt very upset. "If I'm ever in another discussion," I told myself, "I am determined not to do what I did on that program! I'm not going to be defensive. I'm not going to let them make a fool of me." Notice how I spoke to myself in terms of what I didn't want to do rather than in terms of what I did want to do. 베트남 전쟁 기간 중에 나는 부탁을 받았다. 토론해 달라고 베트남 전쟁에 대해 티비에서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토론은 녹화되었다. 나는 저녁에 집에서 방송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말하는 내 모습을 화면에서 보고 나는 상당히 낭패감을 느꼈다. 내가 다시 토론에 나가게 된다면, 나는 결심했다. 하지 않으리라 그 프로그램에서 했던 대로 하지 않으리라 고 결심했다. 나는 방어적이 되지 않으리라. 나는 상대가 나를 바보로 만들지 못하게 할 거야. 그런데 내가 입을 열자 그토록 피하려고 했던 말들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A change to redeem myself came the very next week when I was invited to continue the debate on the same program. All the way to the studio, I repeated to myself all the things I didn't want to do. As soon as the program started, the man launched off in exactly the same way he had a week earlier. For about ten seconds after he'd finished talking, I managed not to communicate in the ways I had been reminding myself. I fact, I said nothing, I just sat there. As soon as I opened my mouth, however, I found words tumbling out in all the ways I determined to avoid! 만회할 기회가 다음에 바로 왔다. 나는 초청되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토론을 계속해 달라고. 스튜디오로 가는 동안 내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상대는 지난주에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공격해 왔다. 약 10분 후에. 그가 발언을 끝내고 난 뒤, 나는 다짐했던 대로 했다. 그것은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입을 열자마자 그토록 피하려고 했던 말들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It was a painful lesson about what can happen when I only identify what I don't want to do, without clarifying what I do want to do. I was once invited to work with some high school students who suffered a long litany of grievances against their principal. They regarded the principal as racist, and searched for ways to get even with him. A minister who worked closely with the young people became deeply concerned over the prospect of violence. 이것은 아픈 교훈이었다. 무엇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내가 오직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만 보여 주었을 때,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 채. <이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하고 싶지 않은 것만 정해놓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아픈 교훈이었다.> 나는 한 번은 초대되었었다. 고등학생들 상담해 달라고. 교장 선생님에게 많은 불만을 품고 있는 고등학생들. 그들은 교장을 인종차별주의자로 간주했다. 그리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교장한테 복수할 기회를. 한 목사는 가까이 지냈다. 이 학생들과. 깊이 우려했다. 폭력 가능성에 대해.
Out of respect for the minister, the students agreed to meet with me. They began by describing what they saw as discrimination on the part of the principal. After listening to several of their charges, I suggested that they proceed by clarifying what they wanted from the principal. "What good would that do?" scoffed one student in disgust. "We already went to him to tell him what we wanted. His answer to us was, "Get out of here! I don't need your people telling me what to do!" I asked the students what they had requested of the principal. They recalled saying to him that they didn't want him telling them how to wear their hair. I suggested they might have received a more cooperative response if they had expressed what they did, rather than what they did not, want. 그게 무슨 소용이 이 있는 데요. 목사에 대한 존경심에서 학생들은 동의했다. 나와 만나는 것에 대해. 그들은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 차별로 보이는 것. 교장한테서 몇 가지 주장을 더 들은 다음 나는 학생들에게 좀 더 분명하게 말을 진행해 보라고 했다. 그들이 교장으로부터 원하는 것에 대해. 한 학생이 퉁명스럽게 비웃었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 벌써 교장실에 가서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들은 대답은 “여기서 나가” 나는 너희들한테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였단 말이에요. 나는 학생들에게 물어 봤다. 어떤 것을 교장에게 요청했었는지를. 학생들이 말하기를 그들은 교장에게 머리 모양에 대해 간섭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했다. 나는 제안했다. 그들은 더 협조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만약 그들이 원하는 것을 표현했었다면,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하기 보다는.
They had then informed the principal that they wanted to be treated with fairness, at which he had become defensive, vociferously denying ever having been unfair. I ventured to guess that the principal would have responded more favorable if they had asked for specific actions rather than vague behavior like "fair treatment." Working together, we found ways to express their requests in positive action language. At the end of the meeting, the students had clarified thirty-eight actions they wanted the principal to take, including "We'd like you to agree to black student representation on decisions made about dress code," and "We'd like you to refer to us as 'black students' and not 'you people.'" 그들은 교장에게 말했었다. 공평한 대우을 원하다고 교장에게 말했는데 교장은 이를 방어하면서 “한 번도 불공평하게 대우한 적이 없다” 고 강력하게 부인했다고 한다. 그들은 좀 더 공평한 대우를 받길 원한다고. 그 때 교장은 방어적이 되면서, 강력하게 부인했을 것이다. 한 번도 불공평하게 대우한 적 없다고. 나는 추측해 본다. 교장은 좀 더 호의적으로 반응했을 것이라고. 만약 학생들이 구체적인 행동을 요청했더라면, ‘공정한 대우’와 같은 막연한 행위를 요청하는 것 말고. 함께 의논하면서 우리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들의 부탁을 표현하는 방법. 긍정적인 언어로 미팅에 말미에 학생들은 38가지의 동작들을 분명하게 했다. 그들이 교장에게 말하길 원하는 것을, “복장에 대한 규칙을 만들 때는 흑인 학생 대표가 참여하는 데에 동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가르킬 때 ‘너희’라고 하지 말고 ‘흑인 학생들’이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The following day, the students presented their requests to the principal using the positive action language we had practiced; that evening I received an elated phone call from them: their principal had agreed to thirty-eight requests! In addition to using positive language, we also want to word our requests in the form of concrete actions that others can undertake and avoid vague, abstract, or ambiguous phrasing. A cartoon depicts a man has fallen into a lake. AS he struggles to swim, he shouts to his dog on shore. "Lassie, get help!" in the next frame, dog is lying on a psychiatrist's couch. We all know how opinions vary as to what constitutes "help": some members of my family, when asked to help with the dishes, think "help" means supervision. 그 다음날 학생들은 우리가 연습한 긍정적 행동언어로 교장에게 부탁했다. 나는 그날 저녁, 학생들로부터 의기양양한 전화를 받았다. 교장이 서른여덟 가지 부탁에 모두 동의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 외에도 우리는 우리의 부탁을 하기를 원한다. 좀 더 구체적인 동작들로 하기를. 다른 사람들이 해 주기를 원하는. 그리고 막연하고, 추상적이고, 명확하지 않는 표현을 피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 어떤 만화가 하나 있다. 어떤 사람이 호수에 떨어진 것을 묘사하는 만화. 그는 수영하려고 용을 쓰면서 외쳤다. “래시 가서 도움을 청해” 그 다음 장면에서 개가 긴 의자에 누워 정신과 치료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모두 안다. 의견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help'라는 것이. 우리 가족의 어떤 사람은 설거지를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Making requests in clear, positive, concrete action language reveals what we really want. Vague language contributes to internal confusion. 부탁할 때, 명확하게, 긍정적으로, 구체적인 행동 언어로 말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막연한 언어는 내부적인 혼란을 불러온다.
A couple in distress attending a workshop provides an additional illustration of how nonspecific language can hamper understanding and communication. "I want you to let me be me," the woman declared to her husband. "I do." he retorted. "No you don't!" she insisted. Asked to express herself in positive action language, the woman replied, "I want you to give me the freedom to grow and be myself." Such a statement, however, is just as vague and likely to provoke a defensive response. She struggled to formulate her request clearly, and then admitted, "It's kind of awkward, but if I were to be precise, I guess what I want is for you to smile and say that anything I do is okay." Often, the use of vague and abstract language can mask oppressive interpersonal game. 한 워크숍에서 불화를 겪고 있는 어느 부부가 구체적이지 않은 표현이 그들 사이에 이해와 소통을 얼마나 방해하고 있는지 실감나게 보여 주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커플, 워크숍에서, 추가적인 설명 예를 제공한다. 얼마나 특정하지 않은 언어가 이해와 소통을 방해하는지를 “내가 내 자신이 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어요.” 라고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하고 남편이 반박했다. “언제요, 당신은 그렇지 않아요!” 라고 아내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긍정적인 언어로 표현해 보라고 요청받자 그 아내는 대답했다. “내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내게 자유를 주었으면 해요.” 하지만 이 말 역시 똑 같이 막연하고 방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그녀는 자신의 부탁을 좀 더 명확하게 하려고 고심하더니. 그녀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조금 이상한 말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제가 원하는 것은 내거 무엇을 하든 남편이 ‘좋아!’ 하고 웃으면서 말해줬으면 하는 거예요. 종종 막연하고 추상적인 언어가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관계 게임을 감추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A similar lack of clarity occurred between a father and his fifteen-year-old when they came in for counseling. "All I want is for you to start showing a little responsibility," claimed the father. "Is that asking too much?" I suggested that he specify what it would take for his son to demonstrate the responsibility he was asking. After a discussion on how to clarify his request, the father responded sheepishly, "Well, it doesn't sound so good, but when I say that I want responsibility, what I really mean is that I want him to do what I ask, without question-to jump when I say jump, and to smile while doing it." He then agreed with me that if his son were to actually behave this way, it wold demonstrate obedience rather than responsibility. Like this father, we often use vague and abstract language to indicate how we want other people to feel or be without naming a concrete action they could take to reach that state. For example, an employer makes a genuine effort to invite feedback, telling the employees, "I want you to feel free to express yourself around me." 비슷한 예로 분명함이 부족할 때 아버지와 15살 아들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그들인 상담하러 왔을 때. 아버지가 말하길 “내가 원하는 것은 작은 책임감을 보여 주라는 것이다.” 라고 아버지가 주장했다. “그게 무리한 요구인가?” 나는 제안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면 아들이 그가 원하는 책임감을 보여 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했다. 아버지가 좀 더 분명하게 언급해야 한다고 보여줘야 할 책임감이 무엇인지. 그가 요구하는 책임감이 무엇인지에 대해 점 더 구체적으로 보여 달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명확한 부탁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논 후에, 아버지는 조금 어색해 하면서 말을 꺼냈다. “글쎄, 별로 좋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책임감을 가져라고 내가 말할 때, 내가 의미하는 것은 내가 그에게 나는 요청하는 대로 하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대꾸하지 말고, 내가 뛰라면 뛰고, 웃으라면 웃고. 그러고 난 뒤 나에게 동의했다. 만약 그의 아들이 이와 같이 행동했다면, 그것은 복종을 의미하지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와 같이 우리는 자주 막연하고 추상적인 언어로 암시하는 말을 사용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껴야 하고 어떻게 되기를 바란다는. 구체적인 행동을 지칭하지 않고. 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취해야할 구체적인 행동을 지칭하지 않고. 예를 들면 어떤 고용주가 진심으로 사원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근로자들에게 말하길 “나는 여러분들이 기탄없이 말해 주길 바랍니다”
The statement communicates the employer's desire for the employees to "feel free," but not what they could do in order to feel this way. Instead, the employer could use positive action language to make a request: "I'd like you to tell me what I might do/ to make it easier for you to feel free to express yourselves around me." As a final illustration of how the use of vague language contributes to internal confusion, I would like to present the conversation that I would invariably have during my practice as a clinical psychologist with the many clients who came to me with complaints of depression. After I empathized with the depth of feeling that a client had must expressed, our exchanges would typically proceed in the following manner: 이 말은 전달된다. 사장의 희망을. 사원들이 편하게 느끼기를 바라는 희망. 그러나 사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편하게 느끼기 위해. 사장은 긍정적인 동작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탁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하면 여러분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여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을지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마지막으로 모호한 말이 어떻게 내면에서 혼란을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실례이다. 마지막 예로서, 막연한 언어의 사용이 내면에서 혼란을 일으키는지, 나는 대화를 보여주겠다. 내가 예외없이 가지는 연습, 임상심리학자로서 일할 때, 많은 내담자들과 가졌던 연습. 그 환자들은 우울증을 호소하면 나에게 왔었다. 내가 느낌에 대해 깊이 공감을 한 후에, 내담자가 한 말에 대해, 우리의 다음 대화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MBR: What are you wanting that you are not receiving? 당신이 원하는 데 얻지 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Client: I don't know what I want.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MBR: I guessed that you would say that.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Client: Why?
MBR: My theory is that we get depressed because we're not getting what we want, and we're not getting what we want because we have never been taught to get what we want. 내 이론은 우리는 우울해진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는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는 법을.
Instead, we've been taught to be good little boys and girls and good mothers and fathers. If we're going to be one of those good things, better get used to being depressed. 대신에 우리는 배워왔다. 착한 소년이나 소녀가 되도록, 또는 착한 엄마와 아빠가 되도록. 만약 당신이 이러한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울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Depression is the reward we get for being "good." 우울은 보상이다. 우리가 착하다는 인정을 받는 대신에 얻는 보상이다.
But if you want to feel better, I'd like you to clarify what you would like people to do make life more wonderful for you. 인생을 보다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해주기 원하는지 분면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Client: I just want someone to love me. That's hardly unreasonable, is it? 나는 단순히 어떤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게 머 그렇게 말이 안되는 소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MBR: IT's a good start. Now I'd like you to clarify what you would like people to do that would fulfill your need to be loved. For example, what could I do right now? 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충족되기 위하여 사람들이 무엇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세요. 예를 들어 지금 제가 무엇을 해 드리면 좋겠습니까?
Client: Oh, you know...
MBR: I'm not sure I do. I'd like you to tell me what you would like me, or others, to do to give you the love you're looking for.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하면 저나 다른 사람이 당신이 받고 싶어 하는 사랑을 줄 수 있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When we simply express our feelings, it may not be clear to the listener what we want them to do. 우리가 단순히 느낌만을 표현하면,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청자에게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그들이 해 주기를. <단순히 느낌만을 표현하면 듣는 사람에게 우리가 그들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Client: That's hard
MBR: Yes, it can be difficult to make clear requests. But think how hard it well be for others to respond to our request if we're not even clear what it is! 네 어려울 수 있죠. 분명한 요청을 하는 것은.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어려울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요청에 반응하는 것이. 만약 우리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그것을 해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Client: I'm starting to get clear what I want from others to fulfill my need for love, but it's embarrassing. 내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좀 보이기 시작하네요. 하지만 약간 부끄러운데요.
MBR: Yes, very often it is embarrassing. So what would you like for me or others to do? 네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죠. 저나 다른 사람이 어떻제 해 주면 좋을지 이제 말씀해 보세요.
Client: If I really reflect upon what I'm requesting when I ask to be loved, I suppose I want you to guess what I want before I'm even aware of it. And then I want you to always do it. 사랑받고 싶다고 할 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니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방이 나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항상 그것을 해주었으면 하는 겁니다.
MBR: I'm grateful for your clarity. I hope you can see how you are not likely to find someone who fulfill you need for love if that's what it takes. 명확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조건이 그렇다면 당신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우실지 그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Very often, my clients were able to see how the lack of awareness of what they wanted from others had contributed significantly to their frustrations and depression. 많은 경우에 내담자들을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 의식부족이 어떻게 좌절감과 우울증을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Making requests consciously 의식하면서 부탁하기
Sometimes we may be able to communicate a clear request without putting it in words. Suppose you're in the kitchen and your sister, who is watching television in the living room, calls out, "I'm thirsty." In this case, it may be obvious that she is requesting you to bring her a glass of water from the kitchen. However, in other instances, we may express our discomfort and incorrectly assume that listener has understood the underlying request. For example, a woman might say to her husband, "I'm annoyed you forgot the butter and onions I asked you to pick up for dinner." While it may be obvious to her that she is asking him to go back to the store, the husband may think that her words were uttered solely to make him feel guilty. 때때로 우리는 전달 할 수 있다. 명확한 부탁을. 말로 하지 않고. 당신이 부엌에 있다고 그리고 언니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고 하자. 언니가 “내가 목이 말라” 라고 외치면, 이 때는 분명하다. 언니가 요청하고 있는 것. 당신이 언니에게 물을 가져 오는 것. 부엌에서. 하지만 다른 경우, 우리는 불만을 표현하고 잘못 가정할 지도 모른다. 청자가 뒤에 숨은 부탁을 이해했을 거라고. 예를 들면, 어떤 부인이 그녀에 남편에게 “난 짜증이 난다. 당신이 잊은 것, 버터와 양파를 잊은 것. 내가 요청했던 것. 저녁 식사 준비에 필요한 버터와 양파을 잊은 것에 짜증이 난다. 이 경우 분명하다. 그녀에게 그녀는 남편이 다시 가게로 가서 물건을 사오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 남편은 생각할지 모른다. 그녀의 말이 다시 그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고 말을 했다고 느낄지 모른다.
We are often not conscious of what we are requesting. Requests may sound like demands when unaccompanied by the speaker's feelings and needs. Even more often, we are simply not conscious of what we are requesting when we speak. We talk to others or at them without knowing how to engage in a dialogue with them. We toss our words, using the presence of others as a wastebasket. In such situations, the listener, unable to discern a clear request in the speaker's words, may experience the kind of distress illustrated in the following anecdote. 우리는 가끔 의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가 부탁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사람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지 않는 부탁은 명령처럼 들릴 수 있다. 더 많은 경우 우리는 말을 하면서도 상대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있는지 아예 의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대화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또는 다른 사람을 향해 이야기하면서 상대의 존재가 마치 휴지통인 양 우리의 말들을 던져 버린다. 그러한 경우에 청자는 분명한 부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화자의 말에서 겪는다. 일종의 스트레스를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보여주듯.
I was seated directly across the aisle from a couple on a mini-train that carries passengers to their respective terminals at the Dallas/Fort Worth International Airport. For passengers in a hurry to catch a plane, the snail's pace of the train may well be irritating. 나는 마주앉아 있었다. 미니 트레인에서 어떤 커플과. 그 기차는 승객들을 각 항공사의 터미널로 실어다 주는 열차였다. 댈러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급히 가야하는 승객들에게는 느린 속도로 가는 이 열차가 초조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The man turned to his wife and said with intensity, "I have never seen a train go so slow in all my life." She said nothing, appearing tense and uneasy as to what response he might be expecting from her. He then did what many of us do when we're not getting the response we want: he repeated himself. In a markedly stronger voice, he exclaimed, "I have never seen a train go so slow in all my life!" The wife, at a loss for response, looked even more distressed. In desperation, she turned to him and said, "They're electronically timed." 남편이 부인쪽을 쳐다보면서 격한 소리로 말했다. “난 결코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늦게 가는 열차를. 내 인생에서”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처한 표정으로 무슨 반응을 할지 몰라서 남편이 그녀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러자 그는 행동했다. 우리들 모두가 하는 행동. 우리는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했을 때 하는 행동. 그는 스스로 반복했다. 전보다 더 큰 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렇게 느려터진 열차는 내 평생에 처음 본다니까!” 부인은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 더욱 난처한 표정으로 보였다. 난처한 표정으로 부인은 남편을 돌아보면 말했다. 이 열차는 전부 자동제어로 운행되고 있어요.
I didn't think this piece of information would satisfy him, and indeed it did not, for he repeated himself a third time-even more loudly, "I HAVE NEVER SEEN A TRAIN GO SO SLOW IN ALL MY LIFE!" The wife's patience was clearly exhausted as she snapped back angrily, "Well, what do you want me to do about it? Get out and push?" Now there were two people in pain! What response was the man wanting? I believe he wanted to hear that his pain was understood. If his wife had known this, she might have responded, "It sounds like you're scared we might miss our plane, and disgusted because you'd like a faster train running between these terminals." 내가 보기에 이 같은 정보는 남편을 안심시켜 줄 것 같지 않았고, 역시나 그랬다. 그는 이번에는 더 큰소리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렇게 느려터진 열차는 내 평생에 처음 본단 말이오!” 부인의 인내도 한계에 달해 남편의 말에 발끈하면 화를 냈다. “그래서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에요? 나가서 열차를 밀기라도 하란 말이에요? 이제 두 사람 모두 괴롭게 되었다. 남편은 어떤 대답을 원했을까? 나는 믿는다. 그는 듣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의 고통이 이해되기를. 자기의 마음을 부인이 이해해 주기를. 만약 그의 부인이 이것을 알았더라면, 그녀는 아래와 같이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인 듯하군요. 당신은 두려워하는 듯 하군요. 우리가 비행기를 놓칠까 봐. 그리고 짜증나시는 군요. 왜냐하면 더 빠른 기차가 여기 두 터미널 사이에 운행되었음해서요.
The clearer we are about what we want, the more likely it is that we'll get it. To make sure the message we sent is the message that's received, ask the listener to reflect it back.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 분명하게 하면 할 수록 우리는 더 그것을 얻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우리의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들은 것을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In the above exchange, the wife heard the husband's frustration but was clueless as to what he was asking for. Equally problematic is the reverse situation - When people state their requests without first communicating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them. This is especially true when the request takes the form of question. 앞의 대화에서 부인은 남편의 불평은 들었지만 그가 무엇을 부탁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반대의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자신의 느낌이나 욕구를 말하지 않고 부탁만 먼저 하는 상황에서. 부탁이 의문문 형태를 취할 경우 특히 그렇다.
"Why don't you go and get a haircut?" can easily be heard by youngsters as a demand or an attack unless parents remember to first reveal their own feelings and needs: "We're worried that your hair is getting so long it might keep you from seeing things, especially when you're on your bike. How about a haircut?" “머리 좀 자르지 그러니?” 와 같은 말은 부모가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먼저 말하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자녀들에게 명령이나 공격적인 말로 들리기 쉽다. “네 머리가 길어서 혹시나 앞아 안 보일까 봐 걱정된다. 특히 자전거를 탈 때 말이야. 머리를 좀 자르는 게 어떻겠니?”
It is more common, however, for people to talk without being conscious of what they are asking for. "I'm not requesting anything," they might remark. "I just felt like saying what I said."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의식하지 못한 채 그들이 무엇을 요청하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나는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말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My belief is that, whenever we say something to another person, we are requesting something in return. It may simply be an empathic connection-a verbal or nonverbal acknowledgment, as with the man on the train, that our words have been understood. Or we may be requesting honesty: we wish to know that listener's honest reaction to our words. Or we may be requesting an action that we hope would fulfill our needs. The clearer we on what we want back from the other person, the more likely it is that our needs will be met.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요청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 공감일 수도 있다. 열차 안의 남자처럼 자신의 말을 이했다는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 공감. 또는 우리의 말에 대한 상대의 솔직한 반응을 알고 싶어 그것을 부탁할 수도 있다. 또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리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부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상대로부터 무엇을 받고 싶은지 명확하게 표현할수록, 우리의 욕구가 충족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Asking for a reflection 들은 대로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하기
As we know, the message we send is not always the message that's received. We generally rely on verbal clues to determine whether our message has been understood to our satisfaction. If, however, we're uncertain that it has been received as intended, we need to be able to clearly request a response that tells us how the message was heard so as to be able to correct any misunderstanding. On some occasions, a simple question like, "Is that clear?" will suffice. 모두 알다시피 우리가 한 말의 뜻이 항상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말에서 힌트를 얻는다. 결정하기 위해서 우리의 메시지가 만족스럽게 의도한대로 전달되었는지 결정하기 위해서. 만약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의미가 전달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을 때는, 상대가 내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분명히 물어보고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제 말이 분명한가요?”라고 묻는 것으로 충분하다.
Express appreciation when your listener tries to meet your request for a reflection. Empathize with the listener who doesn't want to reflect back. 감사함을 표시하라. 상대방이 당신의 부탁을 들어 주려고 노력한다면,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다시 말해 달라고 했을 때. 상대방에게 공감하라. 들은 것을 되풀이 하고 싶은 않는 상대방 마음을.
At other times, we need more than "Yes, I understood you," to feel confident that we've been truly understood. At such times, we might ask others to reflect back in their own words what they heard us say. We then have the opportunity to restate parts of our message to address any discrepancy or omission we might have noticed in their reflection. For example, a teacher approaches a student and says, "Peter, I got concerned when I checked my record book yesterday. I want to make sure you're aware of the homework I'm missing from you. Will you drop by my office after school?" 다른 때는 우리는 필요하다. 상대방이 ‘네 알겠습니다’ 라고 얘기하더라도 더 확신하기 위해서. 그가 정말로 이해했는지. 그런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요청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달라고. 그들의 언어로. 그들이 우리가 말한 것을 들은 대로 다시 말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이 반복해주는 말에서 우리 뜻과 일치하지 않거나 빠진 것을 다시 말해줄 기회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선생님이 학생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피터 어제 성적기록부를 보고 나니 조금 걱정이 된다. 네가 제출하지 않은 숙제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러는데, 방과 후에 사무실로 올 수 있겠니?
Peter Mumbles, "Okay, I know," and then turns away, leaving the teacher uneasy as to whether her message had been accurately received. She asks for a reflection - "Could you tell me what you just heard me say?" - to which Peter replies, "You said I gotta miss soccer to stay after school because you didn't like my homework." Confirmed in her suspicion that Peter had not heard her intended message, the teacher tries to restate it, but first she is careful of her next remark. An assertion like "You didn't hear me," "That's not what I said," or "You're misunderstanding me," may easily lead Peter to think that he is being chastised. Since the teacher perceives Peter as having sincerely responded to her request for a reflection, she might say, "I'm grateful to you for telling me what you heard. I can see that I didn't make myself as clear as I'd have liked, so let me try again." 피터는 ‘네 알았어요.’ 라고 풀죽은 목소리로 말하며 돌아선다. 그런데 선생님은 자신의 말이 정확하게 전달되었는지 염려스러워한다. 선생님은 피터에게 자신의 말을 들은 대로 되풀이해주기를 부탁한다. “내가 방금 한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말해 줄 수 있겠니?” 피터는 이 질문에 “선생님은 제가 한 숙제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축구 연습에 나가지 말고 학교에 남으라고 하셨어요.”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피터가 자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리라는 추측이 확인되자, 다시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다음 말을 하기 전에 신중을 기한다.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구나. 내 말은 그게 아니야 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 와 같이 단정지어 하는 말은 피터가 자신이 야단을 맞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선생님이 다시 말해달라는 자신의 부탁에 피터가 성실하게 대답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네가 들은 것을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내가 내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 같구나. 그러니 다시 한 번 말해줄게.
When we first begin asking others to reflect back what they hear us say, it may feel awkward and strange because such requests are rarely made. When I emphasize the importance of our ability to ask for reflections, people often express reservations.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말을 되풀이해달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이런 부탁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내가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사람들을 대개 주저한다.
They are worried about reactions like, "What do you think I am - deaf? or, "Quit playing your psychological games." To prevent such responses, we can explain to people ahead of time why we may sometimes ask them to reflect back our words. We make clear that we're not testing their listening skills, but checking out whether we've expressed ourselves clearly. However, should the listener retort, "I heard what you said; I'm not stupid!" we have the option to focus on the listener's feelings and needs and ask - either aloud or silently - "Are you saying you're feeling annoyed because you want respect for your ability to understand things?" 다음과 같은 반응이 나올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넌 내가 귀머거리인 줄 아니?” 혹은 “그런 심리놀이 그만둬!”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되풀이 말해 줄 것을 부탁하는 이유를 상대에게 먼저 설명할 수도 있다. 상대의 이해력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달하고자 한 뜻이 제대로 전해졌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만약 상대가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아들었어. 난 바보가 아니야!” 라고 한다면. “네 이해력을 존중해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말이니?” 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
After we express ourselves vulnerably, we often want to know (1) what the listener is feeling; (2) what the listener is thinking; or (3) whether the listener would be willing to take a particular action.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한 다음, 우리는 우리가 한 말에 대해서 상대가 무엇을 느끼는지, 상대가 무엇을 생각는지, 상대가 제 제안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Requesting Honesty 솔직한 반응을 부탁하기
After we've openly expressed ourselves and received the understanding we want, we're often eager to know the other person's reaction to what we've said. Usually the honesty we would like to receive takes one of three directions. Sometimes we'd like to know the feelings that are stimulated by what we said, and the reasons for those feelings. We might request this by asking, "I would like you to tell me how you feel about what I just said, and your reasons for feeling as you do." 우리가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의도한 대로 이해를 받은 다음에는 상대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을 때가 있다. 우리가 원하는 솔직한 반응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일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알고 싶어 한다. 우리가 한 말에 대해서 상대에게 떠오른 느낌과 그 느낌에 대한 이유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청할 수 있다. 물어 보는 것에 의해서. “제가 방금 한 말을 듣고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그 느낌의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Sometimes we'd like to know something about our listener's thoughts in response to what they just heard us say. At these times, it's important to specify which thoughts we'd like them to share. For example, we might say, "I'd like you to tell me if you predict that my proposal would be successful, and if not, what you believe would prevent its success," rather than simply saying, "I'd like you to tell me what you think about what I've said." When we don't specify which thoughts we would like to receive, the other person may respond at great length with thoughts that aren't the ones we are seeking. 때로는 내가 방금 한 말을 듣고 상대방이 어떻 생각을 하는지 알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특히 어떤 생각을 듣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 계획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방해 요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기 보다는 “제가 한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의 어떤 생각을 알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우리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장황하게 말할 수도 있다.
(3) whether the listener would be willing to take a particular action. 상대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Sometimes we'd like to know whether the person is willing to take certain actions that we've recommended. 때때로 어떤 때는 내가 제안한 행동을 상대가 기꺼이 해줄 의시가 있는지 알고 싶을 수도 있다.
Such a request may sound like this: "I'd like you to tell me if you would be willing to postpone our meeting for one week.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부탁할 수도 있다. “회의를 일주일 정도 연기하는 게 괜찮으신지 말씀해주시겠어요?”
The use of NVC requires that we be conscious of the specific form of honesty we would like to receive, and to make that request for honesty in concrete language. NVC를 적용할 때는 우리가 상대에게서 어떤 솔직한 반응을 원하는 거를 인식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말로 부탁할 필요가 있다.
Making requests of a group 여러 사람에게 부탁하기
It is especially important when we are addressing a group to be clear about the kind of understanding or honesty we want back after we've expressed ourselves. 우리가 집단을 상대로 이야기할 때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난 후 그들로부터 어떤 종류의 이해와 솔직함을 듣고 싶은지 분명히 말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When we are not clear about the response we'd like, we may initiate unproductive conversations that end up satisfying no one's needs. I've been invited from time to time to work with groups of citizens concerned about racism in their communities. One issue that frequently arises among these groups is that their meetings are tedious and fruitless. This lack of productivity is very costly for group members, who often expend limited resources to arrange for transportation and child care in order to attend meetings. Frustrated by prolonged discussions that yield little direction, many members quit the groups, declaring meetings a waste of time. Furthermore, the institutional changes they are striving to make are not usually ones that occur quickly or easily. 그렇지 않으면 결국 어느 누구의 욕구도 충족하지 못하는 비생산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나는 가끔 초대받는다. 때때로 인종차별을 걱정하는 시민단체들로부터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자주 일어나는 하나의 이슈는 이런 그룹에서 그들의 미팅이 지루하고 뚜렷한 결과가 없이 끝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산성의 부족은 특히 비용 부담이 크게 느껴진다. 어떤 그룹 사람들에게는. 그들은 자주 제한된 시간에 참석한다. 교통이나 아이들 양육에 부담을 느끼면 미팅에 참석한다. 길어지는 모임에 좌절해서, 결론도 없는 모임. 많은 사람들은 모임 자체가 시간 낭비로 간주해 버린다. 더욱이 제도적인 변화들, 그들이 바꾸고자 하는 제도적인 변화들은 보통 빨리 되지도 않고 쉽게 되지도 않는다.
For all these reasons, when such groups do meet, it's important that they make good use of their time together.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그러한 그룹들이 만날 때는 중요하다. 그들의 시간을 함께 잘 사용하는 것이.
I knew members of one such group that had been organized to effect change in the local school system. 나는 어떤 모임을 알고 있었다. 그 모임은 조직되었었다. 지역의 교육제도를 바꾸는 효과를 가져 오기 위해 조직되었었다.
It was their belief that various elements in the school system discriminated against students on the basis of race. Because their meetings were unproductive and the group was losing members, they invited me to observe their discussions. 그들의 믿음이었다. 여러가지 요소들 학교 시스템에 있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인종에 기반해서 학생들 차별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의 모임은 비생산적이었고 그들 모임은 점점 회원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초정했다. 그들의 모임을 관찰해 달라고.
I suggested that they conduct their meeting as usual, and that I would let them know if I saw any ways NVC might help. One man began the meeting by calling the group's attention to a recent newspaper article in which a minority mother had raised complaints and concerns regarding the principal's treatment of her daughter. 나는 제안했다. 그들이 미팅을 평소와 같이 진행하라고. 그리고 알려주겠다고 혹시 NVC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알려 주겠다고. 한 남성이 얘기를 시작했다. 그룹의 주의를 끌면서. 최근에 신문에 났었던 이야기. 소수민족 어머니가 불망을 제기한 얘기, 우려를 제기한 얘기. 그 우려는 교장이 그녀의 딸에게 했던 처분 등에 관한 것이었다.
In a group, much time is wasted when speakers aren't certain what response they're wanting. 모임에서 많은 시간이 낭비된다. 말하는 사람이 분명하지 않을 때. 말하는 사람이 모임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얘기하면.
A woman responded by sharing a situation that had occurred to her when she was a student at the same school. One by one, each member then related a similar personal experience. 어떤 여성이 반응했다. 어떤 상황을 공유하는 것으로. 그녀에게 일어났던, 자신이 학창시절 겪었던 얘기. 그러자 다른 회원들과 한 사람씩 비슷한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After twenty minutes I asked the group if their needs were being met by the current discussion. Not one person said yes. "This is what happens all the time in these meetings!" huffed one man, "I have better things to do with my time than sit around listening to the same old bullshit." I then addressed the man who had initiated the discussion: "Can you tell me, when you brought up the newspaper article, what response you were wanting from the group?" "I thought it was interesting," he replied. I explained that I was asking what response he wanted from the group, rather than what he thought about the article. He pondered awhile and then conceded, "I'm not sure what I wanted." And that's why, I believe, twenty minutes of the group's valuable time had been squandered on fruitless discourse. 이렇게 20분 정도 지난 다음 나는 회원들에게 지금 나눈 이야기들로 모임의 목적이 충족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단 한 사람도 ‘네’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은 언제나 우리 모임에서 일어나는 식이에요. 하면 한 남성이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차라리 더 괜찮은 일을 하고 싶어요. 여기 앉아서 같은 말만 되풀이 하면서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나는 이야기를 처음 꺼낸 사람에게 물었다. 신문기사를 말씀하시면서 회원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기대하셨는지 이야기해시겠습니까? 나는 그저 그 기사가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대답했다. 나는 설명했다. 내가 묻고 있는 것은 어떤 반응을 원했느냐고. 모임의 사람들로부터. 그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다는. 회원들한테 내가 어떤 반응을 원했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바로 그것이 모임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 이유라고 나는 믿는다.
When we address a group without being clear what we are wanting back. unproductive discussions will often follow. However, if even one member of a group is conscious of the importance of clearly requesting the response this is desired, he or she can extend this consciousness to the group. 모임에서 무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모르면서 말을 하면 토론은 이처럼 비생산적으로 흐른다. 하지만 그 중 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분명하게 부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한다면, 그 같은 인식은 모두에게 전해질 수 있다.
For example, when this particular speaker didn't define what response he wanted, a member of the group might have said, "I'm confused about how you'd like us to respond to your story. Would you be willing to say what response you'd like from us?" Such interventions can prevent the waste of precious group time. Conversations often drag on and on, fulfilling no one's needs, because it is unclear whether the initiator of the conversation has gotten what she or he wanted, In India, when people have received the response they want in conversations they have initiated, they say "bas" (pronounced "bus"). This means, "You need not say more. I feel satisfied and am now ready to move on to something else." 예를 들어 이 특정한 사람이 그는 원하는 반응을 정의하지 않았을 때, 멤버 중의 한 사람이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당신의 이야기에 반응해야 될지에 대해서요. 말해주시겠습니까? 무슨 반응을 우리들로부터 기대했는지. 이러한 개입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때때로 누구의 욕구도 충족하지 못한 채로 대화가 오래 길이질 때가 있는 데, 그것은 이야기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 그 대화에서 자신이 바라던 것을 얻었는지 여부를 분명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사람들이 반응을 얻었을 때, 그들의 대화에서, ‘bas'라 말한다. 이것은 당신은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만족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다른 주제로 넘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When the other person ears a demand from us, they see two options: to submit or to rebel. To tell if it's a demand or a request, observe what the speaker does if the request is not complied with. It's a demand if the speaker then criticizes or judges. Though we lack such a word in our own language, we can benefit from developing and promoting "bas- consciousness" in all our interactions. 강요를 받으면 그들은 두 가지 대처 방법을 선택한다. 복종 아니면 반항이다. 부탁과 강요를 구분하는 방법은 부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부탁한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한다. 부탁에 응하지 않았을 때 부탁한 사람이 비판이나 비난을 하면 강요이다. 우리들의 모든 상호 작용에 ‘버스 의식’을 계발하고 적용한다면 크게 이로울 것이다.
Requests versus Demands. 부탁과 강요.
Our requests are received as demands when others believe they will be blamed or punished if they do not comply. When people hear a demand, they see only two options: submission or rebellion. 우리의 부탁은 강요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사람들이 믿을 때. 그들이 비난이나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만약 그들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비난이나 벌을 받을 것이라고 믿게 되면 그 부탁을 강요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강요를 받고 있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복종 아니면 반항이다.
Either way, the person requesting is perceived as coercive, and the listener's capacity to respond compassionately to the request is diminished. The more we have in the past blamed, punished, or "laid guilt trips" on others when they haven't responded to our requests, the higher the likelihood that our requests will now be heard as demands. We also pay for others' use of such tactics. 어느 경우든 부탁을 한 사람은 강압적으로 느껴지고, 듣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 부탁에 응하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과거에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고, 벌주고, 죄책감을 심어 주었을수록 그 사람이 지금 우리의 부탁을 강요로 들어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했는데 우리가 그 대가를 치르는 때도 있다.
To the degree that people in our lives have been blamed, punished, or urged to feel guilty for not doing what others have requested, the more likely they are to carry this baggage to every subsequent relationship and hear a demand in any request. Let's look at two variations of a situation. Jack says to his friend Jane, "I'm lonely and would like you to spend the evening with me. Is that a request or a demand? The answer is that we don't know until we observe how Jack treats Jane if she doesn't comply. Suppose she replies, "Jack, I'm really tired. If you' like some company, how about finding someone else to be with you this evening?" If Jack then remarks, "How typical of you to be so selfish!" his request was in fact a demand. Instead of empathizing with her need to rest, he has blamed her.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이전에 다른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때 얼마나 책망을 듣고 벌을 받고 죄책감을 가지게 됐느냐에 따라 그 후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 전의 기억대로 부탁을 강요롤 듣게 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다음 두 상황에서 부탁과 강요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자. 잭이 친구인 제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 외로운데 저녁에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을까?” 이것은 부탁일까? 아니면 강요일까? 대답은 아직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관찰할 때까지 잭이 재인한테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서 만약 제인이 부탁을 거절했을 때. 만약 제인이 “잭, 난 피곤해, 혹시 친구가 필요하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게 어때 오늘 저녁 같이 있을 사람을?” 그 때 만약 잭이 “너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 라고 대답한다면 그의 부탁은 강요였다. 제인이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을 하는 대신에 그녀를 비난한 것이다.
Consider a second scenario: 두 번째 시나리오를 보자.
Jack: I'm lonely and would like you to spend the evening with me. 오늘 좀 외로운데 저녁에 만나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을까?
Jane: Jack, I'm really tired. If you'd like some company, how about finding someone else to be with you tonight? 잭, 오늘은 좀 피곤해. 오늘 저녁에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니?
Jack: (turns away wordlessly) 잭이 아무 말 없이 돌아선다.
Jane: (Sensing he is upset) Is something bothering you? 잭이 언짢아하는 것을 느낀 제인이 묻는다. 왜 그래? 뭐가 잘못됐니?
Jack : No
Jane: Come on, Jack, I sense something's going on. What's the matter? 잭 뭔가 언짢은 것 같은데 말해 봐?“
Jack: You know how lonely I'm feeling. If you really loved me, you'd spend the evening with me. 내가 지금 얼마나 외로운지 알잖아. 네가 정말로 사랑한다면 오늘 저녁 함께 있어야지.
Again, instead of empathizing, Jack now interprets Jan's response to mean that she doesn't love him and that she has rejected him. The more we interpret noncompliance as rejection, the more likely our requests will be heard as demands. 여기서도 잭은 제인을 이해하는 대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거절하고 있다고 제인의 반응을 해석하고 있다. 우리의 부탁이 안 받아들여질 때 그것을 거절로 보는 생각은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된다.
This leads to a self-fulfilling prophecy, for the more people hear demands, the less they enjoy being around us. 이것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강요를 듣게 되면 점점 우리 곁에 있는 것을 싫어하게 되기 때문이다.
On the other hand, we would know that Jack's request had been a genuine request, not a demand, if his response to Jane had expressed a respectful recognition of her feelings and needs. 반면에 우리는 안다. 잭의 부탁이 진짜 부탁이라는 것을, 강요가 아니라, 만약 잭의 제인에 대한 반응이 그녀의 느낌과 욕구를
For example: "So, Jane, you're feeling worn out and needing some rest this evening?" 예를 들면 제인, 오늘 저녁에는 피곤해서 혼자 쉬고 싶니?
We can help others trust that we are requesting, not demanding, by indication that we would only want them to comply if they can do so willingly. 상대방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의 부탁을 들어 달라는 의사 표시를 상대에게 분명히 하면, 우리가 강요가 아닌 부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믿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Thus we might ask, "Would you be willing to set the table?" rather than "I would like you to set the table. 그래서 우리는 요청할지 모른다. 상 좀 차려줄 수 있겠니? 라고 한다. 상 좀 차려줘. 가 아니라.
However, the most powerful way to communicate that we are making a genuine request is to empathize with people when they don't agree to the request. We demonstrate that we are making a request rather than a demand by how we respond when others don't comply. If we are prepared to show an empathic understanding of what prevents someone from doing as we asked, Then by my definition, we have made a request, not a demand. Choosing to request rather than demand does not mean we give up when someone says ‘no’ to our request. It does mean that we don't engage in persuasion until we have empathized with what's preventing the other person from saying ‘yes’. 하지만 진심으로 부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대방이 우리의 부탁에 응하지 않았을 때 그 사람의 말에 공감해 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때, 우리가 나타내는 반응에 따라 우리의 말이 강요가 아니라 부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만약 우리가 준비가 되어 있다면 공감적 이해를.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부탁한 것을 들을 수 없는 것에 대해. 그러면 정의대로 우리는 부탁을 한 것이다. 요구가 아닌. 요구가 아니라 부탁을 한다는 것은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한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요구에 대해 ‘NO'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의미한다. 우리가 상대방을 설득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때까지는 무엇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우리의 부탁에 대해 ’Yes'를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 공감할 때까지는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Defining our objective when making requests. 부탁할 때 우리의 목적을 분명하게 정의하기.
Our objective is a relationship based on honesty and empathy. 우리의 목적은 솔직함과 공감에 기반을 둔 연결이다.
Expressing genuine requests also requires an awareness of our objective. 진정한 부탁을 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는 것을 요구한다.
If our objective is only to change people and their behavior or to get our ay, then NVC is not an appropriate tool. 만약 목적이 오직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NVC는 좋은 도구가 아니다.
The process is designed for those of us who would like others to change and respond, but only if they choose to do so willingly and compassionately. 그 과정은 만들어졌다. 그들 스스로 변하고 반응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은 오직 그들이 스스로 기꺼이 그리고 연민으로 그렇게 하기를 선택할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이다.
The objective of NVC is to establish a relationship based on honesty and empathy. NVC의 목적은 관계를 정립시키는 것이다. 솔직함과 공감에 기초해서.
When others trust that our primary commitment is to the quality of the relationship, and that we expect this process to fulfil everyone's needs, then they can trust that our requests are true requests and not camouflaged demands.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질적인 유대관계를 맺고 오든 사람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임을 다른 사람들이 믿게 되면, 사람들은 우리의 부탁이 진정한 부탁이고, 부탁을 위장한 강요가 아님을 믿을 수 있게 될 것이다.
A consciousness of this objective is difficult to maintain, especially for parents, teachers, managers, and others whose work centers around influencing people and obtaining behavioral results. A mother who once returned to a workshop after a lunch break announced, "Marchall, I went home and tried it. It didn't work." I asked to describe what she'd done. "I went home and expressed my feelings and needs, just as we'd practiced. I made no criticism, no judgments of my son. I simply said, "Look, when I see that you haven't done the work you said you were going to do. I feel very disappointed. I wanted to be able to come home and find the house in order and your chores completed.' Then I made a request: I told him I wanted him to clear it up immediately." "It sounds like you clearly expressed all the components," I commented. "What happened?" "It sounds like you clearly expressed all the components," I commented. "What happened?" 이러한 목적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부모나 교사, 관리자 등과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행동을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어렵다. 워크숍 도중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에 다녀온 한 어머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마셜 집에 가서 배운 대로 해 봤는데 효과가 없었어요.” 나는 그녀가 집에서 어떻게 했는지 물었다. 난 집으로 와서 나의 느낌과 욕구들을 표현했다. 우리가 연습했던 대로. 나는 비난이나 판단을 하지 않았다. 아들에 대해. 나는 단순히 얘기했다. 내가 보았을 때, 니가 하기로 한 것들을 아직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나는 실망감을 느낀다. 나는 집에 오기 원한다. 집이 잘 정돈되어 있는 상태로. 그 다음 나는 부탁했다. 나는 아들에게 바로 집을 깨끗이 치우라고. 당신은 모은 요소들을 분명하게 표현한 듯하게 보이는데요. 라고 나는 코멘트했다. 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죠?
"He didn't do it." "Then what happened?" I asked. "I told him he couldn't go through life being lazy and irresponsible." I could see that this woman was not yet able to distinguish between expressing requests and making demands. She was still defining the process as successful only if she got compliance for her "request." During the initial phases of learning this process, we may find ourselves applying the components of NVC mechanically without awareness of the underlying purpose. 아들은 그것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라고 나는 물었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그래서는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없다고, 그렇게 게으르고 무책임하면.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여성이 아직 부탁을 하는 것과 강요를 하는 것의 구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부탁’이 받아들여졌을 때만 NVC 방식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NVC를 처음 배울 때, 그 이면에 있는 목적을 인식하지 못한 때 기계적으로 NVC를 적용할 때 생기는 일이다.
Sometimes, however, even when we're conscious of our intent and express our request with care, people may still hear a demand. This is particularly true when we occupy positions of authority and are speaking with those who have had past experiences with coercive authority figures. Once, the administrator of a high school invited me to demonstrate to teachers how NVC might help them communicate with students who weren't cooperating as the teachers would have liked. I was asked to meet with forty students who had been deemed "socially and emotionally maladjusted." I was struck by the way such labels serve as self-fulfilling prophecies. If you were a student who had been thus labeled, wouldn't it just give you permission to have some fun at school by resisting whatever was asked of you?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목적을 인식하면서 주의 깊게 부탁했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그것을 여전히 강요로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우리가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고, 또 상대방이 과거에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사람을 경험했다면 더욱 그렇다. 한 번은 고등학교 행정 책임자가 나를 초대했다. 시범을 보여 달라고 선생님들에게. NVC가 어떻게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돌지. 학생들과 소통할 때. 협조하지 않는 학생들과 소통할 때. 선생님들이 원하는 대로 협조하지 않을 때 학생들과 어떻게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지에 대해서. <한번은 어떤 고등학교에서 강의 부탁을 받았다. 그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바라는 대로 협조하지 않는 학생들과 소통하는 데 NVC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선생님들에게 시범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요청받았다. 40명의 학생들과 만나달라고. 그들은 ‘사회적·정서적 부적응아’로 분류된 학생들이었다. 나는 놀랐다. 그런 꼬리표들이 작용한다. 자기 충족적 예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 만약 학교에서 이런 꼬리표를 붙인다면, 누구라도 선생님들이 하라는 것은 모두 거부하고 자기 좋을 대로 재미를 보라는 허락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When we give people labels, we tend to act in a way that contributes to the very behavior that concerns us, which we then view as further confirmation of our diagnosis. Since these students knew they had been classified as "socially and emotionally maladjusted," I wasn't surprised that when I walked in, most of them were hanging out the window hollering obscenities at their friends in the courtyard below. 사람들에게 꼬리표를 붙임으로써 우리들은 그 사람들이 우리가 걱정하는 바로 그 행동을 하게 만드는 식으로 그들을 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 학생들은 알았다. 그들이 ‘사회적·정서적 부적응아’ 로 분류된 것을. 나는 놀라지 않았다. 내가 교실에 들어갔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큰소리로 운동장에 있는 친구들과 서로 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놀라지 않았다.
I began by making a request: "I'd like you all to come over and sit down so I can tell you who I am and what I'd like us to do today." About half the students came over. Uncertain that they had all heard me, I repeated my request. With that, the remainder of the students sat down, with the exception of two young men who remained draped over the windowsill. Unfortunately for me, these two were the biggest students in the class. "Excuse me," I addressed them, "would one of you two gentlemen tell me what you heard me say?" One of them turned toward me and snorted, "Yeah, you said we had to go over there and sit down," I thought to myself, "Uh, oh, he heard my request as a demand."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부탁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가 누구인지 소개하고 오늘 여러분과 같이 무엇을 하려는지 말할 수 있게 모두 자리에 앉아주면 좋겠습니다” 반 정도 되는 학생들이 자리에 앉았다. 나머지 학생들이 내 말을 들었는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부탁했다. 그러자 학생들의 나머지는 모두 자리에 앉았다. 두 명을 제외하고는. 그 두 명은 여전히 창문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두 학생은 반에서 제일 몸집이 큰 학생들이었다. 이 봐요. 학생들 하고 불렀다. 두 사람 중에서 누구라도 내가 지금 뭐라고 했는지 말해줄 수 있겠어요? 그러자 한 학생이 코웃음치며 말했다. “네 우리보고 자리에 가서 앉아야 한다고 했잖아요.” 나는 혼자 생각했다. ‘이런, 이 학생은 내 부탁을 강요로 받아들였군.’
Out loud I said, "Sir" - I've learned always to say "sir" to people with biceps like his, especial when one of them sports a tatoo- "would you be willing to tell me how I could have let you know what I was wanting so that it wouldn't sound like I was bossing you around?"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보세요(나는 이들 학생처럼 팔뚝이 굵고 게다가 문신을 한 사람에게는 항상 존댓말을 쓰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겠는지 내게 말해 줄 수 있어요?
"Huh?" Having been conditioned to expect demands from authorities, he was not used to my different approach. "How can I let you know what I'm wanting from you so it doesn't sound like I don't care about what you'd like?" I repeated. He hesitated for a moment shrugged, "I don't know." "What's going on between you and me right now is a good example of what I was wanting us to talk about today. “네?”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강요를 받는 것에 익숙한 그에게 나의 다른 접근방식은 낯설었던 것이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전하려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라고 다시 말했다. 학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모르겠는데요” 지금 학생과 나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이런 상황이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의 좋은 예입니다.
I believe people can enjoy each other a lot better if they can say what they would like without bossing others around. When I tell you what that I'd like, I'm not saying that you have to do it or I'll try to make your life miserable. I don't know how to say that in a way that you can trust." To my relief, this seemed to make sense to the young man who, together with his friend, sauntered over to join the group In ceratin situations, such as this one, it may take awhile for our requests to be clearly seen for what they are. When making a request, it is also helpful to scan our minds for the sort of thoughts that automatically transform requests into demands: 다른 사람에게 명령을 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 좀 더 즐거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원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할 때 그것은, 여러분이 꼭 그대로 해야 한다거나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여러분을 괴롭히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을, 여러분이 믿을 수 있도록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다행히도 학생이 내 말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는 옆에 있던 친구와 함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 경우처럼 상대가 우리 부탁을 진정한 부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생각들은 자동적으로 강요로 만든다. 부탁할 때 이런 생각들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 He should be cleaning up after himself. 자기가 어질러 놓은 것은 스스로 치워야만 한다.
- She's supposed to do what I ask. 내가 요청한 일을 그 사람은 당연히 하기로 되어 있다.
- I deserve to get a raise. 나는 마땅히 임금을 인상받을 자격이 있다.
- I'm justified in having them stay later. 내가 그들을 늦게까지 일하게 한 것은 정당하다.
- I have a right to more time off. 나는 며칠 더 휴가를 낼 권리가 있다.
When we frame our needs with these thoughts, we are bound to judge others when they don't do as we request. I had these self-righteous thoughts in my mind once when my younger son was not taking out the garbage. When we were dividing the household chores, he had agreed to this task, but every day I would remind him. This is your job, and We all have jobs - with the sole objective of getting him to take out the garbage.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때는 상대가 부탁에 응하지 않으면 반드시 비난을 하게 된다. 언젠가 막내 아이가 쓰레기를 집 밖에 내놓지 않았을 때, 내 마음속에는 이런 독선적인 생각들이 있었다. 우리가 집안일을 나누어 하기로 했을 때 막내는 쓰레기를 집 밖에 내놓은 일을 맡기로 동의했다. 하지만 나와 막내 아이는 이 문제를 가지고 실랑이를 벌였다. 나는 오로지 아들에게 쓰레기를 밖에 내놓게 할 한 가지 생각으로 “쓰레기를 내 놓는 일은네 몫이야”, “우리는 각자 맡은 일이 있어” 등과 같은 말로 매일 다그치곤 했다.
Finally, one night I listened more closely to what he'd been telling me all along about why the garbage wasn't going out. I wrote the following song after that evening's discussion. After my son felt my empathy for his position, he began taking out the garbage without any further reminder from me. 마침내 어느 날 밤, 마침내 왜 이 일이 안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이가 그동안 해오던 말을 주의하여 듣게 되었다. 그날 밤 아들과 대화한 후 나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만들었다. 내가 자신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느낀 후로 아이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쓰레기를 집 밖에 내놓았다.
브렛의 노래
If I clearly understand you intend no demand, I'll usually respond when you call. 아빠의 의도가 강요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면 아빠의 부름에 응할 거예요.
But if you come across like a high and mighty boss, you'll feel like you ran into a wall. 하지만 아빠가 거만한 상사처럼 다가온다면 아빠는 벽을 만난 것처럼 느끼실 거예요.
And when you remind me so piously about all those things you've done for me, you'd better get ready: Here come another bout(한 차례 발작)! 그리고 아빠가 아에게 상기시킬 때, 엄숙하게 아빠가 나를 위해서 한 모든 것을 엄숙하게 상기시킬 때. 아빠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거예요.
Then you can shout, you can spit, moan, groan, and throw a fit; I still won't take the garbage out. 아빠가 침을 튀기며, 소리를 지르고, 한탄하고, 불평하고, 노발대발하셔도. 나는 쓰레기를 갖다 버리지 않을 거예요.
Now even if you should change your style, It's going to take me a little while before I can forgive and forget. 아빠가 태도를 바꾼다 해도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내가 아빠를 용서하고, 잊는 데는.
Because it seems to me that you didn't see me as human too until all your standards were met. 왜냐하면 내가 아빠의 모든 기준에 맞게 행동하기 전까지는 나를 한 인간으로 보지 않으셨기 때문이에요.
-"Song from Brett" by Marshall B.Rosenberg
The fourth component of NVC addresses the question of what we would like to request of each other to enrich each of our lives. We try to avoid vague, abstract, or ambiguous phrasing, and remember to use positive action language by stating what we are requesting rather than what we are not. Each time we speak, the clearer we are about what we want back, the more likely we are to get it. Since the message we send is not always the message that’s received, we need to learn how to find out if our message has been accurately heard. Especially when we are expressing ourselves in a group we need to be clear about the nature of the response we are wanting. NVC의 네 번째 요소는 ‘우리가 각자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서로 무엇을 부탁하기 원하는가? 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피하려 노력한다. 막연하고, 추상적이고, 불분명한 표현. 그리고 명심한다. 긍정적인 동작의 언어를 사용하기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기술한다. 원하지 않는 것을 부탁하는 것보다. 우리가 말할 때,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응답을 바라는지 더 분명하게 말하면 말할수록,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뜻이 항상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하게 전해졌는지 확인할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가 그룹에서 우리 자신을 표현할 때는 우리는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반응의 성격에 대하여.
Otherwise we may be initiating unproductive conversations that waste considerable group time. 그렇지 않으면 비생산적인 대화로 많은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Requests are received as demands when listeners believe that they will be blamed or punished if they do not comply. 부탁은 받아들여진다. 강요로. 상대방이 믿는 다면 그들이 비난이나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만약 그들이 부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비난이다 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부탁은 강요로 들릴 것이다.
We can help other trust that we are requesting, not demanding, by indicating our desire for them to comply only if they can do so willingly.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믿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요청하는 것에 의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하는 것에 의해, 그들에 대한 우리는 희망은 그들이 동의하는 것이다. 상대가 기꺼이 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의 부탁을 들어달라는 뜻을 명백히 함으로써, 이것이 강요가 아니라 부탁임을 상대가 믿도록 도울 수 있다. 그들이 기꺼이 할 수 있을 때에만 <상대가 기꺼이 할 수 있을 때만 우리의 부탁을 들어달라는 뜻을 명백히 함으로써, 이것이 강요가 아니라 부탁임을 상대가 믿도록 도울 수 있다>
The objective of NVC is not to change people and their behavior in order to get our way; it is to establish relationships based on honesty and empathy that will eventually fulfill everyone's needs. NVC의 목적은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그것은 관계를 정립시키려는 것이다. 솔직함과 공감에 기초해서. 그리고 그렇게 하면 결국은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NVC in Action
<Sharing Fears about a best friend's smoking> 가장 친한 친구의 흡연에 관한 두려움 공유하기
Al and Burt have been best friends for over thirty years. Al, a nonsmoker, has done everything he can over the years to persuade Burt to give up his two-pack-a-day habit. In the past, when Al had tried to get him to quit, Burt had often accused Al of judging him. 알과 버트는 30년 넘게 친한 친구로 지내왔다.. 알은 비흡연자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해 왔다. 30년 이상. 버트를 설득하기 위해. 하루에 2갑의 담배를 피우는 버트를 설득하기 위해. 과거에 알이 버트에게 담배를 끊도록 하려고 시도했을 때, 버트는 자주 알을 비난했다. 알이 자기를 판단하고 있다.
Aware during the past year of the increasing severity of his friend's hacking cough, Al finds himself bursting out one day with all the energy and life that had been buried in his unexpressed anger and fear. 버트의 기침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어느 날 알은 지금까지 표현하지 못한 분노와 걱정 속에 묻혀 있던 에너지로 갑자기 마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Al : Burt, I know we've talked about this dozen times, but listen. I'm scared your damned cigarettes are going to kill you! you're my best friend, and I want you around for as long as I can have you. Please don't think I'm judging you. I'm not - I'm just really worried. 버트 벌써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한 번 더 들어 봐. 나는 그 말한 담배 때문에 네가 죽을까 봐 겁나. 너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이고 네가 정말 오래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어. 내 뜻은 그런 게 아니야 정말 네가 걱정될 뿐이야.
Burt : No, I hear your concern. We've been friends for a long time...아니 난 너의 걱정을 듣는다. 우리는 오래 동안 친구였잖니.
Al: (making a request) Would you be willing to quit? 담배를 끊을래?
Burt: I wish I could. 응 나도 그러고 싶어.
Al: (listening for the feeling and needs preventing Burt from agreeing to the request) Are you scared to try because you don't want to fail? 감정과 욕구를 들으면서, 버트가 부탁에 동의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니는 두렵나? 시도하는 것이. 왜냐하면 네가 실패하길 원치 않기 때문에.
Burt: Yeah. . . You know how many times I've tried before. . . I know people think less of me for not being able to quit. 그래 내가 전에 얼마나 여러 번 시도했는지 너도 알잖아. 내가 담배를 끊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Al: (guessing at what Burt might want to request) I don't think less of you. And if you tried and failed again, I still wouldn't. I just wish you'd try. (버트가 부탁하려는 것을 추측하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네가 다시 시도했다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꺼 야. 나는 그저 네가 시도라도 했으면 해.
Burt: Thanks, But you're not the only one...It's everyone: you can see it in their eyes - they think you're a failure. 고마워. 그런데 나는 너만 말하는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 말이야. 나는 그 사람들 눈빛만 봐도 알아. 나를 실패자 라고 생각해.
Al: (empathizing with Burt's feeling) Is it kind of overwhelming to worry about what others might think, when just quitting is hard enough? (버트의 느낌을 공감하면서) 담배를 끊는 일만으로도 힘든데 남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까지 걱정해야 하는 것 때문에 더 힘드니?
Burt: I really hate the idea that I might be addicted, that I have something that I just can't control. . . 내가 중독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싫어. 또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게 있다는 것 더하고. . .
Al: (Al's yes connect with Burt's; he nods his head. Al's interest and attention to Burt's deep feelings and needs are revealed through his eyes and the silence that follows.) 버트와 눈을 마주치면 이해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버트의 마음 속 깊은 느낌과 욕구에 대한 알의 관심은 그의 눈과 침묵에 나타난다.
Burt: I mean, I don't even like smoking any more. It's like you're a pariah if you do it in public. It's embarrassing. 사실 난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아.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면 무슨 부랑자 쳐다보듯 해서 민만할 때가 있지.
Al: (continuing to empathize) It sounds like you'd really like to quit, but are scared you might fail- and how that would be for your self-image and confidence. (계속 버트의 말에 공감하면서) 정말 담배를 끊고 싶어도 또 실패할까 봐 주저하는구나. 또 그렇게 되면 자신감이나 네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는 어떻게 될까도 걱정하는 것 같고...
Burt: Yeah. I guess that's it....You know, I don't think I've ever talked about it before. Usually when people tell me to quit, I just tell them to get lost. I'd like to quit, but I don't want all that pressure from people. 그래 그런 것 같아... 나는 전에 누구한테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어. 사람들이 내개 담배를 끊으라고 말하면, 그냥 꺼지라고 말했어. 나도 담배를 끊고 싶어. 하지만 강요받고 싶지는 않아.
Al: I would want to pressure you. I don't know if I could reassure you about your fears around not succeeding, but I sure would like to support you in any way I can. That is...if you want me to....나도 네게 강요하고 싶지 않아. 네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떨치는 데 내가 어떤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지만, 네가 담배를 끊으려고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돕고 싶어. 내 말은 만약 네가 원한다면 말이다.
Burt: Yes, I do. I'm really touched by your concern and willingness. But...suppose I'm not ready to try yet, is that okay with you too? 그래 니가 걱정해 주고 도와주려는 것은 고마워. 그러나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면 그래도 괜찮겠니?
Al: Of course, Burt, I'll still like you as much. It's just that I want to like you for longer! 물론이지, 버트, 네가 담배를 끊을 준비가 안 되었어도 나는 네 친구야. 단지 나는 너와 더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고 싶을 뿐이야.
Because Al's request was a genuine request, not a demand, he maintained awareness of his commitment to the quality of the relationship, regardless of Burt's response. 알의 부탁은 강요가 아니라 진실한 부탁이었기 때문에 버트의 응답에 관계없이, 알은 버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잊지 않는다.
he expressed this awareness and his respect for Burt's need for autonomy through his words, "I'll still like you," while simultaneously expressing his own need "to like you for longer." 알은 “그래도 나는 네 친구야” 라는 말로 자율성을 지키려는 버트의 욕구를 존중한다. 이 말과 동시에, “더욱더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고 싶어.”라는 말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한다.
Burt: Well, then, may be I will try again...but don't tell anyone else, okay? 그럼 다시 한 번 해 볼게...하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알았지?
Al: Sure, you decide when you're ready; I won't be mentioning it to anybody. 그래 담배를 언제 끊을지는 네가 정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꺼야.
Exercise 4 Expressing requests. 부탁 표현하기.
To see whether we're in agreement about the clear expression of requests, circle the number in front of each of the following statements in which the speaker is clearly requesting that a specific action be taken. 우리가 분명한 부탁을 하는가에 대해 동의하는 가를 알기 위해서 번호 앞에 동그라미를 치시오. 화자가 분명하게 부탁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분명한 조치.
1. I want you to understand me. 나는 네가 나를 이해해 주면 좋겠어. <이것은 분명한 부탁 방식이 아니다. ‘내가 한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말해주면 좋겠다’ 라고 말 할 수 있다. 특정한 행동에 대해. 특정한 행동을 요청하는 부탁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말해 주길 원합니다. 당신이 나에게 들은 것을 말해 주시기를’ <내가 한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2. I’d like you to tell me one thing and I did that you appreciate. 내 행동 중에서 네 마음에 들었던 한 가지를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분명하게 부탁하는 방식이 맞다>
3. I’d like you to feel more confidence in yourself. 네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지기 바란다. <분명한 부탁 방식이 아니다. 특정한 행동에 대한 부탁은 아마 ‘나는 당신이 자신감 육성 훈련 프로그램에 등록하기를 원한다. 내가 믿기를 그것은 당신의 자신감을 증가시킬 것이라 본다.’ 가 될 것이다.
4. I want you to stop drinking. 네가 술을 끊었으면 좋겠다. <분명한 부탁 방식이 아니다.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방식은 ‘나는 당신이 나에게 말해 주면 좋겠다. 무슨 욕구가 충족되는지. 술을 마심으로써, 그리고 나와 얘기를 나누길 원한다. 그러한 욕구들을 충족하기 위해 다른 무슨 방법이 있을지에 대해.>
5. I’d like you to let me be me. <분명한 부탁 방식이 아니다.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방식은 ‘나는 당신이 나에게 말해 주길 원합니다. 당신이 우리의 관계를 끊지 않겠다는. 비록 내가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어떤 것을 하더라도.’>
6. I’d like you to be honest with me about yesterday’s meeting. 어제 회의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 주면 좋겠어요. <분명한 부탁 방식이 아니다.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방식은 ‘나는 당신이 나에게 말해 주기를 원합니다. 내가 한 행동에 관해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당신이 내가 무엇을 고쳤으면 좋은지에 대해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7. I would like you to drive at or below the speed limit. 제한 속도에 맞추거나 그보다 더 느리게 운전해 주세요. <분명한 부탁 방식이 맞다.>
8. "I'd like to get to know you better." 나는 당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요. <구체적인 부탁 방식이 아니다.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방식은 ‘나는 당신이 말해 주시길 원합니다. 만약 동의해 주면 좋겠다고 일주일에 한 번은 점심을 위해서 만나기를 기꺼이 동의해 주시길’>
9. "I would like you to show respect for my privacy." 내 사생활을 존경해 주시기 바랍니다. <분명학 구체적인 부탁 방식이 아니다.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표현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동의해 주기를 원합니다. 노크하는 것에 대해. 당신이 내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에’>
10. “I'd like you to prepare supper more often." 저녁식사 준비를 좀 더 자주 해주면 좋겠어요. <분명하고 구체적인 부탁 방식이 아니다.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부탁은 다음과 같을 수도 있다. “나는 당신이 매주 월요일 저녁을 준비했으면 합니다.>
Here are my responses for exercise 4
1.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me, the word understand does not clearly express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might be: “I want you to tell me what you heard me say.”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에게 단어 ‘understand’ 는 분명하게 요청하지 않는다. 나는 ‘이해하다’ 라는 단어가 말하는 사람의 부탁을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나타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한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말해주면 좋겠다.”라고 말 할 수 있다. 특정한 행동에 대해. 특정한 행동을 요청하는 부탁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말해 주길 원합니다. 당신이 나에게 들은 것을 말해 주시기를’ <내가 한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2.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in agreement that the speaker is clearly requesting a specific action.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한다. 화자가 분명하게 요청하고 있다고 특정한 행동을.
3.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me, the words feel more confidence do not clearly express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might be: “I’d like you to take a course in assertiveness training, which I believe would increase your self-confidence.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에게 ‘feel more confidence’ 라는 말은 특정한 행동에 대한 부탁이라는 분명한 부탁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특정한 행동에 대한 부탁은 아마 “나는 당신이 자신감 육성 훈련 프로그램에 등록하기를 원한다. 내가 믿기를 그것은 당신의 자신감을 증가시킬 것이라 본다.”
4.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me, the words stop drinking do not express what the speaker wants, but rather what he or she doesn’t want.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might be: “I want you to tell me what needs of yours are met by drinking, and to discuss with me other ways of meeting those needs.”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stop drinking’ 이라는 표현은 화자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방식은 ‘나는 당신이 나에게 말해 주면 좋겠다. 무슨 욕구가 충족되는지. 술을 마심으로써, 그리고 나와 얘기를 나누길 원한다. 그러한 욕구들을 충족하기 위해 다른 무슨 방법이 있을지에 대해.
5.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me, the words let me be me do not clearly express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might be: “I want you to tell me you won’t leave our relationship - even if I do some things that you don’t like.”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에게 ‘let me be me’ 라는 표현은 특정한 행동을 분명하게 부탁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방식은 ‘나는 당신이 나에게 말해 주길 원합니다. 당신이 우리의 관계를 끊지 않겠다는. 비록 내가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어떤 것을 하더라도.’
6.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me, the words be honest with me do not clearly express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might be: “I want you to tell me how you feel about what I did and what you’d like me to do differently.”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어 ‘be honest with me’ 라는 표현은 특정한 행동에 대한 부탁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방식은 ‘나는 당신이 나에게 말해 주기를 원합니다. 내가 한 행동에 관해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당신이 내가 무엇을 고쳤으면 좋은지에 대해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7.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in agreement that the speaker is clearly requesting a specific action.
8.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me, the words get to know you better do not clearly express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might be: "I'd like you to tell me if you would be willing to meet for lunch once a week."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get to know you better’ 라는 표현은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방식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방식은 ‘나는 당신이 말해 주시길 원합니다. 만약 동의해 주면 좋겠다고 일주일에 한 번은 점심을 위해서 만나기를 기꺼이 동의해 주시길’
9.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me, words show respect for my privacy do not clearly express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might be: "I'd like you to agree to knock before you enter my office."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에게 단어 ‘show respect for my privacy’ 라는 표현은 분명한 부탁을 표현하지 않는다.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특정한 행동을 부탁하는 표현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동의해 주기를 원합니다. 노크하는 것에 대해. 당신이 내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에’
10.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me, the words more often do not clearly express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A request for a specific action might be: "I'd like you to prepare supper every Monday night."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어 ‘more often’ 은 분명한 부탁을 표현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부탁은 다음과 같을 수도 있다. “나는 당신이 매주 월요일 저녁을 준비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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